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느냐?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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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24:1~2)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이 비전을 심어주시고 구원받게 되는 동시에 나의 인생을 담당하시고 나와 나의 후손들의 인생을 담당하시고 역사를 담당하신 그 손에 우리의 인생을 맡긴 것을 확인하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은혜를 찬양을 드립니다. 주의 종들에게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새힘을 주시옵시고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지고 치료되게 하시고 염려 걱정에 매였던 자들이 참 평안을 누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로 인도받는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육신의 연약한 부분부분도 치료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뜻을 이루는 일에 저들을 사용하심을 감격할 수 있도록 오늘도 은혜를 주옵소서. 군문으로 학창으로 해외로 나가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같은 은혜를 주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매 주의 약속하신대로 참여하는 자들마다 사실적인 증거를 주시고 다윗에게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실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주의 종들에게 이 어려운 시기에 주의 종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 일에 마음과 생각을 둘때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증거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받는 일에 눈이 열리도록 복을 주시되 흑암의 세력이 완전히 꺽이고 승리의 역사로 오늘도 축복해 주시며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오늘도 처음나온자들에게도 함께 은혜를 주시고 복음에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보여지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제목을 무엇을 보느냐라고 잡았다. 마24장 1절 2절이 지난시간에 멸망의 선고라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을 선고했는데 하나님의 계획이 우선 보는 그 일에는 선고같고 멸망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우기 위해서 세계를 세우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시고 그 멸망으로 말미암아 이방에 복음이 넘어오게 하시고 이 복음에 놀라운 계획속에 여러분과 제가 참여하게 되고 부르심의 인도를 받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있게 된 것을 세계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늘도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무엇을 보느냐라고 했다. 여기의 1절 2절 두절만 읽었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받은 그 일이 구체적으로 뭘 통해서 사실화되느냐? 성전이 무너지는 것으로 사실화된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보여주시고 보여지기를 원하면서 나왔지만 예수님께서는 현재보는 성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했는가하면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러면서 성전의 아름다움만 보고 그 성전의 아름다움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했다.
이스라엘백성이 특히 제자들이 성전의 아름다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말할때에 예수님께서는 그것만 보지말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우선 좋다 그것 보지말고 무너지고 멸망되고 더 큰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나가실 하나님의 계획을 이 모든 것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달라진다. 그리고 뭘 보느냐 그럴때에 중요한 것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하다. 쉽게 말해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라는 내용이다. 안경쓰고 볼때에 푸른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세상이 푸르게 보인다. 붉은 안경을 쓰고 보면 붉게 보인다. 뭘로 보는냐라는 것이다. 그런데 뭘 보느냐이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뭐냐하면 뭘 가지고 있으면서 보느냐이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생명을 가진 자로서 보느냐와 아니면 저주와 죽음의 배경을 가지고 보느냐 이게 전혀 달라진다. 달라진다는 역사는 달라진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판이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미 여러분에게 메시지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는 중에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 현재 전도라는 개념에서 흐르고 있는 메시지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언약이라할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는데 구원의 언약을 주었다고 했다. 여러분 언약이라고 할때는 구원을 말한다. 그리고 이 구원을 주셨는데 이 구원의 언약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구원하시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을 하나님이 인도해 나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발은 땅에 닫고 있지만 우리의 배경은 이미 천국을 소유했다. 하늘나라 갈때까지이다. “이미 구원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루어지고 되어지고 있다” 그러면 답이 나왔다. 모든 것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지만 지금은 되어지는 것이다. 끝난자에게만 이것이 해당된다. 전도라는 것은 지금은 안되는데도 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의 시각 말하자면 언약의 시각으로 보게 되는 삶이 될 때에 전혀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여러분과 저에게는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신다라고 생각하고 개념상 하나님 엿장사냐 마음대로 하시냐? 그렇게 반발하고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 구원의 계획을 세우실때에 기분나는대로 잠깐 세운 것이 아니라 엡1:3에보면 창세전부터 세우셨다.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성취하실 때에 하나님이 기분나는대로 기분따라서 기분이다 구원받아라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여러분과 저는 창세전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셨다. 때가되매 여러분이 이땅에 나고 때가 되매 어떤사람은 일찍이 어떤사람은 죽기직전에 어떤사람은 모태로부터 불러서 하나님께서 구원받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런데 이 구원의 역사를 말해서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구원역사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역사이다. 그래서 구원받았다는 이 말속에 구원받았다 모든 문제 해결이다. 예수그리스도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것도 이미 벌써 구원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배경은 천국배경이요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이것은 생명을 가져야 하고 생명이 확인되어야 현장에서 내 생활에 삶에 확인될 수록 이 계획이 보여진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그 안에 계획이 내가 생명의 역사가 확인될 수록 이것이 내 삶에 확인되고 확실하게 믿어지게 되어있다. 이것을 가지고 믿음의 뿌리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지금까지 혼돈했던 것 하나를 지적하고 정말 신앙의 삶을 바로 살아야 하겠다. 늘 주일날 신앙의 삶을 바로 살아야 하겠다. 그런 이야기보다도 오늘 정말 여러분의 인생이 바꾸어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볼 것을 봐야 한다. 그것이 뭔가하면 “구원은 은혜로 받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의의가 없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했다. 구원을 은혜로 받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구원받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은 내 노력으로 되는줄을 안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게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얼마나 노력한다. 그래서 성화를 노력으로 되는 줄을 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을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유명한 신학자들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목회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가운데 예전에 배웠던 조직신학중에 루이스벨콥이 쓴 조직신학책의 내용을 보니 성화부분에 말하기를 성화는 신앙생활인데 신앙의 삶은 하나님과 내 노력의 합작으로 된다라고 했다. 그걸보면서 지금 전도라는 시각에서 복음의 시각에서 볼때에 뭐라고 정의를 내리고 뭐라고 우리가 확인이 되는가하면 사실상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면 신앙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내 노력으로 하려고 애를쓰고 전도도 내 노력으로 하려고 애를쓰다 보니까 실망하고 낙담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못본다. 볼 것을 봐야 한다. 어떤 문제와 사건이 생겨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은혜를 쳐다봐야 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어려운 문제와 사건속에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나오는 것이 자연적으로 말씀속으로 그리스도속으로 기도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적으로 저절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말씀과 기도의 역사가 자연스러운 신앙의 생활이다. 내가 뭘 했다라기 보다도 이걸 가지고 생명이라한다. 생명가진자들이 저절로 되어진다. 그래서 뭘 보는가하면 생명을 가져야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
