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무엇을 보느냐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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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1:1)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마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마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마 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목을 "네가 무엇을 보느냐?" 이렇게 잡았습니다. 사실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길이 달라지고, 또 승패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됩니다. 다락방 사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만은, 다른 엉뚱한 것을 보고, 시험 들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볼 것을 본다는 초기 메시지 속에서 이 사실이 많이 강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거의 낙심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도 교회 다니다가 낙심 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그들을 만나보고, 다시 회복시킬 것을 회복시킬 때에, 새 힘을 얻는 그런 사실들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볼 것을 못 보고, 쉽게 말해서 참 복음을 못보고, 복음 안 믿는 것을 보았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이 엉뚱한 그런 방향으로 갑니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종교라!' 그렇게 말하죠. 뭐 예를 들어서 참 생명! 새 생명! 이것을 못보고 육신적인 것! 인간적인 것! 욕심적인 것! 이것을 보고, 또 그것을 마음에 관심을 둘 때에, 또 그것을 구하고 있을 때에, 이 기복주의가 나오고, 또 종교가 나오고, 또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너무 좋은 일입니다. 참 선하고, 착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종교의 배경 이기도합니다.
그러나 왜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되느냐 하면, 종교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사단이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래서 종교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꾸 경계를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교회 일을 하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생명, 참 복음,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교회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다른 일을 봅니다. 인간적인 것보고, 육신적인 것보고, 그렇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수단이 나와야 되고, 방법이 나와야 되고 이런 것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신비로 빠지기도 하고, 종교에 빠지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이제는 다른 열매와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그런 어떤 배경에서 성경에서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서 우리 예수께서 뭘 말씀했느냐 하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왔느냐 그러면서 세례요한에 대한 것도 되지만, 세례요한을 보는 세상, 사람들에 안목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7절이죠.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뭔가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또 그 볼 것을 보기 위해서는 어떤 볼 수 있는 장소로 나가야 되는데, 그것이 안 되었을 때 오는 불행을 총체적으로 여기에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서 뭐 쉽게 말해서, 좋은 옷을 입고, 또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런데 광야에 가서 그런 것을 찾을 수가 있느냐? 이 인간들이 엉뚱한 욕심과 정욕으로 참 복음을 찾지 못할 때에, 다른 것을 찾으려고 애쓸 때는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 말해서 교회 와서 복음을 보고, 복음을 찾으려고 안 하고, 교회 와서 다른 것을 찾으려고 그럴 때에 욕심과 정욕을 채우려고, 그럴 때에 이것은 너무 불행스러운 그런 사실이 됩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여기가 좋사오니 복된 자리입니다!" 진짜 믿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그러고서는 복된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것을 내 기준으로 해서 뭐냐? 참 생명을 찾으려는 눈을 못 뜨고, 다른 것을 찾으려고 그럴 때는, '여기가 좋사오니' 다른 게 나옵니다.
쉽게 말해서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 메마른 땅, 광야에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그런 꼴이 되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는 실망과, 거기에는 고통만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죠. 그러니 교회라는 곳에서 여러분들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실망하고 가는 배경이 그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잘난 사람 보기 위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교회는 옷 잘입은 사람보기 위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가 '잘났다, 못났다!'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 목사가 복음 전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교회 와서 복음 들으면, 교회로서는 여러분에게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요. 그곳에 모든 것이 포함이 되어 있고 모든 축복과 은혜가 약속이 되어지는 겁니다.
역시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이 여러 가지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세례요한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점을 오늘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요한이 옥에 갇혔고, 오랫동안 뭔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혔고, 이제 죽음 직전에 이런, 그런 지경에 요한이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물어 보라 그랬습니다. 뭐냐하면, '정말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우리가 오실 이를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이 정말 맞습니까!' 이런 질문을 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한 것이 바로 4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말하라! 그러면서 5절에 쭉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며 그 다음에 6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했어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랬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죠.
여기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요한복음 1장 30절에 보면, 30절부터 쭉 나가면서 34절까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한 그런 증거가 나와있어요. 3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29절에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말씀하고, 33절에는 성령으로 세례주실 자라! 말씀하고 34절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세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선포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도 위대한 분이요. 너무나도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 자로 묘사되고, 선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의 지금 이 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뭘 느끼게 되느냐 하면, 세례요한의 기대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 기대와 전혀 다르게 엄청난 위엄과 영광으로 역사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뭐냐하면 그 기도와 전혀 다르게 초라하게 나타났습니다. 아주 세례요한의 생각과, 또 그 다음에 그 제자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데 대해서 여기 문제가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점에서 주의해야 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믿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세상 적으로 이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시험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그 이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러면서도 오늘 성경에 말씀한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실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11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들 생각으로 예수가 어떨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어떤 축복과 은혜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인간적인 생각과 욕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주실 은혜와 축복을 상상하다가는 뭐가 오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오히려 실족하게 되겠다! 그런 내용입니다. 많은 경우 이점이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나거든요. 교회 와서 '축복을 받는다!' 그러면 성경대로 축복이 아니고, 우리의 욕심과 생각에 의해서 축복을, 그리고 상상하고 그대로 안되면 하나님 죽었다! 그러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제가 오늘 이번에 그 동경에 가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서,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의 이런 축복과 은혜를 주실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자기 부모를 향해서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는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 뭐라 그러냐 하면, '내가 안 믿겠다!' 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축복을, 당신들이 받으면 믿고, 아니면 안 믿겠다!' 이게 세상사람들의 생각이거든요. 교회 나오는 여러분들도 많은 경우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복을 받으면 믿겠고, 아니면 안 믿겠다!' 그래서 예수께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왔기 때문에, 예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내 이름으로 실족하지 아니하면' 실족이 아니라 낙심만 안 해도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중요하게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죠.
이때에 세례요한의 이런 어떤 의심이나, 이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문제점을 조금 짚어가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처한 환경이 그런 모든 여건이, 그런 입장이, 그런 의심을, 그런 문제를, 그런 낙심을 가져올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예수님께서 메시아요. 그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요. 더 큰 권능이요. 능력자라면 세례요한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들었을 것이고, 안다 그러면 한번쯤은 뭔가 위로의 말씀도 주시고, 한번쯤은... 예를 들어서 인간적으로 찾아 올 수도 있는데, 뭐 한번도 안 찾아오시고, 전혀 냉정하시고, 연락도 한번 없으시고, 이러니까 뭔가 세례 요한이 쫌 그럴 수 있어요.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느끼는 것은, 여러분 예수 믿고, 은혜 받게 되고, 은혜롭고, 뭔가 인간적으로 다 잘되면 문제는 괜찮은데, 예수 믿고, 또 주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뭔가 자기에게 큰 어려움이 왔고, 힘든 일이 왔다 그러면, '교회가 그럴 수 있느냐? 아무개 장로가 그럴 수 있느냐? 누가 그럴 수 있느냐?' 이러면서 뭐냐? 누구를 의심하느냐? 하나님께 대해서 낙심하게 됩니다. 이런 배경이 너무 많거든요. 그 세례요한이 어떤 면에서 이런 환경에, 이런 낙심으로 나왔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잘 보셔야 합니다. 오히려 낙심은 더 큰 믿음을 일으키는, 믿음을 이끌어 내는 과정일수 있습니다. 낙심만 안 하면, 말하자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 잃지 않으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올 수 있더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뭐라 그러느냐 하면, 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창 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지금까지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다고 계속 말했거든요. 계속 말하고, 아들도 준다고 계속 말했는데, 아들 주신다고 말한 후에 20년이 넘도록 못 받았고, 축복을 주신다고 말했는데, 계속해서 또 돌아다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15장에 축복을 주신다고 또 말씀하니까! 뭐냐하면 의심이 생깁니다.
