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참 맛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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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4: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눅 24: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눅 24: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눅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눅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눅 24: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눅 24: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눅 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눅 24: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눅 24: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눅 24: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눅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눅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눅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4:30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눅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지난 주 저희 집에는 꽃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저희 집 아들이 저희 집 사람에게 뭐라고 질문을 했느냐 하면, '엄마는 옛날부터 꽃뱀이었느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때 이제 저희 집 사람이 원래 뱀띠거든요. 뱀 띠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엄마는 꽃뱀이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러니까 엄마는 매일 아빠 돈 뜯어가면서 사는구나!' 이 꽃뱀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꽃뱀'이라는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어제 저희 집사람하고 같이 한번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아이가 꽃뱀이라는 의미를 알고 묻느냐? 의문이 나가지고 불러서 물어봤습니다. '야, 꽃뱀이 뭐냐?' 그러니까, 이 아들이 하는 대답이 '남자 꼬셔서 돈 뜯어서 도망가는 여자가 꽃뱀이다!'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 정확하죠. 어른들보다 더 정확합니다. '남자 꼬셔 가지고 돈 뜯어서 도망가는 여자!' 이게 꽃뱀이라는 겁니다. 어쨌든 저는 돈을 뜯기면서 살아갑니다. 주는 사람은 없고, 왜 그렇게 뜯어 가는 사람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딸아이도 늘 뜯어가거든요. 저희 엄마한테 용돈 받고 제 방에 와서는 돈 뜯어가고... 이래서 늘 뜯어갑니다.
한번은 제가 교회 마당에 있는데, 어떤 집사님 한 분이 제게 빵을 하나 주셨습니다. '목사님, 드십시오!' 하면서 주시더라 구요. 마침 배가 출출해 가지고 뜯어서 먹으려고 하는데, 그 마당에 한 다섯 살 된 아이가 아주 빵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 판국에 제가 먹었다가는 큰일나겠더라 구요. 아무 소리 안하고 그 빵을 쥐어주었습니다. 돈도 뜯기고 빵도 뜯기고 어쨌든 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뜯기고 살아도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더 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 주죠. 아무리 뜯기고 살아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속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제 속에 역사 되고 있고, 이 복음의 기쁨 속에 제가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렇다 보니까 뭔가 자꾸만 여유가 생기더라 구요. 내가 복음이 충만했을 때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하고는 너무나도 차이가 납니다. 어쨌든 제 속에 복음이 있고, 이 복음으로 충만해지니까 항상 여유가 생기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그러면서 있으면 더 주고 싶어지고...
여러분 지금 내 속에 복음이 없다고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 속에 여유가 있겠습니까? 마누라가 내 주머니에 손만 데어도 기분이 나쁩니다. '저 여자가 또 뭘 뜯어가려고 그러는가 싶어 가지고...' 손만 데어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진짜 그렇더라 구요. 복음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예민해져 있으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도 그렇게 거슬립니다. 우리 부부간에도 여러분 예민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진짜로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복음 충만하지 못하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얼마나 지금 거슬리고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복음 충만하시고 성령 충만하시니까, 별로 그렇게 그런 일이 없겠지만, 저는 순간이라도 이 복음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까, 얼마나 신경질이 나고, 짜증이 나고, 심지어는 '내가 왜 이러냐?' 싶을 정도로... 한번씩 여러분들은 그럴 때가 없습니까? 내 자신을 딱 돌아보면서, '야, 내가 왜 그러냐?' '매사에 불평이지, 매사에 짜증이지, 신경질 내지!' 그런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과연, 내가 왜 그러냐?' 혹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없습니까! 오늘 복음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음속에는, 복음 속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 속에서 나오는 여유! 지금 세상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답답합니까? 서로 속이고 속고, 또 차고 올라가야 되고, 이런 와중에 참으로 불안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 속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불신자들보다도 훨씬 불안해 집니다. 매사에 답답하고, 초조해지고, 힘들고, 어려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지금 내가 복음 속에서 나오는 참 여유가 있느냐? 이게 순간, 순간 확인이 되어져야 됩니다.
저는 아래께 다니엘서 6장을 쭉 읽어보면서 '야, 이게 진짜 여유구나! 참 여유 있는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이걸 새삼스럽게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서 6장 사건을 잘 아시죠. 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사건이 이 다니엘서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전에 다니엘이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말은 성령 충만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시기를 했습니까? 수많은 바벨론 신하들이 다니엘의 모습을 너무 시기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네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높은 자리에 다니엘이 지금 올라가 있거든요. 그것도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 높은 자리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벨론 신하들은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저 녀석 한번 골탕먹이자!' 그리고 '저 자리에서 끌어내리자!' 그런 마음으로 그들이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래서 이제 왕에게 찾아가서 하는 말이, '왕이시여, 한 달 동안 당신 외에 다른 신들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에 처형을 합시다!' 그런데 왕은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섬기는 일이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아무 영문도 모르는 체 그 사실을 인정해 줬습니다.
이대부터 바벨론 신하들은 오직 한사람, 이 다니엘 한사람만 주시를 합니다. '두고 보자!' 그런데 보십시오. 이 사건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사자굴 속에 던져지는 사실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니엘은 기도를 합니다. 그것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여러분 보통 마음 같으면 창문을 열어놓지 못합니다. 당장에 이게 들키면 자기는 사자굴 속에 던져지고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데, 어느 누가 감히 창문을 열어놓습니까?
그런데 이 다니엘을 보십시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 말은 보아란 듯이... 그러면서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였더라!' 이게 여유입니다. 여러분 진짜로 우리 속에 복음이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 지면, 누가 보던지 말던지! 여러분 뭐가 겁이 납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내 속에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어쨌든 이 기도하는 모습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사실 이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집어넣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기에게 가장 충성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그런데 못된 신하들의 계획 때문에 그렇게 빨려 들어갔죠. 이 다리오 왕은 절대로 사자굴속에 다니엘을 집어넣고 싶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초조했던지, 얼마나 애를 썼던지... 그 다음 날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어디에 갔습니까? 사자굴 앞에 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다니엘아! 너의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의 항상 섬기는 하나님께서 저 사자들의 손에서 너를 능히 구원하셨느냐?'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에 다니엘이 한 말입니다. '왕이여,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어떤 면에서 불안하고, 초조하고, 덜덜 떨고 있어야 될 이 다니엘의 입에서 얼마나 여유가 있었던지, '왕이여,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진짜로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사자굴속에 집어넣은 이 다리오 왕은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자굴속에 던져진 이 다니엘은 얼마나 여유가 있었던지,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나는 괜찮습니다. 나의 항상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 사자들의 입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여유 있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진짜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여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까,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진짜로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이런 마음들이 여러분의 중심에 있습니까? 다윗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사울 왕이 아무리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수만의 모든 신하들을 풀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있었던 그 다윗을 보십시오. 절대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떨지 안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진정한 고백이 그 마음과 가슴에서 함께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진짜로 복음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세상 충만, 육신 충만하고 성령 충만, 복음 충만 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여기게 따른 결과도 완전히 다르죠. 오늘 이 시간 진짜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락방 초창기 때 계속해서 들었던 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 그리고 '전도가 다다! 복음이 모든 것이다!' 이런 단어들을 저와 여러분들이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러면 그 말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이게 같이 맞아져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분명히 우리 입술은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인데,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고, 어렵고, 답답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틀렸습니까? 성경이 지금 거짓말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이고, 그리고 성경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 모든 지식이 다 들어있다!' 한마디로, '다다!' 그 말이죠. 그런데 그 말하고 지금 여러분의 삶과 일치가 되고 있습니까? 이게 안될 때에 진짜로 많은 갈등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이 말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경제 문제 보십시오. 참 어렵습니다. 좀 남들처럼 제대로 쓰고 싶고, 좀 남들처럼 제대로 입고싶고, 좀 남들처럼 제대로 된 그런 집에서 살고 싶고, 좀더 벌고 싶은데...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원하고 바라는 만큼, 또 여러분들이 노력을 하고 수고하는 만큼 잘 살고 계십니까? 단돈 만원, 심지어는 단돈 천 원도 아쉬운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일을 버려놓아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속에서 얼마나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안과 염려가 찾아옵니까?
