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인생
2004-12-26 00:00:00
관리자
조회수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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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목이 부스러기 인생이라고 했다.
저와 여러분은 부스러기 은혜밖에 못 받아먹는 부스러기 인생이다. 하나님이 내게 세워주신 이 자리가 비록 부스러기 인생이라도 얼마나 축복된 인생인지를 확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성탄절은 십자가와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고 했다. 구주로 이땅에 오실 수 있는 분은 다른분이 없이 오직 한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그리스도, 구원의 완성은 십자가에서 완성된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이다. 성탄절과 십자가는 하나이다.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만 고난이 아니라 십자가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핍박과 어려움과 고통을 한몸에 지신 것이 성탄의 역사이다. 믿는 자들이 성탄의 눈을 열고 나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된다. 이땅에 살면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짜 평화를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다. 오늘 이 찬양하고 예배하는 이시간이 그래서 귀하다.
그래서 구원자는 단 한분 뿐이다. 구원자를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구원할 자로 서셨는데 그분이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성탄부터 십자가냐할때에 오직 하나님의 목적이 구원이요, 목적을 위해서 예수를 이땅에 보내셨다. 그 목적의 중심부에 십자가가 서 있다.
왜 예수님이 단 한분만이 구원자가 되시느냐? 사단을 이길 분은 하나님만이 이길 수 있고 흑암을 꺽을 분인데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그리스도이다.
반드시 흑암꺽기 위해서 이땅에 오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하고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한다. 이 두 인성과 신성을 만족케 하실 분이 이 세상에 없다. 공자도 사람이고 석가도 사람이다. 인성과 신성이 아니다. 그 다음에 아랍권에 있는 마호메트도 사람인 인성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러면서 그분은 전혀 죄가 없어야 한다. 히4:15절에 밝히고 있다. 아담의 후손으로가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와야 한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나셨다. 이것이 신앙고백에서 아주 중요한 고백이다. 이것을 없앨려고 역사속에 몸부림치는 것이 많다. 신앙고백에 대한 문제, 동정녀라는 말고 성경번역상으로 동정녀를 없애고 여자라고 고치자고 했다. 시집간 여자도 여자고 시집안간 여자도 여자니까 그렇게 하지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반드시 죄의 댓가로 몸이 죽어야 한다. 그래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이란 증거로 살아나야 한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탄과 십자가이다.
하나님만이 예수만이 사단의 권세를 멸하고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
오늘은 이런 배경에 이어서 중요한 교리적인 뜻을 품고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7절에 자녀는 누구인가? 유대인들을 말한다. 선택한 백성인 유대인이다. 그 다음에 자녀에게 줄 떡을 빼앗아서 개들에게 던져 줌이 마땅치 않다. 개는 이방인이다. 예수님이 매몰차게 말씀하셨다. 귀신들린 내 딸을 낫게 해 달라고 할때에 예수님이 매몰차게 말씀하신 것이 자녀에게 줄 떡을 빼앗아서 개들에게 줌이 마땅치 않다고 할때에 여자가 말하기를 옳다고 했다. 그 시대가 그렇게 왔다. 옳소이다만은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고백을 너무 소중히 보시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이 말이 무슨 말인가하면 유대인들이 그때 당시에는 이방인들을 개라고 여기고 사람취급을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성전에 이방인의 뜰을 없애버렸다. 하나님이 원래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세웠지만 유대인들은 무시했다. 오직 선민은 우리뿐이고 우리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했다.
장차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다.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짓밟고 부서놓고 걸레쪽지 처럼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추방하고 죽게 만들었다. 내어 던져버렸다. 이때에 유대인이 배신하고 거역한 예수 그리스도를 저와 여러분이 받았다. 이방인이 받았다. 어떤 면에서 엄청난 예언에 대한 내용의 말씀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말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세계복음화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당장 거기서 축복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은 아무도 거역못한다.
