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누가 내 가족이냐?
2004-08-22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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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요즘 계속해서 공동체라는 말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해가 된다는 사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 사실을 누리게 될 때에, 누려지는 동안에 하나님이 개인과 가정과 그 교회에 축복하신다는 것을 오늘도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는 구원을 그저 알기는 알고있고, 또 가족에 대해서, 가정에 대해서, 교회에 대해서 공동체로, 지체로 세워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거의 이 사실을 못 누리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정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안되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만들어서 축복하시고, 이것을 만들어서 후손을 세우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동안에 세워진 후손이라야 그것이 축복 받는 후손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내가 언약을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언약을 누려야 전달할 수 있는 겁니다. 지금 갑자기 렘넌트에 대해서, 젊은 후대들을 강조하다보니까! 어른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가 있는데, 이 시간에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언약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언약을 전달해 줄 수가 없습니다. 후손들이 아무리 잘났다 그래도 여러분이 언약을 누려야 후손들이 언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그냥 다 헛일입니다. 한 가정에서도 뭔가 공동체가 안되면 다 무너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교회에 가장 강점이 이것이 해결된다 그러면 겁날 것 없고, 두려울 것이 없죠.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냥 오늘날 공동체라는 말을 가지고, 하나님의 언약 없이 공동체를 이루는 그런 일들이 참 많습니다. 뭐 이념으로 하나가 되어 있던지, 아니면 무슨 제도로 하나가 되어 있던지, 그런 것이 참 많죠. 예를 든다면 뉴에이지 운동 같은 것도 역시 어떤 사상으로, 우상이지만, 우상의 개념이지만, 좀 더 높은 어떤 사상화 시킨 그런 역사들이 뉴에이지 운동들입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하나가 되고, 그 하나됨을 통해서 뭔가 강하게 도전해 오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문선명'도 통일이라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서 공동체를 이루고, 또 그것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가정을 파고 들어가서 '참 부모! 참 가정!'그러고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들을 하죠. 하기야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거죠. 너무 성경과는 거리가 먼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우리 교회에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참 공동체의 역사를 약속하시고 교회에 주셨지만, 지금 교회가 이것을 못 누리고 있어요. 교회만큼 가지각색이 없어요. 제일 한 마음이 안 되는 게 교회입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모이면 흔히 앞에 선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해요. '제일 인도하기 힘든 분들이 목사님들이다!'고 그래요. 왜냐하면, 하나가 안 돼요. 이 사람이 이 말하면 저 사람은 저 말하고... 오래 믿은 성도일수록 하나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왠 일입니까? 교회가 가장 강한데도 그 강함을 잃어버리니까, 바로 사단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쉽게 말해서 우리 송현교회가 한 마음이 되었다! 다 끝난 겁니다. 축복과 은혜가 거기서부터 개인과 가정에 비로소 이어지는 겁니다. 전부 자기 뜻대로 하는데... 교회에 같이 오기는 와도, 예배는 같이 드리고, 찬송은 같이 부르는데 마음은 전부 다릅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사단의 놀이터가 되어있는 겁니다. 가장 큰 문제예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동체, 한마음이 되었다! 사단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구체적으로 제도를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여기서 할 수 있어요. 이게 안되면 하나님이 되게 만드는 과정이 광야의 생활이었고, 전부 가나안 정복의 역사였던 것을 우리가 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바벨탑을 쌓을 때에 인간의 지성이 하늘까지 높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자!' 그래서 인간으로서 그때 당시에 최고의 바벨탑을 쌓으려고 같이 모였거든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데 뭉쳐서 한 마음이 되어 가지고 높이 대를 쌓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걸 보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언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간단하게 무너뜨렸어요. 그게 뭐냐? 말이 안 통하는 순간에, '밑에서 올리라고 하면 위에서 내리고, 위에서 내리라고 하면 밑에서는 올리고...' 이렇게 해서 서로 의견이 안 맞으니까, 일하다가 싸우고 풍지박산이 되었어요. 그렇게 흩어진 것이 세계입니다. 지금 성경에서 보여주는 것이 그것입니다.

