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누가 크냐?
2004-05-0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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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마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마 18: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10)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 18:12)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마 18: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마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오늘 본문에서 "누가 크냐?" 제목을 삼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권세를 가져야 큰 줄 알고, 돈을 가져야 큰 줄 알고, 학문을 가져야 크다!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모든 풍조와 사조들이 교회 안에도 똑같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서 이것이 고쳐지지 않을 때에 교회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축복의 자리에 설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에서 교회에서는, 또 그리고 우리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했느냐? 정반대로 말씀했어요. 그런데 그 반대라는 어떤 배경에서만 포인트를 두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고, 뭐라 그랬느냐 하면, '어린 아이가 되어라!' 천국에서는 어린아이가 되어라! 이것이 천국에서 가장 크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이건 세상 사람들이 크다는 배경이요, 성공했다는 배경입니다. 그러나 26절에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그러니까 교회나 또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는 크다는 배경이 전혀 다른 것으로 이해가 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24절에도 "또 저희 사이에 그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눅 22:25)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저희를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눅 22:26)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두목은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그랬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은 권세를, 그리고 남을 부리고 군림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또 주안에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 바로 여기에 크다고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은 치유가 되지 아니하면 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치유가 된다는 배경이 바로 오늘 제가 말씀하는 중요한 중심적인 배경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이 정말 우리가 교회 안에서, 주안에서 크게 될 수 있는 배경이 뭐냐? '어린 아이같이 되라!' 이것을 얼른 보면 겸손에 대한 말로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이 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겸손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18장 3절에 보면,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오늘 여러분 심각하게, 또 떠들고 그렇게 할 것 없이 우리 중심에 이 말씀을 좀 받아야 되겠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낮아지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것은 뭘 말하느냐?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이라 그럴 때에, 어린 아이가 갖는 믿음, 부모와 자식의 관계입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도 큰 어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완전히 어린 아이들! 그러면 여기는 절대적인 생명으로 통해서 오는 의뢰, 신뢰관계입니다. 완전히 이것은 믿음하나! 더 이상 다른 것이 없어요.

만약에 이것이 안되고, 낮추려고 그러면 위선이 되어요. 이것이 안되고, 뭐 겸손해 지려고 그러고, 겸손한 것을 보이려고 그러면 그게 안 되는 겁니다. 그러면 눈에 힘 다 빼고, 숙이고, 손 비벼봐야 그것은 위선이 되지! 그럴수록 뭐냐? '야, 이놈 보자!' 이렇게, 다른 어떤 반발심이 나오지, 실제적인 그런 낮춤이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이 생명관계가 어디서 오느냐? 간단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말씀한 것처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이 됩니다.