아래께 금요일 날 우리 교역자들과 같이 개업을 하는 식당에 식사대접을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밥을 먹는데, 참 맛있더라 구요. 그런데 제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이 식당이 잘 되어야 할텐데...' 괜히 마음속에 부담이 오더라 구요. 얻어먹기는 얻어먹는데, 또 주의 종들이 왔다가 갔는데... 그러면 그 식당이 잘되면 참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경제 상황이 그렇지 않잖아요. 지금 얼마나 식당도 사업도 직장도 다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말을 들었느냐 하면, 요즘 짜장면이잘 안 팔린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니까, 지금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지, 그 흔한 짜장면도 제대로 안 팔린 데요. 이런 차원에서 지금 식당을 하나 개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얻어먹는 저희들의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왜냐? 그만큼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직장은 무사하십니까? 파리목숨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언제 쫓겨날지 모릅니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수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직장 상사들의 눈치를 봐야 됩니다. 내 자리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언제 밀려날지 모릅니다. 이런 속에서 얼마나 지금 불안하고 답답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지금 남편, 아내, 내 자녀들! 지금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어제 밤에도 저희 집 앞에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한 20명 가까이 아이들이 모여 가지고 고함을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막 소동을 했습니다. 터지기 바로 일보직전입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아무도 말을 못합니다.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 여자 썩여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어른들이 건드릴 수 없어요. 왜? 그 자녀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보십시오. 경제 문제 어렵죠. 직장에는 늘 위기가 찾아오죠. 심지어는 내 자녀들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지! 여기다가 우리 자신들의 영적 문제는 어떻습니까? 골치 아프죠. 지금 여러분의 영적 문제! 여러분들이 극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영적 문제들이 심각한 모습으로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인데, 경제를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여러분의 직장을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여러분의 가정을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내 자신을 보면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틀렸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잘못 되어졌습니까? 저는 생각에 하나님 말씀이 잘못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이 어디서 생겨났느냐? 우리가 그렇게 '믿음, 믿음!' 강조하고 복음을 지금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뭔가 모르게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얼마나 고민과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틀린 것이 없는데, 분명히 내게는 문제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내게 있느냐? 여기에 대한 실제적인 답을 얻지 못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메시지의 제목을 신앙의 참 맛이 뭐냐? 이런 제목을 잡아 봤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에 참 맛을 봐야 되는데, 이 맛을 보지 못하니까 자꾸 갈등이 일어나죠. 그러면서 그리스도와 나는 전혀 상관이 없죠. 그러니까 얼마나 갈등하고, 방황하고, 헤 깔리고, 이게 지금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앙에 참 맛이 뭐냐? 제가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진짜로 여러분 이번 한 주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일생동안, 진짜로 한번 이 신앙에 참 맛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멋지고 훌륭한 인생이 되어질 것입니다.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첫째가 뭐냐하면, 여러분 말씀에 맛을 보십시오. 다른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최고의 행복자가 되기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맛을 봐야 됩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말씀에 맛을 제대로 보느냐? 이게 여러분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 보시면, 시편 기자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편기자가 말을 했습니다. 말씀에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꿀보다 더 달고 꿀보다 더 맛있다!
여러분 달다는 것에 대명사는 꿀입니다. 사실은 꿀보다 더 단 것이 없죠. 그런데 얼마나 말씀의 맛이 좋았으면, 꿀보다 더 달다! 다른 성경에 보시면, '송이 꿀보다 더 달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 그 음식이 내 입에 맞으면, 입에 달라붙는다고 하죠. 입에 달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참 입에 맛있으면, '참 달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그런 말을 합니다. 그 만큼 그 음식에 맛이 맛있다는 말이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런 맛이 느껴져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또 말씀을 펴서 읽을 때에, 이런 말씀들을 쭉 보면서, 또 들으면서 '야, 그렇구나!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그러면서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내게 소중하고, 심지어는, '내가 이 말씀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죽어도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말씀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생각하죠. 피곤해서 눈을 감죠. 전혀 엉뚱한 마음들이 지금 들어와 있죠. 그러니까 말씀을 들어도 깨달을 수도 없고, 이 말씀이 내 귀에 들려 지지도 않고... 여러분 우리가 평생을 믿었는데,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아오셨는데, 그렇다면 말씀에 맛을 제대로 봐야되지 않습니까! 평생을 믿었는데, 이 말씀에 맛을 제대로 한번 보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진짜로 이 시간 말씀에 맛을 보십시오. 이 말씀에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성도가 말씀의 맛을 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첫 번째는 에스겔 37장에 현실이 일어납니다. 제가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성구를 읽었습니다. 그 성구에 내용이 에스겔서 37장에 내용입니다. 에스겔이 눈을 떠서 가만히 보니까 저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들, 해골 떼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곳으로 이 에스겔을 데리고 갔습니다. '인자야, 지금 네가 무엇을 보느냐?' '저 골짜기에 널부러져 있는 해골 떼, 마른 뼈들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징그럽습니까? 여러분 진짜로 시체 앞에서 해골 떼를 보십시오. 우리가 그냥 화면으로 봤을 때는 덜하죠. 진짜로 해골 떼들, 마른 뼈다귀들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징그럽습니까? 얼마나 허탈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에스겔을 그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다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네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마른 뼈다귀들, 해골 떼를 보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살겠느냐? '그때에 에스겔의 대답이 뭐냐하면, '주 여호와께서 아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또 말씀을 합니다. '인자야, 저들에게 말씀을 대언 해라!' 그 말씀을 들은 에스겔이 그 마른 뼈다귀를 향해서 주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때에 뼈와 뼈들이 붙고 해골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 마른 뼈다귀들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이 전체 살아나는 이런 축복들이 함께 일어났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 답답하십니까?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까?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문제 때문에 염려하고 있습니까? 말씀 속에 들어오십시오. 진짜로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깊이 들어올 때에, 그때에 여러분의 인격도 살아나고, 여러분의 영도 살아나고, 여러분의 육체도 살아나고, 여러분의 사업도 살아나는 이런 엄청난 기적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더 나아가서는 말씀에 참 맛을 보지 못하면, 영적인 시체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들려지지 않으면 영적인 시체가 되어진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마른 모습으로...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또 보십시오. 예레미야 애가 4장 4절에 보시면,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빠는데, 그 젖이 많이 쏟아져 나올 때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젖에서 젖이 나오지 않을 때에, 아이들의 입천장이 달라붙는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영의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제대로 듣지 못하면, 여기에 완전히 말라비틀어진다는 겁니다. 육체도 마르면 문제가 오는데, 영적으로 말라졌다! 그러면 거기에 따른 결과들을 여러분들이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만큼 우리가 말씀에 참 맛을 보지 못하면, 완전히 망하는 자리에 그렇게 들어간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장 17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해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슬픈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스승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 스승을 잃은 이 두 제자는 얼마나 마음속에 낙심이 되었던지! 얼마나 그 마음속에 실망이 되었던지! 슬픈 얼굴을 하고 그렇게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말씀에 은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까! 슬픈 빛을 띠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제자들의 모습이죠.
