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세례요한의 죽음 이후
2004-11-21 00:00:00
관리자
조회수   31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기도 속에서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금년 추수감사절을 맞아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우리교회가 어쩌다가 이런 감사의 대열에 서게 되었는가!' 하는 그런 감격도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추수감사절에 호박하고, 각종 추수열매들을 진열해 놓고... 제가 시내에 부목으로 있을 때도 우리보다 더 시내에 있었던 교회지만, 어디서 구했는지 호박도 큰 걸로 몇 덩이를 이쪽 저쪽에 갔다놓고, 또 작은 호박, 빨간 호박도 갖다놓고, 색색으로 진열해 놓은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때 그런 것을 기념하는 것도 뜻이 있다 싶은 생각이 나요.

그러나 오늘 우리 교회는 보니 즐비하게 감사헌금 바구니만 앞에 나와있는데, 잘못 이해를 하시면 오히려 눌릴 것 같아요. 그래서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 앞에 감사가 나오는가? 그리고 우리가 왜 감사해야 되느냐? 그것이 이해된다면 헌금바구니가 열 개, 스무 개 더 나와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진실한 감사의 예배가 되도록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조금 설명했죠. 세례요한의 죽음 이후 나왔던 것이 '오병이어!'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면 육적이고, 물질적인 문제는 그냥 따라오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맞는 대열에 서 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엄청난 축복이죠. 그래서 시대에 맞는 대열에 여러분이 섰다! 여러분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여러분이 서고, 개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선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자리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세계 복음화의 대열에 섰다는 이유 때문에, 여러분이 교회를 건축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도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히 내 경우에는 건축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누워서 하나님의 큰 축복에 대열에 섰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이 하신 역사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교회 건축과 아울러서 여러분과 저를 세계복음화의 귀한 역사 속에 세워주셨다! 이건 조금 우리가 눈을 뜨고, 영한의 눈이 떠지면 팔짝 뛰어야 합니다. 한번만 뛰는 게 아니라 자꾸 뛰어야 돼요. '이런 감사의 대열에 우리를 세워놓았구나!' 새삼스럽게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를 이미 들었습니다. 저는 지난주에 조금 충격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만은, 어떤 면에서, '이게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사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내 자신에게 충격을 좀 받게 되고, '뭔가 이제 교회를 이동해서 남은 시간을 내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내일도 삼성병원에 가야되는 입장에 있습니다 만은,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가 살게 된다면, 사는 시간까지 건강하든지, 좋든지!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대열에서야 되겠다!' 그런 마음을 구체적으로 갖게 됩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느냐 하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가 낳은 자중에 세례요한보다 큰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랬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았어요.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이 땅에서 뭔가 도리를 지키고, 정말 도덕적인 면이나 어떤 다른 여러 가지 면에서 세례요한 따라갈 자가 없다!' 그랬습니다. 그렇게 충격적인 선언을 했는데도,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저는 여기에 충격을 먹었다는 정도가 아니고, 내가 지금까지 했던 일이 율법에 배경이거든요. 인간적인 배경! 어쨌든 남의 앞과 교회 앞에 진실하고, 착하고, 뭔가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런 일에는 사실 생명 걸고 했던 겁니다. 그래서 '교회에 신뢰받는 자가 되자!' 그러나 여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내가 천국에 갔을 때에 예수께서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누리다가 온 지극히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너보다 낫도다! 쉽게 말해서 너보다 상급이 많도다!' 그래서 지금은 여러분과 제가 어디에 섰느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섰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그리고 뭘 하고 못하고 이게 문제가 아닙니다. 머저리라도 하나님이 축복의 자리에 세워놓았다! 그러면 무조건 축복해 주셨어요. 그게 성경에 예입니다. 뭐 잘했다, 못했다! 그것가지고 따지는 것은 없어요. 그래서 나는 전 교인들에게, 지금까지 참 전도제자로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라기보다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에 세워놓는다는 이 사실이 얼마나 우리 교회에 되어 있느냐? 이 일에 정말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요. 내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오래 믿는 사람일수록 여기에 못 서는 겁니다. 그리고 금방 예수 믿는 사람들도 여기에 뿌리내리도록 해 줘야 됩니다. 이걸 내가 얼마나 했느냐? 이걸 가지고 우리는 쉽게 '제자'라 안 그럽니까! 뭐 마음에 있어서 구호는 '300M.H! 3,000제자!' 그랬는데, 과연 하나라도 옳게 생겼느냐? 지금까지 우리가 성경에서 듣는 말로, '한사람이라도 제자로 바로 섰다! 그 교회가 달라진다!' 그럽니다.

