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보기도
2004-05-07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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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오늘 "중보 기도"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어요. 중보 기도를 잡고 쫌 설명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이 중보 기도 그럴 때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더니만 그 사람의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이 해결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거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더니만 그 사람의 일이 해결되었고, 뭐가 어떻고 이런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중보 기도라는 중요한 내용에 사실적인 하나의 모델이다! 그렇게 생각이 돼요.
그래서 그 이제 우리 신앙에 '승리했다!' 뭐 아니면 또 일 단계가 '신앙생활에 승리하십시오!' 또 흔히 헤어질 때에 '승리하십시오!' 이런 소리를 하는데 도대체 승리라는 것이 뭐냐? 어떻게 보면 승리라는 것은, 현장에서 싸움에서이기는 것이다! 현장에 뭘 위해서 싸우고, 뭘 싸우느냐? 이렇게 막 물으면 할말이 없어요. 여러분 승리라는 개념이 뭡니까? 도대체 '이기는 것이다!' 뭘 이기는 것입니까? 이 상당히 막연하고 어떻게 보면 육적인 그런 어떤 배경으로 승리라는 것이 이해가 되기가 쉽다! 중보 기도라는 것도 육적인 것을 가지고 뭔가 이해하기 쉽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중보 기도 그럴 때에, 개인의 승리와 함께 중보 기도의 승리는 같은 맥락에서 도대체 성경에서 오늘 말씀하는 중보 기도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좀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여기에 말씀 보면 9장에 "(마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저희 믿음이라' 그럴 때에 마가복음 서에는 구체적으로 이 중풍병자를 몇 사람이 데리고 왔는데, 데리고 오고 조금 뭐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면, 기와를 뜯어내고 뭐 이렇게 하시고 이런 어떤 상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만은, 여기에 오늘 나오는 말씀에 배경에 문제는 침상에다가 메고 왔으니까! 최소한 두 사람, 최소한 4사람 그럴 것 아닙니까! 하나씩 메고 온다고 그러면 이 중풍병자를 낮게 한 배경이 뭐냐하면, 중풍병자 자신 홀로서 기도해서 나았다는 배경보다도 옆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옆에서 도와 주어서 나았다! 그러면 옆에서 도와 주었다는 이 사실배경이 뭐냐? 중보입니다. 이게 이제 기도할 때에 중보 한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한다! 아니면 특별히 그 중보라 그럴 때에 사람중심이지, 어떤 일이나 사건중심이 아니다는 것이 오늘 좀 이해가 되어야 되겠구요. 그러면 중보 기도의 중요한 핵심이 뭐냐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그럴 때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는 사건과 사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중심입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 중보 기도에 중요한 핵심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보 받을 사람,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보 기도의 중요한 핵심이 무슨 일이 잘 되었다! 뭔 일이 수월하다 뭔 일이 해결되었다는 것으로 아니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뭘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의 중요한 핵심이냐?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 기도에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도록, 바로 중보 기도의 핵심이, 바로 내용이 여기에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상에 누운 체 중풍병자를 데리고 누구한테로 갔습니까? 주님께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 기도한다고 그럴 때에 자칫 잘못하면 이런 중요한 핵심에 부분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누구를 위해서 기도한다! 다른 게 아닙니다. 그분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도록,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오도록, 이것이 중보 기도의 핵심입니다. 바로 오늘 중풍병자 위해서 기도한, 중보 기도한 중풍병자 위해서, 기도한 중풍병자를 도와준 이 사람들의 귀중한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 사람의 문제 해결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문제해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 사건 속에서 문제에 구체적인 핵심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승리하십시오' 그럴 때에 내가 승리한다는 그런 배경이 뭐냐하면, 내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이나, 어떤 문제나, 어떤 내용 속에 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자체가 승리의 핵심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이나, 무슨 사건이나, 어떤 계획을 세웠을 때에 그 순간, 그 사건, 그 일들 속에 주님만 바라본다! 이것이 승리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돼요. 그 어떤 사건에 '승리하십시오!' 사건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 헤어질 때, 만날 때, '승리하십시오! 승리합시다!' 이런 것이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주님만 바라보세요!' 이 말이 승리의 핵심입니다. 이 내용이 지금 분명히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랬을 때에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배경이 이겁니다. 그 배경이 뭐냐하면 창세기 3장에 배경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만 바라봤어요. 주님께 나갔을 때에 제일먼저 해결하신 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뭡니까?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뭐라 그랬어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승리할 수 있는 첫 번째, 그리고 중보 기도에 첫 번째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뭐냐하면,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럴 때에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성경에서 원죄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중보 할 때에 참 인간에 승리에 중요한 핵심이 제일먼저 뭐냐? 여러분과 저를 가로막고 있고 성공과 축복과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문제! 그게 뭡니까? 원죄입니다. 원죄라 그럴 때에 이 창세기 3장에 문제! 창세기 3장에 문제 그것이 뭡니까? 사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 전도를 하거나, 요즘 그 우리 교회 많이 다녀도 원죄가 이해가 안 되면 종교인이 되고, 종교인이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 바로 뭐냐? 원죄가 이해가 안됩니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나갈 때에 지금 불교인들이나 천주교인들이나 어떤 밖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착할 수 있습니다.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 많거든요. 기독교인들이 안 되었으면 더 이상한 짓 할 사람들이지만, 그런데도 성경은 분명히 뭐라 그랬느냐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을 때에 거기에 따라오는 엄청난 축복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포함이 되어 있는데 이것이 원죄해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원죄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뭐 별 희한한 수단을 다 쓴다할지라도 이 해결이 안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천주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이나, 그 다음에 다른 어떤 그 예수를 믿어도 종교 안에서 참 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가 볼 때에 할 말이 없어요. 예수 믿어도 이상한 사람이 있고, 전도하는 사람들 속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나 그런 문제가지고 따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착하게 보이고, 아무리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다음에 오는 문제가 뭐냐? 불신자의 6가지 상태가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불신자가 당하는,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오는 저주의 역사가 그대로 오기 시작합니다.
