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2004-05-07 00:00:00
관리자
조회수   30

유튜브

저화질

다운

MP3

녹취

요약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마 6: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마 6:23)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 본문에서 제가 제목을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그랬습니다. 24절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아멘. 사람이 제일 고통스러울 때가 언제냐 하면, 결정하지 못할 때, 갈등할 때가 제일 고통스럽습니다. 그런데 어떤 확고한 신념이 생겨지지 않고 어떤 방향이 확고히 결정되지 못해서, 이럴까 저럴까 할 때가 제일 고통스럽고 제일 어렵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이 어려움을 당했던 때가 언제냐 하면, '이 신을 섬길까! 저 신을 섬길까!' 할 때가 제일 그 이스라엘에 흑암 시대요, 고통스러운 때였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저주와 고통이 나라에 임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이 엘리야 시대 아합 왕 때에, 갈멜산에서 아합왕 때에 그 바알 선지자들을 불러 놓고 엘리야 혼자 여호와 신의 선지자로 대결했던 그런 때에 엘리야가 왜 첫번 외침이 바로 이 부분을 잘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21절에 보면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바알도 섬기고 여호와도 섬기고, 그러니 이 섬긴다는 이 사실 자체보다도 '두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냐!' 그 말입니다. 머뭇머뭇하느냐? 이때가 이스라엘 백성에 가장 많은 재난과 재앙과 어려움이 있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이 성경에서 말씀하시기를 성도가 세상 신과 하나님의 신을 같이 섬기는 일들, 이런 자리에 빠지게 될 때에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은 단순합니다. 오직 한 분, 한 주인, 주 여호와 다른 것이 개입이 되지 않는 것! 그래서 여러분 그 예수 그리스도만 그럴 때에 행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안 될 때에 갈등이 나오고 고통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게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이게 보통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이미 예수를 믿는다 그러면서, 교회 다니면서 두 주인을 섬긴다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은 주로 보면 종교에 빠지거나 율법에 빠지거나 이럴 때에 저절로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한다고 작정한다고 그래도 그렇게 빠져 버립니다. 그러면 바로 그때에 그 엄청난 저주와 고통이 따라오는 것이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그래서 보면 지금 그 우리 나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어려운 국가들이 어느 국가들이냐 하면, 종교가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국가들이 가장 어려운 국가들이다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 태국에 갖다온 산업선교 행정담당 이상배 목사님이 산업선교 때에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태국에 가니까, 산업선교 결성 때문에 갔는데, 안 믿는 사업가인데 어떻게 만나 가지고 아주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그래요.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참, 이 나라에서 그 사업하기가 어렵다!' 공장을 하고 그런가 봐요. 그런데 이제 그 직원들을 채용을 해 놓으니까, 주로 이제 그 이슬람에 있는 직원들인데, 그러니까 알라신을 섬기는, 그런데 뭐냐하면 일단은 그 사람들은 시간만 딱되면 하루에 5번 기도합니다. 철저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일하다가도 기도하는 시간 되면 다 놓고 나갑니다. 그러니 뭐 일이 안 되는 것이죠. 너무 어렵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철저하게 알라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기는데 어떤 경우냐 하면, 그 섬기는 그 사람들의 배경이, 그 빠진 사람들이 심각한 3가지 병이 들어 있다고 그래요. 안 믿는 사람인데, 그 산업선교 하면서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 첫 번째가 뭐냐하면, 첫 번째 배경이 마약에 빠져 있습니다. 마약에 빠져있고 두 번째가 뭐냐하면 이건 뭐 너무나 문란하게 Sex에 빠져 있습니다. 성에 빠져있고, 세 번째가 뭐냐하면 도박에 빠져있다! 그랬습니다. 이병이 심각하다는 겁니다. 이병이 병으로 아니고 '완전히 생활화되어있다!' 할 정도로 빠져있다 그럽니다.