그리고 제 나름대로의 분석을 해 봤어요. '전도, 전도!' 그러면서 전도캠프에 뛰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극히 일부가 수 천명의 교인들을 끌고 가면서 앞서가고, 따라오는 이런 형태가 지금 우리 교회거든요. 전 교회가 정말 하나님의 계획과 그 축복의 자리에 섰다! 이게 지금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쪽 교회로 간다고 그럴 때에, 저기에 가게되면 가는 즉시 우리가 뭘 해야 되느냐? 여러분 많은 교인들이 올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나와 같은 제자로 만들어서는 과연 쓰겠느냐? 더 실망하고 더 어렵게 됩니다.

저쪽에 갔을 때에, 정말 전도제자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대열에 세울 수 있어야 지속적으로 이 하나교회라는 이름이 정말 전 세계 교회에 이름이 나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이상하게 되고, 더 어렵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쪽에 가는 것에 미리 좀 대비해서 제 나름대로, '내가 못할 것 같으면 좀 젊은 사람을 구체적으로 세워서 캠프 행정을 좀 해 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봉준 목사님을 통해서, '캠프행정을 좀 해 보라!'

그리고 제가 미국에는 항상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걸 잡아야 세계 복음화라는 축복에 근거를 만들 수가 있겠다! 그래서 실제로 우리가 돈이 너무 드니까! 당회에 미국에 돈이 드는 일을 지금 어려운 때에 요청할 수도 없고, 분명히 해야 되는데... 또 우리 교인들도 이미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교회 위해서 수고하고 애쓰며, 또 내가 어려울 때에 교회에 귀한 일들을 감당해서 수고한 우리 박창복 목사님에게 '미국에 가는 길을 열어서 가보라!' 그렇게... 제가 김철연 목사님께 어제 저녁에도 좀 통화를 했는데, '미국에 올 수 있는 준비를 벌서 다 했다! 이쪽만 준비가 되면 된다!' 그게 종교비자입니다. 그게 하루 이틀에 나오는 게 아니고, 옛날에는 2주정도면 나왔는데, 까다로워져서 요즘은 빨라도 두 달 정도는 걸린다고 그래요.

그래서 그 동안 마음에, 미국에 갈 수 있도록 당장 영주권에 부닥치니까, '그 동안에 박 목사님이 모든 일에 우선해서 어학에 좀 준비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일이라도 두 내외분이 영어학원에 등록을 해서, 가서 "Good Morning!"이라도 바로 해야지, 내가 지금 "Good Morning!" 그러면 그 사람들이 몰라요. 그렇게 해야지 일이 안되겠느냐! 거기도 아주 문이 열려있고, 축복된 기회가 될 것으로 그렇게 보여집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 근거도 없이 가는 것도 아니고, 우리 뉴저지 에덴 장로교회에 구체적으로 부목자리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부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거기서 뭔가 미국이라는 것을 좀 잡아야 되겠다! 미국에 가서 우리 후대들도 좀 발을 붙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늘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 우리 힘만으로 하려니까! 그런데 다행이 거기서 뭔가 생활비도 주고, 집도 주고 오라고 하는데, '이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다!' 그래서 우리가 거기 가서 그것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주시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터를 넓혀보자! 후손의 문제도 또 그렇게 연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문제는, 우리가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입장에서는 선교사의 입장으로 보냅니다. 정말 기도해야 됩니다. 워낙 미국에는 사단이 단수가 높아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목회 자체가 어렵더라 구요. 그래서 미국 사역을 좀 감당해야 되겠다! 이것이 우리에게 현실로 왔습니다. 사실은 제가 기도만 했던 것이 이렇게 구체적인 현실로 열려질 줄 몰랐는데, 열려지는 동시에 제가 즉각 결단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김성화 목사님을 중국에다가 보낸다고 했는데, 굳이 중국이라는 곳을 고집하게 된 배경이 뭐냐하면, 고봉섭 목사님은 대만을 결정해서 가셨어요. 그래서 나는 보내고 난 후에 후회가 나와요. 뭐냐하면, 강단에서 기도할 때에, 지금도 기도해야 될 고봉섭 목사님을 늘 잊어버려요. '오늘도 고봉섭 목사님 기도를 잊어버렸구나!' 그러니까 내 마음에 뭐냐하면, 대만이라는 곳보다도 그 분은 오래 전부터 대만을 위해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갔습니다. 갔는데 나는 대만보다 사실은 보내면서도 중국을 겨냥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중국은 지금 미국을 이어서 세계의 엄청난 영향을 끼칠 그런 나라입니다.

