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졸며 잘쌔
2004-05-14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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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5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말세의 현상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재림 주로 오신다는 것은 벌써 언제부터 계속해서 오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직도 안 오시고 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디 오신다!' 이런 어떤 생각을 갖게 된다. 특별히 종말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 나온 잔치에 대한 비유는. 이것은 사실적인 이야기보다도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결혼에 대한 것을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만은, 조금 설명을 하면 유대인들은 거의 1주일 정도 시간을 갖고 결혼 예식을 하고, 또 우리하고는 많은 그런 습관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신랑이 신부집을 찾을 때에, 대게 보면 밤중에 친구들하고 같이 찾아오는데, 그 동안에 이제 신부도 자기 친구들과 함께 그렇게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부러 신랑이 신부를 좀 골탕먹이려고 늦게 온데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배경이 그겁니다. 밤중이 지났는데도 늦게 오니까, 오늘 성경에 말씀한데로 기다리던 신부친구들과 신부가 '다 졸며 잘새' 그랬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배경을 이것으로 설명을 좀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세가 될수록 세상이 점점 불신앙으로 빠지고, 어제 핵심에 조금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은, 정말 복음을 가르치고 말하는 스승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심각하게 불신앙으로 빠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사람을 보겠느냐! 그렇게 말할 정도로...교회 다는 사람들도 그렇고,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고 다 불신앙으로 빠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해석하면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미련한 처녀 다섯, 슬기로운 처녀 다섯!'으로 나누었는데, 미련한 처녀 다섯은 등은 있으나 뭐가 없어요? '기름이 없었다!' 그랬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종교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해석에 동감을 하고 싶어요. 또 종교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서 사실이 없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로 빠지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이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외식으로 빠집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교만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이 없으니까, 있는 척 하려고 하니까! 그건 외식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너무 감사해야 될 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모든 문제 해결 자다!'라는 이 믿음의 사실을 갖고 누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아 놓고도 그것을 감사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보다 더 미련한 것이 없다 싶어요. 그래서 말세가 되면 마지막 종말에는 어떤 문제가 오느냐? '다 졸며 잘새!' 이게 종말을 가지게 되는, 종말에 오는 '사회적인 현상이요, 교회 적인 현상이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그랬는데도 안 오시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했는데도 그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것 같으니까, 무관심해지는 겁니다. 더디 오시니까, 관심이 없어지는 겁니다. 점점 믿음이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일들이나 사건들을 보면, 주님이 오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불신앙으로 점점 빠져들어 갑니다. 사회의 풍습이나 현상이나 모든 사실들이 점점 불신앙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신 불신간에 어떤 면에서 교회까지도 다 뭐라 그래요? '졸며!' 조는 사람 뒤에 뭐가 옵니까? 자는 거죠. '졸며 잘새!' 참, 전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아요. 왜? 사람이 졸기 시작하면 잡니다.
그래서 뭔가 불신앙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약간 뭐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가도 그 다음에는 다 놓아버립니다. 조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절대로 안 졸았다 그러죠. 그리고 메시지 다 들었다 그럽니다. 그런데 사실은 뭔가 모르게 메시지를 들었다고 그러는 데도 메시지를 몰라요. 물어보면 앞도 뒤도 안나와요. 사단의 꼬임이요, 마지막시대에 아주 교묘한 그런 술수를 가지고 꼬여오는데 그게 뭐냐하면, 여러분과 저를, 모든 사람들을 다 어떻게? 졸게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메시지를 들으면서도, 메시지를 듣는 동안에도 '참, 이 말씀이 사실이구나! 정말 예수님께서 오시는 구나!' 메시지를 사실로 안 듣고 희미하게...
