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아직도 부족한 것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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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9:20)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마 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아직도 부족한 것 그렇게 제목을 삼았습니다. 일본에서 전철에 죽을 아이를 살리고 죽은 한국 학생에 대해서 신문에 대대적인 그런 홍보도 있고, 일본인들도 너무 감격해 하고 이렇게 했던 사실을 보게 됩니다. 또 그뿐 아니고 한국에서도 종종 그런 일이 있죠. '생명을 대신해서 죽었다!' 이래가지고 굉장히 감사하고, 전 국민들이 추앙하고 추모하는 이런 것들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런 것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요. 그건 당연하죠. 만약에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데,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물에 빠졌습니다. 물에 빠져서 죽을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집 사람 같은 경우에는 물에 빠지면 죽거든요. 물에 빠졌다! 죽게 되었을 때에, 나를 건져주었다! 그러면 그 사람에 대해서 나는 감사할 정도가 아니죠. 내가 '있다!' 그러면 있는 것도 털어서 아마 뭔가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인데, 여기에서 '100년도 못살 인생을, 생명을 구원해 주었다!' 그래서 이렇게 감사하고, 이렇게 헌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렇다면 100년이 수백 번 와도 못 더함이 없는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면, 감사 정도가 아니고, 그러면 헌신 정도가 아니고, 내가 마음을 드린다! 헌신정도가 아니죠. 그래서 이런 축복과 은혜가 여러분, 지금 이 자리에 모여있는 여러분들에게 이 예배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드리고 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구원의 백성들이 누리는 축복 아닙니까! 지금 뭔가 이 시간에 이걸 아셔야 되죠. '이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게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이게 예배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그 '헌금한다!' 뭐 이런 것도 다른 게 아닙니다. 이런 배경이에요. 그냥 내가 하나님 앞에 복을 받기 위해서 뭘 한다!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축복과 은혜가 나뿐 아니라 온 세계에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 내가 갖고 있는 것 다 드리겠습니다!' 그게 바로 선교이고, 선교헌금이고 그럼 배경입니다. 그렇다면 '돈 벌어야 된다! 뭘 해야 된다!' 이유가 여기에 다 들어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이 시간에 그렇게 축복된 역사가 있는데도, 뭐 예를 들어서 내가 뭔가 '나를 죽음에서부터 구원해 주었다!' 그러면 볼 때마다 감사할 것 아닙니까! 나는 볼 때마다 싱긋이 웃음이 나올 것 같아요. 볼 때마다 뭔가 이 고맙고 감사하고, 어떨 때는 괜히 손도 한번 잡고싶고 그렇게 안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런 이 세상에 어떤 '생명을 구원했다!' 그런 배경이 아니고, 영원한 생명으로 구원하신 그 하나님! 우리는 볼 때마다 뿐만 아니라 말할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부를 때마다 늘 그런 느낌이 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리고 여기에 내 인생전부를 드린다! 가정과 내 삶과 내 전체를 드린다! 그게 바로 신앙생활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뭡니까? 예배입니다. 이 회복이 예배예요. 그런데 예배에 나와 가지고 감사하기는커녕 아무렇지도 않다! 내가 내 인생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준 그 사람을 볼 때에 아무렇지도 않다! 그걸 가지고 '미쳤다!' 그러거든요. 여러분 지금 현재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아무렇지도 않다!' 그것은 보통 미친 게 아닙니다. 그건 영적 문제 중에 영적 문제예요. 그러니까 예배시간에 여러분 왔다! 감사할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정말 이 큰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합니까! 하나님 앞에 헌신 하리이까!' 이게 나와야 되는 거죠. 그게 나와야 진짜 뭡니까? 진짜 구원받은 자들의 삶이 이게 예배입니다. 이게 회복이 될 때에 여기에 모든 능력이 내 삶에 발산되는 겁니다. 역사가 되는 거죠.

여러분 '예배 회복된다!' 그럴 때는 그리스도 회복 아닙니까! 바로 하나님 회복입니다. 그 인격의 회복입니다. 이게 바로 전부 예배예요.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린다는 속에서 가장 또 예배의 완성과 예배의 정점이라는 것은 드리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았으니 내 인생을 드리겠습니다!' 이게 바로 가장 기본적인 것이 헌금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냥 나와서 예배드릴 때마다 헌금 드리는 것, 이것은 예배에 요소보다도 본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계획과 뜻을 따라서, 그 좋은 기쁘신 뜻을, 내 인생을 드리고, 내 삶을 드리고... 그러니 여러분 돈을 번다! 그 다음에 내가 뭘 한다! 전부 하나님의 기쁘신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 삶을 드리는 이런 배경이거든요. 전부!