환경과 지금까지 이어온 이 일들 때문에 의심이 생겨서 뭐라 그러느냐, 하나님께 감히 이런 말을 합니다. "(창 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나님이 이 땅을 주실 것을 뭐로 나한테 증거 해줄 겁니까! 증명해 주십시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이 말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이 말조차도 나올 수 없어요.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시한 것이 제사였습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 제사제도! 그러면서 짐승을 다 배를 갈라 가지고, 또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그런 사건을 말씀을 해 주셨죠.
그 다음에 사사기 6장 36절에 보면,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그러면서 37절에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려고 약속을 했거든요. 기도온에게!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기드온의 환경이 그렇지 못합니다. 미디안에게 계속 약탈당하고,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 기드온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겁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바로 여기에 내용입니다.
뭐냐하면 여러분 극단적인 환경과 ,어려운 문제 속에서 낙심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에 갖다놓아도, 말하자면 믿음만 포기하지 않으면, 여기에 더 큰 영광스러운 믿음으로 이끌어 오는, 그러니까 업그레이드 해주는 귀중한 기회가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양털을 놓고는 하나님 양털에만 이슬이 있게 하시고 땅은 마르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 또 그 한번 다시 합니다. '양털에는 바짝 마르고 땅만 젖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증거를 주셨습니다. 비로소 기드온이 일어나서 기드온 300명의 용사가, 그 엄청난 군대를 횃불과 항아리 들고 나가서 승리하게 하셨던 우리의 신앙의 역사를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환경과 사건과 일들이, 낙심할 수밖에 없을 때에 오는 불 신앙들이, 이건 어쩔 수 없이 들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순간이 엄청난 믿음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는, 사실을 보게 하는 기회입니다. 이 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기회를 보게 하시고, 인도해 나가시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역사 속에서도 많은 경우 반복이 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이런 어떤 기회가 오늘 우리에게 사실적인 기회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도 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믿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복음은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뭐라 그랬느냐 하면,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랬습니다. 무슨 말이냐? 복음은 환상이나, 아니면 막연한 이론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말하라! 복음을 그냥 막연하게 설명하려고 하지말고, 사실을 말하라! 그리고 '사실을 말하라!' 그럴 때에 반드시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게 증거라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 속에 간단한 것 아닙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증거를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에, 하나님이 명령하실 것까지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신 것이 성경에 약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복음을 받을 때에, '예수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럴 때에 뭐냐하면, 이론이다! 막연한 어떤 이론으로 느끼고 있을 때가 많아요. 아닙니다. 그런 말씀할 때에 말씀 속에서는, 그 명령 속에 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신다는 것이 성경에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치료를 한다! 치료를 받는다! 한 주간 약속을 받았다!' 그러면 내가 현장 속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이 그것조차 주시겠다는 축복과 은혜의 약속이, 성경에 사실로 인도되는 약속인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치유라고 제가 늘 말씀을 하고 보는데, 치유라는 것이 뭐 특별히 고친다! 이게 아니거든요. 복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되는 것이 치유입니다. 영적 병이 들어놓으면, 영적인 문제가 생기면 복음을 못 깨닫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해결되면 복음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뭔가 신앙 생활하면 뭔가 하나님께서 막 빛을 주시고, 어떤 뜨거움을 주시고, 어떤 신비로운 것을 주어서 탁 눈을 열게 하시고, 이런 쪽으로 옛날에 우리는 생각이 갔었다! 이것이죠. 그런데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복음은 뭐냐? '복음은 맨 정신이 되는 것이 복음이다!' 한번 받아합시다. "복음은 맨 정신에 되는 것이다!" 이 말이 좀 이상한데, '맨 정신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은, 뭔가 막 허왕되고, 뭔가 기적을 바라고, 뭔가 욕심을 바라고, 뭔가 이런 게 다 사라지고, 이 사라지고 정상적이 되는 것이 복음이다! 옛날에 우리 뭔가 믿음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뭔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막 기적을 내려주고, 뭐 돈 뭉텅이를 내려주고'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그리고 일반 신앙 생활하면, 이상하게 해도 뭐 돈 뭉텅이가 떨어져야 되는데, 그 말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게 하늘나라의 영광이죠. 그러나 이 땅에서 여러분과 제게 주신 축복은 맨 정신으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일하는 데로 복을 받는 것이 성경에 축복이라는 배경이 가장 기본적인 겁니다. 상이라는 배경에 지난번에 설명을 드렸죠.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뭐냐? 복음은 사실입니다. 상식이하의 것도 아니고 상식수준에서 얼마든지 우리가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이것이 꿈으로 어떤 아니면 이상으로 아니고 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 이 축복과 은혜가 와질 것도 믿고 내가 누려질 사실도 확인하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 성경은 복음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치유된다! 그럴 때에, 치유는 뭔가 하루아침에 치유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맨 정신이 돌아오고, 그 다음에 지극히 상식적으로 돌아오고, 뭔가 지극히 머리가 정상적이 되고, 이런 것이 치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성취된다!' 그럴 때에 '아, 맞구나!' 말씀 들으면 말씀이 믿어져요. 그 말씀이 뭐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져서 믿어지는 게 아니고, 정상으로, 맨 정신으로, 그 말씀이 믿어지고, 그 다음에 그 말씀가지고 붙잡고, 묵상하고, 그 다음에 그 말씀가지고 묵상할 때에, 그 말씀이 한 주간, 그 묵상한데로 성취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래서 이것이 꿈이 아니고 사실적으로 하나하나 진행이 되어 가는 현실을, 현실을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니고, 진실하게 볼 수 있는 이런 어떤 역사와 축복이 바로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예수 처음 믿는 사람들이 엉뚱한데 시간 다 보내고, 뭔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해야 될 때는 일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는데 시간 다 빼앗기고, 이런 경우가 많고, 그래서 세상에 인정을 받아야 될 때에는 인정을 못 받고, 이런 어떤 것들이 반대로, 역으로 나가던 것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우리가 주일 성수 한다! 그럴 때에, 주일 성수하면, 주일날 못한 것 하나님께서 월요일 날 한꺼번에 쏟아 부어 주리라!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실 것은 주일성수 안 한만큼 손해가 옵니다. 그러나 주일성수 안 한만큼 손해가 오는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따지고 보면 이 손해가, 손해가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맨 정신을 이걸 뭔가 그 사실자체가 여러분 생활과 사건에 하나하나 생활화 되어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여러분에게 실질적으로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공할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게 복음이고, 승리할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게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이나 일터에 이길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고, 이길 수 있는 삶을 살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뭐냐하면 성공할 수 있는 생각은 안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각만 하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성공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이나 생각하는 것이고, 쉽게 말해서 이런 것입니다. 일터에 가서 일을 전혀 안하고 맨 날 놀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리라!' 이것은 종교인들이 하는 것이고, 이것은 뭔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지, 내가 일터에 갔으면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공부할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는 겁니다. 기술을 익힐 때는 기술을 익혀야 되는 겁니다.