그래서 다락방에 오신 여러분들이 특별히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고, 이 말씀을 적고, 말씀으로 기도제목을 삼고, 이것은 그냥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과 은혜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말세에 어떤 문제가 와야 되느냐? 한번 받아합시다. "그러나 노아는" 뭘 입었어요? "은혜를 입었더라!"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말세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노아 때를 몇 번이나 들먹였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많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그런 환경에서 똑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노아가 특별히 뭐 잘나고, 뭐 잘하고, 그런 게 아닙니다.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더라!'는 이 한가지 때문에 노아와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셨는데 분명히 여러분 붙잡아야될 것이 뭐냐하면? '아, 나는 은혜 받은 사람이구나! 내가 복음의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히 깨닫고 이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은혜구나!' 은혜가 아니면 이것은 상상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뭐라고, 재주가 더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눈이 세 개입니까? 똑같아요. 다 뭐라 구요? 졸며 잤습니다. 다른 사람과 별 다른 게 없어요. 다 예배시간 오래되면, '빨리 마치면 좋겠다!' 싶고, 설교시간 길어지게 되면, '얼른 안 마치나!' 똑같아요. 그리고 주일날 되면 어디 자꾸 놀러가고 싶고, 교회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꾸물거리다가 늦어지고, 이런 것이 어떤 면에서 다 똑같은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았느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래도 들어야 되겠다고 왔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느냐! 이겁니다. 이 시간에 그리고 똑같이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말하면 눈이 번쩍 뜨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 말하는 정말 복음을 말하는 장소에 앉았다는 사실이 이게 얼마나 지금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 세상은 '점점 종교화 되간다!'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자꾸 말하려고 그러니까 다른 어떤 교단을, 다른 어떤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 같고, 그렇지만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제가 카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상당히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뭐냐하면, 참 그들이 정직하게, 진실하게 잘합니다. 그리고 간호사들이나, 그 다음에 의사들이나, 또 그 다음에 식당이나 참 잘해요. 봉사하는 사람들이나...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정말 삶에 대해서는 이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나!'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떠냐? 그리로 빠져 버려요.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너무 잘합니다. 그리고 시간, 시간 때만 되면 나는 동산병원에서도 그런 것을 못 봤어요. 때만 되면 전부 마이크로 해 가지고 그들을 카톨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 메시지를 줍니다. 하루에 몇 번씩 그럽니다.
동산병원에 있을 때는 전혀 그런 것을 못 느꼈어요. 동산병원이 기독병원인지, 기독병원이 아닌지... 하기야 기독병원까지 떼어내어 버렸으니까! 없어요. 그런데 카톨릭에는 사람들이 마음이 약할 때, 어려운 때에 뭔가 딱 메시지를 줘요. 메시지를 주면서 솔깃하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어 놓더라 구요. '아, 정말 이 사람들이 정말 잘 하는구나!' 그런데 속이 너무 상하는 것은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싹 빼어버립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기도할 때에 여러분 기도는 누구의 이름으로 합니까? 요한 복음서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몇 번씩 말했거든요. 말할 뿐 아니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루리라!' 말씀을 분명히 했는데도 그들을 그렇게 안 합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없어요.
그리고 늘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든지, 뭘 이렇게 만들어놓던지 보면, 꼭 예수님은 어린아이에요. 그 다음에 보호받는 이런 어떤 상황으로... 한번도 예수님이 그 성인으로 기록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이 예수뿐입니다. 전부 어린아이로 만들어놓습니다. 누가? 마리아의 보호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자기들의 말은 안 그렇다고 그러는데, 사실을 보면 아니거든요.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머니 말을 너무 잘 들으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 직접 말하는 것보다도, 예수님 어머니한테 기도하면 듣는다는 이런 어떤 믿음인 것 같아요.
이것이 매스컴을 통해서, 평화방송 보세요. 너무 엄청나게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아니니까 귀신의 역사나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모르고 있거든요. 그러니 뭐 제사 지내는 것 다 허용하지, 꼭 뭐냐? 귀신 숭배하는 걸 똑같이 하는 겁니다. 이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빠지느냐? 점점 천주교로 빠져듭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보세요. '예수 믿는 것 어렵다 싶고, 천주교 너무 쉽다!' 이렇게 인상이 가서 젊은 사람들이든지, 늙은 사람이든지, 얼마나 빠져 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런 어두운 시대가 왔습니다 만은, 교회도 잠잠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흑암의 세력과 흑암의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게 안 나가고 있습니다. 이 말이 안 나갑니다. 그러니까 뉴에이지를 비롯해서 전 세계가 완전히 흑암으로 덮여가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을 비롯해서 61장, 62장에 이 모든 사실이 사실로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것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오늘 5절 말씀에 '다 졸며 잘새'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되는데, 노아 시대를 말하면서 말세에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은혜를 입었구나!' 왜? 나는 은혜를 입는 동시에 신분이 바꾸어졌습니다. 누구입니까? 자신이 없는가 봐요. 나는 못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상한 짓을 하고 와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부부간에 싸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뭐 다투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 너무 귀중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지옥의 사람이다! 지옥 간다!' 다른 게 아니거든요. 너희아비 마귀! 요한복음 8장 44절입니다. 소속이 바로 벌써 다르다! 이겁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다! 이건 뭡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고 영접하면'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사실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는 사실자체가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이런 시대에 얼마나 이 축복과 은혜가 귀하고 놀라운 역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저는 오늘 아침에 조금 말씀을 묵상하면서, 옥상에 가서 제 나름대로 조금 메시지를 마음으로 준비를 하면서 뭘 느꼈느냐 하면, 여러분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 이게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거든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교회 건축에 마음만 먹었더니 뭐라 그랬습니까? '네 후손만대를 복 주마!'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재정적으로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 같은데, 교회 건축을 하고 난 후에, 나는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건축하면서 교회 건축했던 주동자들이 한번도, 한 사람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없더라 구요.