가장 기본적인 것이 이제 십일조를 드린다! 우리는 '감사를 드린다!' 그러죠. 우리는 더 나아가서 뭔가 이 세계 복음화에 선교 헌금을 드린다! 그런 전부 배경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뭔가 우리는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할수록 예수 그리스도 내 안에 더 회복이 됩니다. 더 풍성하게 되고, 그러면 더욱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뭐가 나옵니까? 힘이 발휘가 됩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그래서 '목회 할 때에 기도해야 목회가 된다!'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사회 생활도, 경제 생활도, 말하자면 직장생활도, 어디에도 그리스도가 회복되고 예배가 회복되는 만큼 뭡니까? 힘이 나게 됩니다. 능력이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을 얻으리니...' 이 배경이 되거든요. 여러분들이 정말 '예배가 회복된다!' 하는 여기에 모든 것이 있고, 예배 회복된다고 하는 그 말이 바로 뭡니까? '복음이 회복된다! 그리스도가 회복된다! 말씀이 회복된다!' 그런 배경 아닙니까!ㄴ

지난주에 '하나님으로는' 어때요? 하실 수 있는데, 어떻게 하실 수 있습니까?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자들에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주에 어떤 일어났던 사건을 우리교인들이 이제 간증을 하는 것을 제가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들은 것은 아니고, 이제 귀에 들려온 거죠. 평생에 앓던 그런 정신 문제가 있어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시골인데 목사님 청하고 장로님 청해도 전혀 듣지를 않아요. 이 뭔가 해결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친척 되는 대구에 송현교회 우리 교인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이분들 두 분이 집사님 한 분하고, 권사님 하고 갔죠. 갔는데 누워 가지고, '목사도 안되고, 장로도 안 되는데, 너희들이 뭐라고 찾아왔느냐!'고 그 사람이 그러더래요. 그러니까 아마 지금 여기와 계실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제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목사도 못하고, 장로도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사단은 물러가라! 결박 받아라!' 예배드리고 그랬는데, 그렇게 기도하는데 순간에 나아버렸어요. 떠나버렸어요. 지금 거기는 야단입니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장로도 안되고, 목사도 안 되는데, 평신도가 가서 해버렸으니까! '도대체, 대구 송현 교회 예수는 누구고, 우리 예수는 누구냐!' 안 그러겠습니까!

그걸 몰라요. 다른 게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영적 문제 해결이 안됩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뭔가 예수 그리스도 이 외에 섞으니까! 힘이 안 나가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게 나오니까 힘이 안 나오는 겁니다. 이 축복의 역사가 어디에 생기느냐?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할수록, 현장에 들어가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현장에 가서 뭐, '전도된다!' 이게 안 되는데 무슨 전도가 됩니까! 이게 되면 저절로 되게 되어 있는 겁니다. 내가 예수로 충만해 지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충만해 지니까, 내 안에 나와 함께 계시는 그분이 내가 가는 곳에 뭐냐? 역사가 나와 버렸습니다. 그러면 거기서 전도도 나가게 되고, 여기서 응답도 나오게 되는 것이고, 여기서 모든 것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가난이나 질병, 이것은 또 고통이나 어려움 통해서 여러분 교회 나오고, 구원받는 동기가 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가난하고, 또 병나게 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뭐가 아닙니까? 목표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아니고, 목표가 아니에요. 그러나 하나님의 목표는 다른데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이루자니까, 도대체 안 돼! 이게 깨닫지를 못한다는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목표와 계획을 볼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준 것이, 그게 가난이요, 질병이요, 고통일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가난하고, 질병이 오고, 고통이 올 때에 뭘 봐야 됩니까?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느냐? 하나님 계획을 볼 수 있는 눈만 열려버리면 해결되는 것 아닙니까! 그 일이 빨리 이루어져야죠.