여러분 공동체! 주님의 교회에 한 마음이 되었다! 복음으로 한 방향이 되어있다! 중요한 겁니다. 뭐가 이루어지느냐 하면, 생각이 같고 쉽게 말해서 피가 통해야 됩니다. 피가 통한다는 것은 말씀이 통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가 쉽게 점검하자면, '말씀을 들을 때에 똑같이 알아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었다!' 이것은 공동체의 가장 첫 번째 축복에 중요한 내용입니다.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 어떻게 하나가 됩니까? 강단의 말씀을 가지고 포럼 하는 것이 간단한 것 같지만, 여기에 내 개인이 복 받는 정도가 아니고, 내 개인이 복 받고, 가정과 이어서 전 교회가 복을 받아 가는 중요한 바탕입니다. 이 내용이 바로 되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예배를 마치고 나가면서 메시지 쪽지를 가지고 가서 그걸 붙잡고 기도하고, 모이면 포럼하고, 왜 그렇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로 말미암아 메시지가 통하는 자들이 된다!' 강단에서 말씀할 때에 알아들어야 돼요. 여러분 공동체라고 하면 알아들어야 돼요. 가정이라고 할 때에 알아들어야 돼요. '부모가 이 말하면 자식은 이 짓하고 저 짓하고 못 알아듣는다!' 그건 안 되는 겁니다. 깨어지는 겁니다. 목사가 한 말을 하면 전 교회가 한 방향으로 척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고도 알아들어야 합니다. 예배중간에 광고를 넣는 이유도 그런 것입니다. 중간에 광고를 다 듣고 난 후에 집에 가서, '오늘 광고 뭐라고 말하더냐?' 이러면, 광고 못 알아듣는 것은 영적 문제가 심각한 겁니다. 왜? 알아들어야 그 광고를 따라서 내가 함께 보조도 맞추고, 기도도 하고, 뭔가 할 일도 할 것 아닙니까! 실컷 메시지는 '아멘'하면서 알아 듣고는 광고는 아예 못 들어요. 이것도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 오늘 송현 교회가 간단한 것 같지만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시려고 작정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시험대에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정말 온 교회가 한 방향으로 한 마음이 되어 가느냐? 이걸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또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의 사실이 이루어지기까지 광야를 지나게 하시고, 그 다음에 아브라함을 통해서 반평생 동안 유리방황 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공동체의 귀한 역사를 깨닫는 순간에, 그 후에 낳은 자식들로 하여금 언약이 유지가 되고 그로 통해서 하나님께서 엄청난 세계복음화의 놀라운 역사를 그리고 메시아의 축복에 씨를 허락하신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안되면 되기까지 하나님께서 한 인간을 세우고, 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께서 되기까지 훈련시키시고, 연단 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주의 교회가 이 방향으로 나갑니다!' 그럴 때에, 모든 성도들이 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피가 통해야 돼요. 마음이 통해야 돼요. 뭔가 이리 가자고 그러는데, 그 마음속에 전혀 생각이 없어요. '협조한다!' 협조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이 내가 정말 한 공동체가 되고, 공동체가 되었으면 저절로 그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광고를 들을 때에, 어떤 광고를 듣고 난 후에는 나도 모르게, '교회가 이런 형편에 있고, 이런 문제가 있구나!'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그 일에 노력하도록 되어있고, 애를 쓰도록 되어 있어요. 들어도 가물가물 합니다. 들어도 감각이 없어요. 공동체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면에서 교회생활하고 신앙 생활하는 것 같아도, 열심을 내도 그 열심은 무너지는 열심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내 개인의 방향, 가정의 방향, 구역의 방향, 교회의 방향이 맞아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응답이 후손만대에 계속 지속될 수가 있습니다. 이게 안되면 감정이요, 자기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사실을 우리가 '공동체'라는 말을 늘 듣지만 이해가 되어야 됩니다.

저는 교회건축을 해 가는 과정에서 뭘 느끼느냐 하면, 교회에 대해서 뭔가 위대한 축복과 은혜의 계획을 세우는 중에, 세계 복음화라는 이 명제를 놓고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면, 하나님의 모든 관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관심이 자신도 모르게 여기에 세워져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송현교회 교인이라고 하면서도 교회건축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하면, 그건 공동체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에서 이런 광고가 나가면, 뭔가 '내가 뭘 해야 되겠느냐?' 생각과 방향을 같이 맞추어 나갈 수 있는 믿음이 회복되어져야! 그것이 교회가 잘된다, 못된다! 이전에 내 개인이 축복을 받고, 힘을 얻는 중요한 방향입니다. '교회는 뭐가 되던지! 교회가 어떻게 되던지! 나만 잘 살면 된다!'