그래서 김성화 목사님에게는 벼락과도 같은 임무 부여인데, 아마 상상도 안 했을 겁니다. 또, 안 했다 그래요. 그래서 '마음에 당황스럽다!' 그래요. '당황하던지 어떻든지 간에 이게 하나님의 계획이다!' 왜? 거기서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국에 가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에서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우리 후손들로 만드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또, 바로 이웃에 있거든요. 가기도 얼마나 빠른지, 한 두시간만에 가요. 금방 가더라 구요. 그래서 앞으로 중국 들어가는 일이 있으면, '들어가는 길에 평신도도 같이 들어가고, 김성화 목사님도 계속해서 같이 들어가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에는 뭐냐하면, 우리 교인들에게보다도 나 혼자 목회에 중국이라는 비전만 가졌어요. 가졌는데 이런 기회에 뭐랄까 좀 당황스러운 일이 본인들에게는 있지만, 결단하고 선포를 해 버렸습니다. 당회가 이 일에 함께 따라 주시고, 또 지원해 주시니까! 늘 감사할 뿐이고, 오늘 제가 이 말씀 앞에 서서 이번 추수감사절에, 정말 하나님이 선교사로 가든지, 선교지로 가는 선교사를 위해서 기도하든지,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좀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제 몸이 오늘 무너질지, 내일 무너질지 모르는 겁니다. 그래서 앞을 내다본다는 일이 좀 웃기는 일 같아요. '곧 죽을게 뭘 새 교회라 그러고 미래를 내다보고...' 그래서 마음속에, '그 때 그렇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더라도...' 그래서 내 나름대로는 새 계획을 세워 본 겁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그 배경을 좀 설명했습니다 만은, 저쪽에 가서 정말 우리가 들어오는 교인들을 제자로 못 만들면, 여기서 지금까지 하나님이 축복해 주셨는데, 저쪽에서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자리에 못 서고 원하시는 일을 못하면, 하나님께서 '내가 그만큼 했는데도 이것들 봐라! 괘심 하구나!' 괘심 죄로 걸리면 곤란합니다.

우리 주님이 뭐 그렇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 안되면, '마음으로라도 전도자가 되자! 정말 중심으로 전도자가 되자!' 이래서 캠프 행정으로 우리가 구체적으로 목사님이 서서 할 때에, 여기에 우리의 뜻을 좀 담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그런 은혜 속에서, 또 그런 은혜 속에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오늘 세례요한이 죽은 후에 임했던 그런 육적인 역사에도 기적의 역사들이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향에 설 때에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하나님의 뜻에 섰다는 사실이, 아무리 개가 헌데를 핥아도 그 자리에 있었던 나사로를 이 땅에 모든 것을 다 누리던 부자와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게 누가복음에 있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우리는 거지 나사로의 비유가 믿는 사람은 거지가 되고, 믿는 사람은 개가 와서 헌데를 핥아야 되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네가 받는 구원이 이처럼 가치가 있다!' 그걸 말씀해 주는 겁니다.