저는 그 어쩌다가 한번, 그 손자가 오면 막 정신이 없어요. 그러다가 가는 날은 굉장히 기쁜 날입니다. 보내놓고 나면 또 좀 봤으면 싶은 때는 있어도. 늘 그래요. 그런데 올 때마다 꼭 뭔가, 이 저희 어머니가 세미나 때문에 오거든요. 그러면 낮에 늘 할머니께 맡겨 놓고는 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뭐가 문제냐 하면, 종일 어머니를 생각해요. 뭐 조그마한 일만 있어도 어머니와 연결됩니다. 어머니 없는 동안에, 그러니 어머니 나타났다! 좋아 죽으려고 그래요. 그리고 별 어린양을 다 부리고... 여기에 낮아진다는 것은 이런 신뢰관계고, 생명관계이지! 뭐 일부러 폼잡고, 뭐 위선 떠는 것! 그런 관계가 아닙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서 버리면 겸손이라는 것은 그것은 따라오는 것이지, 뭐 '겸손'이 다른 게 아닙니다. 이 관계가 안되면 아무리 겸손하려고 그래도 근본적으로 '겸손'이 안됩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한 겸손은, 또 그것밖에 다른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으로 나는 게 아닙니다. 은혜 받아야 돼요. 그래서 13절에 "(요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생명 가지고 이 자리에 앉았다! 이게 다입니다. 이게 놀라운 은혜예요. 이 사실을 확인하고 깨닫는 만큼 겸손하게 되고, 그래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 사실을 깨닫는 만큼, 여러분 가슴에, 마음에 하나님뿐입니다. 다른 게 들어올 수 없고, '나'라는 것이 주장되어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영생을 얻었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여기에 모든 것이 풀려간다고 아무리 말해도 이게 잘 안돼요. 왜? 다른 게 자꾸 나옵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또 말씀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간단하게 말한 것 같으나 여기에서 모든 것이 풀려나간다는 정도가 아니고,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근본 출발이 이루어집니다. 다른 것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역시 엉뚱한 사건이 열매로 나오죠. 요한 일서 5장 11절에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무슨 문제나 사건이 있어도,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있고, 그 안에서 다 진행되게 된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 일서 5장 12절에 보면,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고, 안 믿고'가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예수 믿으면 사람이고, 예수 안 믿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그게 성경에 근본적인 개념이에요. 여러분 그리스도가 있고, 하나님의 인격이 있어야 사람이지, 아니면 짐승과 똑같습니다. 먹고, 마시고, 욕심부리고, 그 이상 다른 게 없어요. 안 믿는 사람들은, 뭐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전부 짐승과 근본적으로 똑같습니다. 왜? 본능 속에 삽니다. 욕심으로 살아갑니다. 다른 게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안 믿는 사람보고, '짐승 같다!' 그러면 안 되죠. 성경에 원래 개념이 그렇다는 것! 여러분 잘 아셔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에 역사가 확인이 안된 만큼 뭐로 화합니까? 사람에서 짐승으로 화합니다. 여러분 이게 안되면 가정에서나, 생활에서나 내가 사람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삶은 똑같이 안 믿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와도 이 사실이 구체적으로 안되면,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모든 기준이 뭡니까? 자기 중심에서 먹는 것, 마시는 것, 의식주 중심해서 그 다음에 이득 중심해서 그렇게 살아가게 마련입니다. 왜? 다른 게 올 수 없고, 다른 게 들어와 지지를 않습니다. 하고 싶어도 되어지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하시는 말씀이죠.

그래서 오늘 이렇게 되면 자연적으로 오는 것이 뭐냐하면,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러면 뭐 이 사실이 되어지는 만큼 뭐가 이루어지느냐? 여러분 그때부터 하나님 중심이라는 말이 뭐 다른 걸 붙일게 없어요. 저절로 출발도 하나님이, 그 다음에 진행도 하나님이, 결과도 하나님이, 그렇게 되게 되어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생겨도 아버지, 진행 과정에도, 결과도 전부 그렇게 진행이 되어 있다는 것이 보여집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제가 늘 그렇게 말 안 합니까! '하나님 주권!' 하나님 주권 다른 게 아닙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면 주권이라는 것은 저절로 입니다.

여러분 그 뭔가 다윗이 하나님 주권이라는 '칼빈주의 교회 학' 을 공부해서 나온 것이 아니거든요. 참 생명이 들어가니까! 하나님 중심이 되니까! 다윗의 삶은 전부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의 삶에...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 속에서 하나님 떠나서는 죽는 줄 아니까! 그러니까, 그가 역대상 29장 10절 속에 보면,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절에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자도, 가난함도,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주시는 것도, 안 주시는 것도 다 주께 속해있느니라! 완전 하나님 중심입니다. 이것이 칼빈주의를 공부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이것은 교회 학을 공부해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이 되었다! 저절로 와 지는 겁니다. 여러분, 그래서 뭐 오늘날 우리에게, 조직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하나님 주권 나온다! 그 말이 아닙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참 생명이 들어가 버리면 눈을 뜨자마자! 자나깨나! 누구중심입니까? '아버지!' 모든 삶에 이것이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도와 그의 역사가 내 삶에 전부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배경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믿음으로 하는 일 마다 열매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그래서 성도들은 불 신앙이 와서. 불 신앙으로 인본주의 쓰는 것마다 잘된 것 같아도 결국은 손해가 오고. 결국은 그로 통해서 문제가 옵니다. 어떤 면에서 대대로 고통을 당하는 배경이 됩니다. 그게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주시겠다는 믿음이 안 오니까!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 이런 엉뚱한 일을 저지르게 되니까, 대대로 이스라엘에 고통이 전부 지금까지 일어납니다. 온 세계가 고통받는 것이 그 불 신앙의 싹에서부터 나온 겁니다.