전혀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도전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기에 도전하고 모험해도 된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참 용기를 가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붙잡고 모험하고 도전하는 것이 신앙의 진실한 모험과 모범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에는 말씀하기를 이스라엘백성이 넘어짐으로 이방이 복을 받았음을 말한다. 롬11:11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방인이 구원받게 되니 유대인들이 이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안먹겠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는 날에는 그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느나라보다 저주와 재앙을 후손이 받고 있지만 풍성함을 받고 있고 세계 여러나라에 상권과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그들이 도와주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일어나고 있고, 그 황폐한 이스라엘이 세계 각곳에서 보내는 경제후원으로 사막이 옥토로 바뀌고 있다.
세계에 과일이 달고 맛있는 과일이 이스라엘나라이다. 사막에 과일을 심어서 갈릴리호수에서 물을 끌어다가 키우니 계속 햇빛을 받으니 당도가 높고 맛있고 달다. 이스라엘쪽에 가보면 사막이 푸른초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 이사야서에 예언한대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겠다고 일찍이 예언하였다.
그래서, 영적으로도 이런 시대가 온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았다고 이스라엘을 무시하지 말라. 결국 우리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받았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으로 참 좋은 말씀을 받을 수 없기에 부스러기 인생으로 하나님앞에 설 수 없는 이방인이요 하나님앞에 설 수 없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주셔서 이스라엘이 밝고 찟고 한 부스러기로 우리가 부요하고 풍성하게 되었다.
여기서 감사한 것은 부스러기를 받아 먹는 부스러기 인생이지만 부스러기를 받을 자리에 섰다는 것이 축복이다.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주여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섰습니까?
주변을 보면 복받고 잘 난 지식인들이 많지만 부스러기 은혜를 받을 수 없이 다 거절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부스러기라도 받을 자리에 섰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과 은혜이다.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롬11:17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러니, 돌감람나무로 있는 도저히 참감람나무와 비교도 안되는데 이스라엘의 참감람나무가 몇가지가 꺽였는데 거기다가 돌감람나무를 접붙였지만 그렇다고 참감람나무를 무시하면 된다. 우리의 은혜받고 축복받는 근원이 달라졌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교만하지 말고 으쓱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들의 특징이 조금만 자기보다 못하면 얼마나 으쓱되는지 모른다. 처음에 중국갈때에 중국사람들앞에 으쓱되었다. 한국사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긍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였지만 참감람나무를 무시하지 말라. 이스라엘은 구약만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구약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했다.
19절에 보니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절에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겸손하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은혜받으면 받을수록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도리어 겸손하라.
21절에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 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
22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찍히는 것은 영원한 멸망이다.
23절에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이방인이 완악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숫자에 맞게 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거역함은 계속된다고 했다.
그래서 전도캠프를 통해서 계속 나가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만 찾는다.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아니하시면 믿을 수가 없고, 아무리 똑똑해서 못 믿는다.
주일날 이곳에 온 것이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믿고 싶어도 못 믿는 것이 비밀이다. 하나님이 은혜주셔야 되는 것이다.
송현교회에 온 것 만이라도 축복이다. 이 자리에 어쩌다가 왔느냐? 어쩌다가 복음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느냐?
강만석목사가 미국에서 류목사님에게 한 말이 평신도보다 교역자가 이 복음받는 것은 벼락맞는 것보다 쉽다고 했다. 어느날 하나님의 계획속에 이 축복과 역사가 우리것이 되었다.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심장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6절에 보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절에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이스라엘은 지금도 예수믿는다면 사람대접을 안한다. 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조상으로 인해서 우리가 복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다.