사실 솔직히 말해서 거지 나사로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맨 날 얻어먹기나 하고, 헌데나 끓고, 그저 멸시 천대받는 것으로 끝났지! 이 땅에서 뭐 '주를 위해서 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다! 수많은 부의 세력을 누리면서 이 땅에서 잘살았던 부자와는 비교되지 않는 가치를 부여해 주었습니다. 이게 뭐냐하면, 구원의 가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데서 소홀히 하면 하나님께서 굉장히 기분 나빠하십니다. 소홀히 한다! 그건 기분 나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절대로 축복해 주시는 자리에 서있는 방향이 아닙니다.

그래서 오늘 새삼스럽게 감사주일이니까! 1년에 한번씩 감사주일인데, 이 감사주일에라도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신 축복을 한번 감사해 보십시다! '내가 이 교회 와서 구원을 확신하게 되고, 구원받게 된 이 은총을 생각하면 이건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새삼스럽게, 그리고 부족하지만 이 교회 와서 하나님 앞에 이 은혜의 축복을 조금이라도 누릴 수 있게 된 것! 이건 기가 막히는 감사입니다. 깜빡 깜빡 넘어가야 됩니다. 너무 감사해서... 그런데 넘어가기는커녕 더 멍청해져요. 조금 우리가 돌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건 내 욕심입니다 만은, 나도 부족하지만, '여러분들이 박지온 목사를 만나고 나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구원의 축복에 역사를 들었다!'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너무 감사하다! 이게 들어와야 정말 교회에 대한, 그리고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헌신이 바로 될 수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바로 될 수 없습니다. 바로 될 수 없다는 배경 속에는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알다시피, 목사가 잘나고 훌륭해서 봉사하고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키기 때문인 것을 말씀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이상해도, '이상하면 200% 헌신하라!'는 이야기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워낙 잘하면 200% 할 것도 없어요. 50%만해도 충분합니다. 워낙 목사가 훌륭해서 목회 잘하면 10%까지 할 것도 없어요. 가만히 놔둬도 됩니다. 워낙 못하면, '200%까지 헌신하라!' 그 이야기에 귀한 뜻이 있어요.

지난 치유 사명자 대회에 가니까, 윤성주 목사님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 구요. 무슨 소리냐 하면, '따라하라!' 그래요. "목사가 훔치면 나도 훔치고 목사가 잡히면 홀랑 내가 다 뒤집어쓴다!" 말이 안되거든요. 왜냐하면, 슈퍼에 가서 목사가 물건 훔치면 따라오던 교인이 얼른 가서 자기도 훔치래요. 그래서 경찰서에 같이 잡혀 들어가서 경찰에게 조사 받으면서 '어떻게 해서 목사가 훔칠 수 있느냐? 주머니에 물건이 증거가 아니냐!' 이러면 얼른 나서서, '목사님이 훔친 것이 아니고, 내가 훔쳐 가지고 목사님 주머니에 넣어드렸습니다!' 그러래요. 홀랑 자기가 뒤집어쓰라는 겁니다.

저는 상당히 우스운 이야기로 들었는데,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그런 심정으로 섰다! 그건 복을 받는 정도가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대게 뭐냐하면, 같이 가요. 장로님들과 온 교인들이 전부 같이 가요. 같이 가도 목사님이 훔치면 훔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망봐줘요. 그러다가 경찰에 잡히면 오히려 그 사람이 증인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차라리 망 안 봐주는 게 났다는 겁니다.