그런데 여러분 조금 더 들어가서 뭐냐하면, 가난이나 질병이나 고통이나 이런 모든 배경들은 엄격히 말하면 그 출발점이 하나님이 아니고 누구입니까? 창세기 3장입니다. 창세기 3장이에요. 그러니까 우리에게 실패하게 하는 배경이 창세기 3장이에요. 그래서 가난하게 만드는 배경이 창세기 3장입니다. 그래서 질병이 오게 되는 배경이 창세기 3장입니다. 고통 하게 하는 배경이 창세기 3장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아셔야 될 것이 창세기 3장만 해결되면 뭐가 됩니까? 질병, 가난, 고통 해결되는 겁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냈습니까? 하나님이 친히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 그랬습니다. 그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될 때에, 여러분과 저는 그 영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모든 고통과 괴로움에서부터, 재앙에서부터 해방 받는 참 생명의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요한 복음 1장 12절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자들이 모여서, 이 축복을 주신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것을 예배라 그럽니다.

지금 여기에 모인 분들이 그냥 모인 분들이 아닙니다. 이 축복과 은혜를 알고 깨닫는 자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삶으로 이어가는 삶을 우리는 신앙생활이라 그럽니다. 예배 생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뭐냐하면, 우리가 이 삶을 이어가고, 이 축복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는데, 그게 뭐냐하면 언약했습니다. '주일날 몇 시에 모여라!' 이게 가장 기본적인 예배의 언약이거든요. 예배의 언약은 다른 게 아닙니다. 그 언약을 확인하고, 그 언약은 바로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확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는 그런 시간입니다.

그 다음에 이 축복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개인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삶이 전부 뭡니까? 예배 화되어집니다. 생각도, 느낌도 바로 오직 주님을 바라봅니다. 그 다음에 생각도, 느낌도 주께서 원하시는 뜻과 계획을 따라 갑니다. 그 일을 위해서 내 인생을 드리려고 하는 모든 것! 그렇게 될수록, 그런 내가 되어질수록, 현장에 가는 곳마다 원수의 세력이 깨어집니다.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원수의 세력이 깨졌다! 쉽게 말해서 조금 전에 말씀한 것처럼 정신적인 이상이 왔을 때에, 그 문제가 평생 해결되지 않는 그 문제가, 내가 갔을 때에, 그리스도 이름을 불렀을 때에, 해결되었다는 것은 바로 뭘 이야기하느냐? 흑암에 세력이 떠나갔다는 것뿐만 아니라, 실패가 해결 된 겁니다. 좌절이 해결된 겁니다. 또 더 나아가서 질병이 해결된 겁니다. 모든 기도의 응답이 거기에 나오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면 '왜, 실패하느냐? 왜, 어려우냐?' 답은 하나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느니라!' 여기서 모든 것이 풀어지게 되고, 또 여기서 모든 것이 해결되게 되는 겁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바로 여러분과 제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 영접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린다!' 그런 정도가 아니고, 예배드리는 동안에, 예배드리면서 우리 스스로가 예수로 충만하게 되고, 이 예배드리는 동안에 뭐합니까? 그 예수로 충만하게 되면 사실적인 증거가 뭡니까? 성령으로 각 심령 위에 임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이 순간에 성령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축복과 은혜를 가지고 나가는 순간 우리의 현장에서, 여러분이 가는 곳곳마다 실패하게 하는 창세기 3장의 문제가 떠나가게 됩니다. 고통 하게 하는 모든 창세기 3장의 문제가 떠나게 됩니다. 해방 받았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 인생이 해방 받게 됩니다. 여러분의 모든 삶이 해방 받게 됩니다. 이 축복과 역사 속에 여러분을 세우셔서 이 일에 증인으로 삶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일에 지금현재 엄청난 축복과 은혜를 이루도록, 세계를 품는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세웠다! 그래서 저는 세계를 품는 교회를 건축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제 여러분들이 뭐 '교회 건축하는 것이 축복이다! 은혜다!' 그저 말로만 하지말고, 교회를 건축하는 축복이 아니고, 말로만 하면 축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여러분 보셨죠. 이 3500평되는 교회를 건축하려고 그러면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야 돼요. 아마 오늘 보시면서 '저게 축복이다!' 그런 사람보다도 '큰일났구나! 저 돈을 누가 다 대노!' '축복이다!' 그러다가 축복에 눌려 가지고 답답한 사람들이 아마 더러 더러 많이 있을 줄 압니다. 여러분 그걸 아셔야합니다. 그게 축복이다라는 사실이 내 것이 되고, 내 축복이 되려고 그러면 여러분이 실제로 그 축복 속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뭘 말하느냐? 교회를 지을 때에 저 엄청난 돈을 내가 어떻게 하느냐? 엄청난 돈도 뭐 있든지, 말든지 간에 여러분 작정헌금이나 빨리 내면 돼요. 그럴 하루빨리 낸다! '하나님, 내가 이것을 낼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은혜도 주옵소서!' 그게 뭡니까?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에 영적으로 참여해 버립니다. 그러면 그건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하나님, 은혜 주옵소서!'