하나님께서 그때는 어려웠었고 그랬는지는 몰라요. 다 바꾸어 놓았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엄청난 축복과 부를 주시더라 구요. 그런데 여기에 참여한 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 하면 야 정말 감사하구나 정말 하나님 앞에 이 자리에 세운 것 감사하구나! 받아합시다. 억지로 복 받게 되었다. 그게 어느 자리입니까? 교회 건축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헌금도 하나님 앞에 뭔가 힘에 겹도록 하는 시간이 건축하는 자리에 있을 때입니다. 안 그러면 그렇게 못해요.
저는 그 신학교에 다닐 때에, 지금은 동부교회에서 은퇴하신 목사님이십니다 만은, 김덕신 목사님이 그때 우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영감을 받고 그랬습니다 만은, 그분이 '자녀 손들에게 축복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신 것이 부모의 축복에 이어서 부모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들이 받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부모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았느냐? 교회를 건축하는데 부모님들이 좀 무리하게 한 것 같아요. 집을 다 팔아 가지고 교회에 그만 드려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 가정이 너무 어려웠더라 그랬습니다. 가정이 셋방을 전전하면서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 이런 축복을 받고, 이런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것은 부모님들이 하나님 앞에 전 재산을 교회건축에 드렸던 그런 축복과 은혜가 오늘 후손들에게, 이 후손들에게 이 축복을 주신 것으로 믿는다!' 그러더라 구요.
여러분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적인 축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교회 건축한다!' 그럴 때에, 힘에 겹도록 헌금할 수 있는 기회는 이 기회밖에 다른 기회가 없더라 구요. 보통 십일조 드린다! 선교 헌금 드린다! 또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안잖아요. 그러나 교회 건축 때는 그게 아니잖아요. 힘에 겹도록 드리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처남이 오늘 1부 예배에 왔다갔는지... 한번도 제가 힘에 겹도록 뭘 이렇게 드린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없었지 만은, 오천 만원을 작정해 놓고 매번 배 사례비가 나오면 떼어 드리고 떼어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가 다 못 드렸나 싶어서 우리 집사님한테 '얼마나 드렸느냐? 알고 나 드려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내가 또 조절해야 되지 않겠냐?' '얼마나 드렸느냐?' 물으니까! '목사님, 벌써 다 드렸고 180만원이 오바했습니다!' 그러더라 구요. 나는 180만원 오바한지도 모르는 동안에 더 드렸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데 그걸 드리게 될 때에 저희 집사람 이름으로 땅이 있었습니다. 누구의 땅이냐? 우리 그 장모님이 가시면서 지금 저 진주 쪽에 묘를 쓴다고, 밭을 한 200평인가 사 가지고 묘를 쓴 곳이 있어요. 그런데 그 묘를 이제 천안으로 옮기고 팔았는데, 그게 우리 집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까! 팔아 가지고는 장모님이 '한번도 뭐 이렇게 남겨준 것이 없다!' 그래가지고 뭐라 그러느냐 하면, 처남들이 의논해 가지고, '우리 장모님이 남겨줬으니까 아무래도 줘야 되겠다!'
그래서 누구의 이름으로 주느냐? '박세광이한테 주자! 공부하니까 주자!' 박세광이한테 준다고 결정을 하고는 우리 집에 돈을 보냈어요. 우리 집에서는 또 두 사람이 의논하기를 '어차피 박세광이는 내가 돈을 줘야 될 거니까!' 700만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는 이건 몽땅 건축헌금이다!' 아마 이 건축헌금을 몽땅 드렸던 것이 상당히 많이 단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드렸더니 성이 나가지고, '어머니가 남긴 것인데, 외손자한테 하나 남겼는데, 그랬다고...' 그래도 이게 복이다! 내 입장에서 한꺼번에 몽땅 돈을 700만원 드려본 적은 처음입니다. 그게 뭐 가지고 있는 게 있어야 한꺼번에 드리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교회 건축이라는 이 사실이 없으면 나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안 생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 역사를 믿습니까! 그냥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믿음과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느냐?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역사 하셨던 것처럼, 솔로몬에게 역사 하셨던 것처럼, 지금까지 기성 세대 속에서 교회건축과 함께 몸과 마음을 드렸을 때에 역사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과 제게 계속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막 릴레이 기도한다! 이게 엄청난 축복입니다. 기도할 때에 정말 믿음가지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특별히 송현 교회 이건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보다도, 우리 후손들을 통해서 '세계를 살릴 세계 복음화의 교회다!' 하나님이 그냥 두시지 않을 겁니다. 축복과 은혜를 엄청나게 누릴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건축하면서 얼마나 사단이 장난을 했습니까! 그래서 심지어는 막 밖에서 들리는 것까지 '송현 교회! 교회를 짓겠나? 아마 못 지을 것이다! 교회 건축 때문에 싸움도 하고 그랬다나!' 요만한 것을 얼마나 부풀려 가지고요 계속 비난하고... 여러분 분명히 아실 것은 하나님이 하셨지, 여러분과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100억! 말이 100억이지! 이런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왜 이 말씀을 하느냐 하면,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게 복인 줄을 몰라요. 이게 뭔가 안타까운 일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그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서도 우리 자세들이 너무 불신앙입니다. 조금만 믿음으로 바라보세요. 자손만대에 축복의 자리에 지금 여러분이 앉아있습니다. '다 졸며 잘새,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나 송현 교회 교인들은 은혜를 입었더라!' 이 사실이 확인되어야 됩니다. 한 주간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던지, 내가 미련하고 연약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내가 불신앙하고 있는 중에도 성령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안 그러면 완전히 떨어지니까! 그래서 안 믿는 것처럼 생각했다가도, 또 보면 그래도 믿고 있어요. 