요즘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삶이 어렵고 생활이 어려우니까! '교회는 망하던지 나만 살면 안 되냐!' 이런 의식이 좀 있어요. 여러분 교회가 망하고 개인이 산들 축복이 되겠어요? 진짜 신앙양심을 갖고 있고, 신앙을 갖고 있는 자라면 바로 알아야 됩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가 승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 나를 세웠다! 그래서 교회승리의 역사 속에 있다가, 막 말로 해 가지고 '내 재산이 다 날아간다고 할지라도...' 여러분 교회 망했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어요. 그리고 그 후손들이 망했다는 소리를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문제는 뭐냐? 우리 생각이에요. 이런 생각으로 연결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조금만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내가 살아야지! 개인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여러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승리해야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그 안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역사는 중요한 중심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역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면 지난주도 강조했지만, 뭐가 이루어 져야 되느냐? 머니 머니해도, 아무리 강조하고 강조해도 개인구원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교회가 백 번, 천 번 승리하고, 부자가 되고, 큰 교회를 짖는다!' 그래도 내 개인이 구원받지 못하면 다 허사입니다. 그건 공동체라는 말에서 첫 출발부터 안되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까지 강조해온 말씀도 그렇습니다 만은, 공동체가 안되고, 지체가 안된 상황에서 교회에 10년, 20년 아무리 충성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헛일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역사 속에 공동체라는 사실이 이해가 안되면, 메시지 속에 우리가 들었죠. 그 사람은 '진짜 구원받았느냐? 한번 살펴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교회가 힘들면 내 개인이 아파할 줄 알고, 교회에 다른 사람이 어려워하면, 그 사람을 보면서 아파할 줄 아는 공동체가 안되면 내가 진짜 구원받았느냐? 하나님께 질문해 봐야 됩니다. 이게 안되면 그런 것이 나올 수가 없어요. 우리 교회의 연약한 자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연약한 자를 위해서 기도하게 되고, 간구하게 되는 이 사실이 안나오면, '진짜, 내가 구원받았느냐?' 이 의심스러운 문제입니다. 내가 구원받으면 자연적으로 '그도 지체요, 나도 지체다!' 이것이 될 때에, 내 이웃이 어렵고 힘들면 자연적으로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뜨거운 마음으로 이웃을 보살피도록 되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지체이야기를 말씀드리면서 발가락이 아프면 온 신경이 발가락 하나에 와 있습니다. 발가락이 아프다! 손발도 아무렇지도 않다! 입도 아무렇지도 않다! 그게 아닙니다. 발가락이 조금만 아플 때에는 약간 건들려도 입이 고함을 지릅니다. 이게 공동체의 역사입니다. 이게 지체라고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진실로 주님의 계획에 적고 큰 사건과 일에 대해서 특별히 사람에 대해서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그 가정과 그 가족과 그를 향한 모든 일들이 열리게 되어있어요. 그 기초가 뭐냐하면, 먼저 내가 구원받아야 이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 26에 보면,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개인구원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아도 내가 구원 못 받았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말씀을 잘 들어도 내가 말씀 못 듣고 눈감고 앉았다면 소용없습니다. 눈감고 앉은 분이 한 두분 계시는데, 그분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어쩌다가 어제 밤에 잠을 못 주무셨겠죠. 여러분 진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알아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온 교회가 한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중직자들이나 모든 성도들이 주의 교회에 아픔과 어려움에 동참한다는 것이 아니고, 내 일처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생겨야 됩니다. 이것이 피가 통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로 통해서 말씀할 때에, 그 말씀대로, 그 말씀을 따라서 방향을 맞추어 갈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와지게 되면, 그 다음에 하나님의 축복은 따라서 와지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반드시 개인 구원을 말하고, 또 그 개인구원을 받은 사람을 통해서 따라오는 것을 저절로 공동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이것을 신약에는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보면, 구원을 받았다는 말과 동시에,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았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내 개인이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 구원받았으면, 반드시 진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진짜 인간이라면 뭐가 됩니까? 공동체의 일원이 됩니다. 뭐가?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가정이 이해가 됩니다. 이게 안되면 가정이 안되게 됩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아무리 여러분들이 오랫동안 예수 믿고, 열심히 예수 믿어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된 가정이 아니면 언젠가는 어려워집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가정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가정을 통해서 사용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려움을 입던지, 어려운 사건이 있던지, 문제가 생기던지 간에 하나님께서 하나되도록, 누리게 만들어 놓고 가정에다가 축복합니다. 이것이 구약에 쭉 흐르는 사상입니다.