오늘 우리가 참 성경으로, 말씀 앞에서 좀 바로서야 됩니다. 주의 교회 와서 이 축복과 은혜의 역사에 통로를 다 잊어버리고, 왜? 축복이 아닌, 거리가 먼 엉뚱한 이 불 신앙에 인본주의와 수단으로 교회에서 복을 받고 싶어한다!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어요. 그런데 교회가 흔히 그런 길로 가더라 이겁니다 많은 경우 교회 안에도 누가 크냐? 전혀 다른 어떤 오해를 통해서, 세상 적인 의식구조를 통해서, 교회에서 살아가려고 하는 이 사실을 볼 때에 이게 우리 주님께서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참으로 아픈 일이다!

그래서 '왜, 안 되느냐?' 그러면서 자꾸 하나님 앞에 '복을 왜 안주십니까? 축복을 왜 안주십니까?' 줄 수가 없는데, 전혀 다른 것인데, 여러분 조금만 우리가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면 하나님의 엄청난 역사가 사실적으로 임하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이 생명의 역사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이 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아브라함이 이런 배경이 되니까! 너무나 넘치는 역사가 나오죠.

소돔 고모라에 롯이 잡혀갖다는 소식을 듣고 아브라함이 가병을 데리고 가서 롯을 다시 찾아냅니다. 그러는 동안에 많은 노략물들을 가지고 오죠. 그래서 소돔의 왕이 아브라함에게 너무 감사해서, '네가 가지고 있는, 네가 찾아온, 또 받은 노략 물들을 다 네게 주겠다!' 어떤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니까, 뭐라 그랬습니까? 창세기 14장 21절에 보면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취하라 (창 14:22)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창 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 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혹시 내가 부자가 됐다고 할 때에, 그때에 너로 통해서 받은 그것이 재산이 되어 가지고 내가 부자가 되었다! 이 소리 듣고 싶지 않다! 실오라기 하나도 나는 너한테 받아 가지고 이로 말미암아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 듣기 싫으니까,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받겠다! 전혀 안 받겠다!' 다 주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믿음입니다. 교회에 속한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건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야지, 뭐 인간이 지금 우선 급하게 내가 복을 받고, 내가 이익이 있다! 취하지 마세요. 여기서 다 속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이 축복의 자세가 그로 말미암아 엄청난 거부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자꾸 눈앞에 적은 이익 때문에 여기 다 속아요. 하나님이 하시려고 하면 못할 것이 뭐 있습니까! 안 믿어지니까, 자꾸 이런 방법으로 나오게 되는 배경을 볼 수 있죠.

그래서 이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시는데 창세기 15장 1절에 보면, 이 사건 이후입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네가 나를 너의 모든 것으로 삼았으니! 내가 네게 전부, 모든 것이다! 상급도 내다!' 그 다음부터 아브라함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를 입었던 것을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뭐냐하면, 아브라함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 말하기 전에 먼저 나와서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일이 있습니다. 이 일과 이 일이 연결되어 졌습니다. 그러니까 뭘 했느냐? 하나님께로부터 아브라함이 받은 모든 것들을 가지고 1/10을 멜기세덱에게 주고는,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주고, 그 다음에 이 모든 일들은 전부다 돌려주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겠다!' 간단한 겁니다. 여러분 믿음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면 도대체 믿음, 믿음 그러니까, 어떤 걸 말하느냐? 그래서 믿음 회복하려고 뭐 '믿습니다!' 그러고 자꾸 그러는데, 그렇게 할 것 없어요. 그게 뭐냐? 오늘 여러분 우선 믿음회복 한다 그럴 때에,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다른 믿음이 아니에요. 내가 느끼는 어떤 확신이다! 그 말이 아닙니다. 성경에 말씀대로 말씀이 임할 때에, 그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믿는 믿음!'이라 그럴 때에, 사람들이 또 오해를 합니다 많은 경우 내가 한 주간 살아가고, 내가 한 주간 참 믿음을 붙들고 나갈 때에 어떤 말씀이냐?