그런데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두 사람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렇죠. 실망과 실의에 빠져서 완전히 낙심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두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들을 그 속에 심어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낙심된 마음, 염려, 불안이 가득 찬 그들의 마음속에 메시지! 말씀이 들어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그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지금 낙심된 일이 있습니까? 차마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이 들어와야 됩니다. 말씀에 참 맛을 여러분들이 깨달을 때에, 모든 얽히고 복잡한 문제들 있죠. 내 힘으로 안 되는 어떤 문제도 말씀의 역사 속에 들어오면 모든 문제들이 회복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 말씀의 맛을 여러분들이 보십시오. 여기에 살아나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말씀에 맛과 더불어서 기도의 맛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너무 잘못된 생각을 합니다. 한마디로 기도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뭔가 오래 앉아 있어야 되고,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밤을 새워야 되고, 심지어는 굶어야 되고, 주로 그런 개념으로서 우리가 기도를 이해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멀쩡하게 있는 사람이 굶어야 되니까 얼마나 힘듭니까! 밤을 새워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래서 모든 기도는 힘들다! 그게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인 개념으로 기도를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성경은 단순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보시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겠다!' 한마디로 끝냈습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해라 그러면 내가 응답하겠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보시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냥 한마디로 '기도해라!' 그것도 '내 이름으로! 그러면 내가 응답하겠다! 시행하겠다! 너희 속에 기쁨이 충만하겠다!' 이게 기도의 역사요, 이 기도의 맛을 우리가 체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맛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곳, 그게 우리의 삶에 현장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 들어가 보십시오. 여러분의 사업장에 들어가 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삶에 현장에 들어가 보시면 진짜로 악령들이 역사 합니다. 귀신에 세력들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고, 가정을 이간시키고, 사람의 관계를 끊어놓고, 직장이 어렵도록 자꾸만 이렇게 악령들이 얼마나 역사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령과 귀신의 세력들을 완전히 이길 수 있는 그 유일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게 기도의 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모든 흑암과 저주의 세력들이 완전히 물러가게 되는 겁니다.
이 기도의 맛을 우리가 체험을 해야 되는데, 지금 기도의 맛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하게 살자는 이유 때문에, '이제는 뭐 살만큼 살았는데...' 또 '이제 뭐 고생할 만큼 고생했는데 뭘 자꾸만 고생을 시키느냐?' 그래서 기도의 맛을 점점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현실에서, 또 여러분의 가정 안에, 또 여러분의 개인 속에 기도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기도가 진정으로 되어지고 있습니까? 순간,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그 기도의 역사가 함께 따라옵니까? 그런데 지금 많은 성도들이 이 기도의 맛을 제대로 못 봅니다. 좀 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좀 편안해 지자! 이제는 좀 살만큼 사는데 뭐! 여러분 그런 마음 때문에 혹시 기도에 맛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기도의 맛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살아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전도에 맛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 전도에 맛은 어떻게 보느냐? 여러분들이 지금 밖에 달려나가서 막 고함을 지르고, 전도 지를 뿌린다고 해서 전도에 맛이 들어집니까? 그게 아닙니다. 진짜 여러분들이 전도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앞에 두 가지 사실이 먼저 전제가 되어져야 됩니다. 첫째는 말씀에 맛을 통해서 은혜가 체험되어지느냐? 두 번째는 기도의 맛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되어 지느냐? 이 두 가지가 먼저 전제가 되어질 때에 그때부터 전도가 되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여러분 전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전도하려고 하는 마음만 먹으십시오. 그러면 현장도 열리고, 메시지도 나오고, 사람을 살리는 이런 축복들이 함께 일어납니다. 저는 전도합숙을 하면, 반드시 하는 강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전도하려고 하지말고 마음만 먹으십시오!' 롯을 보십시오. 소돔 고모라 성이 망해 가는 그런 현실을 바라볼 때에 롯의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저 성읍이 망해져 가는데요...' 그런 마음을 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서 고통을 당하고 저주 속에 시달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너무 인생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때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 저 사람 살려야 되는데, 저 사람이 복음 받으면 되는데요...' 그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축복을 하신 다는 겁니다. 이 전도의 맛을 우리가 봐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제가 서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왜 나는 안 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맛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맛만 제대로 보십시오. 모든 신앙 속에서 진짜로 이 세 가지 맛을 제대로 봤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이 살아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맛을 보지 못하니까, 여기에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려워 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 메시지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평생 들어온 메시지입니다. '말씀, 기도, 전도!'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이 메시지, 이 단어는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여러분 속에 사는 맛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런데 진짜로 사는 맛이 있습니까? 물론 있는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한 주간동안 찌들려, 찌들려 살다가 억지로 힘든 걸음 해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있느냐? 맛을 제대로 보자는 겁니다.
저는 낚시를 할 줄도 모르고, 또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옛날에 한번 총신 다닐 때에, 그때 시간이 있어 가지고 제 동기하고 저기 상주 쪽에 어떤 못이 하나 있더라 구요. 거기에 낚시를 하러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낚시를 모르니까, 얼마나 지겨운지 몰라요. 한 두시간을 앉아있어 봤는데, 천하에 지겨운 그게 낚시더라 구요. 그런데 제 동기는 2시간, 3시간 있어도 한 마리도 안 잡히는데, 뭐 눈이 뚫어지도록 그 못을 바라보는 거 있죠. 그래서 내가 물어왔습니다. '야, 재미있냐?' 재미 좋다는 겁니다. 한 마리도 안 잡히는데, 그래도 좋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다음날 새벽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막 신경질이 나고, 가자고 해도 가지도 않지, 왜냐하면, 안태워주면 내가 못 가니까! 가자고 해도 안가고, 자기는 그대로 앉아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잉어를 한 마리 건졌습니다. 좋아 가지고, '야, 이 맛을 아느냐고...' 그러더라 구요. 내가 어떻게 압니까? 나는 전혀 모르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제가 이 맛을 한번 봤습니다. 언제 봤느냐 하면, 그때 2년 전인가 우리 신학원 교수님들과 같이 감포 쪽으로 한번 갔었는데, 우리 박지온 목사님이 배를 하나 빌리라고 하더라 구요. 그래서 제가 주선을 해 가지고 배를 한 척 빌렸거든요. 그래서 거기 바로 앞에 바닷가에 나갔는데, 그때는 고등어 때들이 막 몰려다닐 때입니다. 낚시 대를 하나씩 다 주는데, 저도 하나 받았습니다. 그런데 받아 들고나니까 좀 부담이 돼요. 왜냐하면, 하나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우리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박 목사 그냥 던져만 놓으라고...' 하시더라 구요. 미끼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낚시바늘만 한 다섯 개정도 있더라 구요.