예수를 믿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짓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 습관이나, 그 사람의 본래 어떤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뭐 원래 가지고 있는 영적인 것들이 해결이 안 되어 가지고 이상한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고, 참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원죄가 해결됩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러면 그게 해결되면 비로소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불신자의 6가지 상태가 그때부터 끊어져 버립니다. 거기서부터 완전히 해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적용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 먼저 예수께 나왔을 때에,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할렐루야! 오늘 이 사실이 여러분 정말 감사함으로 와져 야죠.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어제 보다 오늘이 훨씬 기쁜 날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어제가 더 나아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것이 이해가 되고, 죄 사함 받고 모든 저주와 죽음과 고통에서부터 해방 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내 가슴에 왔을 때에 뭡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보람과 가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 뭡니까? 실제적으로 흑암에 세력이 꺾이게 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깨우쳐 지게 됩니다.
나는 그 '머리 아픈 것이 떠났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하고 '잠시 기분 좋다!' 말하자면 축구로 통해서 국가 위상이 올라가고 기분이 좋다! 이래도 머리 아픈 것이 사라지는데,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고, 그 축복된 역사가 지금 사실적으로 내게 이해가 된다! 그럴 때에 그건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건 오게 마련입니다. 그게 안 되는 배경이 우리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사실이 안 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오늘 확인이 되어야 됩니다. 먼저 뭐해야 됩니까? 먼저 '하나님 바라보라!' 먼저 우리 중보 기도 '하나님 바라보라!' 먼저 내게 승리할 수 있는 배경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 사실이 이루어 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하신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하나님을 바라본다고는 하지만 그 다음에 뭐냐하면, 중보 기도 할 때에, 그 다음에 내게 승리하는 배경이 뭐냐? 하나님을 바라봤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도록 하셔야 됩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게 중요한 말씀이 있죠. 2절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말씀이 임하면 되는 겁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랬죠.
그 다음에 조금 더 넘어가면 이 말씀을 했을 때에 말씀을 못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말씀을 못 받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것은 불 신앙이다! 믿음이 없다!' 는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고 뭐라고 책망했느냐 하면,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뭐라 그랬어요? '악하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악하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뭘 이상한 짓을 하고, 이상한 일을 했으니까, 악하다! 그런 게 아니고 말씀 못 받는 사람을 보고 '악하다!' 그랬습니다. 이 땅에 악한 사람이 누구냐? 말씀을 못 받을 때에 모든 문제가 다 따라 나옵니다. 악한 모든 문제가 다 따라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단에 메여 있을 때에 모든 악함이 거기서 따라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순간에 모든 악함과 흑암에 세력은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못 받을 때에 말씀을 못 받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악하다!' 그랬습니다. '악하다!' 여러분이 악하다는 게 뭐 악한 생각이다! 다른 게 아닙니다. 말씀이 안 들어갈 때에 그것은 악한 모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중보 기도 할 때에 말씀을 듣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내가 참 '모든 일에 승리하십시오!' 말씀이 들려질 때에 승리가 나오는 겁니다.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승리가 나옵니다.
그럴 때에 성경이 뭐라 그랬냐 하면요. 6절 말씀에"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뭐라 그랬어요?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랬습니다. 개인에게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말씀을 받고 중풍병자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보면 7절에 다같이 시작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말씀이 임했을 때에, 말씀을 받는 즉시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해결됩니다.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중풍병자가 누워 있다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다 된 것 아닙니까! 여기에 축복된 역사가 바로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주일날 말씀의 강단에, 말씀을 듣기 위해서 찾아 왔을 때에, '예배드린다!' 그럴 때에 몸만 교회 나왔다는 것으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나왔을 때에 말씀이 내게 임해야 되고, 내게 하나님이 말씀하셔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이게 들어와야 돼요. 개인적으로, 말씀이 개인적으로 내게 임해야 됩니다. 그 순간에 한 주간 동안 그 말씀이 다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다 성취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하게 하시는 역사! 이 중보 기도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승리한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들을 수 있을 때에 승리가 옵니다. 거기에 모든 승리가 오죠.
