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과 부활
2004-05-07 00:00:00
관리자
조회수 25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
(롬 6: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연합과 부활이라 그랬습니다. 연합은 뭐와 연합하느냐? 본문 말씀대로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고 그리고 연합에 대한 죽음과 연합하는데 대해서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만은, 그 다음에 이어서 죽음과 연합되는 때에 비로소 우리는 부활과 연합합니다. 부활과 연합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이 나오는데, 그것이 4절에 말씀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뭐라 그랬습니까? '새 생명으로 연합합니다.' 새 생명은 누구의 생명입니까? 하나님의 생명! 예수의 생명! 바로 이것이 성령의 충만이죠. 바로 성령의 새로운 생명으로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엄청난 역사! 이 사실은 뭘 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그런데 말세에 고통이 뭐냐하면, 바로 불신앙입니다. 지금 안 믿는 사람들도 거의 물론 뭐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 불신앙 배경을 하나님 믿고 안 믿고 그런 배경 가지고 불신앙이다! 또 신앙이다! 하는 이런 차원은 넘어서 말세가 될수록 안 믿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차원에서... 그래서 말세가 될수록 한 사람도 믿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목욕탕에 들어간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속에서 아버지가 목욕탕에 들어가니까, '야, 시원하다. 들어오너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들이 들어가 보니 뜨겁거든요.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네!' 제가 이 말은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부모자식간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안 믿어요. 실제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이 인도를 믿는다! 그러면서 사실상 안 믿습니다.
더욱 이 땅이 말세가 될수록 자기를 더 믿습니다. 자기를 사랑합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오는 것은, 자기를 더 사랑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것이 바로 말세에... 그래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은, 구원에 열매가 안 나옵니다.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구원의 삶이 안 나옵니다. 이게 말세에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정말 무슨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에 '아, 하나님의 손에 있구나! 하나님의 인도구나!' 이걸 보면 답이 다 나오는데, 이것이 안 믿도록 되는 것이 말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거든요. 그래서 이 땅에는 이상하게도 안 믿으니까, 그리스도가 자꾸 희미해집니다. 자꾸 희미해 져요.
제가 어떤 뭐 이름 부르면 잘 아는 분입니다 만은, 그분이 TV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자기가 어떤 대사한테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공포를 하고... 목사가 유명한 목사인데, 목사는 예수에게 감명을 받아야 되지, 대사한테 감명 받으면 곤란하잖아요. 물론 삶에 과정 속에서 영향은 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만은 자기가 감히 공적으로 나와 가지고 거기에 영향을 조금 받았다고 한들 '내가 이 사람에게 감동을 받고 이 사람에 의해서 내 생애가 달라졌다!' 이것은 목사로서의 고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그걸 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글에는 또 유명한 목사입니다. 하도 유명해서 말하기는 그렇고, 이런 분들이 나는 노자한테 일평생 감동을 받았다! 자기는 노자한테 너무 감동을 받아서 검은 옷 입고 강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은, 여러분 지금 현재 예수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면 이게 지금 심각한 문제로 교회 안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경으로 인해서 종교 다원화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왔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참 좋죠. 여기 있는 분들이 이 말이 '참 좋다!' 그러면 차라리 절에 가는 것이 낮습니다. 저기 시원한데 놀기 삼아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런 날 지금 밖에는 단풍으로 한참 곱게 물들어있는데 컴컴한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답이 나와야 이 사실이 확실하게 되어야 그로 통해서 사실적인 응답이 되는 실제가 없으면, 이 불행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 정말로 예수그리스도! 여기에 답이 나와야 됩니다.
