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추수할 일꾼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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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마 9:32)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마 9:33)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
(마 9:34) 바리새인들은 가로되 저가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
(마 9:35)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목을 "추수할 일꾼" 이라 이렇게 잡았습니다. 맥추 감사절로 우리가 모였는데, 하나님 앞에 헌금하는 날이다! 이전에 먼저 우리가 헌금을 '누가 하느냐?' 가 중요합니다. 부자가 어떤 단체에 기부하는, 이렇게 돈을 주는 것은, 그것은 기부행위요, 그건 자선사업이지, 헌금하고는 다릅니다. 아무리 가난한 자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돈은, 믿음으로 드리는 돈은 헌금입니다. 같은 헌금에 축복을 받고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있어도, 어떤 사람은 기부금으로 내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진짜 축복의 헌금을 하나님 앞에 드릴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뭘 한다!' 이전에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뭐가 되어야 되느냐?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 이것을 좀 말씀을 드리고, 뭐 헌금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전에 오늘은 이 땅에 여러분과 제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귀한 일꾼들로 세워져야 되겠다! 그런 마음입니다.

추수할 시기에 농촌으로 이렇게 가보면, 벼가 이제 한참 다 익어서 곧 이삭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추수할 일꾼이 없어서 추수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못해 너무 마음이 아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해에도 그랬습니다 만은, 가을철에 조금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농촌에 갔다 오는 길에 보니까, 벌써 벼 벨 시간이 다 지났는데도 베지를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나락이 다 떨어지고 그런 상황이 있는데, 왜 이러느냐 하니까! 사람이 없데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되었다!' 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 참 마음이 아프다!

오늘 특별히 성경에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가장 우리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시고, 고통하고, 괴로워하셨던 부분이 본문에 말씀으로 보여집니다. 그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말세에 정말 생명을 받아 영원한 복음을 영원한 축복으로 추수할 그런 시기에, 이 말세의 시기에, 추수할 수 있는 일꾼이 없어, 복음에 증인들이 없어서 망하는, 방황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셨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9장 36절에 보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면,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 9: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마 9: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이 마지막 시기에 어떤 면에서 얼마나 교인들이 모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나 이 마지막 시대에 정말 복음에 증인으로, 그리고 많은 생명들을 지금 추수할... 무르익었어요. 복음을 받고, 복음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되는 이런 적기에, 그런 일꾼들이 없다는 것은 너무너무 불행한 일이요. 또 이런 일꾼이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맥추 감사절입니다. '하나님은 돈은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에게 우리 가정에 돈을 주십시오.' 그것이 아니라, '말세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일꾼을 주시옵소서.' 이 중요한 그런 기도가 되죠. 그리고 우리가 보면, 뭐 돈 있다고 하나님의 필요한 일에 쓰임 받고, 쓰여지는 경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특별히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우리에게 돈을 주시고...' 이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하나님 교회를 건축할 제자를 붙여 주옵소서. 교회를 지을 일꾼을 붙여 주옵소서.' 이게 가장 귀중합니다. 기술 있다고 교회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뭘 잘한다고 짓는 게 아닙니다. 정말 하나님 앞에 선 일꾼이라야, 복음에서 참 주의 뜻을 따라서 말세를 살릴, 교회 건축에 쓰임 받는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지을 돈이 없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정말 교회를 건축하고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일에 주의 종들을 일꾼 삼아 주옵소서.' 이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가 또 한번 마음에 새겨야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세를 살릴 수 있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교회를, 그리고 세계복음화 위해서 정말 추수해야 될 곡식은 많은데, 추수할 일꾼이 부족한 이시기에 일꾼을 세워 달라고 할 때에 성경은 어떤 일꾼이 필요하냐? 어떤 사람을 하나님은 일꾼으로 세우시기를 원하느냐 이것이 오늘 어떤 과제보다도 시급하게 해결해야 될 과제인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지난번 월드컵 축구가 우리나라에 열렸을 때에, 방송국 채널을 선택할 때에, 저는 거의 MBC를 선택을 했어요. 여러분은 어디를 선택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은, 아마 비슷한 소리를 제가 많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MBC에는 해설위원 누가 있어요? '차범근' 씨가 있어요. 아마 거의 제가 나중에 들어보니 다 거의 그렇게 선택했다! 그래요. 그런데 MBC 해설하는 차범근씨가 뭐 어떤 사람보다도 열정으로, 실감 있게 해설을 하시더라 구요.