이번에 그 치유 사명자 대회 갔을 때에, 뭐 여러분들이 기도하기도 하고, 우리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돕기도 하고, 많이 도운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했던, 그 우리 전에 진경 총 회장이신 장성칠 목사님! 우리 사모님이 오셔서 간증을 하셨어요. 장 목사님이 참 걷지도 못하고, 제가 갔을 때에 만나서 그랬습니다. 장 목사님 병원에 갔을 때에, 'K2, K3 기억나냐?' 그러니까 기억 못한데요. 전혀 기억 못한다 그래요. 사모님 이야기가 그때에 사람은 알아보고 그랬는데도 그때의 일을 전혀 기억을 못하신다 그래요. 그래서 장 목사님이 일어서셔서 '나보다도, 나는 그때의 일을 전혀 기억을 잘 못하니까' 그저 요즘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시고, 기억이 옛날 어릴 때로 돌아갔다가, 그 다음에 20대로 돌아갔다가, 30대로 돌아갔다가 이러신다 그래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나의 일을 더 잘 아시기 때문에 말씀할 것이다!' 하면서 그렇게 간증을 사모님께 넘기더라 구요. 사모님께 넘기는데, 사모님이 처음에 일을 당하시고 난 후에 병원에서도 안된데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다 끝났다! 그리고 우리 목사님들이 한 20명이 오셨다던가, 목사님들이 오셔 가지고, 목사님들이 그때 저 옮기는 순간에 같이 오셔서 통성으로 기도하셨다! 그래요. 통성으로 기도하고, 의사도 '안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통성으로 기도하고 밀쳐 놓았습니다. 왜 사람이 완전히 가버렸으니까! 전혀 이 인기척이 없으니까! 호흡도 그냥 계속 넘어가는 호흡밖에 안 되니까! 20분쯤 지나서, 기도하고 난 후에 20분쯤 지나서, 호흡이 그 거친 호흡들이 조용해지는 겁니다. 호흡이 조용해서 안정이 돌아오더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다시 수술하고, 그 다음에 먼저 그 병원에서 '이제는 가망이 없다!' 그래서 왔었는데, 그 고대 병원인데 한 20분 후에 그렇게 돌아오고 난 후에, '수술을 했다!' 그럽니다. 수술하고 중 환자실에 갔을 때에,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놓고도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이, 전혀 의식이 없으니까 어떻게 했느냐? 듣든지, 안 듣던지 중환자 실에 들어가면 몇 분씩 그렇게 밖에 안 되잖아요. 가족들도 안 들어가니까! 중 환자실에 들어갈 때마다 목사님 옆에 귀에다가 대고 뭘 했느냐? 메시지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메시지만 했습니다. 듣던지, 안 듣던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눈에 보이도록 메시지 할 때마다 눈에 보이도록, 이 증상이 좋아지는 겁니다.
내가 이 말씀을 준비 할 때에 그 간증하던 생각이 나요. 살리는 것이 뭐 우리가 '하나님께서 살리신다!' 중요한 것은 말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입니다. 그 생명이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말씀이 곧 씨입니다. 생명의 씨입니다. 말씀이 들어갈 때에 그게 사실적으로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중에서 누구이야기를 하시느냐 하면, 류 목사님이 똑같이 교통사고로 이형재 목사님이라고 인천에 완전히 죽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 서울에 장로님 한 분이 가셔서 보고하기를, '목사님 참 사모님이 불쌍합니다!' 이러더랍니다.
왜, 그러냐 그러니까, 완전히 다 갔는데, 보기에도 전혀 다 가버렸는데, 시체를 앞에 놔두고 다른 사람은 다 '안 된다!' 그러는데, 사모님 혼자만 '된다!' 그러시더랍니다. 사모님 혼자 된다! 그러시더랍니다. '된다!' 그러시면서 어떻게 하느냐? 보기에 처량한 그런 모습이더라 그래요. 테이프를 틀어놓고 헤드셋 가지고 다 죽은 그 사람 귀에다가 꼽아 놓은 겁니다. 참 그 도저히, 우리는 믿음으로 아니면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사람은 죽어버렸는데, 테이프를 틀어놓고 헤드셋을 꼽아 놓은 겁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살아나셔 가지고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걷고 이런 것은 잘 못해요. 총신 교수로 오셔서 참 그 강의도 열강 하시고 하셨는데, 지금 경우에는 아직 그 정도로 활동하고 이런 것은 못해도, 이제 설교하시고, 앉아 가지고 말씀하시고, 정확하게 판단도 하시고, 그렇게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낫는다, 안 낫는다!' 뭐 '좋다, 안 좋다!'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그 다음에 그 말씀이 내게 들려지고, 말씀하시는 사실이 사실로 내게 와질 때에 뭐가 오느냐? 치료가 나옵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 해결됩니다. 아무리 막 기도 열심히 하고, 떠들고, '믿습니다!' 아무리 야단해도, 말씀이 안 들어오면, 말씀이 이해가 안되고, 말씀이 안 들어오면 치료가 안됩니다.
그래서 치유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이 정리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치유가 가능합니다.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적인 모든 문제들이 여기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일날 말씀 받고, 말씀 붙잡고,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문제가 다 연결되는 겁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보 기도한다!'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주옵소서!'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실 때에 뭐가 나로 하여금 그 은혜의 축복을 못 누리게 만드느냐? 할 때에 내가 살았기 때문에, 그러니 여러분 '성령의 인도 받으면 다 된다!' 그러는데 왜 성령의 인도를 못 받게 만드느냐? 그게 내가 살았기 때문에, 성령이 인도하셔도, 말씀이 임하셔도 뭐냐?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따라갈 수 없게 돼요. 그래서 갈라디아 2장 1절이 참 중요하죠. 내가 죽고 내 안에 누가 살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내가 새 생명 얻어야 된다! 이것이 이루어 져야 성령의 인도 받고, 성령의 이끄는 데로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 윤덕희 씨가 우리 집에 오셨어요. 제가 '한번 보자!' 그랬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에 도움이 안 되겠나 싶어서, 잠깐 오셔서 하시는 이야기가 뭐냐하면, 끝까지 마지막까지 사단이 붙들고 있는 것이 뭐냐하면, 자기를 못 죽이더라 이겁니다. 자기를... 자기 자랑, 자기의 어떤 그것이 안 죽더라 그겁니다. 예수님 영접하고 천국 가는 문제도, 믿으면서도 나라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내 공로라던가, 내 힘이라던가, 이것이 이제 천주교를 믿었으니까, 이 배경을, 선행으로 가는 이 배경들, 누가 보던지 그 분에 대해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칭찬하기를 '정말 교양 있고, 정말 자기를 내어 놓을만하다!' 할 정도로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 구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자기를 다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순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데려 가더랍니다. 데려가는데, 얼마나 아름답게 마지막 죽음을 하나님 곁에 가셔서, 그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 병으로, 그 암으로 가셨는데,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예쁘게 가는 분은 처음 봤다!' 그러더랍니다. 간호원들이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마지막까지 포기 못하게 하는 것이 뭔지 압니까? 자기입니다.