나는 처음에 말도 안 되는 희한한 소리를 한다고 웃고 그랬는데, 이야기가 나오게 된 배경이, '아, 뭔가 개척교회를 하면서 겪었던 일에 대한 배경이더라 구요!' '맞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정말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교인이 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마 여러분들이 저와 같이 슈퍼에 가서 훔치자고 하면, 전부다 달아날 겁니다. '망은 보겠습니다!' 하고 밖에 서 있을 겁니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어떤 것이 있느냐? 그 사람이 법정에 서면 목사가 훔쳤다는 증인이 되고, 오히려 목사에게 짐이 되는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오늘도 이 말을 듣고 가서, '목사가 훔치면, 나도 따라 훔치라고 그러더라!' 하면서 '뭐, 이상한걸 가르치더라!'면서 오해할 것이 아니고, 여러분 기도하면서 정말 하나님 앞에, 내가 지금까지 목회를 돕고 지금까지 주의 교회를 돕는다!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주의 교회에 헌신한다고 하면서 내가 얼마나 축복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손에 있었느냐?' 이것을 짚고 넘어갈 수 있는 귀한 뜻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세례요한의 죽음이후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다는 사건인 이 오병이어의 역사를 보면서, 축복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도해 주셨는데 어떻게 인도했느냐? 마가복음 6장 30절에 보면, "사도들이 예수께 모여 자기들의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낱낱이 고하니" 여기서는 얼른 역사도 나오고 축복도 나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보면, 막상 어디로 인도했는냐 하면, "(31절)이르시되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 하면서 이들을 인도한 것이죠.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위해서 쉬라고 인도한 곳이 광야로 갔더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얼른 보면,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배경과 틀린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아브라함도 약속하시고 축복하실 자리로 인도하셨는데, 어디로 인도했느냐? 산지로 인도했습니다. 거기 가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그 산지에서 제단을 쌓고 기도하고,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무조건 복을 주신 그런 길이었음을 우리가 잘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자기의 생각과 뜻을 따라서 아주 비옥한 땅을 선택했던 롯은 쫄딱 망해버렸어요. 처음에는 얼마나 좋은 땅에 왔습니까! 그리고 그 성에서 판관의 자리에까지 앉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공은 성공이 아닙니다. 완전히 무너져버렸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에 진짜 원리를 알고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서, 정말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있는지? 그래서 그 자리를 따라가 보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광야가 나오고, 산지가 나오고, 어떤 면에서 도저히 이해가 안될 그런 자리에 빠질 때에, 그래도 따라갔던 자들은, '그래도 예수님은 그리스도십니다! 믿습니다!' 그 믿음이 그 장소에서 더 확실하게 굳어졌던 사건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그렇게 세웠던 그 장소에서 무조건 축복했어요.

우리가 잘 아는 데로 그 축복하신 것을 보면, 좀 분석을 해 볼 수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세웠다! 하나님께서 이 지역에 세웠다! 하나님께서 내 가정에 세웠다!' 그럴 때에,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 적으로, 말하자면 그 지역에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이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세운 것은,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의 자리요, 시대적인 축복을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자리입니다. 이게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전도, 전도한다!'고 따라왔던 것이 얼마나 어렵게까지 되었습니까! 심지어는 우리 중직자들이 어려움을 고백하는데, 다른 것도 있지만 아이들 혼사까지 어려워지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 있어요. 그리고 전도한다고 얼마나 외롭게 되어 있고, 또 제 입장에서 전도한다고 얼마나 어렵게 되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이 시대에, 정말 시대적인 요청과 시대적인 축복에 자리에 세웠다는 사실이 인정이 안되면 우리가 계속 못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가 정말 우리가 당위성을 가진 당당한 우리의 자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감사절에 이게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여, 어쩌다가 내가 하나님이 시대적으로 이 자리에 그 하나님의 요청 속에 세워주셨습니까! 그 세워주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역사요, 또 은혜의 계획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모세를 그 시대에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고,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뭔가 증거 하시기 위해서 내세웠습니다.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불러 세웠던 아브라함이 훌륭했느냐? 그게 아니거든요. 여러분 아브라함을 잘 아시잖아요. 아브라함처럼 멍청이가 없어요. 나는 아무리 봐도 아브라함보다는 훨씬 났다 싶어요. 왜냐하면, 자기 부인을 빼앗아 가는데도, '예, 잘 모셔 가십시오!' 이런 머저리가 어디 있습니까! 나는 누가 내 부인에게 뭘 어떻게 했다! 가만히 안 둘 겁니다. 비록 뭐 지금 떠밀어도 넘어갈 육체지만, 생명이 있는 한 뭔가 물어뜯어도 뜯을 겁니다. '모르지, 막상 당하면 도망칠지 모르지만...' 그러나 마음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구절을 보면서, '내가 확실히 아브라함보다 축복 받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되는 구나!'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보고 축복하시지 않았어요. 그런 머저리 같은 아브라함이었지만, 시대적인 요청에 하나님이 세워 주셨다는 이유 때문에, 머저리 등신 바보같은 인간이하의 생각을 갖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이 무조건 아브라함에게 축복했습니다. 이걸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해하셔야 돼요. 뭐 자격이 되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충성해서 복 받고, 하나님 위해서 열심히 해서 복 받고, 거의 이런 생각이거든요. 지금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 속에 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지금 어디까지 갔느냐? 이게 지금 중요한 겁니다.