물론 거기에는 자기가 축구 선수였고, 또 구체적으로 축구감독을 했고, 그런데 더 확실한 것은 지금 그라운드에 자기 아들이 뛰고 있어요. '차두리' 가 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뭐 축구를 이기고 지는 문제를 떠나서, 누구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실감 있게, 그 그라운드를 설명을 하더라 구요. 듣는 사람이 볼 때에 저 사람이 너무 심하지 않느냐 할 정도로, 열정을 가지고 설명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우리가 축구를 보면서 채널을 MBC로 돌리는 그런 경우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참 중요한 것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누가 설명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달라집니다. 일본 사람이 설명하면, 나쁜 놈이요. 우리나라 사람이 설명하면, 누구입니까? 영웅입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설명하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누가 말하느냐? 이건 전혀 달라집니다. 불신자가 설명한 것하고, 그래도 또 교회 다니는 자가 설명하는 것과 실제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 자가 설명하는 것과는, 이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너무 다른 설명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나를 제 아내가 설명하는 것과, 우리 교인들이 설명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설명하는 것과 전혀 다릅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이 지금 일꾼으로, 이 땅에 복음에 증인으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누리고, 얼마나 사실적으로 내 안에, 삶에 생활에, 실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느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은 자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가 바로 알 수 있습니다. 너무 알 수 있고, 너무 실감되는 그런 문제입니다.

지난번에 일본에서 손님이 와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중에서, 일본에서 한국에, 특별히 다락방 메시지를 통역을 하려고 그럴 때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그래요. '그게 뭐냐고 그러니까!' 단어 설명이 어렵다! 그래요. 뭐냐하면, '축복'이라 그러면 우리가 옛날에 축복이라 하는 개념과 또 다르거든요. 축복 그러면 7가지 축복이 안 나옵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축복이라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그 축복! 특별히 다락방이 말하는 그 축복의 개념과 전혀 다르데요. 다를 수밖에 없죠. 한국도 다른데, 일본은 더 다르다! 이겁니다. 축복이라는 그 개념을 설명하기가 어렵고,

그 다음에 제일 어려운 부분이 뭐냐하면, '누리다!' 하는 말이 설명이 안된데요. 그러면서 뭐라 그러느냐? 한국에 누리다라는 말은 이 진짜 멋진 말이다! 그래요. 일본은 도저히 누리다는 말이 설명이 안 됩니다. 영어에도 누리다라는 말이 설명이 안돼요. enjoy 그러는데, enjoy는 기뻐한다! 좋아한다! 이런 건데, 그 말이 안 되는 것이거든요. 그 설명이 안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고 삽니다! 이게 보통설명이 아니에요. 그러니 누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 예수그리스도를 뭔가 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또 말하는 과정에서 누리면서 말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런 차이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누린다는 것이 바로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 정말 사실적인 그런 안다는 것이 아니라 답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실제적인 답을 가지고 살아야 이것은 일꾼이 된다! 또 사실적으로, 그 사실과 축복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누리며 가지고 산다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기쁘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말씀했습니다 만은, 뭐 구원이다! 결국 그리스도를 누리는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까 월드컵 때에, '참 이 재미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걱정 이전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다! 월드컵이다! 그 한 골 들어갔던 기쁨과는 비교가 안 된다! 이게 지속이 되어 버리면, 뭐 문제는 말할 것도 없죠.