성경 구약에 민수기 13장을 찾아보자. 민13:25~14:7 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29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0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1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2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4장에 보면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 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민수기 13장에 우리가 도저히 들어가보니까 그 땅은 하나님이 말씀한대로 너무 좋은땅인데 그땅에 우리가 올라갈 수 없다. 왜 우리는 그 땅에 가보니 거민도 크고 성도 크고 우리를 비교해보니 그들에 비해서 메뚜기 같아서 도저히 우리는 할 수 없다. 사실은 바로 봤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할 수 없다. 그들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사실을 말했으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데 뭔가하면 그 땅에 들어가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말해서 언약을 통해서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언약이라는 말은 약속을 통해서 보지 못했다 그말이다. 그것은 뭔가하면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속한 그 약속을 놓쳤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니다. 그들이 당신들이 본 그것이 맞다. 우리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더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게 주시기로 약속했다. 그들의 거민이나 성이나 모든 것들은 우리의 밥이다. 밥이라는 말은 먹고 힘을 내면 된다라는 말이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여러분 지금 언약을 놓치고 보면 보는 것이 전부 절망과 실망으로 끝난다. 그러나 언약을 붙들고 보면 모든 것이 내게 용기주시고 힘주시는 과정이요 그 모든 것들이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이다. 이 말이 참으로 붙잡혀야 한다. 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백성을 선택하고 가나안땅에 갈 것을 하나님이 약속했다. 하나님이 이끄시기로 약속했는데 어떤문제와 사건이 있다. 그걸 그 언약을 보고 언약의 시각으로 볼때에 전부 사건과 일은 힘주는 것이요 능력주시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서 나갈때에 용기를 주는 것이지 그걸 우리가 힘빼고 절망하고 실망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믿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라. 말세를 보면 전부 절망뿐이다. 신문을 펴서 보면 하나도 되는게 없다. 신문펴고 보면 언약없이 보면 순 도적놈들만 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했다. 유난히 도적놈들 모였다면 이것이 말세에 그렇게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씀에 보면 말세에 우리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시고 그리고 주님이 이땅에 오신다라고 했다. 언약의 시각에서 본다는 자체가 엄청난 결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여러분 성화다 신앙생활 성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 예를 들어서 아이를 낳으면 생명 있으면 아이가 큰다.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아이를 먹이면 된다. 아이가 잘 안먹는다고 안먹이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커질 않는다. 심방을 가서 보면 예배를 드리는데 아이들이 그동안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은 밥많이 먹은 것 뿐인데 컸다라는 것이다. 예배를 잘 드리더라. 저절로 되어진다. 생명이 있다면 자란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언약 바로 붙잡으면 쉽게 말해서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주요 그 이름부를때에 모든 문제 해결자다. 내 삶에 사실적으로 이 이름을 누리고 살게 되면 어느날 모르게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달라지게 된다. 모든 것이 거기서 해결되고 이루어져 가게 되어있다.
여러분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 이시간이 정말 행복한가? 의문이 있다. 아멘한사람도 의문이 있고 안한 사람도 의문이 있다. 왜 그런가? 정말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내가 주일날 말씀을 들을때마다 행복하다면 다 끝난 것이다. “이미 다 끝났다. 지금은 되어지고 있다” 행복이 없다면 지금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되어졌다면 보는것들이 다 되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안된다. 행복이 없다면 지금도 고통스럽구나 사건과 일마다 힘은커녕 문제가 올때마다 용기는커녕 실망의 빙거로 오게 된다. 이것이 지금 바로 붙잡혀 져야 한다.
저희집에 손자 희락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얼마있다보면 크고 얼마있다가 보면 크고 한다. 그동안 한일이라고는 엄마에게 꼬여서 밥먹는 것 밖에 없다. 다른 것은 없다. 그 이야기이다. 지금 이거하라 저거하라 아무리 그래봐야 실제로 한가지 해결이 안되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이 생명이 성장하는 성정의 실제적인 과정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계속 복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일날 예배드리로 오는 것이 이문제이다. 메시지듣는 것이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제시할 것은 된다 안된다 하기전에 뭘 보느냐? 그리고 뭘 보기전에 한가지 준비할 것이 생명인데 구원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 예수그리스도이다. 이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날마다 시간마다 이루어지느냐? 다른 것이 없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느니라고 했다. 다른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전도한다라고 할때에 전도합숙을 할때에 먼저 가지고 있는 개념이 뭔가하면 집중해서 하루만 들어도 예수그리스도를 하루만 들어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집중해서 하루만 잘못들어도 달라지게 된다. 통 안먹으니까 매일 안먹으니까 그래서 특별히 환경을 만들어서 하루라도 잘 먹으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그 양식을 바로 먹어봐라. 이것이 합숙의 개념이다. 그래서 모아서 노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지를 전하는 중에 모든 성도들이 일단 메시지를 참여해 보니 하루는 짧다고 해서 2박3일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직장인도 있고 해서 2박3일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하면 기관으로 하든지 특별한 기관을 정해서 이날은 2박3일은 한다. 그런 시간을 따로 가질려고 한다. 2박3일을 하면서 시내에 복잡한데 있는 것 보다도 2박3일을 하는팀들은 데리고 멀리 좀 떠나서 휴대폰은 꺼버리고 완전히 말씀안에 마음을 푹 연결시켜서 내가 보약을 먹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그리스도로 잠길 수 있도록 그러면 여러분의 생각, 마음, 판단이 다 달라지게 된다. 이게 안되니까 보는것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게 된다.
정말 예수그리스도 그 언약안에서 볼때에 지금 여러분들이 당하는 문제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사건이 힘이 되지 사건이 여러분의 힘빠지게 하는 것인가? 말세에 일어날 모든 현상들 지금 사회적으로 국내적으로 세계적으로 기업과 사업과 일들에 불어닥치는 모든 문제들 언약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속에서도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걸 확인하면 확인 할수록 우리에게는 실제적으로 닥치는 어려움은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밥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언약의 이름으로 이 힘으로 보는 일마다 역사를 바꾸게 되어있다.