저는 제가 이 고통받을 때에, 이 고통받게 되어서 어려운 문제가 뭐냐하면, 고통받을 때에 '나' 라는 것에 초점이 더 맞추어지지, 하나님이라는 이런 어떤 그 연결이 잘 안되어요. 그래서 고통받으면, '내가 괴롭다! 내가 아프다! 내가 어렵다! 내가 힘들다!' 이렇게 연결되지 이것이, 나라는 것이 포기가 안 되는 겁니다. 나라는 것이 포기되는 순간에 모든 문제는 여기서 포기되는 만큼 뭐가 됩니까?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보 기도!' 그럴 때에 다른 게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다 포기하고, 나 자신을 누구에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그것이 중보 기도요. 그 다음에 내 인생에 진정한 승리가 뭐냐? 내가 포기가 되어 졌을 때에 진정한 승리가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승리하십시오!' 그러면 뭡니까? 내가 죽는 게 승리하는 겁니다. 내가 죽는 만큼 승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5장 3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살아요? "죽노라"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바울의 승리가 이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 성령이 나를 인도해 가실 때에 내가 죽는 그 순간만큼, 죽는 만큼, 죽는 프로 테이지 만큼 말씀을 따라가게 됩니다. 죽는 만큼 성령의 인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완전한 승리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런 축복의 역사로 기도하게 될 때에, 중보 하게 될 때에 거기에 모든 승리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내가 '중보 한다!' '그 사람의 이런 문제 낫게 하시고, 이런 문제 해결되게 하옵시고, 이런 문제 좋게 하옵소서!'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중보 한다!' 그럴 때에 어떤 사건과 일을 중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어요. 여러분 '중보 한다!' 사람을 두고, 사람을 두고 우리가 도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나오도록 만드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어서 나의 승리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눈이 열리면 승리가 옵니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어서 따라오는 모든 문제가 여기서 해결되는 겁니다. 사단의 손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오는 길이 여기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말씀한 것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게 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중보 기도에 중요한 핵심입니다. 말씀이 들리는 순간에, 그가 사실적으로, 그가 당한 모든 문제와 사건은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주일날 말씀 받고 기도하는 것, 한 주간 다 해결되는 축복된 역사의 바로 출발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말씀 받는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안에 있잖아요.
그 다음에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만큼 뭐가 되느냐? 자신이 죽어야 됩니다. 내 자신이 죽는 만큼, 성령 충만! 성령 충만, 다른 게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만큼, 그 프로 테이지 만큼, 성령 충만!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을 수 있는 눈이 열릴 뿐 아니고, 실제로 인도를 받게 되는 겁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중보 기도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더니,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즉, 우리는 중보 기도에 대해서 육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중보 기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여러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중풍병자를 낫게 한 배경은, 중풍병자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옆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주의해야 합니다.
[1] 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 다른 사람의 문제나 사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 기도의 핵심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보 기도입니다. 그 사람의 문제 해결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운데 문제 해결의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 본문에서도,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께 나아갔을 때, 제일 먼저 이루어진 응답이 중풍병자가 '죄사함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응답은 '원죄'의 해결이었습니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고 저주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원죄가 해결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요, 중보 기도의 진정한 핵심입니다.
[2]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소서.
☞ 본문에서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치료의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가 치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단에게 매이게 될 때,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 기도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그 사람이 자신을 죽이고 성령의 충만한 인도를 받게 하소서.
☞ 나 자신이 아직 살아있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말씀대로 따라갈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단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즉, 사단은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더욱 초점을 맞추도록 만듭니다. 자신이 죽는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고,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 이렇게 중보 기도를 하십시오.
☞ 중보 기도를 할 때,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실 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자신이 죽고 성령 충만한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마 9: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마 9: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마 9: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마 9: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오늘 "중보 기도"라 그렇게 제목을 삼았어요. 중보 기도를 잡고 쫌 설명이 필요해요. 여러분들이 중보 기도 그럴 때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더니만 그 사람의 어떤 문제나 어떤 사건이 해결되었다!' 이런 배경으로 거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더니만 그 사람의 일이 해결되었고, 뭐가 어떻고 이런 것으로 우리가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중보 기도라는 중요한 내용에 사실적인 하나의 모델이다! 그렇게 생각이 돼요.