복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럴 때에 맨 정신으로 살아가요. 그러면서 사실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여러분 생활과 삶에 이게 습관이 되도록, 이게 현실적인 삶으로 이어져야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여러분 말씀들을 때에, '말씀을 묵상하라!' 그럴 때에, 주일날만 예수 믿고 교회 왔다는 식으로, '아, 오늘 복 받겠다! 한 주간 복 받겠다!' 그런 말씀이 아니고, 주일날 여러분 오면, 말씀을 딱 받잖아요. 말씀 받으면, 그 말씀을 마음속에 딱 묵상하게 됩니다. 한 주간 계속해서, 그래서 이 묵상을 한다! 그럴 때에 그 말씀을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묵상하게 되면, 그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가 말씀에 힘이 있고, 능력 있는 그런 실제와 사실을 보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어떤 역사를 말씀해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소경이 눈을 뜬다고 했어요.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그때당시 유대인들에게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불치병들입니다. 기후가 건조한 땅이고, 또 먼지가 많은 땅이라서 소경들이 많았다! 그 다음에 또 역시 마찬가지로 나병환자들이 많았고, 이런 어떤 것들이 그때 그 당시에 흔히 일어났던 그런 문제들이죠. 이런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면서도 불치병들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라는, 하나님이 이 분을 참 메시아로 보냈다는 증거로 뭘 했느냐? 선지자들이 예언하신 그 예언의 말씀이 이 사람을 통해서 성취가 되어지게 될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사람이라는 신뢰성이 여기서 확인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역사들을, 구약에 이미 예언이 되었던 그 예언처럼, 오늘 여기에 설명하는 겁니다. '소경이 보고, 문둥병이 낫게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었다!' 그렇게 말씀했죠.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과연 참 복음을 잡았을 때에, 많은 경우 불치의 병들이 떠나게 되는 기적들이 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특별히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낫는다! 된다!' 이 말에 배경이 뭐냐하면, 참 복음이라는 증거로, 이런 사실과 역사들이 나오더라 이겁니다.
이번에 가서 그 우울증이라는 문제가지고 일본에 메시지를 전해 드렸는데, 그 일본에 가니까, 우울증이라는 말을 가지고 이제 전하게 되니까, 뭐라고 말을 하느냐하면,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겁니다. 그러니 저녁을 먹다보니까 어떤 한 분을, 우리 그 신 목사님이 아주 참 잰틀맨인데 그 식당에서 영접을 시켜요. 일본말을 하니까 알아듣지는 못하고, 부지런히 설명을 하더니만 이 사람이 밥 먹다가 밥도 안 먹고 앉아 가지고, 남은 밥 다 먹었는데 둘은 앉아 가지고 막 이야기하면서, 그 설명을 하고 영접을 하는데, 이 일본인이 손을 잡고 영접기도를, 그 여럿이 많은데서 하더라 구요. 하고 난 후에 뭐라 그러느냐 하면, '이 분이 그 우리 금방 들어온 누구 친구인데, 일본인 친구인데, 아무리 영접을 시키려고 그래도 영접을 안 하더라' 이겁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만나 가지고 아무리 영접을 시키려고 그래도 다른 소리하고, 자꾸 영접을 피하고, 그런데 그 날은 왜 했느냐?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우울증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메시지를 전했는데, 이 사람이 멀쩡한데 뭐가 왔느냐? 우울증이 와 있었어요. 우울증이 와 있는데다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이 사람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뭔가 느낌이 있었던가 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니까! 그러니 이 사람이 설득력이 생겨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설명이, 그 먹는 자리에서 설명을 했어요. 그러니까 '영접하겠냐?' 이러니까 '영접하겠다!' 이겁니다. 일본인들은 뭔가 우리하고 조금 다른 것이, 확실하다 싶으면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하게 돼요. 그러니까 여럿이 앉아 있으면 또 낮선 사람 아닙니까! 앉아 있는데서 손을 잡고 막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라서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영접을 그 동안 안 했는데, 했다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해요. 무슨 이야기냐? 여러분 참 복음을 붙잡게 되면,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역사가, 이것도 내가 바라는 기적과 역사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서, 기적과 역사가 그의 형편과 사실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합당하도록 이루어주신다! 성취해 주신다! 이 사실들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경우 체험했던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 속에 너무 많지만 항상 우리가 못 보게되는 이유가 뭐냐하면, '내 생각으로 기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 뜻대로 기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받아합시다. "이미 우리 가정에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이 찾아내지를 못합니다. 볼 것이 보여지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감사가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바라는 기적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건 욕심과 정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많은 경우 실패하고 넘어지는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어떤 배경들을 조금 놓고 성경이 오늘 중요하게 뭐라 그랬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보내시면서 메시아 되는 증거를, 또 메시아의 증거로 보아야 될 것을 뭐라고 또 말씀했느냐 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랬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많은 말씀을 다 해석을 못하고요. '가난한 자들이 복음이 전파된다!' 그랬는데, 정말 그 복음은 구약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그런 어떤 수준과, 그런 어떤 청중이 아닌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때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할 대상이 아닙니다. 가르칠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소용이 없어요. 거기 가르치면 뭘 받아야 됩니까? 돈을 받아야 되는데,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과외를 시킬 수가 없어요.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줄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에 메시아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과 달리 그분은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말하자면 돈이 없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돈을 주고 교습을 받을 수 없는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어 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72편 2절에 보면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4절에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또 12절에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시 72:13)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이사야 61장 1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참 복음이라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다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가 구약에 쭉 예언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선호한 부자들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소외시켜 놓았던,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에 이 사람이 바로 메시아의 증거다! 그 사실입니다. 그 세례요한이 그러니까 '볼 것을 보라!' 이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내가 많이 깨달았다는 것, 이전에 교회봉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아하, 그때 그것을 놓쳤구나!' 싶은 게 있어요. 교회가 부흥이 되려고 그러면 기도하고, 막 그렇게 좀 열심을 내었을 때에, 그때에 특징이 뭐냐하면 꼭 이상한 사람을 붙여줘요. 그러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이 한사람에게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그때는 뭐 한사람,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것 붙잡고 몇 날 몇 일을 기도하고 그랬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사람을 좀 붙여주시려면 쓸만한걸 붙여 주던지 이상한 것 붙여서 힘만 빼고 사람 죽을 지경입니다! 안됩니다!' 낙심했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교회가 부흥되는 증거가 뭐냐? 이상한 사람이 많이 들어오면, 교회 부흥의 증거랍니다. 그게 하나님의 시작이에요. 이게 뭐냐? 예수가 메시아요, 그리스도시라는 증거요. 첫째인 겁니다. 왜? 그런 사람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한길뿐이니까!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뭐 특별히 치유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야, 다락방에 만큼 이상한 사람이 많이 들어온 데가 없고, 다락방인 만큼 뭔가 이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 단체도 없겠구나!' 그런 것을 느꼈을 때가 많거든요.