그래서 여기서 여러분들이 정말 붙들어야 될 것이, 강단에서 내리는 말씀! 오늘 내게 한 주간 구체적으로 말씀을 붙잡고, 그 말씀을 믿고 가야될 말씀이 뭐냐? 하나님께서 여러분 개개인에게 주시려고, 성경에 전체적인 말씀을 강단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한 주간 계속해서 응답 받도록 약속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강단을 붙잡는, 강단을 통한 믿음을, 강단을 통한 말씀을 붙잡는 믿음이 아니면, 한 주간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약속이 되어있지만, 이 연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이해 안되니까 뭐냐? 예배회복해도 예배가 회복이 안되고, 이것이 이해가 안되니까 주일성수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이해가 안되어요. 그러니까 주일날 그냥 자기 욕심대로 살아갑니다. '강단에서 내리는 말씀이 오늘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믿어지게 되면, 주일성수라는 것은 자연적으로 해결됩니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예배 회복!'이라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이것이 회복되어져야 뭐가 됩니까? 한 주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배 회복이 안되고, 주일성수가 회복이 안 될 때는, 안 믿는 사람과 똑같아 집니다. 다른 게 없어요.

그리고 이것이 회복되어지면요. 정말 여러분들이 예배시간이 귀중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저절로 모든 생각이 여기에 다 집중이 됩니다. '어떤 말씀이 오늘 내게 임할까!' 기대되어지는 것이... 여기서 예배가 참 기쁨과 감사가 되어지고, 그리고 주일날 이 말씀들을 때에 '아멘'이라는 것이 되어지죠. 이것이 안 된다 그러면 이것은 너무 불행스러운 일이고,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다락방하면서 회복되어지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 회복되어진다! 그럴 때에, 이것은 근본적으로 성경으로 돌아가는 믿음입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얼마나 엄청나다는 사실을 성경이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여러분과 제게 구체적으로 회복되어져야 됩니다.

다시 말합니다. 강단에서 내리는 말씀이 회복 안 되어지면 불신자와 똑같아 집니다. 오늘 내리는 말씀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 안 되면, 예배가 회복이 안됩니다. 예배라는 시간이 이게 축복이요. 은혜라는 사실이 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에 와 가지고 온갖 생각 다하게 되고, 거기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에 기대가 나오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조금만 되어지면, 이 주간은 하나님이 어떤 축복을 나에게 주실 것이냐? 이 기대가 되어집니다. 그 말씀이 임하는 대로 받아들이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그때부터 약속되어진 것이 받아합시다.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 이 사실이 되는 겁니다. '내 믿음대로 될찌어다!' 그게 전혀 연결이 안 되는데...

저는 그 '록펠러'에 대해서, 여러분 그 지난 우리 중직자 대회에서 권했습니다 만은, 아마 온 교인들이 읽어야 되겠다! 싶어요. 다른 거 없어요. 가장 중요한 게 예배! 그 세계적인 거부가 예배드릴 때마다 40분전에 왔습니다! 왜? 그걸 생명으로 알았어요. 거기에 대해서 뭐 십일조다! 혹은, 아니면 교역자의 관계, 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은, 그 이야기는 안 하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 정말로 축복과 은혜가 회복될 수 있다는, 중요한 원칙적인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이 사실 자체가 오늘 우리가 회복되어져야 됩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되어질 때에 저절로 뭐가 이해되느냐 하면, 여러분 그 다락방에 있어서 '전도된다! 전도된다!' 이럴 때에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흔히 '전도된다! 전도된다!' 다락방의 특징인 '전도다!'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다락방 특징은 '전도'라기 보다 복음입니다. 전도되어지기 전에 뭐가 되느냐? 생명이 와집니다. 생명이 와지니 뭡니까? 말씀이 믿어지니까! 말씀이 그대로 현장에 성취되는 사실이 바로 전도와 연결되어 집니다. 내가 복음이 안 되어 가지고 현장에 말씀이 그대로 성취가 안 되는데, 이게 안 되는데, 무슨 내 간증이 나오고, 내 고백이 나옵니까! 안되잖아요.