그래서 나는 그 예루살렘 성전 건축할 때에 다윗에게 주셨던 물질적인 풍부가 엄청나거든요. 짓고 난 후에 솔로몬에게 주셨던 것도 금이 돌덩이처럼 여겨졌을 정도니까! 풍부하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이 교회 건축하기 전에 개인교회, 가정교회, 직장교회 그랬습니다. 아마 교회 건축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여러분 조금만 정시기도를 하고 있는 사람 같으면 영적인 축복이 회복 될 겁니다. 죽어도 안 하거든요. 결국 안 하니까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조금만 하시면 역사가 나옵니다. 영적 문제가 회복이 됩니다. 조금만 기도하게 되면...

그래서 여러분 교회 건축이라는 제목을 두고 여러분 걱정하고 눌릴게 아니고, 생각과 느낌이 오는 데로 뭐 하라 그랬습니까? '걱정을 기도로 바꾸어라!' 그랬습니다. 그 다음에 이걸 구체적으로 뭔가 내가 시간을 내어 가지고, 이 문제가지고 조금만 여러분 기도하면요. 교회가 건축된다는 것 전에 약속하신 그대로 누가 건축됩니까? 내 영적인 회복입니다. 내 가정에 교회가 건축이 회복됩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 가정교회 건축! 그랬는데, 가정예배도 구체적으로 한번 드려보세요. 드리면서 구체적으로 교회 건축 위해서 가정에서 기도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겁니다. 먼저 영적으로 엄청난 축복이 옵니다.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이 아니시라 그러면 우리가 교회 건축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이 교회를 건축해서 이런 이 하나님을 우리는 말해야 되겠다! 세계 복음화 아닙니까! 이 일에 우리가 눈이 열려야 구체적으로 여러분 사명도 생길 뿐 아니고, 건축해야 될 이유도 생기고, 건축한 이후에 신앙생활이 바로 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아니면 '내가 교회 건축했다! 우리교회 바라! 크다!' 이래봐야 아무것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오히려 뭡니까? 사단이 '봐라!' 그리고서는 교만만 커지고, 다른 것만 잃게 돼요. 여기에 조금만 이런 부분이 해결되게되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여러분 말로 아니라 사실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믿습니까! 진짜 믿습니까! 눌리는 게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러면 '예배에 성공한다!' 그러면 실제로 이 점을 알아야 합니다.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이 일이 성공되어지며, 현장에 들어갈 때마다 승리하게 된다는 사실은 간단한 사실입니다. 왜? 내가 예배에 성공하고, 영적인 힘을 얻을수록 절대로 목회가 기도해야 되고, 목회가 뭔가 하나님 앞에 은혜를 입어야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 그건 알아요. 그런데 '내가 직장에 들어가서 사업을 하는데도 은혜를 입어야 된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하는 것 같아요. '수단 써야 된다!' 그리고 이건 '속여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고, 그리고 '적당히 잘 방법을 추구해야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똑같이 여러분 믿는 자들에게는 현장에 들어갈 때에 은혜를 입어야 됩니다. 누가 복음 10장 19절에 보면, "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자꾸 지하철 헌금하려고 그러니까, 자꾸 지하철 말이 안 나옵니까!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이 대구에 지하철 같은 사고가 이 땅에 일어난 적이 역사에는 거의 없어요. 거의 없는 것이 아니고, 나는 못 들어봤어요. 하기야 옛날을 못살아 봤으니 못 들었는지 모르지만, 이런 게 없어요. 서울에 그렇게 지하철 돌아다녀도 대구 같은 지하철 사고 안 나왔어요.