'아, 이것이 복음이구나!' 말세에 갈 때가, 말세에 여러 사람들이 박대를 받고, 말세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 받을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분이 참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참 구원자이신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다락방이라는 곳이, 뭐 다락방이다! 말할 것도 없죠. 참 복음을 가진 교회에, 참 복음을 가진 자에게, 참 복음의 증거로 이런 역사가 나올 수밖에 없구나! 이들이 왔다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켜 나가시는 사실과 실제가 체험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여러분과 저의 문제거든요.
그리고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예수께서 오셨다! 메시아라는 증거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 배경 속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저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이상한 사람들만 이렇게 모두 모였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증거로 이 축복과 역사가 시작된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기독교에 역사가 부자의 역사가 아닙니다. 요즘 복음 받게 되면, 복음 받는다! 참 돈 떨어진 사람 복음 받고, 이상한 사람이 복음 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왜? 어렵고 힘드니까 복음을 찾아 온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힘으로, 우리 능력으로는 엄청난 세계 복음화 이루어 나갈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가난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증거 하시는 것이 기독교요, 참 복음에 증거다!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나는 이 교회 건축하고, 또 이 덕평 수련원, 총신 연구원을 매입을 했습니다. 사놓고 보니까, 강서로도 뭐 한 60억 교회 대 건축을 시작했어요. 우리도 지금 현재 대 건축을 수주100억 자리 교회를 지으려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에 전부다 지금 이제 다락방에서는 전부 교회 건축한다고 다같이 일을 벌여놓고 있는 이 판에, 이러는 참에 뭔가 돈 내어놓으라는 겁니다. 아마 오늘도 이제 그 당회를 해야 되는데 여러분에게도 또 뭔가 이 참에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 봐야 되거든요. 있는 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데서 하면 '아, 돈 있었으니까 했다!' 그러나 전혀 우리가 할 수가 없는데서 하나님은 세계 복음화의 엄청난 역사를 지금 이루어 가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셔야 될 일이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건축도 뭔가 우리 교인들 가만히 보니까, 꼭 여기게 똑 같아요.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았는데, 부자가 없어요. 부자가 있어도 그저 촌부자지 부자가 없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세계 복음화라는 엄청난 일을 맡겼거든요. '아, 이것이 난 처음에는 그 돈이 다 어디 있냐? 이런 쓰여질 때에 돈이 없고, 돈이 다 어디 있냐?' 이런 소리를 하고 그랬는데, 돈이 어디 있는 게 아니고 그게 정상이다! 복음은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겁니다.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같고, 할 수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믿음을 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향할 때에, 여러분 가정과 교회에 축복이 다가 아니고, 여기에는 엄청난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사실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자로 복음을 시작했지, 부자로 시작 안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부자로 시작했다.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떤 면에서 정말 우리교회가 복음 전할 수 있는 교회요, 세계복음화의 교회다! 할 수 있는 이유가 가난한 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 확실한 증거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셔야 되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말씀했습니다. 부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필요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는 부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이 땅에 힘있는 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 자신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에, 그 분의 권세와 능력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을 신뢰하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러분과 저의 눈이 열려져서 하나님이 말세에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보여주실 것을 보고, 믿을 것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축복과 은혜가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우리가 보아야 할 것
☞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길이 달라지고, 승패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볼 것을 보아야 합니다. 참 복음을 보지 못하고, 복음이 아닌 것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서 종교 생활을 하게 됩니다.
☞ 세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광야에 갔던 것이, 다른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언자를 보기 위해서였음을 확인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오는 것은, 나의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어린 양', '성령으로 세례 주실 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선포했었었지만, 그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초라한 모습으로만 보였을 때, 세례 요한은 실족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가 해결하셨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그 이름으로 인하여 실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 복음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변화시킵니다.
☞ 복음은 환상이나 막연한 이론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실을 증거할 수 있도록 먼저 사실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그 명령을 성취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신다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 치유는 복음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되어지면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하게 되어져서,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믿어지고, 묵상하게 되고,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생활화되어집니다. 성공할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 복음의 특징
☞ 참 복음을 붙잡게 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합당하도록 일어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많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내가 바라는 대로 기적을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증거로 구약에서 예언된대로 불치병자들이 고침받고, 가
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건설되어 진다는 것이 증거되기 위해서, 복음은 병든 자들을 치유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되어 집니다.
☞ 우리 교회와 교단이 교회 건축과 신학원 매입에 돈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들 중에는 부자들이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증거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마 11: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마 11: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마 1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 11: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마 11:7)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마 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 11:13)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마 11: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 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제목을 "네가 무엇을 보느냐?" 이렇게 잡았습니다. 사실은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그의 길이 달라지고, 또 승패가 이루어지는 사실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됩니다. 다락방 사역에도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만은, 다른 엉뚱한 것을 보고, 시험 들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볼 것을 본다는 초기 메시지 속에서 이 사실이 많이 강조되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거의 낙심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보다도 교회 다니다가 낙심 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그래서 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그들을 만나보고, 다시 회복시킬 것을 회복시킬 때에, 새 힘을 얻는 그런 사실들을 우리가 많이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볼 것을 못 보고, 쉽게 말해서 참 복음을 못보고, 복음 안 믿는 것을 보았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이 엉뚱한 그런 방향으로 갑니다. 이것을 우리가 흔히 '종교라!' 그렇게 말하죠. 뭐 예를 들어서 참 생명! 새 생명! 이것을 못보고 육신적인 것! 인간적인 것! 욕심적인 것! 이것을 보고, 또 그것을 마음에 관심을 둘 때에, 또 그것을 구하고 있을 때에, 이 기복주의가 나오고, 또 종교가 나오고, 또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교라는 것은 너무 좋은 일입니다. 참 선하고, 착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종교의 배경 이기도합니다.