그러니 그 자리에 섰을 때에, 아브라함이 뭐 '했다, 안 했다! 잘했다, 못했다!' 아무 상관이 없어요. 무조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가는 길마다 축복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해롭게 하면 하나님이 오히려 상대방을 치고 경계를 하고, 아브라함에게 오히려 복을 주고 길을 열어주면, 그 관계 속에서 그 상대방도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내가 가는 곳에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지속되는 이런 발걸음이...' 그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요청 속에 세우셨다는 이유 때문에 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 잘 믿는다, 못 믿는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노력했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 오래 할수록 이게 이해가 안되면, 꼭 세례요한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천국'이라는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자들 중에 지극히 아무것도 안한 적은 자지만 그렇게 많은 일을 한 세례요한과 비교가 안되더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천국에 가서, '아 허무하구나! 내가 한 일이 전부 허무하구나!'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구요. 김덕신 목사님의 마지막 설교예요. '허무하다!' 그러더랍니다. '내 인생이 허무하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삶에 보람을 느낀다면, 내 아내를 위해서 내 가정을 꾸려온 그것밖에 내게 남은 것이 없다!' 그랬어요. 나는 그 말이 참 마음에 뭔가 찔리는 것이 있어요. 내가 막상 은퇴를 하게 될 때에, 그런 소리를 안 하겠나? '허무하도다! 그저 내 가정 꾸려왔던 것, 그것밖에 남은 것이 없구나!' 정말 제자가 안되고, 내가 정말 하나님 앞에 진실한 제자가 안되고, 나도 제자가 안되고 그런 제자를 키워나가지 못하면 다 떠납니다. 거기에 바랄 것이 없어요. 인간적으로 가깝다는 이유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대열에 함께 서 있지 못한 자들은, 어떤 장소이든지, 어떤 환경이 왔던지, 어떤 문제가 왔을 때에 비난하면서 떠나지, 그때에 죽음과 생명을 걸고 지켜낼 수 있는 일꾼이 못되는 겁니다. 이게 새삼스럽게 저는 시간이 가면서, 물론 건강 이전에도 못했지만 건강을 핑계 대고 전혀 못했는데, '과연 내가 했던 게 뭐냐?' 이 자리에서 만약에 어떻다고 그럴 때에, '정말 내가 우리 김 목사님이 설교한 것처럼, "허무하구나!" 이 소리밖에 내가 나갈 것이 뭐가 있겠느냐?' 이런 생각을 뼈저리게 뭔가 느껴요. 여러분이 이 땅에 살면서 정말 '300M.H, 3000제자!'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여기에 여러분들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시대적인 하나님의 요청에 서지 못한다면 누구든지 다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이라는 것을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런데 그 축복은 아브라함이 잘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 축복을 하나님이 그 시대에 아브라함을 불러서 축복하시기 위해서 불렀고, 그 부름에, 그 하나님의 요청에 응했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무능하고 아무것도 못해도 이것 하나만은 아브라함이 잘했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걸 누리자면, 먼저 개개인이 복음이라는 사실을 듣고,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복음을 누려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고 문제를 가지고 저에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제게 이야기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답할 수 있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뭐냐하면, 환경에서, 남편에게서, 아들에게서, 혹은 그 어떤 다른 것에서부터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으려고 하지 마세요. 문제는 하나님께서 당신 개인과 영원히 약속하신 구원의 역사입니다. 이게 바로 복음이라는 겁니다. 복음을 개인적으로 못 누리면 그 다음에 문제는 절대로 답이 나올 수 없어요. 해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지금 개인적으로 갈등하고, 가정적으로 갈등하고, 다른 게 아닙니다. 내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뭘 회복해야 되느냐? 감사와 감격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정말 구원의 기쁨과 감사가 터져 나와야 됩니다. 이게 안되면 해답이 나올 수가 없어요. 오래 믿을수록 이 믿음이 희미해집니다. 왜? 여러 가지에 시달리다보니까, 하나님이 순수하게 내게 주신 구원의 축복이 너무 많아 가지고, 그만 그 많은 축복 속에 쌓여 가지고 멍해지는가 봐요. 여러분 새삼스럽게, '주여, 오늘 재앙과 멸망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 그 하나님의 은혜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이런 기회에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자연적으로 이 축복과 역사를 위해서, '내가 뭘 해야 될 것인가?' 나올 것이 아닙니까! 그걸 우리가 전도라 그럽니다. 안되면 마음에라도 소원으로 삼아야 돼요. 전도라는 것!