이상하죠. 대구는 지하철 생기자마자 몇 백 명씩 죽는 사건이 벌써 몇 번입니까! 하여튼 대구는 '지하철 사고났다!' 그러면, 몇 백 명이에요. 여러분 한번 들어보세요. 엄청난 문제들 아닙니까! 지금 나는 일일이 그 일어났던 한사람, 한사람들의 대화하는 내용을 들으면서 진짜 눈물 흘려질 정도가 아닙니다. 너무 비참하니까 눈물이 안 나와요. 분노가 나와요. 오히려 무슨 이런 일이... 그게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배경이 누구라고 믿습니까? 진짜 그렇습니까! 막 말로 해 가지고 우리 교인이 거기에 몇 명만 탔더라도 그 일이 안 생깁니다. 이 말하니까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지, 그냥 비웃음인지, 아니면 이 즐거운 웃음인지 모르는데...

여러분 확실히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왜?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자녀로 내가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뭘 해야 됩니까? 세계를 바꾸어야 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세계 바꾼다!' 그런 부분이 아니고,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주의 성령으로 충만해 졌을 때에, 내가 현장에 가면 실패하게 하고, 고통 하게 하는 뭐가 역사가 안됩니까? 흑암이 묶이게 됩니다. 사단의 역사가 묶이게 되는 것 아닙니까! 정신이 이상한 그 현장에 갔을 때에, 내가 힘이 있어서 아닙니다. 내가 가는 곳에 예수 이름으로 나갈 때에 뭡니까? 고통 하게 하고, 괴롭게 하고, 그 영혼을 아프게 하는 뭡니까? 흑암이 묶였습니다. 여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가 터지고, 모든 사건이 터질 때에 바로 거기에 그걸 아셔야 합니다. '내가 거기에 없어서 그렇구나!' 그 말이 뭡니까? '복음을 전하지 못해서 그렇구나!' '내가 거기 가서 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말씀하면 다 해결된 문제인데... 이것이 안 되었구나!' 왜? 이 말씀을 전할 때에 왕으로 오시고, 선지자로 오시고, 바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지금 이문제 위해서, 이 사건 위해서, 이 땅에 몸을 주셨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마다 구원을 얻는다!'고 약속했습니다. 안 믿고 안 불러서, 안 믿고 기도 안 해서 그렇죠.

이 사실을 믿고 조금만 움직이면, 하나님께서 엄청난 기쁨과 감사로 거기에다가 당신의 뜻을 다 이루는 겁니다. 이를 위해서 세웠다! 모든 축복과 역사가 여기서 이루어진다! 그 이야깁니다. 여러분 우리가 '교회를 건축한다!' 그런 배경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를 건축한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교회 건축하게 하는 과정, 배경이 뭡니까? 세계 복음화! 거기에 선교, 거기에 전도, 하나님의 계획이 거기 다 있습니다.

이런 기쁘신 뜻을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실 때에, 여기에 모든 축복과 역사가 약속이 되어있고, 그 약속과 역사가 구체적으로 이루어 가시는 사실에 여러분과 저를 세웠다는 것을 비로소 뭐가 됩니까? 깨달을수록 감사가 나오는 겁니다. 깨달을수록 뭐가 나옵니까? 증거가 나옵니다. 깨달을 수록 뭐가 됩니까?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한번 체험하면 한번 체험할수록 '야, 나는 못할 줄 알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는데, 이 박지온 목사만 가서 될 줄 알았는데...' 아니거든요 여러분 가도 돼요. '박 목사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내가 왔더니 된다!' 됩니다! '나는 예수 믿은 지가 얼마 안되었는데...' 됩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과 제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 이름 부를 때마다, 바로 그 현장에 흑암에 세력은 깨어지고, 실패하게 하는 모든 문제들은 떠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라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것을 맛보면 맛볼수록, 이 순간이, 이 날이 모든 문제 해결하는 뭡니까? 기초가 됩니다. 바탕이 됩니다. 이것이 되어지면, 체험이 되어지면 되어질수록 여기에 뭐가 나옵니까? 헌신이라는 것은 저절로 나옵니다.