낙심했다가도 또 보면 주일날 여기와 앉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여러분에게 뭘 주었어요? '은혜를 주었더라!'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다른데서 들어보지 못했던 말, '예수님은 그리스도 시다!' 어떤 사람은 이게 듣기 싫다고 나간 사람도 있어요. 완전히 마귀하고 친구가 된 거죠. 어떻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나와 여러분에게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는 사실이 왜 듣기 싫습니까! 그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여러분 듣기 싫다가도 또 주일날 와서 들으면 또 힘이 나! 그러나 노아는 뭘 입었어요? '은혜를 입었더라!' 이 축복과 역사가 오늘 여러분 한 주간 살면서, 아마 어떤 장소와 사건 속에서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데, 또 보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축복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은혜의 역사를 이제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깨닫고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한 주간도 하나님의 역사가 넘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 졸며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현상을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씨(5절)’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셨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본문의 잔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결혼 예식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일 주일 정도의 기간에 걸쳐서 결혼 예식을 가지고, 신랑은 밤중에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찾아가는데, 일부러 늦게 가기도 합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을 때는 신부의 친구들이 졸며 잠들기도 합니다.
말세에 세상이 점점 더 불신앙에 빠져듭니다. 본문은 미련한 처녀 다섯과 슬기로운 처녀 다섯으로 나누고, 미련한 처녀 다섯은 등은 가지고 있으나 기름은 없다고 했는데, 이것을 종교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이 없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외식으로 빠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교만으로 빠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을 가지고 누리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종말에는 다 졸며 자는 세상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더디 오시니까 관심이 사라지고,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① 예수님은 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② 노아가 특별히 잘 하였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③ 내가 복음을 분명히 깨닫고 예배하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④ 다 졸며 자는 시대에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⑤ 많은 종교인들이 참으로 정직하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없습니다.
⑥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겉모습에 매혹되어 점점 종교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⑦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서, 교회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지 않고 있습니다.
⑧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⑨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⑩ 교회 건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⑪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 나의 많은 것을 바칠 수 있는 축복된 기회입니다.
⑫ 교회 건축을 위해 나의 것을 바치는 것은 나와 후손들에게 축복의 문입니다.
●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깨닫고 감사합시다
내가 불신앙하고 있는 중에도 성령은 함께 하십니다. 믿지 않는 것 같다가도, 낙심해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교회에 와서 앉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의 자리에 있습니다. 다 졸며 자는 시대에,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마 25: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마 25: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마 25: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마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마 25: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마 25:10)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마 25: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마 25:12)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5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말세의 현상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재림 주로 오신다는 것은 벌써 언제부터 계속해서 오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직도 안 오시고 있는데...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더디 오신다!' 이런 어떤 생각을 갖게 된다. 특별히 종말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에 나온 잔치에 대한 비유는. 이것은 사실적인 이야기보다도 비유의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결혼에 대한 것을 우리는 잘 모르기 때문에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만은, 조금 설명을 하면 유대인들은 거의 1주일 정도 시간을 갖고 결혼 예식을 하고, 또 우리하고는 많은 그런 습관의 차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신랑이 신부집을 찾을 때에, 대게 보면 밤중에 친구들하고 같이 찾아오는데, 그 동안에 이제 신부도 자기 친구들과 함께 그렇게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일부러 신랑이 신부를 좀 골탕먹이려고 늦게 온데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배경이 그겁니다. 