그뿐 아니고 지금 이런 추세로 흘러가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하는 사람은 약간 모자라는 사람으로 이해가 되거든요.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된다! 다락방 식으로 말하면 저 옛날사람, 구세대 사람, 구약시대 사람으로 그렇게 인정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 말은 살짝 숨기고 잘 안하고,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게 지혜로운 사람이라!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말하면, 21세기 이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21세기 이단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지금 현재 이 사건들이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니에요. 실제로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단 된 것이 뭡니까? 너무 예수그리스도 말하니까! 이단이다! 너무 공공연한 그런 어떤 이야기들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저와 함께 확실하게 서야 될 것이요.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답 나왔다는 정도가 아니고 사실적인 응답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 사실적인... 그래서 오늘 중심에서 참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뭐냐하면, 성찬식을 있다가 드리게 되겠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그런 속에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어디에 죽어야 됩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이것이 지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누가?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이제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받게된다는 그런 배경이 먼저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 이 땅에 내 모든 인간적인 것을 내어놓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온전히 주님께 다 맡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제가 지난주에 2부에 섰고 오늘은 1부, 2부 다 서는데 여기 또 서면 멀쩡하거든요. 지난번에 제가 우리 손 집사님 통해 가지고 이 병원에 갔죠. 병원에 갔다가 갑자기 큰일났다는 겁니다. 모든 것 다 중지하고 병원에 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하면, '심장이 이제 멈추기 직전인데 빨리 가셔야 된다고...' 나는 생각이 안 그랬거든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무슨 이야기냐! 모든 것 중단하라고...' 그래서 입원하려고 들어가려니까, 하던 일 모든 것 중단해야 돼요. 그게 허탈하데요. 그 순간에... 여러분 혹시 나는 아무런 그런 생각 없이 막연하게 갔다가 '모든 것 중단해라!' 그럴 때에 허탈합니다. '내일 계획했던 것, 모레 계획했던 것,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것 다 중단해라!' 허탈한 겁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장사되었다. 이건 허탈할 정도가 아닙니다. 이 땅에 모든 육신의 욕심, 육신의 욕망, 육신의 모든 것 다 맡겨 버립니다. 다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잘 안 되어 가지고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장사되었다고 하면서도 장사를 잘 못해요. 여러분 연합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왜? 계속해서 내 것이 살아 있는데, 내 욕망이 살아 있는데, 내 욕심이 살아있는데... 그러니 뭐가 오느냐 하면, 이런 과정 속에서 절망 내지는 그런 것도 오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아, 이제는 내가 다 끝났구나!' 이럴 때에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소망과 욕심이 끝났다는 그 속에서, 어떤 면에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용기와 그런 어떤 희망과 그런 어떤 생각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사람에게 다소 절망감이 필요하다 싶어요. 다소 절망이 올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하나님 이제 나는 죽었습니다!' 죽기는 뭘 죽어 죽을 게 있어야 죽지! '하나님 이제는 다 드렸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게 있어야 뭘 드리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그런 절망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것처럼, 내가 이 땅에 가지고 있는 가장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될 것이 뭐냐하면, 죄입니다. 죄! 여러분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실 때에, 그리고 내가 예수그리스도와 장사 될 때에 그 예수님이 죽으시는 직분이 뭡니까?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그럴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제사장으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해서 죽습니다. 그러면 뭡니까? 죄악에 대한 욕심과 죄악에 대한 소망과 죄악에 대한 모든 그런 어떤 매력들이 주님께 맡겨집니다. 다 주님께 나가 버립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배경들이기 때문에 참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로 통해서 오는 우리 인간에 모든 재난과 재앙과 저주가 한꺼번에 십자가에서 다 매장 됩니다. 이것이 되어야 돼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선지자로, 참 하나님 앞에, 감히 하나님의 자녀로 나갈 수 있는 이 신분 바꾸어서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선지자로, 또 주님 앞에 엄청난 능력과 권세에 왕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왕으로 이런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이런 모든 축복에 배후에 인간이 여기에 방해되고 이 일에 장애 되었던 모든 문제들이 전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습니다. 내가 여기서 죽습니다. 우리라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개인적입니다. 내가 죽습니다. 내 죄악에 소망과 죄악에 결정과 죄악에 욕심들이, 그 다음에 그로 통해서 오는 저주와 재앙과 모든 것들이 다 매장 되어 버립니다. 여러분 여기에 진짜 감동되어야 됩니다. 십자가 바라보면서 '아버지 옛날에 나의 모든 욕심과 욕망이 아닙니다!' 옛날에 욕심과 헛된 욕망 때문에 왔던 저주와 재앙과 재난들이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다 내어놓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비로소 뭐냐?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4절에 말씀한 것이 바로 그런 이야기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생명 창세기 1장에 나왔던 27절이죠.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우리를 하나님이 생명으로 위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살리시는 새 생명이 부활과 함께 일어나게 됩니다. 이 새 생명이 일어난다고 그럴 때에 이때에 비로소 뭐냐? 나는 이사야서 40장 27절부터 나오죠. 마지막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시나니' 새 생명이 들어 올 때에 새 힘이 나옵니다. 새 생명이 들어올 때에 새 용기가 나옵니다. 새 생명이 들어올 때에 새 소망이 나옵니다.