전도라는 것은, 지금까지 뭔가 복음도 모르면서, '전도, 전도!'하는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제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될 것은, 말씀회복!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회복! 그리고 이 말씀이 매 주일 강단을 통해서 여러분 개인과 가정에, 사실적으로 임하시는 축복을 붙잡을 수 있는 믿음이 되어졌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여기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들이 저절로 어떤 사실이 나오느냐 하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하나님 중심이라는 삶이, 믿음중심! 믿음 회복의 삶이, 저절로 교회 중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흔히 우리 그 청년들이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교회 중심!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교회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이지! 그게 안 되는 배경이 앞에 배경입니다. 이 구체적으로 이 배경이 안될 때에 나오는 겁니다. 뭐 어떤 경우에는 교회 예배드리기 전에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 말씀 중심!' 이런다고 표어까지 외우는 교회도 있다! 그러는데,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중심!' 그런다고 해서 어떤 분들은 보니까, 교회 옮겨 짓는 그런 자리로 이사를 막 간다고 해서 교회 중심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 앞에 부분입니다.

이게 되어지면 자연적으로 교회 중심이 되는데, 여러분 교회 중심이 되는 것은,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축복의 통로가 어디입니까?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말씀한데로 예배가 회복되고, 그 다음에, 뭐 예배가 회복되면 자연적으로 뭡니까? 교회 직원들과 회복이 됩니다. 목사와 그 다음에 장로와 모든 강단이 회복되잖아요. 그러면서 뭐가 오느냐? 그로 통해서 교회와 가정과 개인이 연결됩니다. 축복의 대 통로가 뭐냐? 교회입니다. 교회 막혀 버리면 전부 다 막혀버립니다.

그래서 늘 그런 이야기 안 합니까! 목사와 막힌다는 것이 다른 게 아닙니다. 먼저 교회부터 먼저 막힙니다. 여기에서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고, 어려운 문제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교회에 엄청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이 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바꾸시기를 원하신다! 이 자부가 여러분 가정에 것이 되어야 되고, 내 개인의 것이 되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것을 조금 더 축소해서 말해서, '하나님이 송현 교회라는 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엄청나게 바꾸는 축복과 역사에 통로로 쓰신다!' 이 사실이 나의 것이 되고, 여러분 가정에 것이 되고, 이것이 믿음으로 회복되어지게 되는 거기에 모든 것이 약속이 되어있습니다. 이게 축복의 통로입니다. 이것을 놓치게 되는 그때부터 여러분 '세계 복음화!'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통로가 막혀 버렸는데, 수도꼭지가 아무리 열려 있더라도 오는 통로가 막혀 버리면 그것은 물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가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서 쭉 나오는 모든 것이 전부 교회를 통해서 오는 축복입니다. 여러분 개개인이 축복을 받는다! 먼저 교회 중심이 되는 신앙이 안되면 다 막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왜, 교회 안에서 모든 교회 조직이라든가, 교회 기관에 조직이라든가, 이런 면에 자꾸 인도 받기를 원하고 있느냐? 그게 자연스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계획이, 그 다음에 구역에 계획이, 그 다음에 내 가정에 계획이, 나의 계획이 쭉 연결되어 집니다. 기도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늘 무슨 기도합니까? 교회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가정 위해서, 나를 위해서, 그 다음에 교회 위해서 기도할 때에 누구를 위해 합니까? 목사 위해서 기도하고, 장로들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여러분 가정과 개인, 자신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런 통로가 자연스럽게 모든 축복의 역사로 연결되어 진다는 것을 여러분 바로 아셔야 되는 겁니다. 이것을 뭐 강조를 해서 한다기보다도 앞에 부분이 되면, 저절로 교회 유익이 내 유익이 됩니다. 교회 축복이 내 축복이 됩니다. 좀 극단적으로 말해서 '교회 망하면 나도 망합니다!'