그래서 저는 마음이라도 못하면 안되니까! 새로운 교회에 가면 우리교회에 이 큰 축복을 주셨는데, 캠프라는 것으로 통해서 어쨌든 참여해요. 하나님이 무조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라면 우리가 어딘들 못 가겠습니까? '잘한다, 못한다!' 상관없어요. 백 번 건드려서 백 번안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구원 한사람도 못 시켜도 상관없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축복에 자리라 그러면 왜 못 들어갑니까! 제가 큰 소리를 쳐 놓았는데, 새삼스럽게 '진짜 내가 이 자리에서야 되겠다!'

그래서 앞으로 캠프 행정을 원 목사 눈치보지말고 좀 하라고 해 놓았는데, 어떻게 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만은... 일단 저는 나가면서 우리 장로님들 다 끌고 나갈 작정입니다. 아마 우리 장로님들도 뭐 어떻든 당회장이라 그러면, 담임목사의 계획이라 그러면 따라 오시거든요. 그러니 '제가 다 죽어가면서 나갔다!' 안나올 수 없죠. 무슨 생각이냐 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가 이 자리다! 시대적인 요청이 여기다! 그러면 해야 되지 않느냐!' 하나님이 이 일로 우리에게 축복을 줄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섰다는 것만이 교회 회복입니다.

이 축복의 자리에 이미 섰다는 사실로 증명해 주셔서 우리가 갖고 있는 것과 우리의 지식과 우리의 수준과 상관없이 상상밖에 큰 교회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교회에 한번 가 보시면, '진짜 잘 지었다!' 그럴 겁니다. 미국에서 오신 장로님 한 분을 모시고 갔는데, 계속해서 '아!' 그러시다가 가시더라 구요. 감탄을 해요. 그때는 밖에서 봐서 모양이 드러난 게 아니고, 아시바도 세워져 있고 그랬는데, 자기들은 감탄을 계속하다가 가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여러분 그 감탄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과 제가 이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내가 뭘 했다!' 아무것도 그런 것이 안 나옵니다. 받아합시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자가 되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 교회 안에서 조금 뭘 해 놓고, '내가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들면, 그것만큼 속는 것이 없어요. 여러분과 저는 부족합니다. 아무것도 사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저 웅장한 교회를 보면서, '아버지께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적고 큰 일 앞에서, '내가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할 때에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 속에 세우신 하나님의 종노릇하며 살겠습니다!' 이게 바울의 고백이거든요.