밤중이 지났는데도 늦게 오니까, 오늘 성경에 말씀한데로 기다리던 신부친구들과 신부가 '다 졸며 잘새' 그랬습니다. 아마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배경을 이것으로 설명을 좀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말세가 될수록 세상이 점점 불신앙으로 빠지고, 어제 핵심에 조금 말씀이 있었습니다 만은, 정말 복음을 가르치고 말하는 스승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심각하게 불신앙으로 빠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고 그랬느냐 하면,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믿는 사람을 보겠느냐! 그렇게 말할 정도로...교회 다는 사람들도 그렇고,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도 그렇고 다 불신앙으로 빠집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해석하면서 많은 성경학자들이, '미련한 처녀 다섯, 슬기로운 처녀 다섯!'으로 나누었는데, 미련한 처녀 다섯은 등은 있으나 뭐가 없어요? '기름이 없었다!' 그랬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종교로 해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해석에 동감을 하고 싶어요. 또 종교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거든요.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서 사실이 없는 것이 종교입니다. 그러면 종교로 빠지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이 어디로 빠지느냐 하면, 외식으로 빠집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교만으로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실이 없으니까, 있는 척 하려고 하니까! 그건 외식이 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너무 감사해야 될 것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모든 문제 해결 자다!'라는 이 믿음의 사실을 갖고 누리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큰 축복을 받아 놓고도 그것을 감사하지 못한다! 그러면 그것보다 더 미련한 것이 없다 싶어요. 그래서 말세가 되면 마지막 종말에는 어떤 문제가 오느냐? '다 졸며 잘새!' 이게 종말을 가지게 되는, 종말에 오는 '사회적인 현상이요, 교회 적인 현상이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오신다!' 그랬는데도 안 오시니까! 그래서 지난주에 말씀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약속했는데도 그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 것 같으니까, 무관심해지는 겁니다. 더디 오시니까, 관심이 없어지는 겁니다. 점점 믿음이 사라지고, 다른 것으로...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세상에 돌아가는 모든 일들이나 사건들을 보면, 주님이 오시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믿음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모든 일이 불신앙으로 점점 빠져들어 갑니다. 사회의 풍습이나 현상이나 모든 사실들이 점점 불신앙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신 불신간에 어떤 면에서 교회까지도 다 뭐라 그래요? '졸며!' 조는 사람 뒤에 뭐가 옵니까? 자는 거죠. '졸며 잘새!' 참, 전 재미있는 표현인 것 같아요. 왜? 사람이 졸기 시작하면 잡니다.
그래서 뭔가 불신앙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약간 뭐 빠져 들어가는 것 같다가도 그 다음에는 다 놓아버립니다. 조는 사람에게 물어보세요. 절대로 안 졸았다 그러죠. 그리고 메시지 다 들었다 그럽니다. 그런데 사실은 뭔가 모르게 메시지를 들었다고 그러는 데도 메시지를 몰라요. 물어보면 앞도 뒤도 안나와요. 사단의 꼬임이요, 마지막시대에 아주 교묘한 그런 술수를 가지고 꼬여오는데 그게 뭐냐하면, 여러분과 저를, 모든 사람들을 다 어떻게? 졸게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메시지를 들으면서도, 메시지를 듣는 동안에도 '참, 이 말씀이 사실이구나! 정말 예수님께서 오시는 구나!' 메시지를 사실로 안 듣고 희미하게...
그래서 다락방에 오신 여러분들이 특별히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고, 이 말씀을 적고, 말씀으로 기도제목을 삼고, 이것은 그냥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축복과 은혜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말세에 어떤 문제가 와야 되느냐? 한번 받아합시다. "그러나 노아는" 뭘 입었어요? "은혜를 입었더라!" 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말세를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노아 때를 몇 번이나 들먹였습니다. 여러분 노아가 많은 사람들처럼 똑같은 그런 환경에서 똑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노아가 특별히 뭐 잘나고, 뭐 잘하고, 그런 게 아닙니다. 노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더라!'는 이 한가지 때문에 노아와 그 가정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오셨는데 분명히 여러분 붙잡아야될 것이 뭐냐하면? '아, 나는 은혜 받은 사람이구나! 내가 복음의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히 깨닫고 이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은혜구나!' 은혜가 아니면 이것은 상상할 수 없어요. 여러분이 뭐라고, 재주가 더 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눈이 세 개입니까? 똑같아요. 다 뭐라 구요? 졸며 잤습니다. 다른 사람과 별 다른 게 없어요. 다 예배시간 오래되면, '빨리 마치면 좋겠다!' 싶고, 설교시간 길어지게 되면, '얼른 안 마치나!' 똑같아요. 그리고 주일날 되면 어디 자꾸 놀러가고 싶고, 교회 올 시간이 되었는데도 꾸물거리다가 늦어지고, 이런 것이 어떤 면에서 다 똑같은 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이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았느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그래도 들어야 되겠다고 왔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느냐! 이겁니다. 이 시간에 그리고 똑같이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 말하면 눈이 번쩍 뜨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 말하는 정말 복음을 말하는 장소에 앉았다는 사실이 이게 얼마나 지금 축복인지 모릅니다. 지금 세상은 '점점 종교화 되간다!'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자꾸 말하려고 그러니까 다른 어떤 교단을, 다른 어떤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 같고, 그렇지만 사실을 말할 뿐입니다.