그런데 이게 안되니까, 어떠냐? '교회는 망해도 나는 살겠다!' 이것만큼 신앙인들 속에 어리석은 자가 없어요. 우리 송현 교회를 건축한다! 건축하는 만큼 누구의 교회가? 누가? 내 가정에 교회가, 내 개인의 교회가 건축된다! 이게 연결되어야 됩니다. 교회는 안 되는데 나는 잘 된다! 여러분 이것은 불 신앙입니다. 완전히 이 사실 자체가... 그래서 교회 건축한다! 그럴 때에 우리가 모든 헌신하는 배경이 여기 안 있습니까! 그 안타까운 것은, 이런 것이 안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뭔가 근본 앞에 부분부터 안되었다는 겁니다. 불 신앙이란 다른 게 아닙니다. 교회 유익이 내 유익이고 여러분 유익입니다. 여기에 모든 것이 약속이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를 적어도 오늘 여러분 뭔가 확인해야 될 것이요, 하나님의 교회, 송현 교회, 내가 송현 교회 와 있다! 이건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이 교회에 계획이 되어있다!' 자부심을 자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이 자부심과 함께 믿음이 왔을 때에 뭡니까? 이 교회와 연결된 누구입니까? 여러분 가정과 내가 함께 축복의 역사 속에 있다는 사실이 와 지는 겁니다.

저는 그 지난 우리 교역자들 모였을 때에, 목회 대학원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들이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았다는 확인만 해도 성공할 수 있다! 여기에 모든 것의 출발이다! 그리고 여러분을 불러놓고 하나님이 '세계 복음화!' 그러고, 여러분 불러놓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맡기시고, 세계를 바꾸어 나가시겠다고 계획하셨다! 이 사실만 믿어도 다 되는 것 아니냐!

그래서 제가 우리교회에서 이미 이야기한바 있습니다 만은, 제가 우리 교회에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말씀했습니다. 저는 뭘 좋아하느냐 하면, 이 영화를 볼 때에 멜로 드라마 별로 안 좋아합니다. 눈물 흘리는 것 진짜 싫어요. 그렇지 않아도 눈물 흘릴 일이 많은데, 그것 보면서까지 눈물 흘리고 싶은 마음 없거든요. 그런데 그 뭔가 시원하게 치고, 박고, 폭탄 속에서 살아 나오는 것! 그걸 보면 상당히 시원합니다. 그런데 주인공으로 세워놓은 사람은 아무리 폭탄이 터지고, 별별 희한한 위험 속에 당했다가도, 결국은 승리해서 석양을 받으면서 애인과 팔짱끼고 나오는 것이거든요. 이게 마지막 부분입니다. 거의!

여러분과 저를 하나님이라는 저자가 나와 여러분의 인생을 이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으로 삼으시고, 아무리 위험하고,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결국은 폭탄 속에서도 살아남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주님의 역사의 영광에 서게 될 것으로 그렇게 만들어 놓았어요. 계획을 해 놓았다! 그 말입니다. 죽지 않습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이 일을 교회와 함께 여러분과 저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될 때에 따라오는 것이 이제 말씀한 것처럼, 교회 중심 되어지고, 저절로 앞에 순서가 이루어지게 되면 따라오는 것이 뭐냐? 그때에 비로소 기도응답이라는 것이 여기서 옵니다. 기도응답이라는 것이...

그래서 여러분 '기도응답!' 그럴 때에, 뭘 구했기 때문에 받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늘 강조하잖아요. 빌립보서 4장 6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뭐라 그랬습니까? "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정상적인 생각에 기도응답입니다. 정상적인 바른 마음에 기도응답이 됩니다.

