하나님이 준비하신 사울
2005-05-01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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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준비하신 사울
(행9:1-22)
설교 : 신봉준목사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행9:1-22)
오늘 본문은 너무 잘 아는 말씀이고, 신앙생활을 하신 분은 가장 많은 설교를 들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울이라는 예수를 핍박하던 청년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핍박자가 증인이 되는 축복된 현장이 본문입니다. 사울의 사역을 크게 본다면 4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사건이고 두 번째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만남을 통해 세계살리는 제자로 훈련받고 시키는 사람으로 새워진 사역입니다. 특별히 제대로 훈련속에 인도받고 훈련이 여러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손 대대로 전달되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후대들을 전도제자로 세우지 않으면 타락의 문화속에서 어떻게 빠져들지 모르는 현장에 살고 있기에 자녀를 그냥 자녀가 아닌 자신이 먼저 훈련받고 인도받고 후대들에게 인사한 것처럼 언약적인 한을 가진 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후대들이 타락의 문화권을 이기고 공동체의 역사에 쓰임받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요게벳은 모세를 언약의 한을 가지고 키웠다. 한나는 시대적인 인물 사무엘을 언약적인 한을 가지고 키웠습니다. 바울의 생애도 바울로 세워진 제자들, 특히 디모데라는 인물은 한을 가지고 한시대의 복음전파자로 키웠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 바울이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고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더불어 훈련받는 사실을 통해 진행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바울의 사건이 행 16장의 드로아의 사건입니다. 새로운 마게도냐라는 유럽복음화의 길을 열고 바울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바울의 사역이 감옥속에서 사역입니다. 행 28장의 배경입니다. 감옥속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큰 역사가 감옥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엇을 해야 현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도하고 현장에 설때 우리와 상관없이 이루십니다. 전혀 할수 없고 가장 할수 없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2년동안 감옥 옆에 셋방에서 가택유금되었는데 오는 제자로 세계복음화하였습니다. 환경을 탓할 것이 없습니다. 언약붙잡는 자리가 최고의 자리이고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실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통해 진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 중 한명의 인물인 사울의 인물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의 사역에서 예루살렘의 모습으로는 이 세상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들의 하는 말이나 가지는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인 행 1:8의 땅끝까지 내 증인 되리라 에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방을 향해 뛰어나갈 준비가 전혀되어지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행 7장의 스데반의 순교로 핍박이 일어나서 그중 몇이 흩어졌는데,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사도외에는’ 라고 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 10장에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가 들어가 세례를 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보고 받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찌 할례자가 무할례자의 집에가서 같이 먹느냐고 했습니다. 이미 할례자와 무할례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세계복음화 행 1:8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라 이 말씀의 성취구나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찌 할례자가 무할례자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이것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인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가 전혀 이런부분 가운데 과연 이런 교회가 세계복음화를 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행11:19장에 스데반의 환란으로 흩어진 자들이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였다고 나옵니다. 자기들의 선민의식과 유대사상에 찌들려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 다음의 역사를 위해 일꾼을 준비하시고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일꾼이 오늘 본문의 사울이라는 일꾼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축복된 사람을 미리 준비하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을 여호수와. 엘리야의 뒤를 이을 엘리사. 하나님은 시대마다 감당할 일꾼들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사울의 회심은 유대사회와 초대교회의 큰 화제와 이야깃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유대교에 심취한 청년,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 베냐민 지파의 왕손이 돌아온 것은 유대사회와 초대교회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 이곳은 헬라문화의 중심지입니다. 한마디로 이방교회의 근거지가 길리기아 다소인것입니다. 그 사울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것은 앞으로 이방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그런 배경의 바울을 쓰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다면 율법과 종교와 선민사상에 빠졌겠지만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로마 학문을 접하고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방세계를 이미 잘 알았고 영적인 문제를 알았고 문화적인 배경도 이해를 한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의 사역은 영적인 문제를 너무 잘 알아서 귀신들리고 무당과 어려운 자를 바울로 말미암아 건져낸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배경이 바른 언약의 배경을 알 때 하나도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할, 이방을 살리기 위해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복음을 이방에 퍼뜨리기 위해 사울을 부르신 사건입니다.