던졌는데 뭔가 '후다닥'하는 거 있죠. 손이 진짜 떨리더라 구요. 그때 딱 느낌이, '이 맛이구나!'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낚시에 대해서는 좋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낚시가 좋아서 밤을 새우는 사람을 보면, 진짜 미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딱 던지자 말자 뭔가 '후다닥'하고 손이 떨리는 그 순간에, '아, 이 맛이구나! '이게 제 속에 느껴졌습니다. 맛을 보면 밤새도록 하게 되어있고, 새벽에 나가도록 되어 있고, 거기에 몇 일 동안 앉아있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맛이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 계실 때에, 맛을 보고 앉아 계십시오. 그냥 앉아 있으면 천하에 지겹습니다. 오늘 같이 좋은날 저 산으로 벚꽃놀이 가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전혀 맛을 모르고 여기 앉아 계시면 진짜 지겹습니다. 이 1시간이 10년 세월보다 더 지겨울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말씀에 맛, 기도에 맛, 전도에 맛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 세 가지 맛 진짜로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맛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기도의 맛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전도에 맛을 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번 한 주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는 저희 집 아이가 집사람에게 ‘옛날부터 꽃뱀이었느냐?’라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그래서 매일 아빠 돈을 뜯어내는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꽃뱀이 뭔지 아냐?’고 묻자. ‘남자를 꼬여서 돈을 뜯어서 도망가는 여자가 아니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매일 뜯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뜯기고 살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좀 더 있다면 주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제 마음에 복음이 있으니 여유가 생기고 더 주고 싶은 것입니다. 제 마음에 복음이 없으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충만하면 기분이 좋고 싫은 소리를 들어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얼마나 예민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견딜 수 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복음과 성령으로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복음과 성령의 참 충만
① 복음과 성령의 참 충만이 있습니다.
② 각박하고 서로 경쟁하는 이 세상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불신자보다 사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③ 기분 나쁘면, 고함을 치고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양심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④ 복음에 충만해져 있을 때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고, 여러분의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⑤ 단 6장을 보면서 복음 속에서 참 여유가 있을 때,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⑥ 당시에 다른 신을 섬기면 사자 굴에 던진다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창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3번 기도했습니다.
⑦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고도 불안했던 다리오는 새벽이 되자 사자 굴로 가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하나님이 너를 건지시기에 능하였냐?’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다니엘은 여유가 있었기에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말하였습니다.
⑧ 사업과 인간관계가 비틀릴 때 마음에 참 여유가 있습니까? 이런 여유가 마음에 없습니다. 더욱 크게 보복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⑨ 얼마나 복음으로 충만합니까? 세상과 복음의 충만은 완전히 다르고 인생의 결말도 다르게 됩니다.
2. 말씀과 괴리감이 있는 우리의 삶
① 다락방 초기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 복음은 모든 것, 전도가 전부’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② 그러나 나의 삶이 그렇지 못할 때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③ 경제적으로는 얼마나 궁핍합니까? 가정에서는 서로 문제가 없습니까? 나의 영적인 문제는 없습니까?
④ 성경이 틀리지 않았다면 내 자신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며 해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⑤ 신앙의 참 맛을 모르기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참 맛 세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3. 말씀의 참 맛을 보아야 합니다.
①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 달다’ 이야기하였습니다.
②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너무 소중하다, 받지 못하면 죽는다, 말씀이 들려지게 하옵소서. 이때 우리의 인생이 살아나게 됩니다.
③ 그러나 말씀을 들을 때도 다른 생각이 든다면 우리 심령이 어떻겠습니까?
④ 겔 37:1-6 의 영적으로 죽은 시체가 됩니다. 에스골 골짜기에 마른 뼈가 되었습니다.
⑤ 그러나 이런 뼈들에게 말씀이 들어갈 때 살아나는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⑥ 애 4:3을 보면 젖먹이가 목이 말라서 혀가 천장에 붙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기갈한 상태가 됩니다.
⑦ 17절에 엠마오 도상에서 너희가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무엇이냐 예수님이 묻자 슬픈 빛을 띄고 머물고 섰습니다.
⑧ 그러나 그들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때 마음이 뜨겁지 아니었냐고 제자들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32절)
4. 기도의 참맛을 보아야 합니다.
① 기도를 우리는 오래앉아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종교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② 요 14:14에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시행하겠다. 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③ 우리가 현장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기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시행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④ 렘 33:3에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말하셨습니다.
⑤ 우리가 현장에서 맞설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때 흑암의 세력이 완전히 꺽입니다.
3. 전도의 참 맛을 보아야 합니다.
① 앞의 두 가지 사실이 전제가 되어야 전도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② 현장 속에서 살려 내려는 마음만 가져도, 축복하십니다.
③ 소돔과 고모라. 망하는 성읍을 가지고 롯이 기도할 때 축복을 얻었습니다.
④ 생명에 대한 참 애착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세 가지 맛을 제대로 보면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의 맛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십시오. 둘째는 기도의 맛을 보십시오. 약령의 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기도의 맛입니다. 셋째로 이 두 가지가 되어질 때, 삶 속에서 전도가 제대로 될 것입니다. 서론에서 예수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되어지지 않는 이유는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총신을 다닐 때 탁구의 맛을 제대로 보자 새벽까지 탁구를 치고 눈을 감아도 탁구가 보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3가지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다른 길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3가지 맛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이때 여러분의 인생은 최고의 인생이 됩니다. 온전한 승리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눅 24: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눅 24: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눅 24: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눅 24: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눅 24: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눅 24: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눅 24: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눅 24: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눅 24: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눅 24: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눅 24: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눅 24: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 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눅 24: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눅 24: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눅 24: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4:30
(눅 24: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 24: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눅 24: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눅 24: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지난 주 저희 집에는 꽃뱀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싶으시죠. 저희 집 아들이 저희 집 사람에게 뭐라고 질문을 했느냐 하면, '엄마는 옛날부터 꽃뱀이었느냐?'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때 이제 저희 집 사람이 원래 뱀띠거든요. 뱀 띠기 때문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엄마는 꽃뱀이다!' 그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이 뭐라고 하느냐 하면, '그러니까 엄마는 매일 아빠 돈 뜯어가면서 사는구나!' 이 꽃뱀이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꽃뱀'이라는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어제 저희 집사람하고 같이 한번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아이가 꽃뱀이라는 의미를 알고 묻느냐? 의문이 나가지고 불러서 물어봤습니다. '야, 꽃뱀이 뭐냐?' 그러니까, 이 아들이 하는 대답이 '남자 꼬셔서 돈 뜯어서 도망가는 여자가 꽃뱀이다!' 그러는 겁니다. 여러분 정확하죠. 어른들보다 더 정확합니다. '남자 꼬셔 가지고 돈 뜯어서 도망가는 여자!' 이게 꽃뱀이라는 겁니다. 어쨌든 저는 돈을 뜯기면서 살아갑니다. 주는 사람은 없고, 왜 그렇게 뜯어 가는 사람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딸아이도 늘 뜯어가거든요. 저희 엄마한테 용돈 받고 제 방에 와서는 돈 뜯어가고... 이래서 늘 뜯어갑니다.
한번은 제가 교회 마당에 있는데, 어떤 집사님 한 분이 제게 빵을 하나 주셨습니다. '목사님, 드십시오!' 하면서 주시더라 구요. 마침 배가 출출해 가지고 뜯어서 먹으려고 하는데, 그 마당에 한 다섯 살 된 아이가 아주 빵을 심각하게 보고 있는 겁니다. 그런 판국에 제가 먹었다가는 큰일나겠더라 구요. 아무 소리 안하고 그 빵을 쥐어주었습니다. 돈도 뜯기고 빵도 뜯기고 어쨌든 저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뜯기고 살아도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 더 주고 싶어도 없어서 못 주죠. 아무리 뜯기고 살아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 속에는 복음이 있습니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지금 제 속에 역사 되고 있고, 이 복음의 기쁨 속에 제가 하루 하루를 살아갑니다. 이렇다 보니까 뭔가 자꾸만 여유가 생기더라 구요. 내가 복음이 충만했을 때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하고는 너무나도 차이가 납니다. 어쨌든 제 속에 복음이 있고, 이 복음으로 충만해지니까 항상 여유가 생기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고, 그러면서 있으면 더 주고 싶어지고...