그래서 그 이제 우리 신앙에 '승리했다!' 뭐 아니면 또 일 단계가 '신앙생활에 승리하십시오!' 또 흔히 헤어질 때에 '승리하십시오!' 이런 소리를 하는데 도대체 승리라는 것이 뭐냐? 어떻게 보면 승리라는 것은, 현장에서 싸움에서이기는 것이다! 현장에 뭘 위해서 싸우고, 뭘 싸우느냐? 이렇게 막 물으면 할말이 없어요. 여러분 승리라는 개념이 뭡니까? 도대체 '이기는 것이다!' 뭘 이기는 것입니까? 이 상당히 막연하고 어떻게 보면 육적인 그런 어떤 배경으로 승리라는 것이 이해가 되기가 쉽다! 중보 기도라는 것도 육적인 것을 가지고 뭔가 이해하기 쉽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중보 기도 그럴 때에, 개인의 승리와 함께 중보 기도의 승리는 같은 맥락에서 도대체 성경에서 오늘 말씀하는 중보 기도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좀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먼저 여기에 말씀 보면 9장에 "(마 9: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저희 믿음이라' 그럴 때에 마가복음 서에는 구체적으로 이 중풍병자를 몇 사람이 데리고 왔는데, 데리고 오고 조금 뭐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면, 기와를 뜯어내고 뭐 이렇게 하시고 이런 어떤 상세한 설명이 나옵니다 만은, 여기에 오늘 나오는 말씀에 배경에 문제는 침상에다가 메고 왔으니까! 최소한 두 사람, 최소한 4사람 그럴 것 아닙니까! 하나씩 메고 온다고 그러면 이 중풍병자를 낮게 한 배경이 뭐냐하면, 중풍병자 자신 홀로서 기도해서 나았다는 배경보다도 옆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옆에서 도와 주어서 나았다! 그러면 옆에서 도와 주었다는 이 사실배경이 뭐냐? 중보입니다. 이게 이제 기도할 때에 중보 한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그 일을 위해서 기도한다! 아니면 특별히 그 중보라 그럴 때에 사람중심이지, 어떤 일이나 사건중심이 아니다는 것이 오늘 좀 이해가 되어야 되겠구요. 그러면 중보 기도의 중요한 핵심이 뭐냐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한다고 그럴 때에 그 사람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되는 사건과 사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 중심입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가 나오느냐 하면, 오늘 본문에서 중보 기도에 중요한 핵심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보 받을 사람, 그 사람으로 하여금 중보 기도의 중요한 핵심이 무슨 일이 잘 되었다! 뭔 일이 수월하다 뭔 일이 해결되었다는 것으로 아니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뭘 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의 중요한 핵심이냐?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 기도에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도록, 바로 중보 기도의 핵심이, 바로 내용이 여기에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침상에 누운 체 중풍병자를 데리고 누구한테로 갔습니까? 주님께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보 기도한다고 그럴 때에 자칫 잘못하면 이런 중요한 핵심에 부분을 놓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누구를 위해서 기도한다! 다른 게 아닙니다. 그분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는 겁니까?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믿도록,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오도록, 이것이 중보 기도의 핵심입니다. 바로 오늘 중풍병자 위해서 기도한, 중보 기도한 중풍병자 위해서, 기도한 중풍병자를 도와준 이 사람들의 귀중한 핵심이 여기 있습니다. 왜 그러느냐? 그 사람의 문제 해결이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문제해결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바라보는, 하나님만 바라보는 이 사건 속에서 문제에 구체적인 핵심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여러분 '승리하십시오' 그럴 때에 내가 승리한다는 그런 배경이 뭐냐하면, 내가 어떤 사건이나, 어떤 일이나, 어떤 문제나, 어떤 내용 속에 주님만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자체가 승리의 핵심입니다. 여러분들이 무슨 일이나, 무슨 사건이나, 어떤 계획을 세웠을 때에 그 순간, 그 사건, 그 일들 속에 주님만 바라본다! 이것이 승리의 핵심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바로 이해가 되어야 돼요. 그 어떤 사건에 '승리하십시오!' 사건가지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우리 헤어질 때, 만날 때, '승리하십시오! 승리합시다!' 이런 것이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주님만 바라보세요!' 이 말이 승리의 핵심입니다. 이 내용이 지금 분명히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랬을 때에 성경이 말씀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승리하지 못하게 하는 배경이 이겁니다. 그 배경이 뭐냐하면 창세기 3장에 배경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만 바라봤어요. 주님께 나갔을 때에 제일먼저 해결하신 것이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뭡니까?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뭐라 그랬어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랬습니다. 여러분 승리할 수 있는 첫 번째, 그리고 중보 기도에 첫 번째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뭐냐하면,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내 죄 사함을 받았다!' 그럴 때에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성경에서 원죄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우리 인간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을 중보 할 때에 참 인간에 승리에 중요한 핵심이 제일먼저 뭐냐? 여러분과 저를 가로막고 있고 성공과 축복과 은혜를 가로막고 있는 중요한 문제! 그게 뭡니까? 원죄입니다. 원죄라 그럴 때에 이 창세기 3장에 문제! 창세기 3장에 문제 그것이 뭡니까? 사단의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 전도를 하거나, 요즘 그 우리 교회 많이 다녀도 원죄가 이해가 안 되면 종교인이 되고, 종교인이 실패하게 되는 원인이 바로 뭐냐? 원죄가 이해가 안됩니다. 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아마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나갈 때에 지금 불교인들이나 천주교인들이나 어떤 밖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있어서는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착할 수 있습니다. 더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예수 믿는다!' 그러면서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 많거든요. 기독교인들이 안 되었으면 더 이상한 짓 할 사람들이지만, 그런데도 성경은 분명히 뭐라 그랬느냐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을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을 때에 거기에 따라오는 엄청난 축복이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포함이 되어 있는데 이것이 원죄해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원죄가 있는 동안에는 아무리 착하고,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뭐 별 희한한 수단을 다 쓴다할지라도 이 해결이 안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천주교인들이나, 불교인들이나, 그 다음에 다른 어떤 그 예수를 믿어도 종교 안에서 참 착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우리가 볼 때에 할 말이 없어요. 예수 믿어도 이상한 사람이 있고, 전도하는 사람들 속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러나 그런 문제가지고 따지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무리 노력하고, 아무리 착하게 보이고, 아무리 모범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 다음에 오는 문제가 뭐냐? 불신자의 6가지 상태가 그대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불신자가 당하는, 사단의 역사를 통해서 오는 저주의 역사가 그대로 오기 시작합니다.