이런 시각에서 조금만 언약의 시각으로 여러분의 눈을 들어보라. 지금까지 걱정하고 눈을 찌뿌린것만큼 이것만큼 이상한 것이 없다. “이미 다 끝났다. 지금은 되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언약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 되게하는 과정속에 내가 엎드려 누워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되어지게 하시는 약속이 언약의 양식이 말씀이고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 무시기도다 정시기도다 기도하는 것이 저절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다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사건과 일 문제생겼다면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바라보는것과 큰일났네 절단났네 다끝났네 여기서 다끝났다는 말은 절망속에서 터저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언약속에 다 끝났다. 같은 말이라도 전도의 사역속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과 그것 없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이다. 전혀 다른 것이다. 다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안되고 있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여러분이 이해가 되어야 할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노아때에 똑같은 인간으로 똑같이 타락하는 환경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라. 창6:5~7을 보면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면서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때에 쓸어버리고 멸망시키실려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뭐라했는가하면 정복하고 번성하라. 복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는데 그런데 창조했는데도 노아도 이 세대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언약을 이루시는 당사자로 노아를 선택하셨다. 그러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언약에 백성으로 언약의 당사자로 세우셨다. 여기서 다 끝나는 것이고 다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구체적으로 노아를 선택해서 그 언약의 구체적인 역사가 방주요 그 방주의 역사가 오늘 예수그리스도이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때에 현장에서 실제로 우리의 삶과 생활과 사건속에서 실제적으로 힘이 되고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거듭되어야 한다. 이걸가지고 훈련이라고 한다.
어려운 부분이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믿고 있다. 하나님의 작정역사니까 이미 계획되어있기에 믿고는 있는데 우리의 체질이 언약체질이 안되어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언약속에 바라보는 눈이 안되어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라고 말은 하면서 내 생각과 결단과 행동이 체질이 언약이 안되어있다. 문제와 사건을 보면서 서로를 보면서 안되겠구나라고 한다. 왜 그런가? 체질이 안되어있어서 그렇다. 벌써 언약을 주었다. 가지고 있다. 생명의 사실이 없이 사건과 현장을 볼때마다 이렇게 돌아간다. 그래서 이것을 바꾸는 길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훈련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지만 저는 요즘 건강에 보리밥이 좋다해서 보리밥을 먹는다. 보리밥을 먹고 난 후에 먹을때는 맛있게 먹고 먹고 난후에는 어제도 보리밥먹었지 오늘 아침에도 보리밥 먹었지 앞으로 보리밥을 계속먹는구나 먹을때는 몰라도 먹고나면 반복이구나! 또 먹었구나! 메시지를 들을때는 몰라야 한다. 은혜가 되어야 한다. 아멘해야 한다. 들을때는 은혜가 되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난주간에 하던 말씀이 반복되는구나 그런데 반복되면서 들을때마다 새힘을 얻고 들을때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래서 합숙훈련을 만들어서 돈을 들여서 교회예산을 투자해가면서 훈련을 하는 이유가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언약의 체질이 안되어있다. 너무 옛날에 언약과 상관없는 불신앙의 체질이 되어서 이것을 언약의 눈으로 보는 체질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생각이 마음이 언약으로 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예수믿어도 불신자와 똑같이 자기도 모르게 불평이 계속된다. 여러분들이 뭔가 예수믿고 행복하다 감사하다가 안나오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면 이것이 계속되면 영적문제가 다른 것이 아니라 언약잡으면 천국가도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다. 사실은 아닌데 종노릇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가? 생각과 마음이 전혀 다른 것으로 인도받는다. 무엇을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무얼보느냐 이전에 내가 지금 참 생명을 가지고 있고 참 언약을 가지고 있고 내가 지금 예수그리스도 누리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늘의 영광을 성령으로 지금 누리고 있느냐가 지금 사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가는곳마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렵구나 그러나 은혜를 입었더라. 누구대로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시각이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아무리 봐도 세상에 소망이 없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정신병자들이 너무 많다. 길가다가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언제 도끼들고 덤빌까 할 정도이다. 그런 세상에서 언약을 붙잡은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으로 세상을 보면 시각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교회를 이렇게 보는가? 여러분의 삶을 이렇게 보는가? 여러분의 자녀를 이렇게 보는가? 남편,아내를 이렇게 보면 다 끝났다. 지금되어지고 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 오늘도 우리가 언약놓칠때 오는 모든 문제와 역사가 언약속에서 보는 눈이 달라지고 판단과 생각이 달라짐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말씀속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이 일을 위해서 기도속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이일을 위해서 자나깨나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언약과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때마다 응답받는 사실이 날마다 순간마다 사건속에서 체험되게 하여주옵소서.
제목을 '무엇을 보느냐?'로 잡았습니다. 지난시간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고했는데 그 일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선고인 것 같으나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면 결국엔 이방으로 복음이 넘어오게 하시고 이 축복속에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셔서 결국엔 세계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하신 것은 성전이 무너지는 것으로 사실화가 됩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보여지기를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보기에 좋다고 하지말고, 무너지고 멸망되나 결국에는 하나님이 이루실 더 큰 계획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1)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푸른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고 붉은 안경을 끼면 붉게 보입니다.
(2) 그러나 그 이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생명을 가진 자로서 보느냐? 아니면 저주와 죽음의 배경으로 보느냐?
② 여기에 따라 엄청나게 판이한 결과가 나옵니다.
2.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인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언약이란 구원의 언약이며 구원의 언약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2) 구원받았다는 것은 모든 것의 완성이며 또, 이루어지고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①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백성을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② 비록 발은 땅을 닿아도 우리의 배경은 천국입니다.
③ '이미 구원은 완성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루어지고 되어지고 있다!'
④ 구원받는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끝났습니다. 끝났지만 지금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⑤ 전도라는 것도 지금은 안되는데도 되어지고 있기에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⑥ 전도의 시각, 언약의 시각으로 볼 때 모든 것들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3)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속에 창세전부터 이루진 완전한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주권속에 이루어지는 구원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기분에 따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② 모든 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속에서 창세전부터 준비되어졌다가 때가되매 이루어진 것입니다(엡1:3).