그러나 왜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경계를 해야되느냐 하면, 종교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왜? 사단이 그것을 이용하기 때문에... 그래서 종교라는 사실에 대해서 자꾸 경계를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도, 교회 일을 하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영원한 생명, 참 복음,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교회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다른 일을 봅니다. 인간적인 것보고, 육신적인 것보고, 그렇게 되면 뭐가 나오느냐? 수단이 나와야 되고, 방법이 나와야 되고 이런 것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신비로 빠지기도 하고, 종교에 빠지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하지만 이제는 다른 열매와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그런 어떤 배경에서 성경에서 중요한 말씀을 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통해서 우리 예수께서 뭘 말씀했느냐 하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왔느냐 그러면서 세례요한에 대한 것도 되지만, 세례요한을 보는 세상, 사람들에 안목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7절이죠.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마 11: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마 11: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뭔가 볼 것을 보지 못하고, 또 그 볼 것을 보기 위해서는 어떤 볼 수 있는 장소로 나가야 되는데, 그것이 안 되었을 때 오는 불행을 총체적으로 여기에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서 뭐 쉽게 말해서, 좋은 옷을 입고, 또 비단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런데 광야에 가서 그런 것을 찾을 수가 있느냐? 이 인간들이 엉뚱한 욕심과 정욕으로 참 복음을 찾지 못할 때에, 다른 것을 찾으려고 애쓸 때는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결국 말해서 교회 와서 복음을 보고, 복음을 찾으려고 안 하고, 교회 와서 다른 것을 찾으려고 그럴 때에 욕심과 정욕을 채우려고, 그럴 때에 이것은 너무 불행스러운 그런 사실이 됩니다. 한번 받아합시다. "여기가 좋사오니 복된 자리입니다!" 진짜 믿습니까! 여기가 좋사오니... 그러고서는 복된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것을 내 기준으로 해서 뭐냐? 참 생명을 찾으려는 눈을 못 뜨고, 다른 것을 찾으려고 그럴 때는, '여기가 좋사오니' 다른 게 나옵니다.
쉽게 말해서 좋은 옷을 입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 메마른 땅, 광야에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그런 꼴이 되게 되는 겁니다. 거기에는 실망과, 거기에는 고통만 따라올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죠. 그러니 교회라는 곳에서 여러분들이 많은 사람들이 왔다가 실망하고 가는 배경이 그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에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잘난 사람 보기 위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교회는 옷 잘입은 사람보기 위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교회는 목사가 '잘났다, 못났다!'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교회 목사가 복음 전하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교회 와서 복음 들으면, 교회로서는 여러분에게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요. 그곳에 모든 것이 포함이 되어 있고 모든 축복과 은혜가 약속이 되어지는 겁니다.
역시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이 여러 가지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 세례요한에게 아주 중요한 문제점을 오늘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4절에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무슨 말씀이냐 하면, 요한이 옥에 갇혔고, 오랫동안 뭔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옥에 갇혔습니다. 옥에 갇혔고, 이제 죽음 직전에 이런, 그런 지경에 요한이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께 가서 이렇게 물어 보라 그랬습니다. 뭐냐하면, '정말 당신이 메시야입니까! 우리가 오실 이를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아니면 당신이 정말 맞습니까!' 이런 질문을 했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한 것이 바로 4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말하라! 그러면서 5절에 쭉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며 그 다음에 6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을 했어요.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랬습니다. 정말 중요한 이야기죠.
여기에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요한복음 1장 30절에 보면, 30절부터 쭉 나가면서 34절까지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한 그런 증거가 나와있어요. 30절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29절에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말씀하고, 33절에는 성령으로 세례주실 자라! 말씀하고 34절에는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세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선포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도 위대한 분이요. 너무나도 엄청난 역사를 일으킬 자로 묘사되고, 선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선포된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요한의 지금 이 옥에 갇혀있는 동안에 뭘 느끼게 되느냐 하면, 세례요한의 기대와, 세례 요한의 제자들에 기대와 전혀 다르게 엄청난 위엄과 영광으로 역사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뭐냐하면 그 기도와 전혀 다르게 초라하게 나타났습니다. 아주 세례요한의 생각과, 또 그 다음에 그 제자들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데 대해서 여기 문제가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점에서 주의해야 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믿음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세상 적으로 이점에서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시험들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그 이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러면서도 오늘 성경에 말씀한 것처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실족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11장 6절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러분들 생각으로 예수가 어떨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어떤 축복과 은혜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인간적인 생각과 욕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주실 은혜와 축복을 상상하다가는 뭐가 오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오히려 실족하게 되겠다! 그런 내용입니다. 많은 경우 이점이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나거든요. 교회 와서 '축복을 받는다!' 그러면 성경대로 축복이 아니고, 우리의 욕심과 생각에 의해서 축복을, 그리고 상상하고 그대로 안되면 하나님 죽었다! 그러고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제가 오늘 이번에 그 동경에 가서도 어떤 사람을 만나서, 하나님을 믿었는데, 하나님의 이런 축복과 은혜를 주실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자기 부모를 향해서도, 하나님을 믿는 부모는 복을 받을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니까, 뭐라 그러냐 하면, '내가 안 믿겠다!' 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축복을, 당신들이 받으면 믿고, 아니면 안 믿겠다!' 이게 세상사람들의 생각이거든요. 교회 나오는 여러분들도 많은 경우 이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복을 받으면 믿겠고, 아니면 안 믿겠다!' 그래서 예수께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왔기 때문에, 예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내 이름으로 실족하지 아니하면' 실족이 아니라 낙심만 안 해도 복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오늘 중요하게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죠.
이때에 세례요한의 이런 어떤 의심이나, 이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그런 문제점을 조금 짚어가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돌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처한 환경이 그런 모든 여건이, 그런 입장이, 그런 의심을, 그런 문제를, 그런 낙심을 가져올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히 예수님께서 메시아요. 그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요. 더 큰 권능이요. 능력자라면 세례요한이 자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다가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들었을 것이고, 안다 그러면 한번쯤은 뭔가 위로의 말씀도 주시고, 한번쯤은... 예를 들어서 인간적으로 찾아 올 수도 있는데, 뭐 한번도 안 찾아오시고, 전혀 냉정하시고, 연락도 한번 없으시고, 이러니까 뭔가 세례 요한이 쫌 그럴 수 있어요.
나는 이 문제에 있어서 좀 느끼는 것은, 여러분 예수 믿고, 은혜 받게 되고, 은혜롭고, 뭔가 인간적으로 다 잘되면 문제는 괜찮은데, 예수 믿고, 또 주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뭔가 자기에게 큰 어려움이 왔고, 힘든 일이 왔다 그러면, '교회가 그럴 수 있느냐? 아무개 장로가 그럴 수 있느냐? 누가 그럴 수 있느냐?' 이러면서 뭐냐? 누구를 의심하느냐? 하나님께 대해서 낙심하게 됩니다. 이런 배경이 너무 많거든요. 그 세례요한이 어떤 면에서 이런 환경에, 이런 낙심으로 나왔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잘 보셔야 합니다. 오히려 낙심은 더 큰 믿음을 일으키는, 믿음을 이끌어 내는 과정일수 있습니다. 낙심만 안 하면, 말하자면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만 잃지 않으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올 수 있더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뭐라 그러느냐 하면, 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5: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창 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지금까지 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신다고 계속 말했거든요. 계속 말하고, 아들도 준다고 계속 말했는데, 아들 주신다고 말한 후에 20년이 넘도록 못 받았고, 축복을 주신다고 말했는데, 계속해서 또 돌아다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15장에 축복을 주신다고 또 말씀하니까! 뭐냐하면 의심이 생깁니다.