쉽게 말해서 왜 신앙 생활하는 중에서 허무에 빠지고, 왜 신앙 생활하는 중에서 실패에 빠지고, 왜 신앙 생활하는 중에서 고통에 빠지고 그렇게 되느냐? 그게 한 마디로 말해서 답을 정확하게 갖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 때문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괴롭다! 슬프다! 아프다! 또 뭔가 어렵다! 힘들다! 이런 문제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 자다!' 그러면 거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거기서 다 나와 버려야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이것을 한마다로 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 그 언약에 부딪히는 순간에, '다구나! 이것이구나!' 이제 더 다시 필요가 없어요. 왜? 전부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그 언약 속에 세워지고, 언약 속에, 언약에 부닥치는 순간에 '알았다!' 지금까지 알았다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알았다! 다구나!' 지금까지 다 당한 것은,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우리말 설명에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어요. '다구나! 아, 알았습니다! 뭐 실패했다! 아프다 슬프다! 그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서 다 해결되어 나온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2절에 보면,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왜, 그렇게 했느냐? "(골 2: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다구나!' 이것이 그냥, 그냥 '다구나!' 라는 그 말이 아니고 다 구나! 실제가 되어 버려야 됩니다. '아, 알았습니다! 알았습니다!' 이 실제가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뭐냐? 예수 그리스도 알았습니다. 뭘 알았느냐? 아는 게 없어요. 다구나! 뭐 다냐? 다가 아닙니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자꾸 부닥쳐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는, '아프다! 슬프다! 어렵다! 힘들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모든 것이 다 나오게 되는 것을 성경이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그건 가장 확실한 설명이 마태복음 16장 13절부터 16절 아닙니까! 그 16절에 보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우리가 늘 듣는 말씀 아닙니까! 이 말씀이 어느 순간 나와 여러분에게 사실로 부닥쳐 왔을 때에, 그 사실의 언약이 붙잡혀 왔을 때에, 여기는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설명이 되어질 수 없는 확신과 담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마 이 말을 베드로가 고백을 할 때에 그 심령이 떨렸다는 정도가 아닐 겁니다. 이 심령이 베드로가 고백되어 질 때에 아마 유일하게 이 지구상에서 첫 번째 고백되어 질 때에 베드로의 중심이, 심령이 어떠했을 것인가? 상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말씀을 할 때에, 처음에 예수 그리스도 언약 그 속에, '모든 것이 있구나! 다구나!' 제가 창세기를 설명을 듣는 동안에 지금까지 복음, 복음 들었고, 신비도 했고, 뭔가 기도도 했고, 응답도 받았다고,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아, 여기에 다 있구나! 모든 것이 되었구나!' 이런 것이 충격으로 부닥쳐 왔을 때에, 그때에 느낌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거든요. 그건 뭐 말로 이 표현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우리 성경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충격이 컸더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그러면서 뭐라고 말씀했느냐?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 시니라" 그랬습니다. 왜?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이 사실이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우리의 어떤 인간적인 것으로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오직 뭐로 됩니까? 은혜로 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좀 깨닫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 나고, 내가 머리 좋아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혀 은혜로 이 일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전혀 이 일이 내 가슴속에, 우리 중심 속에 부닥쳐 올 수 있는 것은, 은혜로 부닥쳐 오는 것이지, 어떤 인간적인 것으로 부닥쳐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성경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이 그 안에 있구나! 다구나!' 그 일이 우리는 구체적으로 믿음을 가지고 이 사실을, 이 발판을 놓아두어야 되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이 세상 만사를 다 지으시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권세 있는 주권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이겁니다. 하나님의 완벽하신 계획 속으로 우리가 들어왔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다 끝났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에게 부닥쳐 있는 모든 문제! 뭐 이건 어렵다! 힘들다! 이건 괴롭다! 고통스럽다! 과정일 따름이다! 안 그럽니까! 그런 게 백 번, 천 번 와도 괜찮습니다.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그 능력의 손안에 들어와 버렸습니다. 이미 여러분과 저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다 해결하셨습니다. 누구의 이름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에 이 일이 이루어 졌습니다. 혹시 안 이루어 진 것 같이 보이는 것은, 우리 생각일 따름이지!