여러분 나의 생명을 구원해준 사람을 위해서 점심 먹으러 갔다! 밥 한끼 사먹었습니다. 사먹을 때에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겁니다. 혹시 그 사람이 돈을 낸다 그러면 생명을 걸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 그렇습니까! 멱살을 걸머지고, '돈 내가낸다!' 그러고 나갈 겁니다. 여러분 이 축복의 역사가 체험될수록 하나님의 교회에 올 때에, '주여, 이 일을 우리가 해야 됩니다!' 이 사실이 세계에 이루어져 나가야 됩니다. 그렇다 그러면 뭡니까? '주여,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드리겠습니다! 헌신하겠습니다!' 그게 헌금 아닙니까! 저절로 되는 겁니다. 헌금에 수준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의 수준이 저절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삶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 시간에 메시지 듣는 시간에 눈감고 앉아서 들을 수가 없어요. 한번 받아합시다. "예배가 안 된다는 것은 사단의 짓이지, 내 일이 아니다!" 그렇게 여러분 예배가 안 된다는 것은 사단의 짓이죠. 그리고 아무리 포근하고 편하지만, 예배 시간에 눈이 감기게 하는 것은 사단의 역사지, 내 역사가 아닙니다. 사단의 역사를 빨릴 해결해야 돼요. 안되면 결국은 뭡니까? 사단은 망하게 하기 위해서 들어오고, 실패하게 하기 위해서 들어오고, 궁극적으로 죽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들어갑니다. 계속 놔두면 죽어요, 살아요? 그래서 내가 예배시간에 졸고 있는 사람을 안 놔둡니다. 한사람만 내 눈앞에 띄어도 꼭 자꾸 제가 건드리는 이야기가 바로 그거예요. 들어오는데, 그걸 뻔히 알고 있는데...

그런데 또 기술적으로 졸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눈 뻔히 뜨고 졸더라 구요. 도리 없지, 어쩝니까! 그러나 분명히 아실 것은, 여러분 지속적으로 이 축복과 사실을 놓쳐 버리게 되면 뭐가 됩니까? 재난이 옵니다. 그러니 예배가 안된 사람은 시간이 멀지 않습니다. 얼마가지 않으면 문제가 오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또 핑계대지 말아요. 반드시 올 대는 또 핑계거리가 와요. 사단의 역사입니다. 정말 그런 문제 오거든, '주여, 알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고, 조금 하나님 앞에 기도해 보세요. 내게 축복과 은혜가 오히려 저주로 나오게 되는 이런 모든 문제가 바로 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꿈보다 해몽이 중요하다!"고 설교보다 뭐가 중요합니까? 설교를 해석하는 여러분, 받는 사람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여기 목사가 와서 설교한다! 말씀가지고 할 것 아닙니까! 말씀을 받는 순간, 순간 여러분 믿음에 따라서 그 설교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받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받습니다. 받는 데로 됩니다. 받아합시다. "내 믿음대로 될지어다!" 할렐루야! 축복으로 받으면 믿음입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나를 알고 나를 치냐!' 그러면 그것은 치는 걸로 받아들이고, 자기가 그렇게 믿었으니까! 안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들을 때에 정말 중요한 것! 그래서 여러분 예배에 성공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뭐냐하면, 말씀입니다. 강단의 말씀과 나와 현장관계가 이루어지게 되는 이런 눈이 떠져야 합니다. 말씀이 구체적으로 내게 이루어진다! 그것은 기본적인 역사 아닙니까! 그런데 그것이 지금 내게 들려지는 순간에, 내가 그 말씀을 응답으로 받는 순간에, 현장과 연결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현장이 계속 연결되는 동안에 지속이 되어집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기도 아닙니까!

그러면 그때마다 생각대로, 내가 생각하는 순간순간 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을 계속하면 걱정이 됩니다. 걱정은 뭐로 통해서 옵니까? 생각을 통해서 오는 것이죠. 마태복음 11장 28절에 이후에 그것은 뭡니까? 생각을 통해서 옵니다. 그래서 성경에 뭐라 그랬습니까? 기도의 응답을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 지금 어떤 생각이 나옵니까? 그 생각 자체가 벌써 기도입니다. 그 생각이 기도와 연결되면 전부 뭡니까? 응답으로 나옵니다. 역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그런 생각과 그런 마음으로 현장에 갈 때마다 현장을 말씀대로 성취되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합리성이다, 뭐다!' 이게 되면 합리성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겁니다. '전문성이다!'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내가 어떤 사건을 뭐 어떻게 보느냐? 거기 전부 응답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때부터 뭡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뭐냐? 이것이 자연적으로 분석이 되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한 명 영혼이 구원받는 문제!' 그걸 쉽게 말해서 '전도와 선교!' 그래서 여러분들이 뭐냐하면요. '세계 복음화'라는 생각만 가졌다! 하나님이 펄쩍 뜁니다. 아마 우리 교회에 여러분을 향해서 이 시간 펄쩍 펄쩍 뛸 겁니다. 너무 좋아서 왜? 너무 여러분을 기뻐하시거든요.