③ 구원은 영원한 천국의 배경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것도 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④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된 구원의 역사속에 들어왔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입니다.
(4)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생명을 통해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되어지게 됩니다.
① 이것은 생명을 가지고 확인되어야 이루어 지며, 현장에서 생명을 확인할수록 축복된 계획이 보여집니다.
② 이것을 믿음의 뿌리라고 합니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며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① 구원받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성화)은 내 노력으로 되어지는 줄 압니다.
② 이것은 지금까지 유명한 신앙자들도 신인합작으로 성화가 되어진다 해석을 했습니다(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
③ 전도와 복음의 시각에서 볼때에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면 신앙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집니다.
④ 예전에는 신앙생활도 전도도 내 노력으로 할려고 애를 쓰다보니 실망하고 낙담을 했었습니다.
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문제와 사건이 생겨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 봐야 합니다.
⑥ 이것이 자연적으로 저절로 말씀속으로 그리스도속으로 기도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⑦ 뭘 했다라기 보다는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 이것들을 저절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2) 생명을 가져야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① 민 13장에 도저히 들어가보니, 우리가 그들보다 약하기에 들어갈수 없다는 정탐꾼의 말은 사실입니다.
②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것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땅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③ 여호수와와 갈렙은 그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④ 언약을 놓치면 절망과 실망이지만, 그 언약을 잡으면 축복과 은혜가 되어집니다.
(3) 세상은 절망적이지만, 언약의 시각을 가지면 승리하게 됩니다.
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원한 천국으로 이끄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② 어떤 문제나 사건이 오더라도 그것은 전부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것이고,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③ 지금 우리는 현실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지만,
④ 우리를 통해 세계복음화하시고 주님이 오신다. 언약의 시각을 가지면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4)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그리스도를 누리면 어느순간에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① 생명있는 아이는, 먹이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② 우리도 언약붙잡고 예수를 모든 삶의 주인으로 누리면, 어느순간에 우리신앙이 성장하고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③ 우리안에 생명이 들어오면, 삶이 행복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됩니다.
4.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듣고, 그리스도를 누리면 사건과 현장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1) 생명의 성장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① 생명의 실질적인 성장이 되려면 계속 복음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②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누려야 합니다.
③ 롬 10:17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메시지를 들으면 달라집니다.
(2) 그리스도를 누리면 사건과 문제가 언약속에서 해결됩니다.
①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면, 사회와 문화의 모든 문제는 언약속에서 이루어집니다.
②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을 할수록 우리에게는 용기와 힘이 됩니다.
③ 언약의 약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속에서 역사가 달라집니다.
5. 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우리를 세우셨기에 우리는 훈련에 들어가야 합니다.
(1) 모든 문제는 끝나고 하나님의 역사는 되어지고 있습니다.
① 언약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② 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③ 되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의 양식이 말씀이고, 하시는 일이 기도입니다.
④ 무시기도와 정시기도는 이것이 해결되면 되어집니다.
(2) 타락한 현장에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① 창세기 6장에 타락한 네피림시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가 있었습니다.
②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복을 주시기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축복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당사자로 노아를 부르신 것입니다.
④ 언약의 당사자로 세움 받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다 끝난 것입니다.
⑤ 노아를 선택한 구체적인 역사가 방주이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⑥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때 현장에서 삶과 생활과 사건속에서 힘이 되고 행복해져야 합니다.
(3) 우리의 체질이 언약의 체질이 되기 위해서 훈련에 임해야 합니다.
① 우리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알고는 있는데, 우리의 체질이 언약체질이 안되어있는 것입니다.
② 이것을 바꾸는 것은 반복하는 것입니다.
③ 우리가 밥을 먹을때 그것에 감사하고 당연하게 여기듯이,
④ 우리가 메시지를 들을때, 은혜 받을 때는 감사하고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⑤ 생각과 마음과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4) 생명을 가지고 언약으로 그리스도를 누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① 예수를 믿고도, 불평이 나오면 정말 회개해야 합니다.
② 이것이 거듭되면 영적문제가 나오고 사단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③ 우리가 생명가지고, 언약가지고,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누릴때 '은혜를 입었더라' 시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소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거리마다 정신병자가 넘치고 있습니다. 이때에 현장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우리의 시각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되어지고 있습니다.
(마24:1~2)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슴에 하나님이 비전을 심어주시고 구원받게 되는 동시에 나의 인생을 담당하시고 나와 나의 후손들의 인생을 담당하시고 역사를 담당하신 그 손에 우리의 인생을 맡긴 것을 확인하고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신 은혜를 찬양을 드립니다. 주의 종들에게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새힘을 주시옵시고 연약하고 부족한 부분들이 채워지고 치료되게 하시고 염려 걱정에 매였던 자들이 참 평안을 누리게 하시며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의 손길로 인도받는 축복의 역사를 누릴 수 있도록 복을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육신의 연약한 부분부분도 치료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잡고 뜻을 이루는 일에 저들을 사용하심을 감격할 수 있도록 오늘도 은혜를 주옵소서. 군문으로 학창으로 해외로 나가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같은 은혜를 주옵소서. 특별히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매 주의 약속하신대로 참여하는 자들마다 사실적인 증거를 주시고 다윗에게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공급하실 때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주의 종들에게 이 어려운 시기에 주의 종들의 마음과 생각을 이 일에 마음과 생각을 둘때마다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증거주시기를 원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알게 하시고 결단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받는 일에 눈이 열리도록 복을 주시되 흑암의 세력이 완전히 꺽이고 승리의 역사로 오늘도 축복해 주시며 영광을 받아주시옵소서. 오늘도 처음나온자들에게도 함께 은혜를 주시고 복음에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보여지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제목을 무엇을 보느냐라고 잡았다. 마24장 1절 2절이 지난시간에 멸망의 선고라해서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을 선고했는데 하나님의 계획이 우선 보는 그 일에는 선고같고 멸망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세우기 위해서 세계를 세우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시고 그 멸망으로 말미암아 이방에 복음이 넘어오게 하시고 이 복음에 놀라운 계획속에 여러분과 제가 참여하게 되고 부르심의 인도를 받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있게 된 것을 세계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오늘도 본문의 내용을 통해서 무엇을 보느냐라고 했다. 여기의 1절 2절 두절만 읽었지만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받은 그 일이 구체적으로 뭘 통해서 사실화되느냐? 성전이 무너지는 것으로 사실화된다. 그래서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보여주시고 보여지기를 원하면서 나왔지만 예수님께서는 현재보는 성전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뭐라고 했는가하면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러면서 성전의 아름다움만 보고 그 성전의 아름다움속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하는가하면 돌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했다.