제가 카톨릭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 상당히 좋은 기회가 되었어요. 뭐냐하면, 참 그들이 정직하게, 진실하게 잘합니다. 그리고 간호사들이나, 그 다음에 의사들이나, 또 그 다음에 식당이나 참 잘해요. 봉사하는 사람들이나... 그래서 나는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정말 삶에 대해서는 이 사람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나!'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떠냐? 그리로 빠져 버려요.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너무 잘합니다. 그리고 시간, 시간 때만 되면 나는 동산병원에서도 그런 것을 못 봤어요. 때만 되면 전부 마이크로 해 가지고 그들을 카톨릭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 메시지를 줍니다. 하루에 몇 번씩 그럽니다.
동산병원에 있을 때는 전혀 그런 것을 못 느꼈어요. 동산병원이 기독병원인지, 기독병원이 아닌지... 하기야 기독병원까지 떼어내어 버렸으니까! 없어요. 그런데 카톨릭에는 사람들이 마음이 약할 때, 어려운 때에 뭔가 딱 메시지를 줘요. 메시지를 주면서 솔깃하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어 놓더라 구요. '아, 정말 이 사람들이 정말 잘 하는구나!' 그런데 속이 너무 상하는 것은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렇게 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싹 빼어버립니다.
심지어는 어떻게 하느냐 하면, 기도할 때에 여러분 기도는 누구의 이름으로 합니까? 요한 복음서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몇 번씩 말했거든요. 말할 뿐 아니고,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내가 너희에게 이루리라!' 말씀을 분명히 했는데도 그들을 그렇게 안 합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러니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없어요.
그리고 늘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든지, 뭘 이렇게 만들어놓던지 보면, 꼭 예수님은 어린아이에요. 그 다음에 보호받는 이런 어떤 상황으로... 한번도 예수님이 그 성인으로 기록한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이 예수뿐입니다. 전부 어린아이로 만들어놓습니다. 누가? 마리아의 보호입니다. 그들이 오히려 자기들의 말은 안 그렇다고 그러는데, 사실을 보면 아니거든요.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어머니 말을 너무 잘 들으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 직접 말하는 것보다도, 예수님 어머니한테 기도하면 듣는다는 이런 어떤 믿음인 것 같아요.
이것이 매스컴을 통해서, 평화방송 보세요. 너무 엄청나게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리고 복음이 아니니까 귀신의 역사나 이런 모든 것들을 다 모르고 있거든요. 그러니 뭐 제사 지내는 것 다 허용하지, 꼭 뭐냐? 귀신 숭배하는 걸 똑같이 하는 겁니다. 이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어디로 빠지느냐? 점점 천주교로 빠져듭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보세요. '예수 믿는 것 어렵다 싶고, 천주교 너무 쉽다!' 이렇게 인상이 가서 젊은 사람들이든지, 늙은 사람이든지, 얼마나 빠져 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이런 어두운 시대가 왔습니다 만은, 교회도 잠잠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흑암의 세력과 흑암의 역사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게 안 나가고 있습니다. 이 말이 안 나갑니다. 그러니까 뉴에이지를 비롯해서 전 세계가 완전히 흑암으로 덮여가고 있습니다. 이사야 60장을 비롯해서 61장, 62장에 이 모든 사실이 사실로 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이것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오늘 5절 말씀에 '다 졸며 잘새' 그랬습니다.
그러나 이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되는데, 노아 시대를 말하면서 말세에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그래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은혜를 입었구나!' 왜? 나는 은혜를 입는 동시에 신분이 바꾸어졌습니다. 누구입니까? 자신이 없는가 봐요. 나는 못나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 아침에 이상한 짓을 하고 와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부부간에 싸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뭐 다투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 너무 귀중한 것 아닙니까! 우리가 '지옥의 사람이다! 지옥 간다!' 다른 게 아니거든요. 너희아비 마귀! 요한복음 8장 44절입니다. 소속이 바로 벌써 다르다! 이겁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다! 이건 뭡니까?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알고 영접하면'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는다는 사실자체가 얼마나 위대한 일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살아간다는 사실자체가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이런 시대에 얼마나 이 축복과 은혜가 귀하고 놀라운 역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더군다나 저는 오늘 아침에 조금 말씀을 묵상하면서, 옥상에 가서 제 나름대로 조금 메시지를 마음으로 준비를 하면서 뭘 느꼈느냐 하면, 여러분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하는 사실이, 이게 얼마나 위대한지 모르거든요.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에 교회 건축에 마음만 먹었더니 뭐라 그랬습니까? '네 후손만대를 복 주마!'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재정적으로 없어지고 사라지는 것 같은데, 교회 건축을 하고 난 후에, 나는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건축하면서 교회 건축했던 주동자들이 한번도, 한 사람도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없더라 구요.