여러분 소망이라는 글자가 위대한 줄 몰랐어요. 제가 너무 심각하게 뭔가 이 죽음과 연관된 문제가 부닥치니까, 갑자기 지나가 버렸을 때는 잘 몰랐어요. 교통사고 때도 잘 몰랐고 갑자기 지나가 버렸으니까! '죽을 뻔했다! 아 참 다행이구나!' 그런 경우인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호흡할 때마다 순간, 순간 죽음이라는 것과 연결되더라 구요. 그때에 뭐가 오느냐 하면, 여러분 공포라는 것이 뭔가 잘 모르죠. 보통 우리가 두렵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 앞에 오는 공포라는 것은, 이것은 인간으로 뭔가 말로 표현하기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나는 영적 문제구나! 우리가 영적 문제, 영적 문제! 그러는데, 이 문제구나! 그런 생각이 나요. 그때는 뭐가 아무도 내게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옆에 우리 집사람이 내가 지난번에 다리 아팠던 그런 것이 있었던지, 다리도 별로 안 아팠거든요. 그런데 자꾸 다리를 주물러 주더라 구요. 속으로 '다리도 안 아픈데 자꾸 주무르고...' 도움이 안 되어서 그런 마음이 들더라 구요. 그 다음에 바로 앞에 희락이도 앉아서 웃고 이러는데도, 아무데도 도움이 안 되어요. 그때는 딱 한가지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새 생명!
새 생명 그러면서 이 새 생명의 역사가 강하게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통해서 죽고, 새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부닥치는 만큼 뭐가 오느냐 하면요. 소망이라는 것이 와요. 소망은 하늘에 있다! 이 문제가 아니고요. 소망이라는 것이 오면서 기쁨이 옵니다. 여러분 소망이 없는데는 절대로 기쁨이 안 나옵니다. 소망이라는 것이 오면서 막 기쁨이 오는 겁니다. 그때부터 뭐냐?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옆에 사람을 봐도 즐겁고 즐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이 축복된 역사가 다른 여러 곳에서 고백할 수 있지만 어디에서? 성찬예식 할 때에 가장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이 뭡니까? 예수그리스도 충만! 내가 죄악이 죽고 욕심이 죽고 정욕이 죽고, 그래서 오는 결과로 재앙과 고통과 모든 저주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죽습니다. 다 내어놓았습니다. 다 맡겼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새 생명! 그리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요. 나와 여러분이 앉아있는 자리가 엄청난 자리입니다. 너무 귀중한 자리예요. 그래서 제가 뭐 겸손하다라는 것보다도 그런 마음이 늘 있었거든요.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잘 '부족한 사람!' 이런 소리를 잘 안 합니다.
그렇지 만은 참 하나님 앞에 부족한데,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안에도 저보다 인격이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구요. 그러면 다만 여러분들이 목사라는 배경 때문에 '목사님!' 그러고 존경하지 사실은 '저런 사람들보다도 못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배경이라서 그러는지 모르지 많은 늘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나는 목사라는 자리에 대해서 확신과 어떤 면에서 자랑스러운 이런 어떤 것들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좀 고백을 했습니다.' 아버지 내 자리가 위대한 자리인데, 부족하지만 너무 위대한 자리인데...' 이걸 못 믿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제가 불신앙이라는 말을 앞에 먼저 전재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걸 회복한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세웠습니다. 한 일과 상관없어요. 그리고서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뭐라고요? '내가 저주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래 놓고는 아브라함이 자기 부인을 두 번이나 팔아먹었거든요. 그리고 돈을 많이 챙겼다 아닙니까! 그리고서는 블레셋 왕에게 또 뭔가 이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다. 돌려 주라!' 그러면서 그것 때문에 왕궁의 모든 여자들의 태의 문을 다 닫아 버렸습니다. 아기를 못 낳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놓고 아브라함을 뭐라고 그랬느냐? 그는 선지자라 기도 받아라!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게 될 때에 이 왕의 닫힌 태들이 다 열렸더라'
나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요. 마음에 참 하나님 약속 하나 때문에, 우리를 세우신 이 자리 때문에 여러분과 저를, '그는 선지자라!' 비록 행동은 이상해도, 우리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도 받아합시다. "나는 선지자다. 나는 하나님이 자녀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엄청난 자리에 앉혀 놓았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내가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내가 땅에서 매면 어디에서 매요? 하늘에서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여러분 지금 이 기도하게 될 때에 응답 받는 역사가 언제? 나는 성찬 예식 때 가장 확실하다고 봅니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될 때에, '주여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의 십자가 앞에 주님과 연합니다!' 그러면 새 생명으로 연합하는 축복과 역사가 같이 연결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에게 주신 이 축복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이제 축복해야 되겠다! 그래서 저는 요즘은 시간 있을 때마다 우리 교회에 세운 장로님들과 집사님들과 여러분들 향해서, 일일이 제가 이름은 다 못 부르지 만은, 그냥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축복하는 겁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축복해 주옵소서.' 그리고 특별히 또 이 교회 건축!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고 나를 목사로 세우셨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하나님이 엄청나게 말세에 위대한 증인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일에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 계속해서 그 후부터 조금 마음이 달라졌어요. 나는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에 나는 축복 자로 섰습니다. 다 죽어 가면서 이러면 이상하게 느껴지겠죠.