여러분 정말 이 사실을 바로 붙잡아야 합니다. 기도응답은 내가 뭘 욕심을 내어서 구했기 때문에 오는 게 아닙니다. 앞에 부분이 딱 이루어지면, 사람은 마음과 생각이 바르게 됩니다. 마음과 생각이 바로 되어집니다. 그러면 그 마음과 생각이 바로 이루어지는 그때부터 움직이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응답으로 나오는 것이죠. 기도라 그러면 꼭, '구해서 얻는다!' 이것은 우상숭배에서 나오는 문제입니다. '많이 구하고 많이 어떻게 한다! 정성을 드린다!' 그것은 그런 배경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이를 낳아놓고 막 구하기 때문에 줍니까? 밥 달라고 그러니까 밥 주고, 아니면 안 주고... 아닙니다. 아예 필요를 다 채워줍니다. 아이가 생각하기 전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아이가 구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하면 더 줍니다.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확실히 확인하는 동시에, 그런 배경이죠.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속에 확실히 확인하는 동시에, 그 다음에 주님을 향해서 자연적으로 나갑니다. 모든 것이 주님! 주안에서...

그 다음에 그때부터 성령의 구체적인 인도를 받잖아요. 그때부터 교회중심이 옵니다. 생각과 마음이 안정이 되고 평안이 옵니다. 그러면 그런 삶이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있어야 될 줄을 다 아시느니라!' 특별히 여기에 전도와 선교! 저절로 열매로 나오게 됩니다. 왜? 한 주간 주님 앞에 말씀 붙잡고 기도할 때에, 내 안에서 성취되는 말씀에, 성취가 보여지게 되면 간증이 안됩니까? 저절로 이게 전도입니다. 여기에 사실적인 역사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기도라는 것이 바로 마음과 생각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 정상이 됩니다. 마음이 삐뚤어지면 응답이 될 수 없어요. 생각이 삐뚤어지면 응답이 나올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참 복음 붙잡고, 세계 복음화 해야 되겠다! 이 말씀 중에서 세계 복음화에 생각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다! 응답은 나오는 겁니다. 기도도 '정말 복음 위해서, 내가 세계 복음화 역사를 위해서 내가 부자가 되어야 되겠다!' 이런 것, 이 저절로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생각으로 나왔다! 그러면 응답이 나옵니다.

욕심을 가지고 막 '세계에서 제일 부자 되게 하옵소서!' 줄 수가 없어요. 줘 놓으면 다른 짓 할건데, 어떻게 합니까! 받아합시다. "가난한 것도 복중에 복이다!"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여기에서 돈 줬다! 여러분 돈을 주었다! 어떻게 될 겁니까? 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내가 돈을 수억 가지고 있는 재벌이 되었다!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뭐하고 돌아다닐지 지금... 생각과 마음이 바르면 거기에 모든 응답이 따라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각과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있기 위해서, 여러분 묵상이라는 것이 여기에 안 나옵니까! 다윗이 모든 기도에 응답 받을 수 있는 가장 축복된 역사가, 누구보다도 말씀묵상은 다윗이 거의 삶 전체를 통해서 하고 있습니다. 왜? 내 생각과 마음이 정상으로, 믿음 안에서 정상이 될 수 있는 길은 말씀묵상입니다.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숙제를 냈어요. 제가 숙제 냈는걸 이번 주에는 내가 물어볼 생각이 없습니다. 왜 없느냐? 그 숙제하려고 철야를 하면서도 들여다보고, 한꺼번에 막 다 읽어버렸는데, 그러면 그게 정상이 안돼요. 생각이 묵상이 안되고, 성경 읽는 게 정상이 안되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번 주에는 제가 많은 양을 안 냅니다. 마태복음 18장을 하루에 한번씩 읽어보도록 하세요. 하루에 한번씩 묵상이 되게 생각을 해요. 내 마음에 말씀이 들어와야 생각과 마음이 진짜 믿음으로 인도가 되요. 성령의 인도가 여기서 나오는 거죠. 그러면 기도응답이라는 것은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전혀 이 말씀과 연결이 안되고, 전혀 믿음이, 이런 믿음 회복이 안된 상황에서 기도라는 것은 전혀 다른 기도가 나오죠. 여러분 기도가 다르다! '응답이 왜 없느냐!' 그 기도 들었다가는 큰일 날건데, 그 기도 들었다가는 나라 팔아먹을 건데...