하나님께서 그때는 어려웠었고 그랬는지는 몰라요. 다 바꾸어 놓았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엄청난 축복과 부를 주시더라 구요. 그런데 여기에 참여한 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 하면 야 정말 감사하구나 정말 하나님 앞에 이 자리에 세운 것 감사하구나! 받아합시다. 억지로 복 받게 되었다. 그게 어느 자리입니까? 교회 건축의 자리입니다. 여러분 헌금도 하나님 앞에 뭔가 힘에 겹도록 하는 시간이 건축하는 자리에 있을 때입니다. 안 그러면 그렇게 못해요.
저는 그 신학교에 다닐 때에, 지금은 동부교회에서 은퇴하신 목사님이십니다 만은, 김덕신 목사님이 그때 우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영감을 받고 그랬습니다 만은, 그분이 '자녀 손들에게 축복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축복하신 것이 부모의 축복에 이어서 부모에게 주신 축복을 우리들이 받고 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부모가 어떤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축복을 받았느냐? 교회를 건축하는데 부모님들이 좀 무리하게 한 것 같아요. 집을 다 팔아 가지고 교회에 그만 드려버렸습니다. 그 후로 그 가정이 너무 어려웠더라 그랬습니다. 가정이 셋방을 전전하면서 그렇게 했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오늘 이런 축복을 받고, 이런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것은 부모님들이 하나님 앞에 전 재산을 교회건축에 드렸던 그런 축복과 은혜가 오늘 후손들에게, 이 후손들에게 이 축복을 주신 것으로 믿는다!' 그러더라 구요.
여러분 그냥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사실적인 축복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교회 건축한다!' 그럴 때에, 힘에 겹도록 헌금할 수 있는 기회는 이 기회밖에 다른 기회가 없더라 구요. 보통 십일조 드린다! 선교 헌금 드린다! 또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안잖아요. 그러나 교회 건축 때는 그게 아니잖아요. 힘에 겹도록 드리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처남이 오늘 1부 예배에 왔다갔는지... 한번도 제가 힘에 겹도록 뭘 이렇게 드린다! 그럴 수 있는 것도 없었지 만은, 오천 만원을 작정해 놓고 매번 배 사례비가 나오면 떼어 드리고 떼어드리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가 다 못 드렸나 싶어서 우리 집사님한테 '얼마나 드렸느냐? 알고 나 드려야 되지 않겠느냐! 그래서 내가 또 조절해야 되지 않겠냐?' '얼마나 드렸느냐?' 물으니까! '목사님, 벌써 다 드렸고 180만원이 오바했습니다!' 그러더라 구요. 나는 180만원 오바한지도 모르는 동안에 더 드렸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그런데 그걸 드리게 될 때에 저희 집사람 이름으로 땅이 있었습니다. 누구의 땅이냐? 우리 그 장모님이 가시면서 지금 저 진주 쪽에 묘를 쓴다고, 밭을 한 200평인가 사 가지고 묘를 쓴 곳이 있어요. 그런데 그 묘를 이제 천안으로 옮기고 팔았는데, 그게 우리 집 이름으로 되어 있으니까! 팔아 가지고는 장모님이 '한번도 뭐 이렇게 남겨준 것이 없다!' 그래가지고 뭐라 그러느냐 하면, 처남들이 의논해 가지고, '우리 장모님이 남겨줬으니까 아무래도 줘야 되겠다!'