그래서 이 새 소망, 새 생명이 오면서 새 소망이 나고, 새 소망이 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냥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뭘 준다 구요? '새 힘을 주시나니' 새 힘을...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지만은'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도다!' 여러분 이 새 소망 속에서, 새 힘을 얻게 될 때에 뭐가 오느냐?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그 배경 속에서 삶에 피곤치 아니하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로만 아니고 정말로 그리스도만 붙잡게 될 때에 삶에 피곤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응답 역사! 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느끼기로는 절망이 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피곤합니다. 내가 절망이 왔을 때에는 사람 대하는 것도 싫어요. 나는 절망이 왔을 때는, 모든 관계가 피곤합니다. 흥미가 없어져 버려요. 그런데 생명이 오고 내게 소망이 생기니까, 모든 것이 흥미로워 져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여러분 자꾸 남에게 간섭 많이 하는 사람은 이게 복음을 통해서 흥미를 가지면 좋은데, 절망을 통해서 간섭하면 곤란하거든요. 그러면 그때부터 여러분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고...
사실은 그래서 오늘도 말씀을 조금 전에 드렸습니다 만은, 이런 어떤 말씀, 마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말씀 전하다가 쓰러진다 상관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안 된다고 하고 있을 때는 절망이 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말씀대로 간다 그러면 감사하고 기쁠 일 아닙니까! 그래서 아마 내 생각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목사는 있다가 없다. 맨 날 다 죽어 가는데, 섰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좀 해 깔릴 것 같아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이 축복된 역사! 오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과 함께 나와 연합되는 이 사실! 이것이 뭐로?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고, 임마누엘 하신 사실을 성령으로 임재 하실 것을 믿음으로, 그 많은 것이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리고 이 믿음의 고백이 오늘 특별히 성찬 예식을 통해서 고백하는 순간, 순간 최대에 금년도에 아마 최고의 기도 응답들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새 생명의 약속이 오늘 여러분과 제게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합니다. 죽음과 연합된 이후에는 부활과 연합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새생명으로 연합하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 그런데, 말세에 불신앙이 확산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구원받은 열매로서의 삶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로 삶의 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에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면서 믿음이 약화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종교 다원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여겨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를 21세기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말세의 고통입니다.
[2] 십자가 죽음에 연합하는 것의 의미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
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 우리는 무엇보다도 '죄'를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악의 소원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다소 절망감이 올 수 있겠지만, 죄악된 마음과 함께 저주까지도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연합하게 되어 새생명을 얻게 됩니다.
[3] 성찬 예식 때 누리는 새생명의 축복
☞ 성찬 예식에서 가장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모든
죄악 된 마음과 저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입니다.
☞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자리에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성찬 예식 때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생명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는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이 가장 크게 임할 것입니다.
☞ 새생명이 들어올 때, 힘과 용기와 소망이 나오게 됩니다. 소망이 생길 때, 기쁨이 오고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소망을 가질 때, 삶에 피곤치 아니하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찢기고 피 흘리며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해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일평생 십자가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믿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롬 6: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롬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롬 6: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롬 6:10)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롬 6: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오늘 본문말씀에서 연합과 부활이라 그랬습니다. 연합은 뭐와 연합하느냐? 본문 말씀대로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하고 그리고 연합에 대한 죽음과 연합하는데 대해서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만은, 그 다음에 이어서 죽음과 연합되는 때에 비로소 우리는 부활과 연합합니다. 부활과 연합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이 나오는데, 그것이 4절에 말씀이죠.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뭐라 그랬습니까? '새 생명으로 연합합니다.' 새 생명은 누구의 생명입니까? 하나님의 생명! 예수의 생명! 바로 이것이 성령의 충만이죠. 바로 성령의 새로운 생명으로 눈을 뜨게 됩니다.
이 엄청난 역사! 이 사실은 뭘 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 그랬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랬습니다. 믿음으로... 그런데 말세에 고통이 뭐냐하면, 바로 불신앙입니다. 지금 안 믿는 사람들도 거의 물론 뭐 하나님을 믿는다 그런 불신앙 배경을 하나님 믿고 안 믿고 그런 배경 가지고 불신앙이다! 또 신앙이다! 하는 이런 차원은 넘어서 말세가 될수록 안 믿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른 모든 차원에서... 그래서 말세가 될수록 한 사람도 믿을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목욕탕에 들어간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속에서 아버지가 목욕탕에 들어가니까, '야, 시원하다. 들어오너라!' 그랬거든요. 그래서 아들이 들어가 보니 뜨겁거든요.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네!' 제가 이 말은 풍자적인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부모자식간도 믿을 수 없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안 믿어요. 실제로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시간표와 하나님이 인도를 믿는다! 그러면서 사실상 안 믿습니다.