이게 안되면 어떻게든 사람눈치 보고, 사람의 종이 된다! 그랬습니다. 사람의 눈치보고 자연적으로 사람에 메이게 되어 있어요. 사람에게 메이면 그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종이 되고, 하나님 앞에 메이는 것! '하나님의 역사와 사건 앞에 세우신다!' 이것이 축복 중에 축복이요, 추수 감사절을 통해서 회복해야 됩니다. 비로소 거기에 우리 남은 생애가 정말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감사의 역사가 계속 될 겁니다. 끊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일을 개인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 다 알죠. 그래서 목사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교인들이, '아버지, 우리 부족합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시오!' 뭘 해야 됩니까? 여기에 필요한 것이 기도라는 겁니다. 여러분 50일 기도 작정한 것도, '교회 건축이 잘되고...' 그것보다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어쩌다가 하나님의 축복 속에,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에 대열에 나를 세웠습니까!' 이걸 깨닫고 확인하는 그런 기회입니다.

제가 나오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너무 요 몇일 결정을 해 놓고, 지난주부터 힘들어서 천상 병원에서 가서 좀 해결해야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게 해결되면, '아마 조금 더 건강한 정신이 안 들겠느냐!'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구요. 여러분들이 건강을 위해서 얼마나 기도하고, 내가 건강을 위해서 된다는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해놓고 나면 또 안되고, 그게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적고 큰 일이든지, '내가 뭘 한다!' 아닙니다. 내가 교회를 위해서 뭘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시는 구나!'

우리 교회가 좋은 교회로 벌써 한국교회에 다 소문이 났어요. '목사님이 저렇게 6년 동안 아파 가지고 빌빌하면 벌써 쫓겨나야 되는데, 송현 교회라는 데는 어떤 교회인데, 그래도 계속 붙들고 안 놓치려고 그러고, 이건 교회가 희한한 교회다!' 그래요. '내가 잘나서 그렇다!' 잘못하면 착각할 수 있어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 서게 하신 것도,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제 우리가 이 일에 기도하고, 또 위해서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일에 오늘 이 축복과 역사의 자리에 세우신 것에 감사를 회복하면서, 또 한번 주의 뜻을 따라 전진하는 이 감격이 날마다 체험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 이후에 나온 것이 오병이어 사건입니다.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서면 물질적인 것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대열에 선다면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축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복음화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세례 요한은 참으로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배경으로 일하는데 머물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가에서 큰 상급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일을 잘 하고 못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 중심으로부터 전도 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하나님의 방향에 설 때 기적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1) 하나님의 뜻에 섰다는 사실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2) 거지 나사로가 부자보다도 더 축복받았습니다.
(3) 구원의 가치는 놀라운 것입니다.
(4) 거지 나사로는 얻어먹기만 하고, 헌데를 긁기만 했지,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5) 거지 나사로는 구원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의 잔치에 앉게 되었습니다.
(6)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7)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누리는 것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8)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우선되지 않고는, 온전한 헌신이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축복하시는 대열에 서는 것이 축복받는 신앙 생활의 원리입니다.
(1) 세례 요한이 죽은 이후에, 예수님께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쉬도록 인도한 곳은 광야였습니다.
(2) 아브라함을 축복하시려고 인도하신 곳은 들판이 아니라 산지였습니다.
(3) 산지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았습니다.
(4)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신앙 생활의 원리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5) 하나님이 지금 나를 이 자리에 세운 것은 시대적인 축복을 위해 계획하신 자리입니다.
(6) 전도를 위해 나아온 우리의 길은 참으로 어려웠지만, 축복된 자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7) 하나님의 시대적인 요청 속에 우리가 서 있음을 깨달아야 참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8) 하나님은 시대적인 계획 속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아브라함은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을 주시고, 해치는 사람들에게는 저주를 내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된 대열에 선다면, 그는 지극히 많은 일을 한 세례 요한보다도 큰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이 땅에 살면서, 시대적인 하나님의 요청에 서지 못한다면 허무한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일을 잘 해서 축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된 요청에 응하고 따랐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축복된 대열에 서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 개인이 복음을 실제로 누려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려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누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도입니다. 우리 교회가 모두 전도 캠프에 참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시대적인 축복에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누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