여러분 지금 내 속에 복음이 없다고 한번 생각을 해 보십시오. 여러분 속에 여유가 있겠습니까? 마누라가 내 주머니에 손만 데어도 기분이 나쁩니다. '저 여자가 또 뭘 뜯어가려고 그러는가 싶어 가지고...' 손만 데어도 기분이 나빠집니다. 진짜 그렇더라 구요. 복음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예민해져 있으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도 그렇게 거슬립니다. 우리 부부간에도 여러분 예민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진짜로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복음 충만하지 못하면,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얼마나 지금 거슬리고 있습니까!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다 복음 충만하시고 성령 충만하시니까, 별로 그렇게 그런 일이 없겠지만, 저는 순간이라도 이 복음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까, 얼마나 신경질이 나고, 짜증이 나고, 심지어는 '내가 왜 이러냐?' 싶을 정도로... 한번씩 여러분들은 그럴 때가 없습니까? 내 자신을 딱 돌아보면서, '야, 내가 왜 그러냐?' '매사에 불평이지, 매사에 짜증이지, 신경질 내지!' 그런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과연, 내가 왜 그러냐?' 혹시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없습니까! 오늘 복음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마음속에는, 복음 속에서 나오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복음 속에서 나오는 여유! 지금 세상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렵고 답답합니까? 서로 속이고 속고, 또 차고 올라가야 되고, 이런 와중에 참으로 불안한 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현실 속에서 저와 여러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불신자들보다도 훨씬 불안해 집니다. 매사에 답답하고, 초조해지고, 힘들고, 어려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지금 내가 복음 속에서 나오는 참 여유가 있느냐? 이게 순간, 순간 확인이 되어져야 됩니다.
저는 아래께 다니엘서 6장을 쭉 읽어보면서 '야, 이게 진짜 여유구나! 참 여유 있는 생활이 이런 것이구나!' 이걸 새삼스럽게 발견했습니다. 여러분 다니엘서 6장 사건을 잘 아시죠. 이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지는 사건이 이 다니엘서 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전에 다니엘이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말은 성령 충만했다는 말이죠.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시기를 했습니까? 수많은 바벨론 신하들이 다니엘의 모습을 너무 시기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네들이 올라가지 못하는 높은 자리에 다니엘이 지금 올라가 있거든요. 그것도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 높은 자리를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바벨론 신하들은 너무 화가 나는 겁니다. '저 녀석 한번 골탕먹이자!' 그리고 '저 자리에서 끌어내리자!' 그런 마음으로 그들이 계략을 꾸몄습니다. 그래서 이제 왕에게 찾아가서 하는 말이, '왕이시여, 한 달 동안 당신 외에 다른 신들에게 절하거나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당장에 처형을 합시다!' 그런데 왕은 영문도 모르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섬기는 일이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그래서 아무 영문도 모르는 체 그 사실을 인정해 줬습니다.
이대부터 바벨론 신하들은 오직 한사람, 이 다니엘 한사람만 주시를 합니다. '두고 보자!' 그런데 보십시오. 이 사건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반드시 사자굴 속에 던져지는 사실을 다니엘이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다니엘은 기도를 합니다. 그것도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여러분 보통 마음 같으면 창문을 열어놓지 못합니다. 당장에 이게 들키면 자기는 사자굴 속에 던져지고 생명에 큰 위협을 받는데, 어느 누가 감히 창문을 열어놓습니까?
그런데 이 다니엘을 보십시오.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이 말은 보아란 듯이... 그러면서 '그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였더라!' 이게 여유입니다. 여러분 진짜로 우리 속에 복음이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 지면, 누가 보던지 말던지! 여러분 뭐가 겁이 납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 내 속에 진행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어쨌든 이 기도하는 모습 때문에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져집니다.
그런데 사실 이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사자굴속에 집어넣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자기에게 가장 충성한 사람이 다니엘입니다. 그런데 못된 신하들의 계획 때문에 그렇게 빨려 들어갔죠. 이 다리오 왕은 절대로 사자굴속에 다니엘을 집어넣고 싶은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초조했던지, 얼마나 애를 썼던지... 그 다음 날 새벽에 일찍이 일어나서 어디에 갔습니까? 사자굴 앞에 갔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다니엘아! 너의 섬기는 하나님께서, 너의 항상 섬기는 하나님께서 저 사자들의 손에서 너를 능히 구원하셨느냐?' 중요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에 다니엘이 한 말입니다. '왕이여,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어떤 면에서 불안하고, 초조하고, 덜덜 떨고 있어야 될 이 다니엘의 입에서 얼마나 여유가 있었던지, '왕이여,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진짜로 여유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사자굴속에 집어넣은 이 다리오 왕은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자굴속에 던져진 이 다니엘은 얼마나 여유가 있었던지, '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나는 괜찮습니다. 나의 항상 섬기는 하나님께서 이 사자들의 입에서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여유 있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진짜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 여유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니까,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진짜로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는 이런 마음들이 여러분의 중심에 있습니까? 다윗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사울 왕이 아무리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고, 수만의 모든 신하들을 풀었다 할지라도 그 속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있었던 그 다윗을 보십시오. 절대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하거나 떨지 안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구나!' 진정한 고백이 그 마음과 가슴에서 함께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진짜로 복음으로 충만해 져야 합니다. 세상 충만, 육신 충만하고 성령 충만, 복음 충만 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리고 여기게 따른 결과도 완전히 다르죠. 오늘 이 시간 진짜로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참 평안을 누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다락방 초창기 때 계속해서 들었던 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안에 모든 비밀이 다 들어있다!' 그리고 '전도가 다다! 복음이 모든 것이다!' 이런 단어들을 저와 여러분들이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러면 그 말과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이게 같이 맞아져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분명히 우리 입술은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 해결자인데, 지금 여러분의 삶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고, 어렵고, 답답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틀렸습니까? 성경이 지금 거짓말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이고, 그리고 성경에 뭐라고 했느냐 하면,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 모든 지식이 다 들어있다!' 한마디로, '다다!' 그 말이죠. 그런데 그 말하고 지금 여러분의 삶과 일치가 되고 있습니까? 이게 안될 때에 진짜로 많은 갈등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난다는 것이죠.
지금 우리의 삶이 얼마나 복잡합니까? 지금 우리의 현실을 보면,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이 말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가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경제 문제 보십시오. 참 어렵습니다. 좀 남들처럼 제대로 쓰고 싶고, 좀 남들처럼 제대로 입고싶고, 좀 남들처럼 제대로 된 그런 집에서 살고 싶고, 좀더 벌고 싶은데... 그런데 지금 여러분들이 원하고 바라는 만큼, 또 여러분들이 노력을 하고 수고하는 만큼 잘 살고 계십니까? 단돈 만원, 심지어는 단돈 천 원도 아쉬운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 일을 버려놓아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런 속에서 얼마나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안과 염려가 찾아옵니까?