이스라엘백성이 특히 제자들이 성전의 아름다움 눈앞에 보이는 것만 보고 말할때에 예수님께서는 그것만 보지말고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우선 좋다 그것 보지말고 무너지고 멸망되고 더 큰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나가실 하나님의 계획을 이 모든 것을 보라고 말씀하셨다.
사실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역사가 달라진다. 그리고 뭘 보느냐 그럴때에 중요한 것이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이것이 더 중요하다. 쉽게 말해서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라는 내용이다. 안경쓰고 볼때에 푸른안경을 쓰고 보면 모든 세상이 푸르게 보인다. 붉은 안경을 쓰고 보면 붉게 보인다. 뭘로 보는냐라는 것이다. 그런데 뭘 보느냐이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뭐냐하면 뭘 가지고 있으면서 보느냐이다. 쉽게 말해서 여러분들이 생명을 가진 자로서 보느냐와 아니면 저주와 죽음의 배경을 가지고 보느냐 이게 전혀 달라진다. 달라진다는 역사는 달라진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엄청난 판이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미 여러분에게 메시지의 흐름을 설명하고 있는 중에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 현재 전도라는 개념에서 흐르고 있는 메시지의 중심이다. 하나님의 언약이라할때에 우리에게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는데 구원의 언약을 주었다고 했다. 여러분 언약이라고 할때는 구원을 말한다. 그리고 이 구원을 주셨는데 이 구원의 언약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우리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구원하시는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백성들을 하나님이 인도해 나가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발은 땅에 닫고 있지만 우리의 배경은 이미 천국을 소유했다. 하늘나라 갈때까지이다. “이미 구원은 완성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루어지고 되어지고 있다” 그러면 답이 나왔다. 모든 것 끝났다. 모든 것이 끝났지만 지금은 되어지는 것이다. 끝난자에게만 이것이 해당된다. 전도라는 것은 지금은 안되는데도 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전도의 시각 말하자면 언약의 시각으로 보게 되는 삶이 될 때에 전혀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여러분과 저에게는 하나님이 인도하신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음대로 하신다라고 생각하고 개념상 하나님 엿장사냐 마음대로 하시냐? 그렇게 반발하고 저항의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 구원의 계획을 세우실때에 기분나는대로 잠깐 세운 것이 아니라 엡1:3에보면 창세전부터 세우셨다.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성취하실 때에 하나님이 기분나는대로 기분따라서 기분이다 구원받아라 이렇게 하시는 분이 아니다. 여러분과 저는 창세전부터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셨다. 때가되매 여러분이 이땅에 나고 때가 되매 어떤사람은 일찍이 어떤사람은 죽기직전에 어떤사람은 모태로부터 불러서 하나님께서 구원받도록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그런데 이 구원의 역사를 말해서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 구원역사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역사이다. 그래서 구원받았다는 이 말속에 구원받았다 모든 문제 해결이다. 예수그리스도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것도 이미 벌써 구원을 누리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배경은 천국배경이요 천국시민권을 가진 자이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이것은 생명을 가져야 하고 생명이 확인되어야 현장에서 내 생활에 삶에 확인될 수록 이 계획이 보여진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그 안에 계획이 내가 생명의 역사가 확인될 수록 이것이 내 삶에 확인되고 확실하게 믿어지게 되어있다. 이것을 가지고 믿음의 뿌리라고 한다.
그래서 여기에서 지금까지 혼돈했던 것 하나를 지적하고 정말 신앙의 삶을 바로 살아야 하겠다. 늘 주일날 신앙의 삶을 바로 살아야 하겠다. 그런 이야기보다도 오늘 정말 여러분의 인생이 바꾸어지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볼 것을 봐야 한다. 그것이 뭔가하면 “구원은 은혜로 받았다” 이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의의가 없다.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라고 했다. 구원을 은혜로 받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구원받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은 내 노력으로 되는줄을 안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게 신앙인으로 살아가려고 얼마나 노력한다. 그래서 성화를 노력으로 되는 줄을 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을 우리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유명한 신학자들도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목회대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가운데 예전에 배웠던 조직신학중에 루이스벨콥이 쓴 조직신학책의 내용을 보니 성화부분에 말하기를 성화는 신앙생활인데 신앙의 삶은 하나님과 내 노력의 합작으로 된다라고 했다. 그걸보면서 지금 전도라는 시각에서 복음의 시각에서 볼때에 뭐라고 정의를 내리고 뭐라고 우리가 확인이 되는가하면 사실상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면 신앙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전에는 내 노력으로 하려고 애를쓰고 전도도 내 노력으로 하려고 애를쓰다 보니까 실망하고 낙담한다. 하나님의 계획을 못본다. 볼 것을 봐야 한다. 어떤 문제와 사건이 생겨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은혜를 쳐다봐야 한다. 쉽게 말해서 어떤 어려운 문제와 사건속에서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면 여러분에게 나오는 것이 자연적으로 말씀속으로 그리스도속으로 기도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적으로 저절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말씀과 기도의 역사가 자연스러운 신앙의 생활이다. 내가 뭘 했다라기 보다도 이걸 가지고 생명이라한다. 생명가진자들이 저절로 되어진다. 그래서 뭘 보는가하면 생명을 가져야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