32절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그래서, 예수믿는다고 핍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 때를 따라서 완악할 수 있다. 그런데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오게 되는 것이다. 절대로 자긍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이 사실이 인간에게 이해가 안되기에 바울은 말하기를 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오늘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자리, 너무 귀하다. 우연히 아무게 집사를 만나서 복음을 깨달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우연이 박목사를 만났다가 아니라 이곳까지 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너무 자긍하지 말라. 부스러기 은혜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대한 확증이 있어야 한다. 나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확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합동측에서 예수님은 아니지만 복음들고 나왔다는 것 때문에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심하게 말해서 다 부숴놓았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정말로 그런 사건은 받아 마땅하다. 산업선교 초기에 말하기를 산업선교 붙잡고 기도하고 그 회를 열고 못하겠다고 했다. 속된 말로 하나같이 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아니다 시작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시작하고 메시지로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도 이 자리에 복음을 받을 자격이 아니다. 완전히 받을 수 없는 부스러기 인생이다. 이방인으로 유대인에게 취급도 못받는 인생이다. 유대인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데 우리를 불러들이기 위해서 이 축복된 예수그리스도를 그들의 손에서 찢어버렸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을 완전히 이단으로 부스러기로 다 흐트러 놓은 것을 주인이 모아서 개들에게 던져준 것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은 것으로 감격하고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지 않으면 역사앞에 이 축복을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저는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하고 설교하지 않는다. 하나교회가서 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나교회에 가서 뭔가 설교를 잘해야 할 것인데 그러다가 내가 부스러기 인생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인생인데, 그러면서 더욱 부스러기 은혜를 주셔야 하고 더 큰 은혜를 주셔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회에 갈때에 강단에 어떻게 설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지금까지도 준비하시고 인도하셨으니 그 교회에 가서도 축복하실 것을 다 준비하셨다. 영광을 주앞에 돌립니다. 오직 한마디 뿐이다.
정말 비참한 인생에게 복음을 주시고, 인도해 가시고 계신다. 주여 나를 은혜주신 것 처럼 이들에게도 은혜를 주옵소서. 이들에게도 부스러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옵소서.
그래서 저리로 가서 건물을 자랑하고 모이는 형상이나 부분이 아니라 이 은혜를 주신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이 분 붙잡고 내 생애 다해서 이 일을 감당하겠다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스러기라도 받는 자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늘 꾸중하신 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교훈이다. 여러분이 축복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무근듸를 꾸짖는다. 자기도 모르게 자만하고 교만하다. 우리는 부스러기 인생이요 부스러기 은혜를 통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앞에 겸손할때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구할때에 예수님께서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에 있어 유대인들에게 그 우선권이 있음을 말씀하셨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개취급을 받는 이방인으로 구원받을 자격은 없지만 나도 주님의 은혜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이 말을 하였으니, 이 고백을 하였으니 돌아가라”고 하시며 딸의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고백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했기에 그대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넘어짐으로 이방이 복을 받았습니다(롬11:11).
⑴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그 후손이 재앙을 받고 있지만,
복음으로 시작했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의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⑵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이 그 축복을 이방인에게 돌리셨습니다.
⑶ 그로인해 우리는 저주받을 인생이지만 복음의 부스러기라도 붙잡으며 축복받을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⑷ 돌감람나무였던 나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셔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기에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2.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시간표를 이룰때까지 이스라엘은 돌이키지 않습니다(롬11:25).
⑴ 복음을 거부함으로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방인을 향한 구원시간표를 움직이고 계십니다.
⑵ 그 시간표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복음을 듣게 하셨고 구원의 축복속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⑶ 이 복음이 시작된 이스라엘민족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땅끝(행1:8)이기에 결국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3. 복음받을 자격이 없던 나에게 은혜로 주신 복음을 생각하며 늘 감사함으로 승리합시다(롬11:33-36).
⑴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이 다 부숴놓고 흐트려 놓은 복음의 부스러기를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⑵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셨음에 감사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정말 비참한 인생에 복음을 주시고, 구원의 축복속에 세워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은혜로 완벽하게 인도하셨기에 앞으로 하나교회시대속에서도 하나님이 완벽하게 인도하여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겸손함으로 서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 분 붙잡고 생을 다해서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는 개인과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부스러기 은혜밖에 못 받아먹는 부스러기 인생이다. 하나님이 내게 세워주신 이 자리가 비록 부스러기 인생이라도 얼마나 축복된 인생인지를 확인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성탄절은 십자가와 함께 연결되어야 한다고 했다. 구주로 이땅에 오실 수 있는 분은 다른분이 없이 오직 한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예수그리스도, 구원의 완성은 십자가에서 완성된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이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이다. 성탄절과 십자가는 하나이다. 예수님의 고난은 십자가만 고난이 아니라 십자가부터 고난의 연속이다. 핍박과 어려움과 고통을 한몸에 지신 것이 성탄의 역사이다. 믿는 자들이 성탄의 눈을 열고 나면 얼마나 귀한지를 알게 된다. 이땅에 살면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진짜 평화를 누릴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하는 것이다. 오늘 이 찬양하고 예배하는 이시간이 그래서 귀하다.