아래께 금요일 날 우리 교역자들과 같이 개업을 하는 식당에 식사대접을 저희들이 받았습니다. 밥을 먹는데, 참 맛있더라 구요. 그런데 제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이 식당이 잘 되어야 할텐데...' 괜히 마음속에 부담이 오더라 구요. 얻어먹기는 얻어먹는데, 또 주의 종들이 왔다가 갔는데... 그러면 그 식당이 잘되면 참 저도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경제 상황이 그렇지 않잖아요. 지금 얼마나 식당도 사업도 직장도 다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어떤 말을 들었느냐 하면, 요즘 짜장면이잘 안 팔린답니다.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우니까, 지금 직장인들이 도시락을 싸 가지고 가지, 그 흔한 짜장면도 제대로 안 팔린 데요. 이런 차원에서 지금 식당을 하나 개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얻어먹는 저희들의 마음이 그렇게 평안하지 못했습니다. 왜냐? 그만큼 경제 상황이 어렵다는 말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직장은 무사하십니까? 파리목숨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언제 쫓겨날지 모릅니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수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직장 상사들의 눈치를 봐야 됩니다. 내 자리를 지켜 나가야 합니다. 언제 밀려날지 모릅니다. 이런 속에서 얼마나 지금 불안하고 답답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는 문제가 없습니까? 지금 남편, 아내, 내 자녀들! 지금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어제 밤에도 저희 집 앞에 놀이터가 하나 있는데, 한 20명 가까이 아이들이 모여 가지고 고함을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막 소동을 했습니다. 터지기 바로 일보직전입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아무도 말을 못합니다. 그렇게 고함을 지르고, 담배를 피우고, 남자 여자 썩여 가지고 엉뚱한 짓을 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어른들이 건드릴 수 없어요. 왜? 그 자녀들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보십시오. 경제 문제 어렵죠. 직장에는 늘 위기가 찾아오죠. 심지어는 내 자녀들이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지! 여기다가 우리 자신들의 영적 문제는 어떻습니까? 골치 아프죠. 지금 여러분의 영적 문제! 여러분들이 극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런 영적 문제들이 심각한 모습으로 지금 여러분의 삶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인데, 경제를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여러분의 직장을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여러분의 가정을 보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내 자신을 보면 더더욱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이 틀렸습니까? 하나님 말씀이 잘못 되어졌습니까? 저는 생각에 하나님 말씀이 잘못 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들이 어디서 생겨났느냐? 우리가 그렇게 '믿음, 믿음!' 강조하고 복음을 지금 부르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뭔가 모르게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얼마나 고민과 염려 속에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틀린 것이 없는데, 분명히 내게는 문제가 있거든요. 그렇다면 무슨 문제가 내게 있느냐? 여기에 대한 실제적인 답을 얻지 못하면 절대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메시지의 제목을 신앙의 참 맛이 뭐냐? 이런 제목을 잡아 봤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신앙에 참 맛을 봐야 되는데, 이 맛을 보지 못하니까 자꾸 갈등이 일어나죠. 그러면서 그리스도와 나는 전혀 상관이 없죠. 그러니까 얼마나 갈등하고, 방황하고, 헤 깔리고, 이게 지금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신앙에 참 맛이 뭐냐? 제가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진짜로 여러분 이번 한 주간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일생동안, 진짜로 한번 이 신앙에 참 맛을 한번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멋지고 훌륭한 인생이 되어질 것입니다. 전혀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첫째가 뭐냐하면, 여러분 말씀에 맛을 보십시오. 다른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인생에 최고의 행복자가 되기 위해서,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대로 된 맛을 봐야 됩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말씀에 맛을 제대로 보느냐? 이게 여러분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시편 119편 103절에 보시면, 시편 기자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편기자가 말을 했습니다. 말씀에 맛이 얼마나 좋았던지, 꿀보다 더 달고 꿀보다 더 맛있다!
여러분 달다는 것에 대명사는 꿀입니다. 사실은 꿀보다 더 단 것이 없죠. 그런데 얼마나 말씀의 맛이 좋았으면, 꿀보다 더 달다! 다른 성경에 보시면, '송이 꿀보다 더 달다!'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한번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 그 음식이 내 입에 맞으면, 입에 달라붙는다고 하죠. 입에 달다고 합니다. 우리 어른들이 그런 말을 많이 합니다. 참 입에 맛있으면, '참 달다!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그런 말을 합니다. 그 만큼 그 음식에 맛이 맛있다는 말이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런 맛이 느껴져야 됩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들을 때에, 또 말씀을 펴서 읽을 때에, 이런 말씀들을 쭉 보면서, 또 들으면서 '야, 그렇구나! 이게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그러면서 그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내게 소중하고, 심지어는, '내가 이 말씀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 마음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이 힘들고 어려운 세상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것은 죽어도 말씀이 들려지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말씀의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른 생각하죠. 피곤해서 눈을 감죠. 전혀 엉뚱한 마음들이 지금 들어와 있죠. 그러니까 말씀을 들어도 깨달을 수도 없고, 이 말씀이 내 귀에 들려 지지도 않고... 여러분 우리가 평생을 믿었는데,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살아오셨는데, 그렇다면 말씀에 맛을 제대로 봐야되지 않습니까! 평생을 믿었는데, 이 말씀에 맛을 제대로 한번 보지 못하고, 그래서 내가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니까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고...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입니다. 여러분 진짜로 이 시간 말씀에 맛을 보십시오. 이 말씀에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성도가 말씀의 맛을 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첫 번째는 에스겔 37장에 현실이 일어납니다. 제가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성구를 읽었습니다. 그 성구에 내용이 에스겔서 37장에 내용입니다. 에스겔이 눈을 떠서 가만히 보니까 저 골짜기에 마른 뼈다귀들, 해골 떼들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곳으로 이 에스겔을 데리고 갔습니다. '인자야, 지금 네가 무엇을 보느냐?' '저 골짜기에 널부러져 있는 해골 떼, 마른 뼈들을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징그럽습니까? 여러분 진짜로 시체 앞에서 해골 떼를 보십시오. 우리가 그냥 화면으로 봤을 때는 덜하죠. 진짜로 해골 떼들, 마른 뼈다귀들을 한번 보십시오. 얼마나 징그럽습니까? 얼마나 허탈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에스겔을 그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다는 겁니다.
그리고서는 '네가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마른 뼈다귀들, 해골 떼를 보고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살겠느냐? '그때에 에스겔의 대답이 뭐냐하면, '주 여호와께서 아십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또 말씀을 합니다. '인자야, 저들에게 말씀을 대언 해라!' 그 말씀을 들은 에스겔이 그 마른 뼈다귀를 향해서 주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때에 뼈와 뼈들이 붙고 해골이 일어나고, 그러면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그 마른 뼈다귀들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들을 때에, 그들이 전체 살아나는 이런 축복들이 함께 일어났다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마음속에 답답하십니까?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습니까?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런 문제 때문에 염려하고 있습니까? 말씀 속에 들어오십시오. 진짜로 여러분들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깊이 들어올 때에, 그때에 여러분의 인격도 살아나고, 여러분의 영도 살아나고, 여러분의 육체도 살아나고, 여러분의 사업도 살아나는 이런 엄청난 기적들이 여러분 속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지 못하면 어떻게 되느냐? 더 나아가서는 말씀에 참 맛을 보지 못하면, 영적인 시체가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여러분! 말씀이 여러분의 귀에 들려지지 않으면 영적인 시체가 되어진다는 겁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마른 모습으로... 그게 지금 우리의 모습 아닙니까!