성경에 보면 말씀이 누가복음 15장 7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죄인하나 구원받는 것, 돌아오는 것, 해방시키는 것! 이건 뭐 엄청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5장에 쭉 나오는 비유들이 안 있습니까! 드라크마의 비유라든가, 양 100마리 비유라든가, 그게 뭡니까? 드라크마를 잃었다가 하나 찾는 것, 그 다음에 양 100마리 잃었다가 한 마리 찾는 것, 여기에 모든 기쁨을 집중 시켰어요. 하나님이 진짜 기뻐하는 것! 이 문제라 그랬습니다.

무슨 말이냐? 여러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 백 번, 천 번 여러 가지 한다 그래도, 예를 들어서 영혼구원과 관계없는 일 아무리 많이 한다 그래도 하나님 돌아섭니다! '많이 해 봐라!' 부자가 바로 그런 이야기입니다. '내가 많이 했습니다. 다 했습니다!' 아닙니다. 바로 영혼구원의 문제, 온 천하를 얻어도 비교가 안 되는 한 영혼의 구원문제! 바로 그게 선교와 전도입니다. 여기에 교회가 맞추었다, 개인이 맞추었다, 여기에 적은 마음만 드려도 하나님이 여러분 하는 사건과 일들마다, 마음만 가지고 해도 기뻐하시는 정도가 아니고 모든 축복과 역사가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전도하면 복을 받는다! 뭐, 선교하면 복을 받는다! 그런 배경이 아니고, 전도와 선교를 하나님이 너무 좋아하시니까! 이게 이 땅에 주님이 오신 목적이요, 하나님의 계획이요, 세계 복음화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계획이요! 여러분과 저를 여기다가 세웠기 때문에 여기에 모든 축복과 역사가 약속된 겁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를 건축한다! 그런 배경 이전에 이런 어떤 배경가지고, 여러분들이 정말 하나님이 이 일에 '우리 자신을, 우리 마음을, 우리 생각을 헌신할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이 사실 자체가 이루어지게 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내가 뭘 한다!' 그 말이 아닙니다. 내가 뭐 '착한 일했다!' 그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부족한 것이 뭐라 구요? 늘 부족한 것이 예배입니다. 가는 곳마다 앉는 곳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순간 우리가 예배가 회복되는 순간, 아직도 부족한 것이 있다면 예배입니다. 또 예배드리고, 또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주님을 바라보고, 그래서 또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부르고, 또 주님 앞에 나가고 아직도 부족한 것! 그 말은 바꾸어서 아직도 충만한 것,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부르고 현장에 가는 곳마다, 현장에 갈 때마다 거기에 모든 성공과 축복과 부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왜? 흑암 권세가 떠나가게 됩니다. 거기에 죽음과 멸망이 떠나가게 됩니다. 이 사실을 이웃에게 말하고, 이 사실을 세계에 말하는 것을 전도와 선교라 그럽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것을 맞추어 나갈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교회를 건축할겁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릴 것입니다. 영 육간에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 나를 건져준 사람에 대해서 크게 감사하듯이 하나님께서 영원한 구원의 생명을 주신 사실에 대해서는 지극한 감사와 헌신이 예배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전도와 선교를 위한 헌금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되어지고 내 삶에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 본론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1) 가난이나 질병이나 고통이나 어려움은 교회에 나와서 구원받는 통로일 뿐이지 그러한 어려움 자체가 하나님의 목표는 아닙니다.
(2) 가난이나 질병이나 고통 등의 출발점은 창세기 3장의 문제이므로, 창세기 3장의 문제가 해결되면 구체적으로 겪는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3)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창세기 3장의 문제와 그로부터 생겨난 모든 문제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2. 구원의 축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1) 구원의 축복을 삶 속에서 이어가기 위해서 주일 예배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져야 합니다.
(2)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현장의 흑암 세력이 꺾여지므로,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과 생각을 기도로 하나님 앞에 고백하십시오.
(3) 이러한 축복된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눈을 돌리십시오.
(4) 복음 전파를 위해서 교회 건축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모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며 이루어 주십니다.
(5)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아직도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과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는 예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 결론
주일 성수로 예배의 축복을 누리게 될 때,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회복되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현장의 흑암 세력도 무너집니다.

● 기도제목
◎ 예배 회복을 위하여
◎ 예수 그리스도의 회복과 성령 충만을 위하여
◎ 교회 건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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