그래서 구원자는 단 한분 뿐이다. 구원자를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구원할 자로 서셨는데 그분이 예수그리스도이다. 그래서 성탄부터 십자가냐할때에 오직 하나님의 목적이 구원이요, 목적을 위해서 예수를 이땅에 보내셨다. 그 목적의 중심부에 십자가가 서 있다.
왜 예수님이 단 한분만이 구원자가 되시느냐? 사단을 이길 분은 하나님만이 이길 수 있고 흑암을 꺽을 분인데 그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그 분이 예수그리스도이다.
반드시 흑암꺽기 위해서 이땅에 오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하고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한다. 이 두 인성과 신성을 만족케 하실 분이 이 세상에 없다. 공자도 사람이고 석가도 사람이다. 인성과 신성이 아니다. 그 다음에 아랍권에 있는 마호메트도 사람인 인성만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완전한 하나님이셔야 한다. 그러면서 그분은 전혀 죄가 없어야 한다. 히4:15절에 밝히고 있다. 아담의 후손으로가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와야 한다. 그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나셨다. 이것이 신앙고백에서 아주 중요한 고백이다. 이것을 없앨려고 역사속에 몸부림치는 것이 많다. 신앙고백에 대한 문제, 동정녀라는 말고 성경번역상으로 동정녀를 없애고 여자라고 고치자고 했다. 시집간 여자도 여자고 시집안간 여자도 여자니까 그렇게 하지는 것이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반드시 죄의 댓가로 몸이 죽어야 한다. 그래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반드시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 하나님이란 증거로 살아나야 한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성탄과 십자가이다.
하나님만이 예수만이 사단의 권세를 멸하고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다.
오늘은 이런 배경에 이어서 중요한 교리적인 뜻을 품고 있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7절에 자녀는 누구인가? 유대인들을 말한다. 선택한 백성인 유대인이다. 그 다음에 자녀에게 줄 떡을 빼앗아서 개들에게 던져 줌이 마땅치 않다. 개는 이방인이다. 예수님이 매몰차게 말씀하셨다. 귀신들린 내 딸을 낫게 해 달라고 할때에 예수님이 매몰차게 말씀하신 것이 자녀에게 줄 떡을 빼앗아서 개들에게 줌이 마땅치 않다고 할때에 여자가 말하기를 옳다고 했다. 그 시대가 그렇게 왔다. 옳소이다만은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 고백을 너무 소중히 보시고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이 말이 무슨 말인가하면 유대인들이 그때 당시에는 이방인들을 개라고 여기고 사람취급을 안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성전에 이방인의 뜰을 없애버렸다. 하나님이 원래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계획을 세웠지만 유대인들은 무시했다. 오직 선민은 우리뿐이고 우리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했다.
장차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예언이 들어있다.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짓밟고 부서놓고 걸레쪽지 처럼 만들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추방하고 죽게 만들었다. 내어 던져버렸다. 이때에 유대인이 배신하고 거역한 예수 그리스도를 저와 여러분이 받았다. 이방인이 받았다. 어떤 면에서 엄청난 예언에 대한 내용의 말씀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말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세계복음화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당장 거기서 축복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말은 아무도 거역못한다.
전혀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도전하라.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기에 도전하고 모험해도 된다. 그래서 신앙생활에 참 용기를 가지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붙잡고 모험하고 도전하는 것이 신앙의 진실한 모험과 모범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에는 말씀하기를 이스라엘백성이 넘어짐으로 이방이 복을 받았음을 말한다. 롬11:11절에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이방인이 구원받게 되니 유대인들이 이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밥도 안먹겠다고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는 날에는 그 이스라엘이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어느나라보다 저주와 재앙을 후손이 받고 있지만 풍성함을 받고 있고 세계 여러나라에 상권과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그들이 도와주는 것으로 이스라엘이 일어나고 있고, 그 황폐한 이스라엘이 세계 각곳에서 보내는 경제후원으로 사막이 옥토로 바뀌고 있다.