이 자리에서 문제와 사건에 갈등하신다면 여러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을 잊지말기 바랍니다. 어떤 과거라도 언약 복음의 비밀을 깨달으면 과거가 사람을 살리는 발판이 됩니다. 과거의 상처에 매였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로 모든 실패한 과거가 사람살리는 역사에 쓰임받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사울이라는 인물을 새로운 이방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사울을 준비하시고 사울을 담을 그릇, 현장도 준비하셨습니다. 그를 부르고 메시지를 부르고 세울 현장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잡고 다메섹의 흑암을 꺽고 지역복음화를 기도한 팀이 이미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10절을 보면 그때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더니 말씀하셨습니다. 11절과 19절을 보면 이미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언약을 잡은 제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꺾으시고 그들에게 붙이신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은혜받고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현장을 6일동안 살면서 무엇 때문에 은혜를 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흑암을 꺽고 영적문제있는자를 복음으로 살리기 위해 은혜를 주시고 현장을 감당케하신 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주간 현장속에서 믿음의 사람을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름있고 열심히 사역을 쫓는 분들도 아닙니다. 이름없이 빛 없이 외진곳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복음과 주를 사랑해 교회와 주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전하는 일이 가장 축복된 일인 것을 알고 기도하며 사역하는 분을 보면서 하나교회를 축복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별 열매도 없고 증거도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나를 이 지역에 세우신 계획인 줄 알고 교회와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고 한 영혼이 주님앞에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보며 이 교회가 교회됨을 느끼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교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역을 두고 가정을 두고 개인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사울같은 인물이 나타날때 담을 그릇이 준비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릇을 넓히고 세계를 끌어 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처럼 시기하고 질투하고 교회안에 파당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누구라도 담아야 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들어오고 사도권의 시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같은 인물로 통해서 사울을 담을 그릇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전세계를 향한 선교사로 나가고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역사를 감당하는 사울같은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신앙생활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는데 영적문제만 되어지지 못한 사울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그들을 품을 그릇이 될 때 붙이십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우리 교회가 되길 축원합니다.
그 다음 주님이 나타나시고 사울을 꺽으셨습니다. 복음사역에 부르신 이런 예는 특별합니다.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대전도자가 된 역사는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성경의 예는 마 28:16-20 예수께서 명하신 감람산에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막 16:19-20을 보면 제자들이 두루 전파할 때 주님이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직접 나타나신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계 2장을 보면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촛대를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역사가 나타났는데, 행 3:1-12 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베드로의 그 내민 손이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행 4:29-31에 핍박속에서 초대교회가 핍박을 하감하시고 핍박으로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빌기를 다하매 땅이 진동하고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나옵니다.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행 7장의 스데반의 순교현장에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순교현장을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의 현장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감당할 힘이 주셨습니다. 문제는 언제 주님이 나타나시고 증거를 강하게 나타나시는가 하는것입니다. 정확한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현장에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과 선포되는 것과 반대로 언약과 반대의 일이 일어날 때 거기에 하나님이 손을 들어 역사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울의 예입니다. 예수믿는 자를 핍박하는 사울에게 3절에 하나님이 손을 들어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생애가 전환되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15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절에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해야할 것을 사울이 깨달았다. 자기 목표를 위해 살았지만 하나님의 소원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참된 응답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땅에 살 이유가 하나님의 인생과 목적이 된다면 참된 응답이 시작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자신이 해야할 일과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되어야 할 가장 먼저의 사건이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것입니다. 이땅의 사람들이 창3장의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으로 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고 부활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까? 인간의 문제가 육신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 저주 재앙과 실패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셔야 했고 동정녀로 오셔야 했고 빠져나오게 하기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와 함께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잘되는 것 같아도 속지 말기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인생은 어떤 인생도 공허와 궁핍과 방황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새가 하늘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하나님안에서 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내가 누구인가 답이 나오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누구때문이고, 나에게 생을 주시고 삶을 주시고 가정에 충만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때 참된 축복된 역사가 이루어 지는것입니다.