또 보십시오. 예레미야 애가 4장 4절에 보시면,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젖을 빠는데, 그 젖이 많이 쏟아져 나올 때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엄마의 젖에서 젖이 나오지 않을 때에, 아이들의 입천장이 달라붙는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영의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제대로 듣지 못하면, 여기에 완전히 말라비틀어진다는 겁니다. 육체도 마르면 문제가 오는데, 영적으로 말라졌다! 그러면 거기에 따른 결과들을 여러분들이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그만큼 우리가 말씀에 참 맛을 보지 못하면, 완전히 망하는 자리에 그렇게 들어간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에 보십시오.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장 17절에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두 제자가 엠마오로 향해서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얼굴이 슬픈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스승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 스승을 잃은 이 두 제자는 얼마나 마음속에 낙심이 되었던지! 얼마나 그 마음속에 실망이 되었던지! 슬픈 얼굴을 하고 그렇게 엠마오로 내려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말씀에 은혜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제대로 잡지 못하니까! 슬픈 빛을 띠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게 제자들의 모습이죠.
그런데 이런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두 사람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렇죠. 실망과 실의에 빠져서 완전히 낙심된 상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 두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말씀들을 그 속에 심어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낙심된 마음, 염려, 불안이 가득 찬 그들의 마음속에 메시지! 말씀이 들어갈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그 속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혹시 지금 낙심된 일이 있습니까? 차마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이 들어와야 됩니다. 말씀에 참 맛을 여러분들이 깨달을 때에, 모든 얽히고 복잡한 문제들 있죠. 내 힘으로 안 되는 어떤 문제도 말씀의 역사 속에 들어오면 모든 문제들이 회복이 되어지는 겁니다. 이 말씀의 맛을 여러분들이 보십시오. 여기에 살아나는 축복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입니다. 말씀에 맛과 더불어서 기도의 맛을 보십시오. 지금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너무 잘못된 생각을 합니다. 한마디로 기도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뭔가 오래 앉아 있어야 되고, 시간을 투자해야 되고, 밤을 새워야 되고, 심지어는 굶어야 되고, 주로 그런 개념으로서 우리가 기도를 이해해왔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멀쩡하게 있는 사람이 굶어야 되니까 얼마나 힘듭니까! 밤을 새워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래서 모든 기도는 힘들다! 그게 우리의 잘못된 생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종교적인 개념으로 기도를 생각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보십시오. 성경은 단순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에 보시면,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겠다!' 한마디로 끝냈습니다. '내 이름으로 기도해라 그러면 내가 응답하겠다!' 예레미야서 33장 3절에 보시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냥 한마디로 '기도해라!' 그것도 '내 이름으로! 그러면 내가 응답하겠다! 시행하겠다! 너희 속에 기쁨이 충만하겠다!' 이게 기도의 역사요, 이 기도의 맛을 우리가 체험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기도의 맛을 가장 잘 체험할 수 있는 곳, 그게 우리의 삶에 현장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 들어가 보십시오. 여러분의 사업장에 들어가 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삶에 현장에 들어가 보시면 진짜로 악령들이 역사 합니다. 귀신에 세력들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고, 가정을 이간시키고, 사람의 관계를 끊어놓고, 직장이 어렵도록 자꾸만 이렇게 악령들이 얼마나 역사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악령과 귀신의 세력들을 완전히 이길 수 있는 그 유일한 무기가 무엇입니까? 그게 기도의 맛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모든 흑암과 저주의 세력들이 완전히 물러가게 되는 겁니다.
이 기도의 맛을 우리가 체험을 해야 되는데, 지금 기도의 맛을 모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에, 조금 더 편안하게 살자는 이유 때문에, '이제는 뭐 살만큼 살았는데...' 또 '이제 뭐 고생할 만큼 고생했는데 뭘 자꾸만 고생을 시키느냐?' 그래서 기도의 맛을 점점 놓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현실에서, 또 여러분의 가정 안에, 또 여러분의 개인 속에 기도의 맛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기도가 진정으로 되어지고 있습니까? 순간, 순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그 기도의 역사가 함께 따라옵니까? 그런데 지금 많은 성도들이 이 기도의 맛을 제대로 못 봅니다. 좀 전에도 이야기했던 것처럼 좀 편안해 지자! 이제는 좀 살만큼 사는데 뭐! 여러분 그런 마음 때문에 혹시 기도에 맛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시간 이 기도의 맛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살아납니다.
마지막 세 번째입니다. 전도에 맛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 전도에 맛은 어떻게 보느냐? 여러분들이 지금 밖에 달려나가서 막 고함을 지르고, 전도 지를 뿌린다고 해서 전도에 맛이 들어집니까? 그게 아닙니다. 진짜 여러분들이 전도의 맛을 보기 위해서는 앞에 두 가지 사실이 먼저 전제가 되어져야 됩니다. 첫째는 말씀에 맛을 통해서 은혜가 체험되어지느냐? 두 번째는 기도의 맛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체험되어 지느냐? 이 두 가지가 먼저 전제가 되어질 때에 그때부터 전도가 되어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또 한가지는 여러분 전도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전도하려고 하는 마음만 먹으십시오. 그러면 현장도 열리고, 메시지도 나오고, 사람을 살리는 이런 축복들이 함께 일어납니다. 저는 전도합숙을 하면, 반드시 하는 강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뭐냐하면, '전도하려고 하지말고 마음만 먹으십시오!' 롯을 보십시오. 소돔 고모라 성이 망해 가는 그런 현실을 바라볼 때에 롯의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저 성읍이 망해져 가는데요...' 그런 마음을 품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서 고통을 당하고 저주 속에 시달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까? 너무 인생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때에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 저 사람 살려야 되는데, 저 사람이 복음 받으면 되는데요...' 그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축복을 하신 다는 겁니다. 이 전도의 맛을 우리가 봐야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제가 서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 해결 자인데, 왜 나는 안 되느냐? 한마디로 말하면, 맛을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이 맛만 제대로 보십시오. 모든 신앙 속에서 진짜로 이 세 가지 맛을 제대로 봤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삶이 살아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이 맛을 보지 못하니까, 여기에 모든 것이 힘들고 어려워 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 메시지는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평생 들어온 메시지입니다. '말씀, 기도, 전도!' 예수 믿는 그 순간부터 이 메시지, 이 단어는 계속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여러분 속에 사는 맛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런데 진짜로 사는 맛이 있습니까? 물론 있는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많은 경우에 한 주간동안 찌들려, 찌들려 살다가 억지로 힘든 걸음 해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있느냐? 맛을 제대로 보자는 겁니다.
저는 낚시를 할 줄도 모르고, 또 해보지도 않았습니다. 옛날에 한번 총신 다닐 때에, 그때 시간이 있어 가지고 제 동기하고 저기 상주 쪽에 어떤 못이 하나 있더라 구요. 거기에 낚시를 하러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낚시를 모르니까, 얼마나 지겨운지 몰라요. 한 두시간을 앉아있어 봤는데, 천하에 지겨운 그게 낚시더라 구요. 그런데 제 동기는 2시간, 3시간 있어도 한 마리도 안 잡히는데, 뭐 눈이 뚫어지도록 그 못을 바라보는 거 있죠. 그래서 내가 물어왔습니다. '야, 재미있냐?' 재미 좋다는 겁니다. 한 마리도 안 잡히는데, 그래도 좋다는 겁니다. 그래가지고 그 다음날 새벽까지 앉아 있었습니다. 막 신경질이 나고, 가자고 해도 가지도 않지, 왜냐하면, 안태워주면 내가 못 가니까! 가자고 해도 안가고, 자기는 그대로 앉아있는 겁니다. 그러다가 잉어를 한 마리 건졌습니다. 좋아 가지고, '야, 이 맛을 아느냐고...' 그러더라 구요. 내가 어떻게 압니까? 나는 전혀 모르거든요.