세계에 과일이 달고 맛있는 과일이 이스라엘나라이다. 사막에 과일을 심어서 갈릴리호수에서 물을 끌어다가 키우니 계속 햇빛을 받으니 당도가 높고 맛있고 달다. 이스라엘쪽에 가보면 사막이 푸른초장이 되어 있다는 것이 이사야서에 예언한대로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겠다고 일찍이 예언하였다.
그래서, 영적으로도 이런 시대가 온다. 이방인들이 구원받았다고 이스라엘을 무시하지 말라. 결국 우리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받았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으로 참 좋은 말씀을 받을 수 없기에 부스러기 인생으로 하나님앞에 설 수 없는 이방인이요 하나님앞에 설 수 없다.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주셔서 이스라엘이 밝고 찟고 한 부스러기로 우리가 부요하고 풍성하게 되었다.
여기서 감사한 것은 부스러기를 받아 먹는 부스러기 인생이지만 부스러기를 받을 자리에 섰다는 것이 축복이다.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주여 내가 어떻게 이 자리에 섰습니까?
주변을 보면 복받고 잘 난 지식인들이 많지만 부스러기 은혜를 받을 수 없이 다 거절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부스러기라도 받을 자리에 섰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과 은혜이다. 감사할 일이다.
그래서 롬11:17에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러니, 돌감람나무로 있는 도저히 참감람나무와 비교도 안되는데 이스라엘의 참감람나무가 몇가지가 꺽였는데 거기다가 돌감람나무를 접붙였지만 그렇다고 참감람나무를 무시하면 된다. 우리의 은혜받고 축복받는 근원이 달라졌다.
그래서 18절에 보면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교만하지 말고 으쓱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 한국사람들의 특징이 조금만 자기보다 못하면 얼마나 으쓱되는지 모른다. 처음에 중국갈때에 중국사람들앞에 으쓱되었다. 한국사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자긍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였지만 참감람나무를 무시하지 말라. 이스라엘은 구약만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는 구약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했다.
19절에 보니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절에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겸손하라고 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은혜받으면 받을수록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교만하지 말고 도리어 겸손하라.
21절에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 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
22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찍히는 것은 영원한 멸망이다.
23절에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25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이방인이 완악함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숫자에 맞게 될 때까지 이스라엘의 거역함은 계속된다고 했다.
그래서 전도캠프를 통해서 계속 나가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자만 찾는다. 하나님이 은혜주시지 아니하시면 믿을 수가 없고, 아무리 똑똑해서 못 믿는다.
주일날 이곳에 온 것이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믿고 싶어도 못 믿는 것이 비밀이다. 하나님이 은혜주셔야 되는 것이다.
송현교회에 온 것 만이라도 축복이다. 이 자리에 어쩌다가 왔느냐? 어쩌다가 복음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느냐?
강만석목사가 미국에서 류목사님에게 한 말이 평신도보다 교역자가 이 복음받는 것은 벼락맞는 것보다 쉽다고 했다. 어느날 하나님의 계획속에 이 축복과 역사가 우리것이 되었다. 복음,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심장으로 들어왔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26절에 보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절에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이스라엘은 지금도 예수믿는다면 사람대접을 안한다. 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조상으로 인해서 우리가 복음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다.