여러분 그 태국 들어가면 그렇게 못삽니다. 완전 우상국가! 그 다음에 이슬람에도 마찬가지고 여러분 태국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만은, 거리에 좋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거의 여자들인데, 그 여자들은 전부 창녀들입니다. 그러니까 뭐 아예, 뭐 어릴 때부터 이 사람들은 오히려 창녀들은 대우를 받는 이런 실정이니까! 왜, 너무 성적으로 문란하니까! 그러니까 그 나라가 우리가 상상을 해볼 수 있죠.

어느 정도로 어려우냐! 똑같이 여러분 보세요. 남미 참 어렵습니다. 제가 남미에 가서 보면서 느낀 것이 똑같이 신대륙으로 찾아갔는데, 북아메리카는 복음 때문에 신대륙에 모두 이동했습니다. 그런데 그 북아메리카는 미국 아닙니까! 번성을 했습니다. 축복을 엄청나게 받았죠. 그 남아메리카는 뭐냐하면 주로 물질중심, 어떤 그 금광이나 이런 것을 중심으로 해서 남아메리카로 내려갔습니다. 훨씬 자원도 풍부하고 환경도 좋습니다. 그런데 남아메리카는 천주교가 지배국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아메리카는 발전이 안 돼요. 안 되는 정도가 아니고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듣고 있다 시피 모든 이상한 신학은, 해방신학을 비롯해 가지고 남아메리카에서 나왔다는 것을 볼 수가 있죠.

그런데 이 종교가 나라를 잡고 있을 때는 영적인 문제가 심각하게 와 있다는 사실이 지금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잘 알다시피 필리핀은 천주교 국가입니다. 필리핀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섰습니다. 여러분 6.25때만 해도 우리나라 보다 훨씬 앞섰던 나라가 필리핀입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합니다. 엄청난 영적 문제로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여러분 지금 이슬람이 지배하고 있는 나라나 그 다음에 천주교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서서히 무너지더라 구요. 모든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는 영적 문제가 심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똑같이 기독교가 지배하고 있는 나라! 그런데 이 기독교가 종교화되어서 지배하고 있으면 똑같은 영적 문제가 옵니다. 기독교가 지배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복음으로 바꾸어지지 아니하면 똑같은 영적 문제가 교회에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래서 지금 어려운 것은 여러분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실히 붙잡을 수 있는 오직 참된 복음이 안되면 여러분 우리가 가장 축복 받은 장소에 섰다하면서도 똑같은 저주와 재난과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가 너무 어려운 시대거든요. 보세요. 우리나라에도 지금 닥치는 바람들 한번보세요. 뭐 도저히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어렵습니다. 우상은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정은 급속도로 깨어지고 있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점 어려운 이런 문제들이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뭐냐하면, 결혼을 하면 일본보다도 오히려 이혼비율이 앞설 정도로 우리나라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여러분 잘 아셔야합니다. 기독교가 없습니까! 종교가 없습니까! 어떤 면에서 문명이 뒤떨어졌습니까! 발전되면 발전될수록 복음이 바로 안 되면 영적인 문제가 심각하게 불어닥치면서 가정이 깨어집니다. 사회가 깨어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가정과 사회가 깨어진다는 배경에서 먼저 아셔야 될 것이 개인이 깨어져 나가고 있습니다. 개인이 깨어지면 가정은 물론 말할 것도 없죠. 그 다음에 개인이 응답 못 받고 개인이 참 복음에 서지 못하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모든 문제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잘 기억하실 것은 교회 생활도 내 개인이 응답 받고 개인이 기뻐야 교회가 '우리 기도합시다!' 그러면 같이 기도할 마음도 생기고, '찬송합시다!' 그러면 같이 찬송할 마음도 생기고 교회가 '이렇게 합시다!' 그러면 막 기쁘게 그렇게 할 마음도 생기지, 자기가 죽을 지경인데, '찬송합시다!' 그러면 속으로 '너나해라, 죽을 지경이다!' 교회가 뭐 '이렇게 합시다!' 그러면 내가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하느냐? 이게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아무리 내 가정이 막 겉으로는 좋을 집, 돈이 '있다, 없다!' 상관없이, 그렇다 할지라도 내 개인이 죽어있으면, 개인이 어려우면, 가정 부인이 아무리 좋으면 뭐하고 부인이 인물이 좋으면 뭐합니까? 내가 죽어 가는데, 자식이 아무리 좋으면 뭐합니까! 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개인이 복음이 안되면 서서히 깨져가고 있습니다. 이 사실들이 회복되어져야 합니다. 회복되어질 수 있는 길이 딱 하나뿐입니다. 그게 뭡니까? 참 주인을 바로 찾아야 합니다. 왜, 두 주인 가운데 머뭇거리면 점점 더 큰 갈등과 고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몸에 건강이 이상이 오니까, 자연적 무슨 일이 생기던지 뭐 머뭇거리게 됩니다. 뭐 이렇게 가야 되는데 또 갈 힘이 없다 싶고 그러면 늘 뭔가 마음에 갈등이 오고 뭔가 행복하다는 마음이 안 생깁니다. 그러다가 마음에 어떤 것으로 기울어지느냐 하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해 놓은 것인데 뭐 가다가 죽든지, 하다가 죽든지 뭐 죽어버리면 되는 것이지 그 뭐 걱정할게 뭐 있느냐!' 이런 마음으로 딱 한길로 확정만 지어도 변하더라 구요. 이게 변하더라 구요. 여러분 죽으면 죽어버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 다른 게 아닙니다. 내가 어떤 한길을 확실하게 마음에 결정 내어 버려도 결정하는 그 날로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둘 사이에 끼어 있으면 일단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죽음은 더 큰 축복의 문입니다. 겁낼 것 없잖아요. 그러니까 뭐냐? '죽으면 죽지' 뭐 이렇게만 되어도 편안하더라 구요. 한번 받아합시다. "죽어버리면 죽어버리지!" 이렇게만 되어도 편안해요. 여러분 확실한, 참된 주인 붙잡고 '주여 원하신다면 죽겠습니다!' 이렇게만 되어도 정신문제 해결됩니다. 이러면 치유가 나와요. 그게 안 될 때에 뭐냐? 갈등이 나오고 점점 더 복잡해집니다. 그래서 복음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제일먼저 뭐가 이루어 져야 되느냐 하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실하게 영접하는 순간 그때부터 두 주인을 섬기는 일은 끝납니다. 이게 바로 되어야 돼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우리는 '참 복음!'이라 그럽니다.