인간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을 떠난 죄와 사단의 문제.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를 만난 사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울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길 축원합니다. 그 축복된 만남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아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고 현장을 정복하고 현장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행9:1-22)
설교 : 신봉준목사
1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0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15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19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20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행9:1-22)
오늘 본문은 너무 잘 아는 말씀이고, 신앙생활을 하신 분은 가장 많은 설교를 들은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울이라는 예수를 핍박하던 청년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핍박자가 증인이 되는 축복된 현장이 본문입니다. 사울의 사역을 크게 본다면 4가지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가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는 사건이고 두 번째가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만남을 통해 세계살리는 제자로 훈련받고 시키는 사람으로 새워진 사역입니다. 특별히 제대로 훈련속에 인도받고 훈련이 여러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손 대대로 전달되어지는 축복의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의 후대들을 전도제자로 세우지 않으면 타락의 문화속에서 어떻게 빠져들지 모르는 현장에 살고 있기에 자녀를 그냥 자녀가 아닌 자신이 먼저 훈련받고 인도받고 후대들에게 인사한 것처럼 언약적인 한을 가진 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후대들이 타락의 문화권을 이기고 공동체의 역사에 쓰임받는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성경의 요게벳은 모세를 언약의 한을 가지고 키웠다. 한나는 시대적인 인물 사무엘을 언약적인 한을 가지고 키웠습니다. 바울의 생애도 바울로 세워진 제자들, 특히 디모데라는 인물은 한을 가지고 한시대의 복음전파자로 키웠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이 바울이 예수님을 다메섹에서 만나고 안디옥에서 바나바와 더불어 훈련받는 사실을 통해 진행되어졌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바울의 사건이 행 16장의 드로아의 사건입니다. 새로운 마게도냐라는 유럽복음화의 길을 열고 바울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바울의 사역이 감옥속에서 사역입니다. 행 28장의 배경입니다. 감옥속에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큰 역사가 감옥속에서 일어났습니다. 무엇을 해야 현장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기도하고 현장에 설때 우리와 상관없이 이루십니다. 전혀 할수 없고 가장 할수 없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2년동안 감옥 옆에 셋방에서 가택유금되었는데 오는 제자로 세계복음화하였습니다. 환경을 탓할 것이 없습니다. 언약붙잡는 자리가 최고의 자리이고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실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을 통해 진행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당신의 사역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 중 한명의 인물인 사울의 인물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초대교회의 사역에서 예루살렘의 모습으로는 이 세상을 살릴 수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그들의 하는 말이나 가지는 생각이나 행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인 행 1:8의 땅끝까지 내 증인 되리라 에 관심도 없고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방을 향해 뛰어나갈 준비가 전혀되어지지 않는 교회의 모습이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행 7장의 스데반의 순교로 핍박이 일어나서 그중 몇이 흩어졌는데, 빌립이 사마리아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이 ‘사도외에는’ 라고 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흩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행 10장에 고넬료의 집에 베드로가 들어가 세례를 주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보고 받은 예루살렘 교회가 어찌 할례자가 무할례자의 집에가서 같이 먹느냐고 했습니다. 이미 할례자와 무할례자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세계복음화 행 1:8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라 이 말씀의 성취구나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찌 할례자가 무할례자와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느냐. 이것이 오늘의 교회의 모습인것입니다. 사실 예루살렘 교회가 전혀 이런부분 가운데 과연 이런 교회가 세계복음화를 할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행11:19장에 스데반의 환란으로 흩어진 자들이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였다고 나옵니다. 자기들의 선민의식과 유대사상에 찌들려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정확하게 그 다음의 역사를 위해 일꾼을 준비하시고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일꾼이 오늘 본문의 사울이라는 일꾼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위해 하나님은 축복된 사람을 미리 준비하습니다. 모세의 뒤를 이을 여호수와. 엘리야의 뒤를 이을 엘리사. 하나님은 시대마다 감당할 일꾼들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그 당시에 사울의 회심은 유대사회와 초대교회의 큰 화제와 이야깃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새인 중 바리새인, 유대교에 심취한 청년,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 베냐민 지파의 왕손이 돌아온 것은 유대사회와 초대교회의 이슈가 되었습니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유대인. 이곳은 헬라문화의 중심지입니다. 한마디로 이방교회의 근거지가 길리기아 다소인것입니다. 그 사울이 하나님께 부름받은 것은 앞으로 이방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그런 배경의 바울을 쓰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태어난다면 율법과 종교와 선민사상에 빠졌겠지만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로마 학문을 접하고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방세계를 이미 잘 알았고 영적인 문제를 알았고 문화적인 배경도 이해를 한 것입니다. 나중에 사울의 사역은 영적인 문제를 너무 잘 알아서 귀신들리고 무당과 어려운 자를 바울로 말미암아 건져낸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배경이 바른 언약의 배경을 알 때 하나도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할, 이방을 살리기 위해 바울을 부르신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복음을 이방에 퍼뜨리기 위해 사울을 부르신 사건입니다.