예를 들어서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개인구원을 약속을 했습니다. 개인구원을 약속하시고 난 후에, 이어서 하나님이 뭘 말씀하느냐? 창세기 6장에 가족과 사회를 약속합니다. 노아를 통해서 방주를 말씀하시죠. 그 다음에 이것이 안된 11장의 바벨탑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졌는가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실제로 이 축복과 역사를 우리 성도들이 나 혼자 '구원받았다!' 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여러분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구원받고 나면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위해서 하나님이 지속해서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구원의 축복을 누릴 때에 비로소 이 언약이 자식들에게까지 이어지게 되고, 이 구원의 축복이 누려지게 될 때에, 남편과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게 되어 있습니다.

흔히 그러잖아요. 잘 안 믿는 남편이 말하기를 '너 보기 싫어서라도 나는 교회 안 나갈란다!' 어떤 분들이 그러더라 구요. '네가 천국에 가면 나는 천국 안 갈란다! 너 보기 싫어서라도 안 갈련다!'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그 배경이 내 자신이 못 누리면, 언약이 전달되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나를 볼 때에, '어머니 같고, 아버지 같으면 정말 믿어야 되겠다!' 그러면 언약이 전달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 보니까, 정말 기분 나빠! 예수 믿을 마음 없어!' 이러면 곤란한 겁니다.

여러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언약을 누리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자손만대로 축복을 이어가게 되어있습니다. 이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안되면 하나님이 기다리시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창세기 3장 15절에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길이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주인공을 가나안 땅에 보내시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약속을 잡은 자들을 하나님은 광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이 광야로 이끌어 가시다가 약속을 못 잡은 자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어요. 다 쓰러지게 됩니다. 잡은 자들만 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깨닫고 잡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이 광야의 모든 사건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이 땅을 광야교회라고 합니다. 어떤 면에서 약속을 잡은 자들이 갑니다. 잡은 자들이 교회에 모였습니다. 교회에 모였습니다 만은,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잡고 있으나, 쉽게 말해서 그 언약을 누리지 못하게 될 때에 오는 문제가 광야에 문제입니다. 거기서 엎어지고, 자빠지고, 넘어질 수가 있습니다. 누리지 못하는 자들에게 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 땅의 교회에 문제입니다. '하나님, 왜,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습니까? 왜, 나에게 저런 문제가 있습니까?' 할 것 없어요. 조용히 살펴보세요. 언약이 약해지는 만큼 자빠지고,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서 놔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일을 통해서 그 언약과 약속을 잡도록 만드시는 것이 광야교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한 인간을 선택하셔서 엄청난 축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언약을 주셨지만, 아브라함이 언약을 이해하기까지 반평생을 헤맸습니다. 늘 우리가 많이 들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너의 후손을 약속했는데, 자식을 못 낳으니까! 후손대신에 친척을 세우려고 자기 조카 롯을 데리고 왔습니다. 조카 롯을 떼어버리는 순간에, 하나님의 언약을 누리는 순간에 주님께서 그에게 축복을 주신 것이죠. 이 사실이 아브라함의 생애에 중요한 교훈으로 나오게 되죠.

그러다가 창세기 22장에 완벽하게 하나님의 언약이 이해되는 메시아의 이해의 역사 속에 모든 축복과 함께 언약이 이해되고, 아브라함의 생애에 그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3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절에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러분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확실하게 깨닫는 순간에, 쉽게 말해서 '모든 것 보다 언약이 우선이다!' 자식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그 메시지의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비로소 축복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런데 22장 15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16절에,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그랬습니다. 18절에,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그냥 복을 받았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받아합시다. "언약을 누리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신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가 언약을 누리기까지 많은 경우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또 간단하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언약 감사합니다!' 그래서 당장 누릴 수가 있는 게 아니더라 구요. 누릴 수 있는 인격이 되도록 하나님이 이모저모로 만들어요.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이후에 그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시는데,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이삭을 낳게 한 후에, 하나님이 이삭을 낳기까지 아브라함을 얼마나 시험을 합니까!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해 주셨지만 그 약속을 못 누리니까, 애굽에 내려가서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오늘날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 중동지역에 아랍 족속들입니다. 그 아랍 족속들로 인해서 온 세상이 지금 고생을 하고 있잖아요.