그래서 이것을 가지고 우리가 뭐라고 말하느냐? 믿음이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중요한 문제는, 뭐가 안 된다! 힘들다! 어렵다! 믿음 가지고 보면, 그래서 지난주에 관점을 바꿔라! 그랬습니다. 믿음의 시각으로 보면, 그게 문제가 될 게 아닙니다. 안 된다! 안될 게 뭐 있습니까! '이미 이루어 주셨구나! 이미 해결하셨고...' 그리고 이제는 그 일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시간표를 따라 갈 뿐이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세계복음화에, 우리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시간표 안에 들어오는 겁니다. 뭐 흔히 말하듯이 우리가 어린 아이에게 밥을 한 그릇 안겨주면서, '다 먹어라!' 다 먹을 수가 없죠. 어린 아이는 젖을 먹고살아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엄청난 세계 복음화에, 귀한 행복 된 축복으로 세워주셨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가정과 모든 과정은 시간표일 따름입니다. 이미 다 해결하시고 이미 이루어 졌습니다. 여기에 오는 과정에서 혹은 때에 따라서는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어떤 문제들이 부닥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붙잡아라 그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사실을 붙잡았다는 정도가 아니고, 믿어라! 그리고 이 사실을 믿으라는 정도가 아니고, 내가 지금현재 이 구체적인 과정 속에 들어간 하나님의 주권을 확실히 믿어라! 그랬습니다. 이것이 안 되니까, 자꾸 뭔가 감사는커녕 불안이 오는 겁니다. 한번 옆에 사람 얼굴을 쳐다보시고, '당신을 만나니 감사합니다' 하세요. "당신을 만나니 감사합니다!" 여러분 진짜 옆에 사람 만났을 때에, 감사합니다! 진짜 같이 부부가 안 앉아있는데... 오늘 이 시간 집에 가거든 부부가 얼굴을 쳐다보고, '당신을 만난 것 감사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어차피 축복할 자리에 세우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상한 남편을 만났어요. 그 과정에서 이상한 여자를 만나게 했어요. 상관없습니다. 이 사실을 인정만 해도 여러분 벌써 우리 마음과 생각이 달라져 버립니다. 이것이 인정이 안 되니까, '아,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나는 왜 이런 이상한 일만 자꾸 생기느냐?' 이상한 일이 생기고, 이상한 사람 만나는 게 아니고 과정입니다. 지금 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되어 가는 과정 속에 여러 가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생각만 가져도 감사가 나옵니다. 이 생각만 가져도... 여러분 일꾼이 다른 게 아닙니다. 제자가 다른 게 아닙니다. 이런 구체적인, 근본적인 하나님의 역사가 여러분과 제게 사실적으로 누려지지 아니하면, 인식이 되어지지 아니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아셔야죠.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 우리가 확실하게 붙잡아야 될 것이, 내가, 내 아내가, 내 자식이, 내 이 일이, 이 사건이 지금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습니다. 믿습니다. 이게 와져야 됩니다. 이 믿음 가져야 됩니다. 이건 믿으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걸 믿어라 그랬어요. 늘 그런 말씀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믿는다, 믿는다! 그러면서도 사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안 믿고 살아가기 때문에, 신념을 믿고, 욕심을 믿는 믿음으로 자꾸 빠지고 있습니다. 거의 그래서 뭔가 자기 생각, 자기 욕심, 자기 소원, 자기 것을 믿는 것이지, 참 하나님이 나를 지금 주권 속에 인도해 가시는 이 과정이 안 믿어지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생활이 '믿는다!' 그러면서도 거의 종교로 다 빠져 갑니다. 또 여기에 신비하던 이상한 신비주의로 빠져나가는 그런 모습들을 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 지난날에 열심히 기도를 많이 하는데도, 많이 할수록 '믿습니다!' 할 때도 무슨 말을 하느냐? 내 생각을 믿고, 내 신념 믿고, 내 소원을 믿는다! 그것이지, 참 나와, 내 생각과, 내 뜻과, 내 마음과 상관없이 하나님이 나를 지금 이끌어 가시는 이 하나님의 주권 적인 역사와 인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 우리 믿음의 배경이거든요. 지금 이 시간에 여러분 확실히 사실로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늘 그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금 하나님의 계획 속에 쑥 들어왔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 다음에 '지금 나를 하나님의 계획으로 인도해 간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사실적인 믿음입니다. 이 누림이 이것이 안되면, 누림이라는 사실자체가 이것은 이상하게 되어 가는 것이죠. 송현 교회를 어떻게 하다가 찾아 왔습니다. 내가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 왔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누려 야죠. 하나님의 인도 속에,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왔다! 그럴 때에 그때부터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 될 것이 뭐냐하면, 그때부터 나와 여러분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성령이십니다. 그러니까 늘 그런 마음을 갖고 있어요. '지금 나를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이것이 되어야 뭐가 나오느냐? 진짜 기도가 나옵니다.