성경 구약에 민수기 13장을 찾아보자. 민13:25~14:7 25 사십 일 동안에 땅을 탐지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26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회보하고 그 땅 실과를 보이고 27 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29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30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1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2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4장에 보면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 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민수기 13장에 우리가 도저히 들어가보니까 그 땅은 하나님이 말씀한대로 너무 좋은땅인데 그땅에 우리가 올라갈 수 없다. 왜 우리는 그 땅에 가보니 거민도 크고 성도 크고 우리를 비교해보니 그들에 비해서 메뚜기 같아서 도저히 우리는 할 수 없다. 사실은 바로 봤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는 할 수 없다. 그들이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사실을 말했으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하는데 뭔가하면 그 땅에 들어가라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시말해서 언약을 통해서 보지 못했다는 말이다. 언약이라는 말은 약속을 통해서 보지 못했다 그말이다. 그것은 뭔가하면 이스라엘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약속한 그 약속을 놓쳤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아니다. 그들이 당신들이 본 그것이 맞다. 우리가 보기에도 메뚜기 같더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게 주시기로 약속했다. 그들의 거민이나 성이나 모든 것들은 우리의 밥이다. 밥이라는 말은 먹고 힘을 내면 된다라는 말이다. 그 말은 무슨 말인가? 여러분 지금 언약을 놓치고 보면 보는 것이 전부 절망과 실망으로 끝난다. 그러나 언약을 붙들고 보면 모든 것이 내게 용기주시고 힘주시는 과정이요 그 모든 것들이 축복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이다. 이 말이 참으로 붙잡혀야 한다. 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나를 이끌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스라엘백성을 선택하고 가나안땅에 갈 것을 하나님이 약속했다. 하나님이 이끄시기로 약속했는데 어떤문제와 사건이 있다. 그걸 그 언약을 보고 언약의 시각으로 볼때에 전부 사건과 일은 힘주는 것이요 능력주시는 것이고 그 과정을 통해서 나갈때에 용기를 주는 것이지 그걸 우리가 힘빼고 절망하고 실망하게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믿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을 보라. 말세를 보면 전부 절망뿐이다. 신문을 펴서 보면 하나도 되는게 없다. 신문펴고 보면 언약없이 보면 순 도적놈들만 모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말씀했다. 유난히 도적놈들 모였다면 이것이 말세에 그렇게 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말씀에 보면 말세에 우리를 통해서 세계를 복음화하시고 그리고 주님이 이땅에 오신다라고 했다. 언약의 시각에서 본다는 자체가 엄청난 결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여러분 성화다 신앙생활 성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다. 예를 들어서 아이를 낳으면 생명 있으면 아이가 큰다.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아이를 먹이면 된다. 아이가 잘 안먹는다고 안먹이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다. 커질 않는다. 심방을 가서 보면 예배를 드리는데 아이들이 그동안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은 밥많이 먹은 것 뿐인데 컸다라는 것이다. 예배를 잘 드리더라. 저절로 되어진다. 생명이 있다면 자란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언약 바로 붙잡으면 쉽게 말해서 예수그리스도 생명의 주요 그 이름부를때에 모든 문제 해결자다. 내 삶에 사실적으로 이 이름을 누리고 살게 되면 어느날 모르게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눈이 달라지게 된다. 모든 것이 거기서 해결되고 이루어져 가게 되어있다.
여러분 지금 예배를 드리면서 이시간이 정말 행복한가? 의문이 있다. 아멘한사람도 의문이 있고 안한 사람도 의문이 있다. 왜 그런가? 정말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내가 주일날 말씀을 들을때마다 행복하다면 다 끝난 것이다. “이미 다 끝났다. 지금은 되어지고 있다” 행복이 없다면 지금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되어졌다면 보는것들이 다 되어지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안된다. 행복이 없다면 지금도 고통스럽구나 사건과 일마다 힘은커녕 문제가 올때마다 용기는커녕 실망의 빙거로 오게 된다. 이것이 지금 바로 붙잡혀 져야 한다.
저희집에 손자 희락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얼마있다보면 크고 얼마있다가 보면 크고 한다. 그동안 한일이라고는 엄마에게 꼬여서 밥먹는 것 밖에 없다. 다른 것은 없다. 그 이야기이다. 지금 이거하라 저거하라 아무리 그래봐야 실제로 한가지 해결이 안되면 안된다. 그것이 바로 이 생명이 성장하는 성정의 실제적인 과정속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계속 복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일날 예배드리로 오는 것이 이문제이다. 메시지듣는 것이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제시할 것은 된다 안된다 하기전에 뭘 보느냐? 그리고 뭘 보기전에 한가지 준비할 것이 생명인데 구원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 예수그리스도이다. 이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날마다 시간마다 이루어지느냐? 다른 것이 없다. 롬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느니라고 했다. 다른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도 전도한다라고 할때에 전도합숙을 할때에 먼저 가지고 있는 개념이 뭔가하면 집중해서 하루만 들어도 예수그리스도를 하루만 들어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서 집중해서 하루만 잘못들어도 달라지게 된다. 통 안먹으니까 매일 안먹으니까 그래서 특별히 환경을 만들어서 하루라도 잘 먹으라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그 양식을 바로 먹어봐라. 이것이 합숙의 개념이다. 그래서 모아서 노는 것이 아니라 집중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그래서 메시지를 전하는 중에 모든 성도들이 일단 메시지를 참여해 보니 하루는 짧다고 해서 2박3일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직장인도 있고 해서 2박3일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는가하면 기관으로 하든지 특별한 기관을 정해서 이날은 2박3일은 한다. 그런 시간을 따로 가질려고 한다. 2박3일을 하면서 시내에 복잡한데 있는 것 보다도 2박3일을 하는팀들은 데리고 멀리 좀 떠나서 휴대폰은 꺼버리고 완전히 말씀안에 마음을 푹 연결시켜서 내가 보약을 먹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그리스도로 잠길 수 있도록 그러면 여러분의 생각, 마음, 판단이 다 달라지게 된다. 이게 안되니까 보는것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지고 말도 달라지게 된다.
정말 예수그리스도 그 언약안에서 볼때에 지금 여러분들이 당하는 문제가 문제될 것이 없는 것이다. 사건이 힘이 되지 사건이 여러분의 힘빠지게 하는 것인가? 말세에 일어날 모든 현상들 지금 사회적으로 국내적으로 세계적으로 기업과 사업과 일들에 불어닥치는 모든 문제들 언약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속에서도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걸 확인하면 확인 할수록 우리에게는 실제적으로 닥치는 어려움은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는 밥이 되고 힘이 되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언약의 이름으로 이 힘으로 보는 일마다 역사를 바꾸게 되어있다.