그래서 누구의 이름으로 주느냐? '박세광이한테 주자! 공부하니까 주자!' 박세광이한테 준다고 결정을 하고는 우리 집에 돈을 보냈어요. 우리 집에서는 또 두 사람이 의논하기를 '어차피 박세광이는 내가 돈을 줘야 될 거니까!' 700만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는 이건 몽땅 건축헌금이다!' 아마 이 건축헌금을 몽땅 드렸던 것이 상당히 많이 단축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드렸더니 성이 나가지고, '어머니가 남긴 것인데, 외손자한테 하나 남겼는데, 그랬다고...' 그래도 이게 복이다! 내 입장에서 한꺼번에 몽땅 돈을 700만원 드려본 적은 처음입니다. 그게 뭐 가지고 있는 게 있어야 한꺼번에 드리죠.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교회 건축이라는 이 사실이 없으면 나는 하나님 앞에 그렇게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안 생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 역사를 믿습니까! 그냥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믿음과 어떤 신앙으로 살아가느냐? 그냥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역사 하셨던 것처럼, 솔로몬에게 역사 하셨던 것처럼, 지금까지 기성 세대 속에서 교회건축과 함께 몸과 마음을 드렸을 때에 역사 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과 제게 계속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막 릴레이 기도한다! 이게 엄청난 축복입니다. 기도할 때에 정말 믿음가지고 기도하세요. 그리고 특별히 송현 교회 이건 어떤 면에서 지금까지보다도, 우리 후손들을 통해서 '세계를 살릴 세계 복음화의 교회다!' 하나님이 그냥 두시지 않을 겁니다. 축복과 은혜를 엄청나게 누릴 겁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건축하면서 얼마나 사단이 장난을 했습니까! 그래서 심지어는 막 밖에서 들리는 것까지 '송현 교회! 교회를 짓겠나? 아마 못 지을 것이다! 교회 건축 때문에 싸움도 하고 그랬다나!' 요만한 것을 얼마나 부풀려 가지고요 계속 비난하고... 여러분 분명히 아실 것은 하나님이 하셨지, 여러분과 제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100억! 말이 100억이지! 이런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오늘 왜 이 말씀을 하느냐 하면, 너무 축복된 자리에 있으면서도 이게 복인 줄을 몰라요. 이게 뭔가 안타까운 일이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 그러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서도 우리 자세들이 너무 불신앙입니다. 조금만 믿음으로 바라보세요. 자손만대에 축복의 자리에 지금 여러분이 앉아있습니다. '다 졸며 잘새,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그러나 송현 교회 교인들은 은혜를 입었더라!' 이 사실이 확인되어야 됩니다. 한 주간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던지, 내가 미련하고 연약한 중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내가 불신앙하고 있는 중에도 성령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안 그러면 완전히 떨어지니까! 그래서 안 믿는 것처럼 생각했다가도, 또 보면 그래도 믿고 있어요. 낙심했다가도 또 보면 주일날 여기와 앉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여러분에게 뭘 주었어요? '은혜를 주었더라!'
그런데 뭔가 이상하게 다른데서 들어보지 못했던 말, '예수님은 그리스도 시다!' 어떤 사람은 이게 듣기 싫다고 나간 사람도 있어요. 완전히 마귀하고 친구가 된 거죠. 어떻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나와 여러분에게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는 사실이 왜 듣기 싫습니까! 그 아무래도 이상하잖아요. 여러분 듣기 싫다가도 또 주일날 와서 들으면 또 힘이 나! 그러나 노아는 뭘 입었어요? '은혜를 입었더라!' 이 축복과 역사가 오늘 여러분 한 주간 살면서, 아마 어떤 장소와 사건 속에서도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데, 또 보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은혜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축복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 은혜의 역사를 이제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깨닫고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한 주간도 하나님의 역사가 넘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다 졸며 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세의 현상을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씨(5절)’라는 한 마디로 표현하셨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더디 오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본문의 잔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유대인의 결혼 예식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일 주일 정도의 기간에 걸쳐서 결혼 예식을 가지고, 신랑은 밤중에 친구들과 함께 신부의 집에 찾아가는데, 일부러 늦게 가기도 합니다. 신랑이 늦도록 오지 않을 때는 신부의 친구들이 졸며 잠들기도 합니다.
말세에 세상이 점점 더 불신앙에 빠져듭니다. 본문은 미련한 처녀 다섯과 슬기로운 처녀 다섯으로 나누고, 미련한 처녀 다섯은 등은 가지고 있으나 기름은 없다고 했는데, 이것을 종교라고 해석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이 없는 것이 종교입니다. 종교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외식으로 빠지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교만으로 빠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예수님의 그리스도시다’라는 사실을 가지고 누리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축복입니다. 종말에는 다 졸며 자는 세상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더디 오시니까 관심이 사라지고, 다른 것에 관심을 돌리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① 예수님은 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노아의 때를 이야기 하셨습니다.
② 노아가 특별히 잘 하였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③ 내가 복음을 분명히 깨닫고 예배하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④ 다 졸며 자는 시대에 복음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⑤ 많은 종교인들이 참으로 정직하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없습니다.
⑥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겉모습에 매혹되어 점점 종교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⑦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서, 교회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지 않고 있습니다.
⑧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⑨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권세를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⑩ 교회 건축할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⑪ 교회 건축은 하나님께 나의 많은 것을 바칠 수 있는 축복된 기회입니다.
⑫ 교회 건축을 위해 나의 것을 바치는 것은 나와 후손들에게 축복의 문입니다.
●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깨닫고 감사합시다
내가 불신앙하고 있는 중에도 성령은 함께 하십니다. 믿지 않는 것 같다가도, 낙심해 있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교회에 와서 앉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은혜의 자리에 있습니다. 다 졸며 자는 시대에, 은혜의 자리에 있음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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