늘 우리가 기도 많이 한다! 기도한다!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을 하느냐 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기도라는 인식이 베어진 것이 물론 필요합니다. 그것도 꼭 필요하고 또 우리가 그러기 위해서 한국교회에 큰 축복 중 하나가 그런 것이 되겠습니다 만은, '꼭 교회 와서 기도하는 것만이 기도하는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사로잡힐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 복음 속에 들어와서 느끼는 것은, 기도라 그럴 때에 무시기도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잖아요. 기도라는 것은 이것이 안되면, 기도라는 것이 안되죠.

그게 뭐냐하면 지금 나를 누가 인도하십니까?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지금 나를 성령이 인도하실 때에, 지금 나에게 누가 와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와 계십니다! 이 사실이 안되면 기도라는 사실 자체가 안 되는 것이죠.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나에게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나오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이 나오는 겁니다.

그 옛날에 이 뭔가 신비에 섰을 때에, 그런 이야기를 내가 드리기도 했습니다 만은, 여럿이 앉았는데, 의논을 하는데 누가 문을 쓱 열더니만, '성령이여 오십시오!' 그러더라 구요. 깜짝 놀랐죠. 그것이 어떤 면에서 그 사람 마음속에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것과는 좀 다른 차원입니다. 말씀을 믿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말씀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또 사실적으로 믿으면 되는 건데,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조금 더 다른 차원이에요.

그러나 어떤 면에서 여러분들이 지금 현재 우리가 느껴야 되는 것은, '성령이여 오십시오! 문 열고 오십시오!' 그런 수준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면 안되죠. 지금 문 열고, 안 열고 상관이 없어요. 지금 성령으로 여러분과 저의 안에 어디에 있어요? 문열고 들어오시는 수준이 아니고, 이미 안에 와 계십니다. 함께 계십니다. 영원히 계실 것입니다. 절대로 안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를 지키실 것이고, 인도하실 것이고, 들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이 실제로 믿게 되면, 그때부터 모든 사건과 일들이 뭐로 나옵니까? 기도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뭘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사건과 일들을 만나고 부닥칠 때마다 기도가 되는 겁니다.

'성령께서 지금 나를 인도해 주옵소서. 아버지 지금 내가 여기 와 있습니다!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사건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버지 지금 기분 나쁩니다! 속상합니다! 어떻습니다!'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무시기도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쉬운 겁니다. 되는 것이지, 그냥 내가 하려고 애써서는 백 번, 천 번... 그래도 기억력이 없는 사람들이 기억할 수 없어요. 그냥 실컷 다 해놓고는 다 잊어버리고, 지나놓고 나면 난 후에 보면, '아이고 내가 한번도 안 했네!' 이렇게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인식이 되고, 인정이 될 때는 저절로 되는 겁니다.