이런 시각에서 조금만 언약의 시각으로 여러분의 눈을 들어보라. 지금까지 걱정하고 눈을 찌뿌린것만큼 이것만큼 이상한 것이 없다. “이미 다 끝났다. 지금은 되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언약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그 되게하는 과정속에 내가 엎드려 누워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되어지게 하시는 약속이 언약의 양식이 말씀이고 그렇게 되게 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다. 여러분 무시기도다 정시기도다 기도하는 것이 저절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다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사건과 일 문제생겼다면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바라보는것과 큰일났네 절단났네 다끝났네 여기서 다끝났다는 말은 절망속에서 터저나오는 말이다. 우리가 언약속에 다 끝났다. 같은 말이라도 전도의 사역속에 있는 사람이 말하는 것과 그것 없이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사실이다. 전혀 다른 것이다. 다 끝났다. 그러나 지금은 안되고 있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여러분이 이해가 되어야 할 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 노아때에 똑같은 인간으로 똑같이 타락하는 환경속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보라. 창6:5~7을 보면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면서 8절에 보면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때에 쓸어버리고 멸망시키실려고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뭐라했는가하면 정복하고 번성하라. 복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는데 그런데 창조했는데도 노아도 이 세대에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언약을 이루시는 당사자로 노아를 선택하셨다. 그러나 은혜를 입었더라. 하나님의 언약에 백성으로 언약의 당사자로 세우셨다. 여기서 다 끝나는 것이고 다 해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이 구체적으로 노아를 선택해서 그 언약의 구체적인 역사가 방주요 그 방주의 역사가 오늘 예수그리스도이다. 여러분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때에 현장에서 실제로 우리의 삶과 생활과 사건속에서 실제적으로 힘이 되고 행복해져야 하는 것이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거듭되어야 한다. 이걸가지고 훈련이라고 한다.
어려운 부분이 예수는 그리스도다라고 믿고 있다. 하나님의 작정역사니까 이미 계획되어있기에 믿고는 있는데 우리의 체질이 언약체질이 안되어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언약속에 바라보는 눈이 안되어있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라고 말은 하면서 내 생각과 결단과 행동이 체질이 언약이 안되어있다. 문제와 사건을 보면서 서로를 보면서 안되겠구나라고 한다. 왜 그런가? 체질이 안되어있어서 그렇다. 벌써 언약을 주었다. 가지고 있다. 생명의 사실이 없이 사건과 현장을 볼때마다 이렇게 돌아간다. 그래서 이것을 바꾸는 길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훈련에 대해서 계속 말씀하지만 저는 요즘 건강에 보리밥이 좋다해서 보리밥을 먹는다. 보리밥을 먹고 난 후에 먹을때는 맛있게 먹고 먹고 난후에는 어제도 보리밥먹었지 오늘 아침에도 보리밥 먹었지 앞으로 보리밥을 계속먹는구나 먹을때는 몰라도 먹고나면 반복이구나! 또 먹었구나! 메시지를 들을때는 몰라야 한다. 은혜가 되어야 한다. 아멘해야 한다. 들을때는 은혜가 되는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난주간에 하던 말씀이 반복되는구나 그런데 반복되면서 들을때마다 새힘을 얻고 들을때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진다. 그래서 합숙훈련을 만들어서 돈을 들여서 교회예산을 투자해가면서 훈련을 하는 이유가 우리가 우리도 모르게 언약의 체질이 안되어있다. 너무 옛날에 언약과 상관없는 불신앙의 체질이 되어서 이것을 언약의 눈으로 보는 체질을 만드는 것이다.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생각이 마음이 언약으로 볼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면 예수믿어도 불신자와 똑같이 자기도 모르게 불평이 계속된다. 여러분들이 뭔가 예수믿고 행복하다 감사하다가 안나오고 불평과 원망이 나오면 이것이 계속되면 영적문제가 다른 것이 아니라 언약잡으면 천국가도 사단의 종노릇하고 있다. 사실은 아닌데 종노릇하는 것이 얼마나 억울한가? 생각과 마음이 전혀 다른 것으로 인도받는다. 무엇을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무얼보느냐 이전에 내가 지금 참 생명을 가지고 있고 참 언약을 가지고 있고 내가 지금 예수그리스도 누리고 있는가? 내가 지금 하늘의 영광을 성령으로 지금 누리고 있느냐가 지금 사실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가는곳마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렵구나 그러나 은혜를 입었더라. 누구대로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시각이 달라지고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아무리 봐도 세상에 소망이 없다.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정신병자들이 너무 많다. 길가다가봐도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한두명이 아니다. 언제 도끼들고 덤빌까 할 정도이다. 그런 세상에서 언약을 붙잡은 자에게 약속하신 것이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겠다라고 약속했다. 이 약속으로 세상을 보면 시각이 달라지게 되어있다. 교회를 이렇게 보는가? 여러분의 삶을 이렇게 보는가? 여러분의 자녀를 이렇게 보는가? 남편,아내를 이렇게 보면 다 끝났다. 지금되어지고 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아버지 오늘도 우리가 언약놓칠때 오는 모든 문제와 역사가 언약속에서 보는 눈이 달라지고 판단과 생각이 달라짐을 믿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말씀속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이 일을 위해서 기도속으로 들어가게 하시고 이일을 위해서 자나깨나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언약과 약속을 붙잡고 기도할때마다 응답받는 사실이 날마다 순간마다 사건속에서 체험되게 하여주옵소서.
제목을 '무엇을 보느냐?'로 잡았습니다. 지난시간에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고했는데 그 일이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선고인 것 같으나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면 결국엔 이방으로 복음이 넘어오게 하시고 이 축복속에 우리를 부르시고 인도하셔서 결국엔 세계를 살리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고하신 것은 성전이 무너지는 것으로 사실화가 됩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아름다움을 감탄하면서 보여지기를 원했지만, 예수께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리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보기에 좋다고 하지말고, 무너지고 멸망되나 결국에는 하나님이 이루실 더 큰 계획을 바라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무엇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1)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푸른 안경을 끼고 보면 모든 것이 푸르게 보이고 붉은 안경을 끼면 붉게 보입니다.