이 자리에서 문제와 사건에 갈등하신다면 여러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을 잊지말기 바랍니다. 어떤 과거라도 언약 복음의 비밀을 깨달으면 과거가 사람을 살리는 발판이 됩니다. 과거의 상처에 매였다면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로 모든 실패한 과거가 사람살리는 역사에 쓰임받는 것을 잊지마십시오. 사울이라는 인물을 새로운 이방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사울을 준비하시고 사울을 담을 그릇, 현장도 준비하셨습니다. 그를 부르고 메시지를 부르고 세울 현장의 준비를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잡고 다메섹의 흑암을 꺽고 지역복음화를 기도한 팀이 이미 있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10절을 보면 그때 다메섹에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더니 말씀하셨습니다. 11절과 19절을 보면 이미 다메섹의 그리스도의 언약을 잡은 제자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사울을 꺾으시고 그들에게 붙이신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와서 은혜받고 최고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현장을 6일동안 살면서 무엇 때문에 은혜를 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흑암을 꺽고 영적문제있는자를 복음으로 살리기 위해 은혜를 주시고 현장을 감당케하신 것입니다. 저는 지난 한주간 현장속에서 믿음의 사람을 보면서 힘을 얻었습니다. 이름있고 열심히 사역을 쫓는 분들도 아닙니다. 이름없이 빛 없이 외진곳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복음과 주를 사랑해 교회와 주를 위해 기도하고, 복음전하는 일이 가장 축복된 일인 것을 알고 기도하며 사역하는 분을 보면서 하나교회를 축복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별 열매도 없고 증거도 없는 것 같지만 그것이 나를 이 지역에 세우신 계획인 줄 알고 교회와 주의 종을 위해 기도하고 한 영혼이 주님앞에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는 것을 보며 이 교회가 교회됨을 느끼고 하나님이 축복하신 교회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역을 두고 가정을 두고 개인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 사울같은 인물이 나타날때 담을 그릇이 준비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그릇을 넓히고 세계를 끌어 담아야 합니다. 예루살렘교회처럼 시기하고 질투하고 교회안에 파당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떤 누구라도 담아야 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의 제자들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들어오고 사도권의 시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같은 인물로 통해서 사울을 담을 그릇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전세계를 향한 선교사로 나가고 기독교 역사의 최고의 역사를 감당하는 사울같은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받을 그릇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신앙생활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모든 준비가 다 되어있는데 영적문제만 되어지지 못한 사울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그들을 품을 그릇이 될 때 붙이십니다. 이 축복을 누리는 우리 교회가 되길 축원합니다.
그 다음 주님이 나타나시고 사울을 꺽으셨습니다. 복음사역에 부르신 이런 예는 특별합니다.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대전도자가 된 역사는 없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신 성경의 예는 마 28:16-20 예수께서 명하신 감람산에 부르시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막 16:19-20을 보면 제자들이 두루 전파할 때 주님이 함께 하셨다고 합니다. 직접 나타나신 것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계 2장을 보면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촛대를 다니신다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이 부활하신 주님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신 역사가 나타났는데, 행 3:1-12 에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에게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베드로의 그 내민 손이 그리스도의 손입니다. 행 4:29-31에 핍박속에서 초대교회가 핍박을 하감하시고 핍박으로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했는데 빌기를 다하매 땅이 진동하고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나옵니다.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행 7장의 스데반의 순교현장에 하나님이 친히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모든 순교현장을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순교의 현장에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감당할 힘이 주셨습니다. 문제는 언제 주님이 나타나시고 증거를 강하게 나타나시는가 하는것입니다. 정확한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현장에 역사하십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과 선포되는 것과 반대로 언약과 반대의 일이 일어날 때 거기에 하나님이 손을 들어 역사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사울의 예입니다. 예수믿는 자를 핍박하는 사울에게 3절에 하나님이 손을 들어 회개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생애가 전환되었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15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절에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해야할 것을 사울이 깨달았다. 자기 목표를 위해 살았지만 하나님의 소원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참된 응답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이땅에 살 이유가 하나님의 인생과 목적이 된다면 참된 응답이 시작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고 자신이 해야할 일과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되어야 할 가장 먼저의 사건이 하나님을 만나고 아는 것입니다. 이땅의 사람들이 창3장의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으로 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고 부활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셔야 합니까? 인간의 문제가 육신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기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기 위해 저주 재앙과 실패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가 오셔야 했고 동정녀로 오셔야 했고 빠져나오게 하기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와 함께 성령으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불신자가 잘되는 것 같아도 속지 말기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인생은 어떤 인생도 공허와 궁핍과 방황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새가 하늘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하나님안에서 살도록 지음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알 때 내가 누구인가 답이 나오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원이 누구때문이고, 나에게 생을 주시고 삶을 주시고 가정에 충만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그때 참된 축복된 역사가 이루어 지는것입니다.
인간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하나님을 떠난 죄와 사단의 문제. 그러나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를 만난 사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울처럼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이 있길 축원합니다. 그 축복된 만남이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아는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말씀 기억하시고 현장을 정복하고 현장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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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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