32절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그래서, 예수믿는다고 핍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서 때를 따라서 완악할 수 있다. 그런데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오게 되는 것이다. 절대로 자긍하지 말고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이 사실이 인간에게 이해가 안되기에 바울은 말하기를 11장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오늘 여러분과 제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자리, 너무 귀하다. 우연히 아무게 집사를 만나서 복음을 깨달았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우연이 박목사를 만났다가 아니라 이곳까지 오는 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 너무 자긍하지 말라. 부스러기 은혜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에 대한 확증이 있어야 한다. 나같은 죄인이 구원을 받았다는 확증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합동측에서 예수님은 아니지만 복음들고 나왔다는 것 때문에 별 소리를 다 들었다. 심하게 말해서 다 부숴놓았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정말로 그런 사건은 받아 마땅하다. 산업선교 초기에 말하기를 산업선교 붙잡고 기도하고 그 회를 열고 못하겠다고 했다. 속된 말로 하나같이 된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아니다 시작인데 하나님이 그렇게 시작하고 메시지로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도 이 자리에 복음을 받을 자격이 아니다. 완전히 받을 수 없는 부스러기 인생이다. 이방인으로 유대인에게 취급도 못받는 인생이다. 유대인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데 우리를 불러들이기 위해서 이 축복된 예수그리스도를 그들의 손에서 찢어버렸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을 완전히 이단으로 부스러기로 다 흐트러 놓은 것을 주인이 모아서 개들에게 던져준 것이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은 것으로 감격하고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지 않으면 역사앞에 이 축복을 누릴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저는 마지막 설교라고 생각하고 설교하지 않는다. 하나교회가서 또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하나교회에 가서 뭔가 설교를 잘해야 할 것인데 그러다가 내가 부스러기 인생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인생인데, 그러면서 더욱 부스러기 은혜를 주셔야 하고 더 큰 은혜를 주셔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회에 갈때에 강단에 어떻게 설 것인가 염려하지 말고 지금까지도 준비하시고 인도하셨으니 그 교회에 가서도 축복하실 것을 다 준비하셨다. 영광을 주앞에 돌립니다. 오직 한마디 뿐이다.
정말 비참한 인생에게 복음을 주시고, 인도해 가시고 계신다. 주여 나를 은혜주신 것 처럼 이들에게도 은혜를 주옵소서. 이들에게도 부스러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옵소서.
그래서 저리로 가서 건물을 자랑하고 모이는 형상이나 부분이 아니라 이 은혜를 주신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이 분 붙잡고 내 생애 다해서 이 일을 감당하겠다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는 부스러기라도 받는 자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늘 꾸중하신 것이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교훈이다. 여러분이 축복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무근듸를 꾸짖는다. 자기도 모르게 자만하고 교만하다. 우리는 부스러기 인생이요 부스러기 은혜를 통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앞에 겸손할때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이루어질 것이다. 이 축복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와 딸에게서 귀신 쫓아주시기를 간구할때에 예수님께서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찌니 자녀들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않다”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에 있어 유대인들에게 그 우선권이 있음을 말씀하셨지만 수로보니게 여인은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하며 자신이 유대인들에게 개취급을 받는 이방인으로 구원받을 자격은 없지만 나도 주님의 은혜로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이 “이 말을 하였으니, 이 고백을 하였으니 돌아가라”고 하시며 딸의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의 고백은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일치했기에 그대로 응답이 되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이 넘어짐으로 이방이 복을 받았습니다(롬11:11).
⑴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그 후손이 재앙을 받고 있지만,
복음으로 시작했다는 것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의 경제와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⑵ 이스라엘 백성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하나님이 그 축복을 이방인에게 돌리셨습니다.
⑶ 그로인해 우리는 저주받을 인생이지만 복음의 부스러기라도 붙잡으며 축복받을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⑷ 돌감람나무였던 나를 참감람나무에 접붙이셔서 좋은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⑸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기에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야 합니다.
2.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시간표를 이룰때까지 이스라엘은 돌이키지 않습니다(롬11:25).
⑴ 복음을 거부함으로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는 동안 하나님은 이방인을 향한 구원시간표를 움직이고 계십니다.
⑵ 그 시간표 속에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복음을 듣게 하셨고 구원의 축복속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⑶ 이 복음이 시작된 이스라엘민족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땅끝(행1:8)이기에 결국 돌아오게 되어있습니다.
3. 복음받을 자격이 없던 나에게 은혜로 주신 복음을 생각하며 늘 감사함으로 승리합시다(롬11:33-36).
⑴ 하나님이 이스라엘백성이 다 부숴놓고 흐트려 놓은 복음의 부스러기를 우리에게 은혜로 주셨습니다.
⑵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게 하셨음에 감사하며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정말 비참한 인생에 복음을 주시고, 구원의 축복속에 세워주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은혜로 완벽하게 인도하셨기에 앞으로 하나교회시대속에서도 하나님이 완벽하게 인도하여 가실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겸손함으로 서서 우리에게 이 은혜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 분 붙잡고 생을 다해서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의 축복을 누리는 개인과 교회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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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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