예수를 믿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상한 짓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 습관이나, 그 사람의 본래 어떤 가지고 있는 성질이나, 뭐 원래 가지고 있는 영적인 것들이 해결이 안 되어 가지고 이상한 그런 모습으로 보이는 것 같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고, 참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원죄가 해결됩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러면 그게 해결되면 비로소 나오는 것이 뭐냐하면, 불신자의 6가지 상태가 그때부터 끊어져 버립니다. 거기서부터 완전히 해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과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적용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 먼저 예수께 나왔을 때에,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내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할렐루야! 오늘 이 사실이 여러분 정말 감사함으로 와져 야죠.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어제 보다 오늘이 훨씬 기쁜 날이 되는 겁니다. 이것이 이해가 안되면 어제가 더 나아요. 정말 여러분들이 이것이 이해가 되고, 죄 사함 받고 모든 저주와 죽음과 고통에서부터 해방 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내 가슴에 왔을 때에 뭡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보람과 가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때부터 뭡니까? 실제적으로 흑암에 세력이 꺾이게 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깨우쳐 지게 됩니다.
나는 그 '머리 아픈 것이 떠났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하고 '잠시 기분 좋다!' 말하자면 축구로 통해서 국가 위상이 올라가고 기분이 좋다! 이래도 머리 아픈 것이 사라지는데,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지고, 그 축복된 역사가 지금 사실적으로 내게 이해가 된다! 그럴 때에 그건 모든 문제 해결되었다! 그건 오게 마련입니다. 그게 안 되는 배경이 우리가 여기서 구체적으로 사실이 안 되기 때문에, 이 문제가 오늘 확인이 되어야 됩니다. 먼저 뭐해야 됩니까? 먼저 '하나님 바라보라!' 먼저 우리 중보 기도 '하나님 바라보라!' 먼저 내게 승리할 수 있는 배경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이 사실이 이루어 져야 됩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하신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데, 하나님을 바라본다고는 하지만 그 다음에 뭐냐하면, 중보 기도 할 때에, 그 다음에 내게 승리하는 배경이 뭐냐? 하나님을 바라봤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도록 하셔야 됩니다. 주님이 내게 말씀하도록 하셔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게 중요한 말씀이 있죠. 2절에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말씀이 임하면 되는 겁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랬죠.
그 다음에 조금 더 넘어가면 이 말씀을 했을 때에 말씀을 못 받는 사람들이 있어요. "(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참람하도다 (마 9: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말씀을 못 받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것은 불 신앙이다! 믿음이 없다!' 는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고 뭐라고 책망했느냐 하면,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뭐라 그랬어요? '악하다!' 그랬습니다. 여러분 악하다는 것은 다른 게 아닙니다. 뭘 이상한 짓을 하고, 이상한 일을 했으니까, 악하다! 그런 게 아니고 말씀 못 받는 사람을 보고 '악하다!' 그랬습니다. 이 땅에 악한 사람이 누구냐? 말씀을 못 받을 때에 모든 문제가 다 따라 나옵니다. 악한 모든 문제가 다 따라 나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단에 메여 있을 때에 모든 악함이 거기서 따라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순간에 모든 악함과 흑암에 세력은 꺾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뭐라 그랬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못 받을 때에 말씀을 못 받는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악하다!' 그랬습니다. '악하다!' 여러분이 악하다는 게 뭐 악한 생각이다! 다른 게 아닙니다. 말씀이 안 들어갈 때에 그것은 악한 모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어야 되죠. 그래서 중보 기도 할 때에 말씀을 듣도록 기도하는 겁니다. 내가 참 '모든 일에 승리하십시오!' 말씀이 들려질 때에 승리가 나오는 겁니다. 말씀이 임하게 될 때에 승리가 나옵니다.
그럴 때에 성경이 뭐라 그랬냐 하면요. 6절 말씀에"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뭐라 그랬어요?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그랬습니다. 개인에게 구체적인 말씀입니다. 말씀을 받고 중풍병자가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보면 7절에 다같이 시작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말씀이 임했을 때에, 말씀을 받는 즉시 모든 문제가 여기서 다 해결됩니다.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중풍병자가 누워 있다가 일어나 집으로 갔다! 다 된 것 아닙니까! 여기에 축복된 역사가 바로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주일날 말씀의 강단에, 말씀을 듣기 위해서 찾아 왔을 때에, '예배드린다!' 그럴 때에 몸만 교회 나왔다는 것으로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교회 나왔을 때에 말씀이 내게 임해야 되고, 내게 하나님이 말씀하셔야 합니다. 이 말씀 속에서 이게 들어와야 돼요. 개인적으로, 말씀이 개인적으로 내게 임해야 됩니다. 그 순간에 한 주간 동안 그 말씀이 다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다 성취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어려운 문제가 말씀, 하나님께서 말씀하게 하시는 역사! 이 중보 기도에 가장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승리한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들을 들을 수 있을 때에 승리가 옵니다. 거기에 모든 승리가 오죠.