그런데 한번은 제가 이 맛을 한번 봤습니다. 언제 봤느냐 하면, 그때 2년 전인가 우리 신학원 교수님들과 같이 감포 쪽으로 한번 갔었는데, 우리 박지온 목사님이 배를 하나 빌리라고 하더라 구요. 그래서 제가 주선을 해 가지고 배를 한 척 빌렸거든요. 그래서 거기 바로 앞에 바닷가에 나갔는데, 그때는 고등어 때들이 막 몰려다닐 때입니다. 낚시 대를 하나씩 다 주는데, 저도 하나 받았습니다. 그런데 받아 들고나니까 좀 부담이 돼요. 왜냐하면, 하나도 모르니까요. 그런데 우리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박 목사 그냥 던져만 놓으라고...' 하시더라 구요. 미끼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낚시바늘만 한 다섯 개정도 있더라 구요.
던졌는데 뭔가 '후다닥'하는 거 있죠. 손이 진짜 떨리더라 구요. 그때 딱 느낌이, '이 맛이구나!' 저는 지금까지 한번도 낚시에 대해서는 좋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낚시가 좋아서 밤을 새우는 사람을 보면, 진짜 미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딱 던지자 말자 뭔가 '후다닥'하고 손이 떨리는 그 순간에, '아, 이 맛이구나! '이게 제 속에 느껴졌습니다. 맛을 보면 밤새도록 하게 되어있고, 새벽에 나가도록 되어 있고, 거기에 몇 일 동안 앉아있게 되어 있습니다. 왜? 맛이 있으니까!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앉아 계실 때에, 맛을 보고 앉아 계십시오. 그냥 앉아 있으면 천하에 지겹습니다. 오늘 같이 좋은날 저 산으로 벚꽃놀이 가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전혀 맛을 모르고 여기 앉아 계시면 진짜 지겹습니다. 이 1시간이 10년 세월보다 더 지겨울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말씀에 맛, 기도에 맛, 전도에 맛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이 세 가지 맛 진짜로 보십시오. '하나님, 말씀에 맛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기도의 맛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전도에 맛을 보게 하옵소서! 그래서 이번 한 주간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루는 저희 집 아이가 집사람에게 ‘옛날부터 꽃뱀이었느냐?’라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그래서 매일 아빠 돈을 뜯어내는구나!’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꽃뱀이 뭔지 아냐?’고 묻자. ‘남자를 꼬여서 돈을 뜯어서 도망가는 여자가 아니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매일 뜯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뜯기고 살아도 기분이 좋습니다. 좀 더 있다면 주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제 마음에 복음이 있으니 여유가 생기고 더 주고 싶은 것입니다. 제 마음에 복음이 없으면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충만하면 기분이 좋고 싫은 소리를 들어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저는 성령 충만하지 못할 때 얼마나 예민하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견딜 수 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 복음과 성령으로 충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복음과 성령의 참 충만
① 복음과 성령의 참 충만이 있습니다.
② 각박하고 서로 경쟁하는 이 세상에서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면 불신자보다 사는 것이 더 어려워집니다.
③ 기분 나쁘면, 고함을 치고 술을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결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의 양심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④ 복음에 충만해져 있을 때 완전히 뛰어넘을 수 있고, 여러분의 마음에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⑤ 단 6장을 보면서 복음 속에서 참 여유가 있을 때,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⑥ 당시에 다른 신을 섬기면 사자 굴에 던진다는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창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하루 3번 기도했습니다.
⑦ 다니엘을 사자 굴에 넣고도 불안했던 다리오는 새벽이 되자 사자 굴로 가서,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하나님이 너를 건지시기에 능하였냐?’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다니엘은 여유가 있었기에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말하였습니다.
⑧ 사업과 인간관계가 비틀릴 때 마음에 참 여유가 있습니까? 이런 여유가 마음에 없습니다. 더욱 크게 보복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⑨ 얼마나 복음으로 충만합니까? 세상과 복음의 충만은 완전히 다르고 인생의 결말도 다르게 됩니다.
2. 말씀과 괴리감이 있는 우리의 삶
① 다락방 초기에 ‘그리스도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 복음은 모든 것, 전도가 전부’ 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② 그러나 나의 삶이 그렇지 못할 때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③ 경제적으로는 얼마나 궁핍합니까? 가정에서는 서로 문제가 없습니까? 나의 영적인 문제는 없습니까?
④ 성경이 틀리지 않았다면 내 자신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이며 해법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⑤ 신앙의 참 맛을 모르기에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참 맛 세 가지를 보아야 합니다.
3. 말씀의 참 맛을 보아야 합니다.
①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의 꿀보다 더 달다’ 이야기하였습니다.
②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너무 소중하다, 받지 못하면 죽는다, 말씀이 들려지게 하옵소서. 이때 우리의 인생이 살아나게 됩니다.
③ 그러나 말씀을 들을 때도 다른 생각이 든다면 우리 심령이 어떻겠습니까?
④ 겔 37:1-6 의 영적으로 죽은 시체가 됩니다. 에스골 골짜기에 마른 뼈가 되었습니다.
⑤ 그러나 이런 뼈들에게 말씀이 들어갈 때 살아나는 기적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⑥ 애 4:3을 보면 젖먹이가 목이 말라서 혀가 천장에 붙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면 기갈한 상태가 됩니다.
⑦ 17절에 엠마오 도상에서 너희가 길을 가면서 서로 주고받는 대화가 무엇이냐 예수님이 묻자 슬픈 빛을 띄고 머물고 섰습니다.
⑧ 그러나 그들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때 마음이 뜨겁지 아니었냐고 제자들이 이야기 하였습니다. (32절)
4. 기도의 참맛을 보아야 합니다.
① 기도를 우리는 오래앉아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종교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② 요 14:14에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시행하겠다. 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③ 우리가 현장에서 어려운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기도해야겠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면 시행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④ 렘 33:3에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말하셨습니다.
⑤ 우리가 현장에서 맞설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때 흑암의 세력이 완전히 꺽입니다.
3. 전도의 참 맛을 보아야 합니다.
① 앞의 두 가지 사실이 전제가 되어야 전도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② 현장 속에서 살려 내려는 마음만 가져도, 축복하십니다.
③ 소돔과 고모라. 망하는 성읍을 가지고 롯이 기도할 때 축복을 얻었습니다.
④ 생명에 대한 참 애착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세 가지 맛을 제대로 보면 모든 문제를 이겨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의 맛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 속에 깊이 들어가십시오. 둘째는 기도의 맛을 보십시오. 약령의 힘을 이길 수 있는 힘이 기도의 맛입니다. 셋째로 이 두 가지가 되어질 때, 삶 속에서 전도가 제대로 될 것입니다. 서론에서 예수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되어지지 않는 이유는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총신을 다닐 때 탁구의 맛을 제대로 보자 새벽까지 탁구를 치고 눈을 감아도 탁구가 보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3가지 맛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다른 길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인생 속에 3가지 맛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이때 여러분의 인생은 최고의 인생이 됩니다. 온전한 승리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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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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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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