환경과 지금까지 이어온 이 일들 때문에 의심이 생겨서 뭐라 그러느냐, 하나님께 감히 이런 말을 합니다. "(창 15: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나님이 이 땅을 주실 것을 뭐로 나한테 증거 해줄 겁니까! 증명해 주십시오!' 어떤 면에서, 여러분 이 말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습니다. 안 그러면 이 말조차도 나올 수 없어요.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제시한 것이 제사였습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 제사제도! 그러면서 짐승을 다 배를 갈라 가지고, 또 이렇게 제사를 지내는 그런 사건을 말씀을 해 주셨죠.
그 다음에 사사기 6장 36절에 보면,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그러면서 37절에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시려고 약속을 했거든요. 기도온에게!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기드온의 환경이 그렇지 못합니다. 미디안에게 계속 약탈당하고,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습니다. 이럴 때에 기드온이 하나님 앞에 기도한 겁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바로 여기에 내용입니다.
뭐냐하면 여러분 극단적인 환경과 ,어려운 문제 속에서 낙심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에 갖다놓아도, 말하자면 믿음만 포기하지 않으면, 여기에 더 큰 영광스러운 믿음으로 이끌어 오는, 그러니까 업그레이드 해주는 귀중한 기회가 되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양털을 놓고는 하나님 양털에만 이슬이 있게 하시고 땅은 마르게 하옵소서' 그 다음에 또 그 한번 다시 합니다. '양털에는 바짝 마르고 땅만 젖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그대로 증거를 주셨습니다. 비로소 기드온이 일어나서 기드온 300명의 용사가, 그 엄청난 군대를 횃불과 항아리 들고 나가서 승리하게 하셨던 우리의 신앙의 역사를 볼 수가 있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환경과 사건과 일들이, 낙심할 수밖에 없을 때에 오는 불 신앙들이, 이건 어쩔 수 없이 들어 닥칠 수 있습니다. 그때에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 순간이 엄청난 믿음으로 이끌어 올릴 수 있는, 사실을 보게 하는 기회입니다. 이 순간을 통해서 하나님이 엄청난 축복과 은혜의 기회를 보게 하시고, 인도해 나가시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역사 속에서도 많은 경우 반복이 되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나는 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이런 어떤 기회가 오늘 우리에게 사실적인 기회로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런 생각도 해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믿고, 여러분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엄청난 복음은 환상이나 꿈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뭐라 그랬느냐 하면,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이랬습니다. 무슨 말이냐? 복음은 환상이나, 아니면 막연한 이론이 아니다! 사실이다! 그러면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말하라! 복음을 그냥 막연하게 설명하려고 하지말고, 사실을 말하라! 그리고 '사실을 말하라!' 그럴 때에 반드시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이게 증거라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사실 속에 간단한 것 아닙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증거를 약속해 주시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명령하실 때에, 하나님이 명령하실 것까지도 실행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신 것이 성경에 약속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복음을 받을 때에, '예수는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럴 때에 뭐냐하면, 이론이다! 막연한 어떤 이론으로 느끼고 있을 때가 많아요. 아닙니다. 그런 말씀할 때에 말씀 속에서는, 그 명령 속에 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신다는 것이 성경에 약속입니다. 그러니까 뭔가 '치료를 한다! 치료를 받는다! 한 주간 약속을 받았다!' 그러면 내가 현장 속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이 그것조차 주시겠다는 축복과 은혜의 약속이, 성경에 사실로 인도되는 약속인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치유라고 제가 늘 말씀을 하고 보는데, 치유라는 것이 뭐 특별히 고친다! 이게 아니거든요. 복음을 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되는 것이 치유입니다. 영적 병이 들어놓으면, 영적인 문제가 생기면 복음을 못 깨닫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그런 문제가 해결되면 복음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깨닫게 하시는 역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깨닫게 될 때에, 우리는 뭔가 신앙 생활하면 뭔가 하나님께서 막 빛을 주시고, 어떤 뜨거움을 주시고, 어떤 신비로운 것을 주어서 탁 눈을 열게 하시고, 이런 쪽으로 옛날에 우리는 생각이 갔었다! 이것이죠. 그런데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성경은 복음은 뭐냐? '복음은 맨 정신이 되는 것이 복음이다!' 한번 받아합시다. "복음은 맨 정신에 되는 것이다!" 이 말이 좀 이상한데, '맨 정신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은, 뭔가 막 허왕되고, 뭔가 기적을 바라고, 뭔가 욕심을 바라고, 뭔가 이런 게 다 사라지고, 이 사라지고 정상적이 되는 것이 복음이다! 옛날에 우리 뭔가 믿음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뭔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막 기적을 내려주고, 뭐 돈 뭉텅이를 내려주고' 그게 아닙니다.
여러분 그리고 일반 신앙 생활하면, 이상하게 해도 뭐 돈 뭉텅이가 떨어져야 되는데, 그 말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을 수 없는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게 하늘나라의 영광이죠. 그러나 이 땅에서 여러분과 제게 주신 축복은 맨 정신으로 살아야 됩니다. 내가 일하는 데로 복을 받는 것이 성경에 축복이라는 배경이 가장 기본적인 겁니다. 상이라는 배경에 지난번에 설명을 드렸죠. 그렇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뭐냐? 복음은 사실입니다. 상식이하의 것도 아니고 상식수준에서 얼마든지 우리가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이 이것이 꿈으로 어떤 아니면 이상으로 아니고 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 이 축복과 은혜가 와질 것도 믿고 내가 누려질 사실도 확인하고 그것을 현실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이 성경은 복음이라 그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치유된다! 그럴 때에, 치유는 뭔가 하루아침에 치유되는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맨 정신이 돌아오고, 그 다음에 지극히 상식적으로 돌아오고, 뭔가 지극히 머리가 정상적이 되고, 이런 것이 치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이 성취된다!' 그럴 때에 '아, 맞구나!' 말씀 들으면 말씀이 믿어져요. 그 말씀이 뭐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져서 믿어지는 게 아니고, 정상으로, 맨 정신으로, 그 말씀이 믿어지고, 그 다음에 그 말씀가지고 붙잡고, 묵상하고, 그 다음에 그 말씀가지고 묵상할 때에, 그 말씀이 한 주간, 그 묵상한데로 성취가 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래서 이것이 꿈이 아니고 사실적으로 하나하나 진행이 되어 가는 현실을, 현실을 이상하게 보는 게 아니고, 진실하게 볼 수 있는 이런 어떤 역사와 축복이 바로 복음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예수 처음 믿는 사람들이 엉뚱한데 시간 다 보내고, 뭔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해야 될 때는 일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는데 시간 다 빼앗기고, 이런 경우가 많고, 그래서 세상에 인정을 받아야 될 때에는 인정을 못 받고, 이런 어떤 것들이 반대로, 역으로 나가던 것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우리가 주일 성수 한다! 그럴 때에, 주일 성수하면, 주일날 못한 것 하나님께서 월요일 날 한꺼번에 쏟아 부어 주리라!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실 것은 주일성수 안 한만큼 손해가 옵니다. 그러나 주일성수 안 한만큼 손해가 오는 것 같은데, 그 다음에 따지고 보면 이 손해가, 손해가 아니더라는 겁니다. 그러니 맨 정신을 이걸 뭔가 그 사실자체가 여러분 생활과 사건에 하나하나 생활화 되어가게 될 때에,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여러분에게 실질적으로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공할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게 복음이고, 승리할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게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직장이나 일터에 이길 수 있는 생각을 하게 하고, 이길 수 있는 삶을 살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 복음입니다. 뭐냐하면 성공할 수 있는 생각은 안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생각만 하고,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성공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은 신비주의자들이나 생각하는 것이고, 쉽게 말해서 이런 것입니다. 일터에 가서 일을 전혀 안하고 맨 날 놀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리라!' 이것은 종교인들이 하는 것이고, 이것은 뭔가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이지, 내가 일터에 갔으면 일을 해야 되는 겁니다. 공부할 때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되는 겁니다. 기술을 익힐 때는 기술을 익혀야 되는 겁니다.