이번에 그 치유 사명자 대회 갔을 때에, 뭐 여러분들이 기도하기도 하고, 우리 교회에서 구체적으로 돕기도 하고, 많이 도운 것은 아니지만, 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렇게 했던, 그 우리 전에 진경 총 회장이신 장성칠 목사님! 우리 사모님이 오셔서 간증을 하셨어요. 장 목사님이 참 걷지도 못하고, 제가 갔을 때에 만나서 그랬습니다. 장 목사님 병원에 갔을 때에, 'K2, K3 기억나냐?' 그러니까 기억 못한데요. 전혀 기억 못한다 그래요. 사모님 이야기가 그때에 사람은 알아보고 그랬는데도 그때의 일을 전혀 기억을 못하신다 그래요. 그래서 장 목사님이 일어서셔서 '나보다도, 나는 그때의 일을 전혀 기억을 잘 못하니까' 그저 요즘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시고, 기억이 옛날 어릴 때로 돌아갔다가, 그 다음에 20대로 돌아갔다가, 30대로 돌아갔다가 이러신다 그래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나의 일을 더 잘 아시기 때문에 말씀할 것이다!' 하면서 그렇게 간증을 사모님께 넘기더라 구요. 사모님께 넘기는데, 사모님이 처음에 일을 당하시고 난 후에 병원에서도 안된데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다 끝났다! 그리고 우리 목사님들이 한 20명이 오셨다던가, 목사님들이 오셔 가지고, 목사님들이 그때 저 옮기는 순간에 같이 오셔서 통성으로 기도하셨다! 그래요. 통성으로 기도하고, 의사도 '안 된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통성으로 기도하고 밀쳐 놓았습니다. 왜 사람이 완전히 가버렸으니까! 전혀 이 인기척이 없으니까! 호흡도 그냥 계속 넘어가는 호흡밖에 안 되니까! 20분쯤 지나서, 기도하고 난 후에 20분쯤 지나서, 호흡이 그 거친 호흡들이 조용해지는 겁니다. 호흡이 조용해서 안정이 돌아오더랍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제 다시 수술하고, 그 다음에 먼저 그 병원에서 '이제는 가망이 없다!' 그래서 왔었는데, 그 고대 병원인데 한 20분 후에 그렇게 돌아오고 난 후에, '수술을 했다!' 그럽니다. 수술하고 중 환자실에 갔을 때에,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놓고도 살아날 수 있는 가망이, 전혀 의식이 없으니까 어떻게 했느냐? 듣든지, 안 듣던지 중환자 실에 들어가면 몇 분씩 그렇게 밖에 안 되잖아요. 가족들도 안 들어가니까! 중 환자실에 들어갈 때마다 목사님 옆에 귀에다가 대고 뭘 했느냐? 메시지를 했습니다. 계속해서 메시지만 했습니다. 듣던지, 안 듣던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데, 눈에 보이도록 메시지 할 때마다 눈에 보이도록, 이 증상이 좋아지는 겁니다.
내가 이 말씀을 준비 할 때에 그 간증하던 생각이 나요. 살리는 것이 뭐 우리가 '하나님께서 살리신다!' 중요한 것은 말씀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갈 때입니다. 그 생명이 들어가는 것 아닙니까! 말씀이 곧 씨입니다. 생명의 씨입니다. 말씀이 들어갈 때에 그게 사실적으로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중에서 누구이야기를 하시느냐 하면, 류 목사님이 똑같이 교통사고로 이형재 목사님이라고 인천에 완전히 죽어 버렸어요. 그래서 그 서울에 장로님 한 분이 가셔서 보고하기를, '목사님 참 사모님이 불쌍합니다!' 이러더랍니다.
왜, 그러냐 그러니까, 완전히 다 갔는데, 보기에도 전혀 다 가버렸는데, 시체를 앞에 놔두고 다른 사람은 다 '안 된다!' 그러는데, 사모님 혼자만 '된다!' 그러시더랍니다. 사모님 혼자 된다! 그러시더랍니다. '된다!' 그러시면서 어떻게 하느냐? 보기에 처량한 그런 모습이더라 그래요. 테이프를 틀어놓고 헤드셋 가지고 다 죽은 그 사람 귀에다가 꼽아 놓은 겁니다. 참 그 도저히, 우리는 믿음으로 아니면 그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사람은 죽어버렸는데, 테이프를 틀어놓고 헤드셋을 꼽아 놓은 겁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살아나셔 가지고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걷고 이런 것은 잘 못해요. 총신 교수로 오셔서 참 그 강의도 열강 하시고 하셨는데, 지금 경우에는 아직 그 정도로 활동하고 이런 것은 못해도, 이제 설교하시고, 앉아 가지고 말씀하시고, 정확하게 판단도 하시고, 그렇게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에 '낫는다, 안 낫는다!' 뭐 '좋다, 안 좋다!'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때에 비로소 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게 하옵소서. 말씀을 듣겠습니다. 그 다음에 그 말씀이 내게 들려지고, 말씀하시는 사실이 사실로 내게 와질 때에 뭐가 오느냐? 치료가 나옵니다. 모든 것이 여기서 해결됩니다. 아무리 막 기도 열심히 하고, 떠들고, '믿습니다!' 아무리 야단해도, 말씀이 안 들어오면, 말씀이 이해가 안되고, 말씀이 안 들어오면 치료가 안됩니다.