(2) 그러나 그 이전에 '무엇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① 생명을 가진 자로서 보느냐? 아니면 저주와 죽음의 배경으로 보느냐?
② 여기에 따라 엄청나게 판이한 결과가 나옵니다.
2.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인 구원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속에 들어가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언약이란 구원의 언약이며 구원의 언약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2) 구원받았다는 것은 모든 것의 완성이며 또, 이루어지고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①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백성을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② 비록 발은 땅을 닿아도 우리의 배경은 천국입니다.
③ '이미 구원은 완성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루어지고 되어지고 있다!'
④ 구원받는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끝났습니다. 끝났지만 지금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⑤ 전도라는 것도 지금은 안되는데도 되어지고 있기에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⑥ 전도의 시각, 언약의 시각으로 볼 때 모든 것들이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3)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속에 창세전부터 이루진 완전한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주권속에 이루어지는 구원은 하나님이 마음대로 기분에 따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② 모든 것이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속에서 창세전부터 준비되어졌다가 때가되매 이루어진 것입니다(엡1:3).
③ 구원은 영원한 천국의 배경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사는것도 이 구원의 축복을 누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④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축복된 구원의 역사속에 들어왔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말입니다.
(4) 이 놀라운 구원의 역사는 생명을 통해 믿음의 뿌리를 내려야 되어지게 됩니다.
① 이것은 생명을 가지고 확인되어야 이루어 지며, 현장에서 생명을 확인할수록 축복된 계획이 보여집니다.
② 이것을 믿음의 뿌리라고 합니다.
3.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며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① 구원받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성화)은 내 노력으로 되어지는 줄 압니다.
② 이것은 지금까지 유명한 신앙자들도 신인합작으로 성화가 되어진다 해석을 했습니다(루이스 벌콥의 조직신학).
③ 전도와 복음의 시각에서 볼때에는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다면 신앙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집니다.
④ 예전에는 신앙생활도 전도도 내 노력으로 할려고 애를 쓰다보니 실망하고 낙담을 했었습니다.
⑤ 그러나 이제는 모든 문제와 사건이 생겨도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 봐야 합니다.
⑥ 이것이 자연적으로 저절로 말씀속으로 그리스도속으로 기도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⑦ 뭘 했다라기 보다는 생명을 가지고 있으면 이것들을 저절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2) 생명을 가져야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습니다.
① 민 13장에 도저히 들어가보니, 우리가 그들보다 약하기에 들어갈수 없다는 정탐꾼의 말은 사실입니다.
② 이스라엘 백성이 가진 것으로는 할 수 없지만, 그땅에 들어가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③ 여호수와와 갈렙은 그들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했습니다.
④ 언약을 놓치면 절망과 실망이지만, 그 언약을 잡으면 축복과 은혜가 되어집니다.
(3) 세상은 절망적이지만, 언약의 시각을 가지면 승리하게 됩니다.
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영원한 천국으로 이끄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② 어떤 문제나 사건이 오더라도 그것은 전부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것이고, 용기를 주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③ 지금 우리는 현실적으로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고 있지만,
④ 우리를 통해 세계복음화하시고 주님이 오신다. 언약의 시각을 가지면 엄청난 축복을 주십니다.
(4) 우리가 언약을 붙잡고, 그리스도를 누리면 어느순간에 우리의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① 생명있는 아이는, 먹이기만 하면 자연적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② 우리도 언약붙잡고 예수를 모든 삶의 주인으로 누리면, 어느순간에 우리신앙이 성장하고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③ 우리안에 생명이 들어오면, 삶이 행복지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든 문제가 끝나게 됩니다.
4.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듣고, 그리스도를 누리면 사건과 현장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1) 생명의 성장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① 생명의 실질적인 성장이 되려면 계속 복음속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②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역사인 예수 그리스도를 누려야 합니다.
③ 롬 10:17 그리스도를 누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메시지를 들으면 달라집니다.
(2) 그리스도를 누리면 사건과 문제가 언약속에서 해결됩니다.
① 그리스도를 누리게 되면, 사회와 문화의 모든 문제는 언약속에서 이루어집니다.
②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을 할수록 우리에게는 용기와 힘이 됩니다.
③ 언약의 약속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속에서 역사가 달라집니다.
5. 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속에서 우리를 세우셨기에 우리는 훈련에 들어가야 합니다.
(1) 모든 문제는 끝나고 하나님의 역사는 되어지고 있습니다.
① 언약의 역사를 이루시고,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② 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으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③ 되어지는 하나님의 언약의 양식이 말씀이고, 하시는 일이 기도입니다.
④ 무시기도와 정시기도는 이것이 해결되면 되어집니다.
(2) 타락한 현장에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① 창세기 6장에 타락한 네피림시대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노아가 있었습니다.
②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복을 주시기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③ 하나님은 축복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당사자로 노아를 부르신 것입니다.
④ 언약의 당사자로 세움 받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는 다 끝난 것입니다.
⑤ 노아를 선택한 구체적인 역사가 방주이고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⑥ 그리스도 그 이름을 부를때 현장에서 삶과 생활과 사건속에서 힘이 되고 행복해져야 합니다.
(3) 우리의 체질이 언약의 체질이 되기 위해서 훈련에 임해야 합니다.
① 우리의 문제는 그리스도를 알고는 있는데, 우리의 체질이 언약체질이 안되어있는 것입니다.
② 이것을 바꾸는 것은 반복하는 것입니다.
③ 우리가 밥을 먹을때 그것에 감사하고 당연하게 여기듯이,
④ 우리가 메시지를 들을때, 은혜 받을 때는 감사하고 당연하게 여기게 됩니다.
⑤ 생각과 마음과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됩니다.
(4) 생명을 가지고 언약으로 그리스도를 누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① 예수를 믿고도, 불평이 나오면 정말 회개해야 합니다.
② 이것이 거듭되면 영적문제가 나오고 사단의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③ 우리가 생명가지고, 언약가지고, 그리스도를 사실적으로 누릴때 '은혜를 입었더라' 시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소망이 없는 세상입니다. 점점 악해지고 있습니다. 거리마다 정신병자가 넘치고 있습니다. 이때에 현장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리라!' 우리의 시각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지금도 되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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