그러니까 마음과 생각이 참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으로,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여러분 하나님이 손이 없습니까! 발이 없습니까! 귀가 없습니까! 성경에 그랬잖아요. 못 듣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 뭘 못하겠습니까! 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마음을 바꾸세요. 이것을 가지고 요즘 갱신, 뭐 혹시 '리모델링' 그러고 그러더라 구요. 교회 리모델링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지만... 이럴 수록 누가 잘 안 되느냐? 묵은 디이 일수록 이게 잘 안돼요. 너무 지난날에 찌들려 가지고, 조금만 마음을 바꾸고, 조금만 생각 바꾸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 바꾸어지는 즉시! 왜? 기다리고 기다리시니까! 거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8장을 하루에 한번씩 아침에 일어나면 묵상하고, 또 그 다음에 한번 다 못 읽으면 못 읽는 데로, 그러니 이것을 '한 권을 읽어라!' 이렇게 해 놓으니까, 또 '얼마 읽어라!' 이렇게 해 놓으니까, 한꺼번에, 그냥 책장 넘기려고 막 읽어요. 묵상이 안 되어요. 마음과 생각이 뭔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할 수 있는 게 잘 안되어요. 그래서 다음 주에는 물을 겁니다. 진짜! 다음주에는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왜? 여러분 정말로 응답 받는다! 다른 게 아닙니다. 오늘 이 말씀 붙잡고, 설교 말씀 붙잡고, '오늘 내게 임하신 말씀이 도대체 뭐냐?' 이래가지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조금만 서면, 하나님이 주고 싶어서 애를 쓰시는 분입니다. 주고 싶어서 여러분을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분 아닙니까!

이게 안되니까, 하나님이 기다리는 겁니다. 너무 너무 기다리다 안되니까! 로마서에 말씀한 것처럼, 탄식하면서 기다리십니다. 너무 너무 안되니까! 왜? 복 받을 자리에 있으면서도 안되니까, 탄식하면서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된 자리에서, 너무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한 주간도 말씀 붙잡고 여러분 확실히 이루시는 승리의 기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서론
그리스도 안에서는 크다는 의미가 세상과 다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큽니다. 이 사실은 치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주 안에서 치유를 받아 크게 될 수 있는 배경은,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겸손을 말하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믿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어린아이의 믿음은 생명 관계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생명을 얻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새생명을 주신 모든 문제의 해결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풀려갑니다.

● 본론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생명을 얻은 자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하나님 중심)
(1) 어떤 문제가 와도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2) 출발도, 진행도, 결과도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3)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자 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4)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소돔왕이 주려는 노략물을 거절했습니다.
(5)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방패와 큰 상급이 되시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2. 말씀을 믿는 믿음의 회복이 필요합니다.(말씀 중심)
(1) 특별히 강단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2) 말씀을 믿는 믿음이 회복될 때, 예배가 회복되고 주일 성수가 이루어집니다.
(3) 말씀을 믿는 믿음이 회복될 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는 말씀이 축복이 됩니다.
(4) 복음이 이해되고 말씀이 현장에서 성취되는 믿음 속에서 전도도 이루어집니다.

3. 하나님 중심과 말씀에 대한 믿음이 회복되는 가운데 교회 중심이 되어집니다.(교회 중심)
(1) 송현교회를 통해서 세계를 변화시키는 축복의 역사가 나와 가정에서 열려져야 합니다.
(2) 송현교회가 축복받는 만큼 내 개인의 교회와 내 가정의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3) 송현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나와 내 가정이 송현교회의 축복 속에 함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4) 내 유익을 챙기기 위해서 교회에 유익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 결론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는 것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교회 중심으로 살아갈 때,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이 지켜지는 기도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 묵상을 통해 생각과 마음을 바르게 하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들을 열매로 허락해 주십니다. ★ 이번 주에 마태복음 18장을 하루에 한 번씩 읽으며 묵상하십시오.

● 기도제목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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