일꾼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지금 내게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인도, 이 사실이 인식되면서 모든 사건과 일들 속에 구체적으로 인도를 받게 되면, 다 이루어 지게됩니다. 다 거기서 해결되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는, 이런 실제적인 사실들을 보게 됩니다. 이런 자가 '뭘 하기 때문에 일꾼이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가 가정에 있다! 이러한 자가 어떤 현장에 섰다! 이러한 자가 어떤 일을 한다! 받아합시다. "내가 선 자리가, 내가 일하는 장소가 모든 문제 해결되는 선교 지다!" 이 사실이 이해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뭔가 우리가 이 잘못 이해가 되었을 때에, '일꾼이다!' 그러면 뭘 자꾸 해야 되는 것으로 압니다. 말을 많이 해야 되고, 뭐 뭘 열심히 해야 되는 줄 아는데, 여러분과 제가 이 복음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이 나에게 인도하시는 사실을 가지고, 지금 조금만 기도할 때마다! 조금만 기도 아니고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누가? 천군 천사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인도하시는, 사건과 사실이 실제 되어 있고, 이 사실이, 사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런 확신과 믿음으로, 이미 내 안에 이루어졌다! 그럴 때에 이런 내가 가는 곳마다, 가는 사건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시는 겁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과 역사들로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가 가는 장소와, 우리가 가서 일하는 일터가, 모두가 선교지가 될 뿐 아니고, 그곳이 하나님의 축복에 장소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뭘 아셔야 되느냐 하면, 이미 이 복음 가지고, 복음을 가진 자들이 가는 곳마다 은혜의 자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뭐 심지어는 비행기를 올라타면서 막 돌아보면서, '여러분 다 내 덕으로 오늘 편하게 갈 줄 아십시오!' 뭐 이런 다 그러고, 또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고, 그런 어떤 생각이 든다는 사실 자체까지 초보입니다. 일단 내가 안에 탔다! 뭡니까? 하나님이 완벽하게 장소와 모든 일들을 인도하신다는 겁니다. 사실들이 우리가 확실히 붙들려 지게 되었다! 그러면 여러분들이 하는 일마다 당당하게 되죠.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것이 안되니까, 맨 날 뭐 꿀리는 것이죠. 혹시 필요할 때에, 술을 한잔 들었다! 함께 하신다! 기도하고 먹을 수 있다! 그러면 먹어요. 이 정도가 안되면, 먹지 말아요. 뭐냐하면 우리가 하는 일에 이것이 안되니까, 당당하지를 못하고, 늘 뭔가 주눅이 들어 가지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세계를 이끌어 가십니다.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지구를 이끌어 가십니다. 참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는 곳마다,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해서 모든 것을 이끌어 가신다! 이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도의 제목들 가지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염려하지 마실 것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여러분과 저의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뿐 아니고,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세우실 교회를 통해서, 이 땅과 민족과 세계를 이끌어 갈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이 사실이 분명히 이루어 지게되는 곳에, 말할 것 없습니다! 이제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는 삶이 구체적으로 이어져 나갈 때에, 그때에 여러분과 제가 이 땅에서 사명 다하고, 이 땅에서 생명 끝나는 날,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어디입니까? 주님께서 이런 일꾼들을 위해서, 또 준비하시는 그 나라 영광이 예비 되고,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성경에 말씀을 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특별히 여러분 마음속으로 기억하실 것은 일꾼이다! '일꾼이다!' 그럴 때에 이 일꾼이라는 것은, '뭘 많이 한다! 열심히 노력한다!' 이런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이런 개념에서 하나님이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 이 땅과 세계를 바꾸어 가실, 이미 축복으로 계획하셨고 이 계획 속에 세우신 나와 여러분이 누리며 살아가게 될 때에, 그를 불러서 일꾼이라 그랬습니다. 이 축복과 역사가 한 주간도 계속해서 여러분 생활과 사건 속에서 성취되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말세에 필요한 것은 일꾼입니다.

☞ 맥추감사주일로 모였는데, '얼마나' 헌금을 하느냐보다 '누가' 헌금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즉, 믿음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바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감사함이 넘치는 귀한 일꾼으로 세워져
야 되겠습니다.

☞ 추수할 시기가 되었는데도, 추수할 일꾼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민망하게 여기셨습니다. 지금 마지막 시대에도 필요한 것은 여전히 추수할 일꾼들입니다.


[2] 추수할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 '누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달라집니다. 불신자, 교회에 다니는 자,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누리는 자가 설명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현재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누리고, 삶 속에서 어떠한 실제를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그 어떤 설명보다도 영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누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라는 것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 그 이름으로 사실적인 해답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 신앙 생활을 하는 중에 허무에 빠지는 경우는, 대부분 답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다'라는 답이 실제적으로 나의 문제에도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그 때에서야 진정으로 이 답을 '알았다'라는 확고한 결론이 나옵니다.

☞ 참으로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실제 삶 속에서 주인으로 인정할 때, 나의 문제가 실제적으로 해결되어지는 역사를 누리고, 깊은 확신과 담력으로 '누린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문제의 해결자다.'라는 답은,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왔다'라는 믿음의 발판 위에서 누려질 수 있습니다.

☞ 나와 나의 가정과 교회는 이미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과정의 시간표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문제와 사건에 대해서도 나의 위치를 확인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면, 불안이 달아나고 감사함이 넘치게 됩니다.

☞ 제자와 일꾼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사실적으로 알고 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과 교회의 이 문제에도 주인이 되셔서 인도해 가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온 후로부터, 성령께서 나와 내 가정과 교회를 구체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지금 성령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에, 진정한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지금 내가 만나는 사건에 대해서 하나님께 아뢰는 것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 그러므로, 주님이 찾으시는 추수할 일꾼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나의 주인으로서 나의 모든 일들을 인도해 가심을 믿고 기도하며 일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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