더욱 이 땅이 말세가 될수록 자기를 더 믿습니다. 자기를 사랑합니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오는 것은, 자기를 더 사랑합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이것이 바로 말세에... 그래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은, 구원에 열매가 안 나옵니다.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구원의 삶이 안 나옵니다. 이게 말세에 문제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안에서, 정말 무슨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에 '아, 하나님의 손에 있구나! 하나님의 인도구나!' 이걸 보면 답이 다 나오는데, 이것이 안 믿도록 되는 것이 말세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그리스도거든요. 그래서 이 땅에는 이상하게도 안 믿으니까, 그리스도가 자꾸 희미해집니다. 자꾸 희미해 져요.
제가 어떤 뭐 이름 부르면 잘 아는 분입니다 만은, 그분이 TV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자기가 어떤 대사한테 큰 감명을 받았다고 공포를 하고... 목사가 유명한 목사인데, 목사는 예수에게 감명을 받아야 되지, 대사한테 감명 받으면 곤란하잖아요. 물론 삶에 과정 속에서 영향은 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만은 자기가 감히 공적으로 나와 가지고 거기에 영향을 조금 받았다고 한들 '내가 이 사람에게 감동을 받고 이 사람에 의해서 내 생애가 달라졌다!' 이것은 목사로서의 고백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금 그걸 공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글에는 또 유명한 목사입니다. 하도 유명해서 말하기는 그렇고, 이런 분들이 나는 노자한테 일평생 감동을 받았다! 자기는 노자한테 너무 감동을 받아서 검은 옷 입고 강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만은, 여러분 지금 현재 예수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오직 그리스도가 안 되면 이게 지금 심각한 문제로 교회 안에 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배경으로 인해서 종교 다원화라는 말이 벌써부터 나왔습니다. 예수 안 믿어도 구원받는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참 좋죠. 여기 있는 분들이 이 말이 '참 좋다!' 그러면 차라리 절에 가는 것이 낮습니다. 저기 시원한데 놀기 삼아 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런 날 지금 밖에는 단풍으로 한참 곱게 물들어있는데 컴컴한 교회 안에 들어와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답이 나와야 이 사실이 확실하게 되어야 그로 통해서 사실적인 응답이 되는 실제가 없으면, 이 불행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 정말로 예수그리스도! 여기에 답이 나와야 됩니다.
그뿐 아니고 지금 이런 추세로 흘러가니까, 예수 그리스도 말하는 사람은 약간 모자라는 사람으로 이해가 되거든요.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된다! 다락방 식으로 말하면 저 옛날사람, 구세대 사람, 구약시대 사람으로 그렇게 인정을 해 버립니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이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 말은 살짝 숨기고 잘 안하고,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이게 지혜로운 사람이라!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말하면, 21세기 이단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21세기 이단이라고 그러는 겁니다. 지금 현재 이 사건들이 여러분 웃을 일이 아니에요. 실제로 나와 있습니다. 실제로...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단 된 것이 뭡니까? 너무 예수그리스도 말하니까! 이단이다! 너무 공공연한 그런 어떤 이야기들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저와 함께 확실하게 서야 될 것이요.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 답 나왔다는 정도가 아니고 사실적인 응답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 사실적인... 그래서 오늘 중심에서 참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뭐냐하면, 성찬식을 있다가 드리게 되겠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그런 속에서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어디에 죽어야 됩니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서... 이것이 지금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누가? '그리스도가 사는 것이' 이제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받게된다는 그런 배경이 먼저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 이 땅에 내 모든 인간적인 것을 내어놓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온전히 주님께 다 맡기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제가 지난주에 2부에 섰고 오늘은 1부, 2부 다 서는데 여기 또 서면 멀쩡하거든요. 