그래서 치유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이 정리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치유가 가능합니다. 영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 육적인 모든 문제들이 여기서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주일날 말씀 받고, 말씀 붙잡고, 기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모든 문제가 다 연결되는 겁니다. 이 사건이 바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중보 기도한다!' 다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 주옵소서!'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실 때에 뭐가 나로 하여금 그 은혜의 축복을 못 누리게 만드느냐? 할 때에 내가 살았기 때문에, 그러니 여러분 '성령의 인도 받으면 다 된다!' 그러는데 왜 성령의 인도를 못 받게 만드느냐? 그게 내가 살았기 때문에, 성령이 인도하셔도, 말씀이 임하셔도 뭐냐?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따라갈 수 없게 돼요. 그래서 갈라디아 2장 1절이 참 중요하죠. 내가 죽고 내 안에 누가 살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내가 새 생명 얻어야 된다! 이것이 이루어 져야 성령의 인도 받고, 성령의 이끄는 데로 따라갈 수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 우리 윤덕희 씨가 우리 집에 오셨어요. 제가 '한번 보자!' 그랬습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일에 도움이 안 되겠나 싶어서, 잠깐 오셔서 하시는 이야기가 뭐냐하면, 끝까지 마지막까지 사단이 붙들고 있는 것이 뭐냐하면, 자기를 못 죽이더라 이겁니다. 자기를... 자기 자랑, 자기의 어떤 그것이 안 죽더라 그겁니다. 예수님 영접하고 천국 가는 문제도, 믿으면서도 나라는 것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내 공로라던가, 내 힘이라던가, 이것이 이제 천주교를 믿었으니까, 이 배경을, 선행으로 가는 이 배경들, 누가 보던지 그 분에 대해서 뭐라 그러느냐 하면, 칭찬하기를 '정말 교양 있고, 정말 자기를 내어 놓을만하다!' 할 정도로 그분에 대해서 이야기하더라 구요.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자기를 다 버리고,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는 순간에 비로소 하나님께서 데려 가더랍니다. 데려가는데, 얼마나 아름답게 마지막 죽음을 하나님 곁에 가셔서, 그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이 병으로, 그 암으로 가셨는데,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예쁘게 가는 분은 처음 봤다!' 그러더랍니다. 간호원들이 그러더랍니다. 여러분 마지막까지 포기 못하게 하는 것이 뭔지 압니까? 자기입니다.
저는 제가 이 고통받을 때에, 이 고통받게 되어서 어려운 문제가 뭐냐하면, 고통받을 때에 '나' 라는 것에 초점이 더 맞추어지지, 하나님이라는 이런 어떤 그 연결이 잘 안되어요. 그래서 고통받으면, '내가 괴롭다! 내가 아프다! 내가 어렵다! 내가 힘들다!' 이렇게 연결되지 이것이, 나라는 것이 포기가 안 되는 겁니다. 나라는 것이 포기되는 순간에 모든 문제는 여기서 포기되는 만큼 뭐가 됩니까? 해결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보 기도!' 그럴 때에 다른 게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다 포기하고, 나 자신을 누구에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그것이 중보 기도요. 그 다음에 내 인생에 진정한 승리가 뭐냐? 내가 포기가 되어 졌을 때에 진정한 승리가 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승리하십시오!' 그러면 뭡니까? 내가 죽는 게 승리하는 겁니다. 내가 죽는 만큼 승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고린도 전서 15장 31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살아요? "죽노라"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바울의 승리가 이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고, 성령이 나를 인도해 가실 때에 내가 죽는 그 순간만큼, 죽는 만큼, 죽는 프로 테이지 만큼 말씀을 따라가게 됩니다. 죽는 만큼 성령의 인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완전한 승리가 오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이런 축복의 역사로 기도하게 될 때에, 중보 하게 될 때에 거기에 모든 승리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좀 정리를 하겠습니다. 내가 '중보 한다!' '그 사람의 이런 문제 낫게 하시고, 이런 문제 해결되게 하옵시고, 이런 문제 좋게 하옵소서!'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중보 한다!' 그럴 때에 어떤 사건과 일을 중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수 없어요. 여러분 '중보 한다!' 사람을 두고, 사람을 두고 우리가 도울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나오도록 만드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만드는 겁니다. 이어서 나의 승리도 역시 똑같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눈이 열리면 승리가 옵니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어서 따라오는 모든 문제가 여기서 해결되는 겁니다. 사단의 손에서부터,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오는 길이 여기서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말씀한 것이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게 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게 해 주시는 겁니다. 이것이 중보 기도에 중요한 핵심입니다. 말씀이 들리는 순간에, 그가 사실적으로, 그가 당한 모든 문제와 사건은 해결되게 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가 주일날 말씀 받고 기도하는 것, 한 주간 다 해결되는 축복된 역사의 바로 출발입니다. 그래서 '주일날 말씀 받는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안에 있잖아요.
그 다음에 말씀을 받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만큼 뭐가 되느냐? 자신이 죽어야 됩니다. 내 자신이 죽는 만큼, 성령 충만! 성령 충만, 다른 게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만큼, 그 프로 테이지 만큼, 성령 충만!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 받을 수 있는 눈이 열릴 뿐 아니고, 실제로 인도를 받게 되는 겁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중보 기도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더니, 그 사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즉, 우리는 중보 기도에 대해서 육적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하는 중보 기도에 대해서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에서 여러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중풍병자를 낫게 한 배경은, 중풍병자 혼자의 힘으로가 아니라 옆에서 도와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에 있어서는 주의해야 합니다.
[1] 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 다른 사람의 문제나 사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보 기도의 핵심입니다. 즉,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보 기도입니다. 그 사람의 문제 해결이 다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만 바라보는 가운데 문제 해결의 핵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 본문에서도,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께 나아갔을 때, 제일 먼저 이루어진 응답이 중풍병자가 '죄사함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받은 응답은 '원죄'의 해결이었습니다. '원죄'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 어떤 문제도 진정으로 해결되지 않고 저주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원죄가 해결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요, 중보 기도의 진정한 핵심입니다.
[2]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며,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소서.
☞ 본문에서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치료의 말씀을 하셨을 때, 그 말씀을 들은 중풍병자가 치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악하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단에게 매이게 될 때, 악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보 기도할 때, 그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그 사람이 자신을 죽이고 성령의 충만한 인도를 받게 하소서.
☞ 나 자신이 아직 살아있으면,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말씀대로 따라갈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단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자기 자신'입니다. 즉, 사단은 하나님보다 자신에게 더욱 초점을 맞추도록 만듭니다. 자신이 죽는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게 되고,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 이렇게 중보 기도를 하십시오.
☞ 중보 기도를 할 때,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기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실 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며, 자신이 죽고 성령 충만한 인도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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