여러분과 제가 고생하는 것도, 이게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건을 통해서 고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불신앙을 통해서 고생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언약을 잡고 언약을 누릴 때에, 축복이 그 후손들에게 이루어집니다. 계속 지속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렘넌트만 강조하는 것이 좀 이상해요. 그래서 오늘 '올드 렘넌트'라고 해서 어른 렘넌트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긴 하는데, 진짜 더 중요한 것이 어른 렘넌트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못 누리면 언약이 전달 안되게 되어있어요. 언약이 전달 안 된다! 그러면 축복이 안되게 되어있습니다. 많은 경우! 말로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만은, 하나님은 그때까지 기다리신 것을 볼 수 있죠.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이삭을 축복하시기로 작정한 언약의 후손 아닙니까! 그래놓고도 그 이삭을 또한 축복하시기 위해서, 이삭이 구체적으로 언약을 누리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성경에 보면, 26장에 우물을 파고 빼앗기는 과정을 보죠.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우물을 계속해서 빼앗아 가도 자기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남겨준 언약을 잡고 빼앗아 갈 때마다 다 양보했습니다. 이것은 양보했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 아니고, 언약을 누리면서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마지막에 샘의 근원을 얻고 르호봇이라! '샘터를 넓혔다!'고 해서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축복하시면서 26장 24절에 보면,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 비로소 나옵니다. 여러분 아버지 아브라함이 계속 언약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 그 아들 이삭이 세워집니다. 그 아들 이삭이 세워져서, 그 아들 이삭도 역시 계속 언약을 누리고 있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네 아버지에게 약속한 것처럼 나도 너와 함께 있어 거부가 되게 하겠다! 축복해 주마!' 이 약속이 이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한번 했다고, 렘넌트라는 말한 번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 일을 위해서 이미 여러분과 제게 주신 언약의 축복을 누려야 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확실히 가져야 합니다. 빼앗겨도 누려야 됩니다. 잃어버려도 누려야 됩니다. 없어도 누려야 됩니다. 하나님은 하실 것입니다.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을 내가 가졌다! 비로소 우리 후손들이 받는 겁니다. 받아합시다. "자식은 부모를 담는다!" 뭔가 우리는 뭘 말하느냐 하면, '저게 누구 닮았느냐?' 흔히 그런 소리를 합니다. 그게 나쁜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축복도 부모를 닮습니다. '부모가 어떻게 살았느냐? 언약을 어떻게 누리느냐?' 자식도 똑같이 되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실이 조금만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의 가정과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이 일을 이루어 가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계속 누려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비로소 누구를 보내느냐? 야곱을 보냈죠. 아브라함의 자녀들이 이삭만 있었던 게 아니고 여럿이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와 같은 시절에 1남1녀가 결혼하고 그게 아닙니다. 그 사회는 일부다처제입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야 돼요. 그래서 자식이 없다는 것은 큰 수치가 된다는 것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삭말고도 숫하게 많았지만, 그래도 언약은 이삭으로 함께 언약을 누리고, 함께 그 언약을 전수한 것이 이삭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러면서 그 가정이 이 비밀을 계속 누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 비로소 전도라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 야곱 이후에 요셉을 통해서 선교라는 것과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요즘 전도와 선교를 말하면서 물론 당대에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지는 사람도 있고, 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정말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전도와 선교로 위대한 위업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길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과 후손들이 일어서야 합니다.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만 아니고, 나를 통해서 언약의 자손이 일어나고, 그 언약의 자손 위에 또 언약의 자손이 일어나고, 이래야 전도와 선교로 세계를 살릴 일꾼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참 잘못된 생각이 뭐냐하면, 이런 이야기를 몇 번했습니다. 대게 보면 부흥사들이 타락했다가 헤까닥 어느 날 회개를 하고 불 받아 가지고, '불 받아라!' 이래서 부흥사가 되는 것을 많이 봤어요. 그리고 그 부흥사에게 은혜를 받고, '나도 헤까닥 한번 해 가지고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뭔가 일을 해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많은 경우 부흥사들이 일하다가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 부흥사들이 끝까지 참 복음에, 진정한 언약에 전달자로 승리한 자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 같은 데는 유명한 부흥사가 나오기까지는, 거의 보면 그 사람들이 4대 이상 지난 자들입니다. 그 가정에, 그 목회자의 가정에 4대 이상이 되는 자들이 거의 부흥사입니다. 스펄젼과 무디가 거의 이런 가정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해서 세계를 바꾸어놓는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난 겁니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고 뭔가 오늘 한꺼번에 다 받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귀중합니다 만은, 그것보다 내가 받을 축복보다도 후손들은 더 많습니다. 