지난번에 제가 우리 손 집사님 통해 가지고 이 병원에 갔죠. 병원에 갔다가 갑자기 큰일났다는 겁니다. 모든 것 다 중지하고 병원에 들어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게 뭐냐하면, '심장이 이제 멈추기 직전인데 빨리 가셔야 된다고...' 나는 생각이 안 그랬거든요.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무슨 이야기냐! 모든 것 중단하라고...' 그래서 입원하려고 들어가려니까, 하던 일 모든 것 중단해야 돼요. 그게 허탈하데요. 그 순간에... 여러분 혹시 나는 아무런 그런 생각 없이 막연하게 갔다가 '모든 것 중단해라!' 그럴 때에 허탈합니다. '내일 계획했던 것, 모레 계획했던 것, 그 다음에 하고 싶은 것 다 중단해라!' 허탈한 겁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장사되었다. 이건 허탈할 정도가 아닙니다. 이 땅에 모든 육신의 욕심, 육신의 욕망, 육신의 모든 것 다 맡겨 버립니다. 다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잘 안 되어 가지고 아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장사되었다고 하면서도 장사를 잘 못해요. 여러분 연합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왜? 계속해서 내 것이 살아 있는데, 내 욕망이 살아 있는데, 내 욕심이 살아있는데... 그러니 뭐가 오느냐 하면, 이런 과정 속에서 절망 내지는 그런 것도 오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아, 이제는 내가 다 끝났구나!' 이럴 때에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소망과 욕심이 끝났다는 그 속에서, 어떤 면에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용기와 그런 어떤 희망과 그런 어떤 생각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사람에게 다소 절망감이 필요하다 싶어요. 다소 절망이 올 수 있다고 그런 생각이듭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하나님 이제 나는 죽었습니다!' 죽기는 뭘 죽어 죽을 게 있어야 죽지! '하나님 이제는 다 드렸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지고 있는 게 있어야 뭘 드리지,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그런 절망이 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말씀한 것처럼, 내가 이 땅에 가지고 있는 가장 하나님 앞에 드려야 될 것이 뭐냐하면, 죄입니다. 죄! 여러분 십자가에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죽으실 때에, 그리고 내가 예수그리스도와 장사 될 때에 그 예수님이 죽으시는 직분이 뭡니까? 메시아입니다. 메시아! 그럴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제사장으로 여러분과 저의 죄를 대신해서 죽습니다. 그러면 뭡니까? 죄악에 대한 욕심과 죄악에 대한 소망과 죄악에 대한 모든 그런 어떤 매력들이 주님께 맡겨집니다. 다 주님께 나가 버립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배경들이기 때문에 참 괴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로 통해서 오는 우리 인간에 모든 재난과 재앙과 저주가 한꺼번에 십자가에서 다 매장 됩니다. 이것이 되어야 돼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선지자로, 참 하나님 앞에, 감히 하나님의 자녀로 나갈 수 있는 이 신분 바꾸어서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선지자로, 또 주님 앞에 엄청난 능력과 권세에 왕으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왕으로 이런 주님 앞에 나갈 수 있는 이런 모든 축복에 배후에 인간이 여기에 방해되고 이 일에 장애 되었던 모든 문제들이 전부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습니다. 내가 여기서 죽습니다. 우리라는 것이 아니고 내가 개인적입니다. 내가 죽습니다. 내 죄악에 소망과 죄악에 결정과 죄악에 욕심들이, 그 다음에 그로 통해서 오는 저주와 재앙과 모든 것들이 다 매장 되어 버립니다. 여러분 여기에 진짜 감동되어야 됩니다. 십자가 바라보면서 '아버지 옛날에 나의 모든 욕심과 욕망이 아닙니다!' 옛날에 욕심과 헛된 욕망 때문에 왔던 저주와 재앙과 재난들이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다 내어놓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 아닙니까!
그러면서 비로소 뭐냐?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데, 바로 4절에 말씀한 것이 바로 그런 이야기죠.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때에 비로소 하나님이 생명 창세기 1장에 나왔던 27절이죠. 하나님의 입 기운으로 우리를 하나님이 생명으로 위로부터 오는 생명으로 살리시는 새 생명이 부활과 함께 일어나게 됩니다. 이 새 생명이 일어난다고 그럴 때에 이때에 비로소 뭐냐? 나는 이사야서 40장 27절부터 나오죠. 마지막 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주시나니' 새 생명이 들어 올 때에 새 힘이 나옵니다. 새 생명이 들어올 때에 새 용기가 나옵니다. 새 생명이 들어올 때에 새 소망이 나옵니다.