복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럴 때에 맨 정신으로 살아가요. 그러면서 사실적인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이 여러분 생활과 삶에 이게 습관이 되도록, 이게 현실적인 삶으로 이어져야 되는 것을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여러분 말씀들을 때에, '말씀을 묵상하라!' 그럴 때에, 주일날만 예수 믿고 교회 왔다는 식으로, '아, 오늘 복 받겠다! 한 주간 복 받겠다!' 그런 말씀이 아니고, 주일날 여러분 오면, 말씀을 딱 받잖아요. 말씀 받으면, 그 말씀을 마음속에 딱 묵상하게 됩니다. 한 주간 계속해서, 그래서 이 묵상을 한다! 그럴 때에 그 말씀을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묵상하게 되면, 그 말씀이 성취되는 역사가 말씀에 힘이 있고, 능력 있는 그런 실제와 사실을 보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어떤 역사를 말씀해 주시면서 뭐라고 말씀했느냐 하면, 소경이 눈을 뜬다고 했어요. "(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그때당시 유대인들에게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불치병들입니다. 기후가 건조한 땅이고, 또 먼지가 많은 땅이라서 소경들이 많았다! 그 다음에 또 역시 마찬가지로 나병환자들이 많았고, 이런 어떤 것들이 그때 그 당시에 흔히 일어났던 그런 문제들이죠. 이런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면서도 불치병들입니다. 그러면 복음이라는, 하나님이 이 분을 참 메시아로 보냈다는 증거로 뭘 했느냐? 선지자들이 예언하신 그 예언의 말씀이 이 사람을 통해서 성취가 되어지게 될 때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 사람이라는 신뢰성이 여기서 확인되어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런 역사들을, 구약에 이미 예언이 되었던 그 예언처럼, 오늘 여기에 설명하는 겁니다. '소경이 보고, 문둥병이 낫게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되었다!' 그렇게 말씀했죠.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과연 참 복음을 잡았을 때에, 많은 경우 불치의 병들이 떠나게 되는 기적들이 나오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여러분들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특별히 복음을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낫는다! 된다!' 이 말에 배경이 뭐냐하면, 참 복음이라는 증거로, 이런 사실과 역사들이 나오더라 이겁니다.
이번에 가서 그 우울증이라는 문제가지고 일본에 메시지를 전해 드렸는데, 그 일본에 가니까, 우울증이라는 말을 가지고 이제 전하게 되니까, 뭐라고 말을 하느냐하면,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겁니다. 그러니 저녁을 먹다보니까 어떤 한 분을, 우리 그 신 목사님이 아주 참 잰틀맨인데 그 식당에서 영접을 시켜요. 일본말을 하니까 알아듣지는 못하고, 부지런히 설명을 하더니만 이 사람이 밥 먹다가 밥도 안 먹고 앉아 가지고, 남은 밥 다 먹었는데 둘은 앉아 가지고 막 이야기하면서, 그 설명을 하고 영접을 하는데, 이 일본인이 손을 잡고 영접기도를, 그 여럿이 많은데서 하더라 구요. 하고 난 후에 뭐라 그러느냐 하면, '이 분이 그 우리 금방 들어온 누구 친구인데, 일본인 친구인데, 아무리 영접을 시키려고 그래도 영접을 안 하더라' 이겁니다. 지금까지!
그리고 만나 가지고 아무리 영접을 시키려고 그래도 다른 소리하고, 자꾸 영접을 피하고, 그런데 그 날은 왜 했느냐?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우울증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메시지를 전했는데, 이 사람이 멀쩡한데 뭐가 왔느냐? 우울증이 와 있었어요. 우울증이 와 있는데다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이 사람이 메시지를 받으면서 뭔가 느낌이 있었던가 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니까! 그러니 이 사람이 설득력이 생겨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설명이, 그 먹는 자리에서 설명을 했어요. 그러니까 '영접하겠냐?' 이러니까 '영접하겠다!' 이겁니다. 일본인들은 뭔가 우리하고 조금 다른 것이, 확실하다 싶으면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하게 돼요. 그러니까 여럿이 앉아 있으면 또 낮선 사람 아닙니까! 앉아 있는데서 손을 잡고 막 예수를 그리스도로 따라서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영접을 그 동안 안 했는데, 했다고 그러면서 이야기를 해요. 무슨 이야기냐? 여러분 참 복음을 붙잡게 되면,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역사가, 이것도 내가 바라는 기적과 역사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따라서, 기적과 역사가 그의 형편과 사실과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일에 합당하도록 이루어주신다! 성취해 주신다! 이 사실들이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많은 경우 체험했던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것들이 우리 생활 속에 너무 많지만 항상 우리가 못 보게되는 이유가 뭐냐하면, '내 생각으로 기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내 뜻대로 기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받아합시다. "이미 우리 가정에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졌다!" 할렐루야! 이 찾아내지를 못합니다. 볼 것이 보여지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감사가 안 나오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바라는 기적을 이루어 주옵소서!' 그건 욕심과 정욕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많은 경우 실패하고 넘어지는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어떤 배경들을 조금 놓고 성경이 오늘 중요하게 뭐라 그랬느냐 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보내시면서 메시아 되는 증거를, 또 메시아의 증거로 보아야 될 것을 뭐라고 또 말씀했느냐 하면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그랬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많은 말씀을 다 해석을 못하고요. '가난한 자들이 복음이 전파된다!' 그랬는데, 정말 그 복음은 구약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원하는 그런 어떤 수준과, 그런 어떤 청중이 아닌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때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할 대상이 아닙니다. 가르칠 대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소용이 없어요. 거기 가르치면 뭘 받아야 됩니까? 돈을 받아야 되는데,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과외를 시킬 수가 없어요. 그러니 가난한 사람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을 줄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에 메시아는,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율법주의자들과 달리 그분은 이 땅에 오셨을 때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말하자면 돈이 없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돈을 주고 교습을 받을 수 없는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이다!' 이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어 가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편 72편 2절에 보면 "저가 주의 백성을 의로 판단하며 주의 가난한 자를 공의로 판단하리니" 4절에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또 12절에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 (시 72:13) 저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긍휼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 이사야 61장 1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참 복음이라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다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증거가 구약에 쭉 예언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선호한 부자들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소외시켜 놓았던, 그들에게 복음이 전파될 때에 이 사람이 바로 메시아의 증거다! 그 사실입니다. 그 세례요한이 그러니까 '볼 것을 보라!' 이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내가 많이 깨달았다는 것, 이전에 교회봉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아하, 그때 그것을 놓쳤구나!' 싶은 게 있어요. 교회가 부흥이 되려고 그러면 기도하고, 막 그렇게 좀 열심을 내었을 때에, 그때에 특징이 뭐냐하면 꼭 이상한 사람을 붙여줘요. 그러면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드느냐 하면, 이 한사람에게 빼앗기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그때는 뭐 한사람, 이상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것 붙잡고 몇 날 몇 일을 기도하고 그랬으니까!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사람을 좀 붙여주시려면 쓸만한걸 붙여 주던지 이상한 것 붙여서 힘만 빼고 사람 죽을 지경입니다! 안됩니다!' 낙심했을 때가 많았거든요.