지금 보다도 앞으로 더 많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이 언약을 붙잡고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를 내게 주신 분복을 따라 누리고 있는 삶입니다. 이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내 후손들에게도 똑같이, 후손들에 삶을 따라서, 분복을 따라서 후손들이 누려야 됩니다. 그리고 거기에 이어지는 모든 축복이 세계를 살릴 전도와 선교의 위대한 유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간단하게 그저 오늘 예수 믿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예수 믿고 이것 받았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보다도 앞으로 더 큰 축복이 지금 언약 속에 나와 여러분에게 약속되어 있음을 확신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갖고 있고 받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가정으로 공동체로 받고 있고 누리고 있는, 이 축복 이후가 얼마나 위대하고 더 큰 축복인 것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성령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역사로 주여 인도해 주시옵소서. 우리 믿음이 회복되게 하시고 정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믿음의 일꾼들로 세워 주시옵소서. 지금 내가 누리게 하시고 우리 후손이 누리는, 그래서 지속적으로 믿음에 굳게 설 수 있는 가족과 가정과 한 공동체로 주의 뜻이 성취되도록 복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공동체를 누리는 동안에 개인과 가정과 교회에 축복하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들은 공동체인 가정과 교회에 대해서 알고는 있지만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가 언약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도 언약을 전달해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언약을 누려야 후손들이 언약을 전달받을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이 언약 안에서 공동체가 되지 않으면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원하시는 공동체의 모습을 교회로 주셨지만, 오늘날 많은 교회가 공동체의 모습을 잃고, 사단의 놀이터가 되어버렸습니다.

1. 교회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한 마음이 될 때, 가정도 언약의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① 교회의 강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교인들이 모두 똑같이 알아들을 수 있어야 축복된 교회 공동체가 됩니다.
② 말씀을 알아들어야 발을 맞추어 나갈 수 있으며, 나의 할 일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③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큰 은혜를 주시려고 하는데, 우리는 한 마음이 되는 시험대에 놓여 있습니다.
④ 하나님께 부름받은 아브라함이 반평생 동안 유리방황하다가 공동체의 비밀을 깨달으면서 언약의 씨를 받았습니다.
⑤ 교회가 방향을 정해서 나갈 때, 모든 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⑥ 광고를 들을 때, 정확하게 알아듣고 마음을 기울여서 발을 맞추어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⑦ 교회의 방향, 구역의 방향, 가정의 방향이 맞아야 응답을 받을 수 있고, 언약이 후손 만대에 이어질 수 있습니다.
⑧ 교회 건축의 관한 광고가 나가면, 그에 맞추어서 같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⑨ 교회가 승리하는 과정 속에 내가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⑩ 공동체 정신을 가지는 생각의 변화는 개인 구원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⑪ 구원받은 사람은 교회의 어려움에 같이 아파할 수 있고, 교인의 고통을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 나옵니다.
⑫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같이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이 될 때, 참된 중보 기도가 나올 수 있습니다.
⑬ 교회 공동체 속에서 개인 구원의 축복을 누릴 때, 가정도 언약이 전달되는 공동체로 세워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언약을 누릴 때, 준비하신 축복을 부어주십니다.
① 언약을 잡은 자들이 교회에 모였지만, 언약을 누리지 못하게 될 때, 광야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은 광야의 어려움을 통해서도 결국에는 우리가 언약을 붙잡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③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데리고 다니다가 언약을 붙잡고 조카 롯을 떠나보낼 때, 언약의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④ 아브라함이 언약을 우선으로 붙잡고 사랑하는 이삭조차도 하나님께 바칠 때,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⑤ 아브라함이 언약을 누릴 때, 후손에게 언약이 전달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⑥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 우리가 언약을 누릴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⑦ 어린 렘넌트들에게 언약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어른 렘넌트들이 더욱 중요합니다.
⑧ 하나님은 이삭도 언약을 누릴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경제적인 축복을 주시고, 후손에게 언약이 계속 전달되는 문을 여셨습니다.
⑨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주신 언약을 누려야 합니다.
⑩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내가 가질 때, 나의 후손도 그 언약을 물려받아서 누릴 수 있습니다.
⑪ 하나님의 언약이 이삭을 통해서 야곱에게로 전달될 때 ‘전도’가 이해되었고, 요셉에게로 전달될 때 ‘선교’가 이해되었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의 언약을 누릴 때, 후손들이 언약을 이어 받아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되며, 전도와 선교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에게 약속된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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