여러분 소망이라는 글자가 위대한 줄 몰랐어요. 제가 너무 심각하게 뭔가 이 죽음과 연관된 문제가 부닥치니까, 갑자기 지나가 버렸을 때는 잘 몰랐어요. 교통사고 때도 잘 몰랐고 갑자기 지나가 버렸으니까! '죽을 뻔했다! 아 참 다행이구나!' 그런 경우인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호흡할 때마다 순간, 순간 죽음이라는 것과 연결되더라 구요. 그때에 뭐가 오느냐 하면, 여러분 공포라는 것이 뭔가 잘 모르죠. 보통 우리가 두렵다!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 앞에 오는 공포라는 것은, 이것은 인간으로 뭔가 말로 표현하기 좀 곤란합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나는 영적 문제구나! 우리가 영적 문제, 영적 문제! 그러는데, 이 문제구나! 그런 생각이 나요. 그때는 뭐가 아무도 내게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옆에 우리 집사람이 내가 지난번에 다리 아팠던 그런 것이 있었던지, 다리도 별로 안 아팠거든요. 그런데 자꾸 다리를 주물러 주더라 구요. 속으로 '다리도 안 아픈데 자꾸 주무르고...' 도움이 안 되어서 그런 마음이 들더라 구요. 그 다음에 바로 앞에 희락이도 앉아서 웃고 이러는데도, 아무데도 도움이 안 되어요. 그때는 딱 한가지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새 생명!
새 생명 그러면서 이 새 생명의 역사가 강하게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통해서 죽고, 새로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부닥치는 만큼 뭐가 오느냐 하면요. 소망이라는 것이 와요. 소망은 하늘에 있다! 이 문제가 아니고요. 소망이라는 것이 오면서 기쁨이 옵니다. 여러분 소망이 없는데는 절대로 기쁨이 안 나옵니다. 소망이라는 것이 오면서 막 기쁨이 오는 겁니다. 그때부터 뭐냐?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옆에 사람을 봐도 즐겁고 즐거워지기 시작하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이 축복된 역사가 다른 여러 곳에서 고백할 수 있지만 어디에서? 성찬예식 할 때에 가장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이 뭡니까? 예수그리스도 충만! 내가 죄악이 죽고 욕심이 죽고 정욕이 죽고, 그래서 오는 결과로 재앙과 고통과 모든 저주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다 죽습니다. 다 내어놓았습니다. 다 맡겼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활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새 생명! 그리고 나니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요. 나와 여러분이 앉아있는 자리가 엄청난 자리입니다. 너무 귀중한 자리예요. 그래서 제가 뭐 겸손하다라는 것보다도 그런 마음이 늘 있었거든요. 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에 내가 다른 사람 앞에서 잘 '부족한 사람!' 이런 소리를 잘 안 합니다.
그렇지 만은 참 하나님 앞에 부족한데,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교회 안에도 저보다 인격이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더라 구요. 그러면 다만 여러분들이 목사라는 배경 때문에 '목사님!' 그러고 존경하지 사실은 '저런 사람들보다도 못하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배경이라서 그러는지 모르지 많은 늘 어떤 마음이 드느냐 하면, 나는 목사라는 자리에 대해서 확신과 어떤 면에서 자랑스러운 이런 어떤 것들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좀 고백을 했습니다.' 아버지 내 자리가 위대한 자리인데, 부족하지만 너무 위대한 자리인데...' 이걸 못 믿었다! 이겁니다. 그래서 제가 불신앙이라는 말을 앞에 먼저 전재를 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걸 회복한다! 엄청난 축복입니다.
아브라함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세웠습니다. 한 일과 상관없어요. 그리고서는 뭐라고 그랬습니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뭐라고요? '내가 저주하리라' 그랬습니다. 그래 놓고는 아브라함이 자기 부인을 두 번이나 팔아먹었거든요. 그리고 돈을 많이 챙겼다 아닙니까! 그리고서는 블레셋 왕에게 또 뭔가 이 잘못은 자기가 해 놓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아내다. 돌려 주라!' 그러면서 그것 때문에 왕궁의 모든 여자들의 태의 문을 다 닫아 버렸습니다. 아기를 못 낳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놓고 아브라함을 뭐라고 그랬느냐? 그는 선지자라 기도 받아라!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이 기도하게 될 때에 이 왕의 닫힌 태들이 다 열렸더라'
나는 그 말씀을 읽으면서요. 마음에 참 하나님 약속 하나 때문에, 우리를 세우신 이 자리 때문에 여러분과 저를, '그는 선지자라!' 비록 행동은 이상해도, 우리가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도 받아합시다. "나는 선지자다. 나는 하나님이 자녀다. 나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엄청난 자리에 앉혀 놓았어요. 그러면 그때부터 내가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고 내가 땅에서 매면 어디에서 매요? 하늘에서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 여러분 지금 이 기도하게 될 때에 응답 받는 역사가 언제? 나는 성찬 예식 때 가장 확실하다고 봅니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게 될 때에, '주여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의 십자가 앞에 주님과 연합니다!' 그러면 새 생명으로 연합하는 축복과 역사가 같이 연결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여러분들에게 주신 이 축복의 자리에서 부지런히 이제 축복해야 되겠다! 그래서 저는 요즘은 시간 있을 때마다 우리 교회에 세운 장로님들과 집사님들과 여러분들 향해서, 일일이 제가 이름은 다 못 부르지 만은, 그냥 하나님 앞에 계속해서 축복하는 겁니다. '하나님 저들에게 축복해 주옵소서.' 그리고 특별히 또 이 교회 건축! 분명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 것이고 나를 목사로 세우셨다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하나님이 엄청나게 말세에 위대한 증인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 일에 하나님 축복해 주옵소서.' 계속해서 그 후부터 조금 마음이 달라졌어요. 나는 축복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앞에 나는 축복 자로 섰습니다. 다 죽어 가면서 이러면 이상하게 느껴지겠죠.