그러니까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교회가 부흥되는 증거가 뭐냐? 이상한 사람이 많이 들어오면, 교회 부흥의 증거랍니다. 그게 하나님의 시작이에요. 이게 뭐냐? 예수가 메시아요, 그리스도시라는 증거요. 첫째인 겁니다. 왜? 그런 사람이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한길뿐이니까!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다락방 사역을 하면서, 뭐 특별히 치유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야, 다락방에 만큼 이상한 사람이 많이 들어온 데가 없고, 다락방인 만큼 뭔가 이 정신적으로 이상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 단체도 없겠구나!' 그런 것을 느꼈을 때가 많거든요.
'아, 이것이 복음이구나!' 말세에 갈 때가, 말세에 여러 사람들이 박대를 받고, 말세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 받을 수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그분이 참 구원자이시기 때문에, 참 구원자이신 그분이 계시기 때문에, 다락방이라는 곳이, 뭐 다락방이다! 말할 것도 없죠. 참 복음을 가진 교회에, 참 복음을 가진 자에게, 참 복음의 증거로 이런 역사가 나올 수밖에 없구나! 이들이 왔다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일으켜 나가시는 사실과 실제가 체험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엄청난 축복과 은혜가 여러분과 저의 문제거든요.
그리고 어떤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예수께서 오셨다! 메시아라는 증거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이 배경 속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도저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가난하고 병든 사람, 이상한 사람들만 이렇게 모두 모였는데,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증거로 이 축복과 역사가 시작된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기독교에 역사가 부자의 역사가 아닙니다. 요즘 복음 받게 되면, 복음 받는다! 참 돈 떨어진 사람 복음 받고, 이상한 사람이 복음 받는 경우가 많거든요. 왜? 어렵고 힘드니까 복음을 찾아 온 것이거든요. 그런데 우리 힘으로, 우리 능력으로는 엄청난 세계 복음화 이루어 나갈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가난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증거 하시는 것이 기독교요, 참 복음에 증거다! 그렇게 해석을 한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나는 이 교회 건축하고, 또 이 덕평 수련원, 총신 연구원을 매입을 했습니다. 사놓고 보니까, 강서로도 뭐 한 60억 교회 대 건축을 시작했어요. 우리도 지금 현재 대 건축을 수주100억 자리 교회를 지으려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에 전부다 지금 이제 다락방에서는 전부 교회 건축한다고 다같이 일을 벌여놓고 있는 이 판에, 이러는 참에 뭔가 돈 내어놓으라는 겁니다. 아마 오늘도 이제 그 당회를 해야 되는데 여러분에게도 또 뭔가 이 참에 하나님의 역사를 지금 봐야 되거든요. 있는 데서, 우리가 할 수 있는데서 하면 '아, 돈 있었으니까 했다!' 그러나 전혀 우리가 할 수가 없는데서 하나님은 세계 복음화의 엄청난 역사를 지금 이루어 가시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하셔야 될 일이지,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건축도 뭔가 우리 교인들 가만히 보니까, 꼭 여기게 똑 같아요. 가난한 자들이 복음을 받았는데, 부자가 없어요. 부자가 있어도 그저 촌부자지 부자가 없어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세계 복음화라는 엄청난 일을 맡겼거든요. '아, 이것이 난 처음에는 그 돈이 다 어디 있냐? 이런 쓰여질 때에 돈이 없고, 돈이 다 어디 있냐?' 이런 소리를 하고 그랬는데, 돈이 어디 있는 게 아니고 그게 정상이다! 복음은 누가 하느냐? 하나님이 하시겠다는 겁니다. 믿음입니다. 비록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같고, 할 수 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믿음을 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향할 때에, 여러분 가정과 교회에 축복이 다가 아니고, 여기에는 엄청난 기적과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사실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가난한 자로 복음을 시작했지, 부자로 시작 안 했습니다. 어떤 면에서 부자로 시작했다.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어떤 면에서 정말 우리교회가 복음 전할 수 있는 교회요, 세계복음화의 교회다! 할 수 있는 이유가 가난한 자로 시작했기 때문에, 더 확실한 증거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셔야 되기 때문에, 오늘 성경에서 말씀했습니다. 부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필요 없습니다. 율법주의자들에게는 부자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부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이 땅에 힘있는 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예수님 자신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있기 때문에, 그 분의 권세와 능력으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분을 신뢰하면 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고, '네가 무엇을 보느냐?' 여러분과 저의 눈이 열려져서 하나님이 말세에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보여주실 것을 보고, 믿을 것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축복과 은혜가 이루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우리가 보아야 할 것
☞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길이 달라지고, 승패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볼 것을 보아야 합니다. 참 복음을 보지 못하고, 복음이 아닌 것을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서 종교 생활을 하게 됩니다.
☞ 세례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광야에 갔던 것이, 다른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언자를 보기 위해서였음을 확인시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에 오는 것은, 나의 세상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어린 양', '성령으로 세례 주실 자',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선포했었었지만, 그 예수께서 세례 요한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초라한 모습으로만 보였을 때, 세례 요한은 실족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가 해결하셨다'고 말하면서도, 오히려 그 이름으로 인하여 실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바라고 생각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입니다.
▣ 복음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변화시킵니다.
☞ 복음은 환상이나 막연한 이론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실을 증거할 수 있도록 먼저 사실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 속에는 그 명령을 성취할 수 있는 힘까지 주신다는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 치유는 복음을 바르게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치유되어지면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하게 되어져서, 말씀을 들으면 그 말씀이 믿어지고, 묵상하게 되고,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생활화되어집니다. 성공할 수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복음입니다.
▣ 복음의 특징
☞ 참 복음을 붙잡게 되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과 역사가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데 합당하도록 일어납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많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내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 '내가 바라는 대로 기적을 이루어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증거로 구약에서 예언된대로 불치병자들이 고침받고, 가
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건설되어 진다는 것이 증거되기 위해서, 복음은 병든 자들을 치유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전파되어 집니다.
☞ 우리 교회와 교단이 교회 건축과 신학원 매입에 돈을 필요로 하지만, 우리들 중에는 부자들이 없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에게 요구되어지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발걸음을 내디딜 때, 하나님께서 기적을 증거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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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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