그래서 이 새 소망, 새 생명이 오면서 새 소망이 나고, 새 소망이 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냥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뭘 준다 구요? '새 힘을 주시나니' 새 힘을...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지만은'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 그래서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도다!' 여러분 이 새 소망 속에서, 새 힘을 얻게 될 때에 뭐가 오느냐?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그 배경 속에서 삶에 피곤치 아니하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로만 아니고 정말로 그리스도만 붙잡게 될 때에 삶에 피곤치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응답 역사! 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제가 느끼기로는 절망이 왔을 때에는 모든 것이 피곤합니다. 내가 절망이 왔을 때에는 사람 대하는 것도 싫어요. 나는 절망이 왔을 때는, 모든 관계가 피곤합니다. 흥미가 없어져 버려요. 그런데 생명이 오고 내게 소망이 생기니까, 모든 것이 흥미로워 져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 여러분 자꾸 남에게 간섭 많이 하는 사람은 이게 복음을 통해서 흥미를 가지면 좋은데, 절망을 통해서 간섭하면 곤란하거든요. 그러면 그때부터 여러분은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고...
사실은 그래서 오늘도 말씀을 조금 전에 드렸습니다 만은, 이런 어떤 말씀, 마음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말씀 전하다가 쓰러진다 상관없는 겁니다. 그런데 오히려 안 된다고 하고 있을 때는 절망이 오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세우셨다. 말씀대로 간다 그러면 감사하고 기쁠 일 아닙니까! 그래서 아마 내 생각이 이런 생각이 들어요. 목사는 있다가 없다. 맨 날 다 죽어 가는데, 섰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좀 해 깔릴 것 같아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이 축복된 역사! 오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과 함께 나와 연합되는 이 사실! 이것이 뭐로?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영접하고, 임마누엘 하신 사실을 성령으로 임재 하실 것을 믿음으로, 그 많은 것이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리고 이 믿음의 고백이 오늘 특별히 성찬 예식을 통해서 고백하는 순간, 순간 최대에 금년도에 아마 최고의 기도 응답들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새 생명의 약속이 오늘 여러분과 제게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연합합니다. 죽음과 연합된 이후에는 부활과 연합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새생명으로 연합하게 됩니다.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 그런데, 말세에 불신앙이 확산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구원받은 열매로서의 삶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 믿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로 삶의 답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에 '그리스도'가 희미해지면서 믿음이 약화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오직 그리스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배경 위에서 종교 다원화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처럼 여겨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자를 21세기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말세의 고통입니다.
[2] 십자가 죽음에 연합하는 것의 의미
☞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
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삶의 모든 것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이 땅에서 사는 것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 우리는 무엇보다도 '죄'를 주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악의 소원을 주님 앞에 내려놓을 때 다소 절망감이 올 수 있겠지만, 죄악된 마음과 함께 저주까지도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연합하게 되어 새생명을 얻게 됩니다.
[3] 성찬 예식 때 누리는 새생명의 축복
☞ 성찬 예식에서 가장 확실하게 고백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모든
죄악 된 마음과 저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실입니다.
☞ 우리에게 약속을 주시고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자리에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성찬 예식 때 주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생명을 누리는 시간을 가지는 우리에게 이러한 축복이 가장 크게 임할 것입니다.
☞ 새생명이 들어올 때, 힘과 용기와 소망이 나오게 됩니다. 소망이 생길 때, 기쁨이 오고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또한, 소망을 가질 때, 삶에 피곤치 아니하는 새 힘을 얻게 됩니다.
▣ 언약 잡은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십자가에서 찢기고 피 흘리며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해서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일평생 십자가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믿고 감사함으로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
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1
2
3
4
5
6
7
8
9
10
...
9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