그러면 나는 참 복음이 안 되어 있느냐? 이상하게도 그렇게 못하도록 다른 주인이 계속해서 방해를 놓습니다. 다른 주인이, 성경은 세상 신이라! 그러고 세상 지배자라! 그러고 이걸 사단이라! 그러고 마귀라! 그러고 언제부터? 창세기 3장부터 이것이 개인을 자꾸 갈등시키게 하고 개인을 깨놓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나도 모르게 가정에 문제가 오고 사회에 문제가 오는 그런 부분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계속 방해를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떠나느냐? 확실하게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는 순간 구원이 임하고, 그때에 참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게 됩니다. 이때부터 모든 문제가 영육 간에 문제가 열려지게 됩니다. 이게 다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뭐 막말로 해 가지고 '병이 낫는다! 뭐 정신이 편안하다! 마음이 편안하다! 모든 문제 해결된다!' 그때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이것이 단순간에 고통스러운 문제가 단숨에 해결되는 문제가 있고, 차근차근 강도에 따라서 진전이 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은 사람의 성격이나 환경에 따라서 달리 표현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일단은 확실히 여러분 붙잡아야될 것이 정말 참 복음을 붙잡고 그것은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때에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동시에 그때부터 모든 문제 해결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일과 사건 속에 성취되기 시작합니다. 이것을 가지고 우리는 말씀의 성취라 그럽니다. 그때부터 뭐가 여러분 나타나는 것이 뭐냐하면, 말씀이 들려지기 시작합니다. 거기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러 와 가지고 말씀이 안 들어온다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어요. 일단은 교회 와서 여러분 기도할 때에 말씀이 잘 안 들어오거든 좀 일찍 오세요. 그래가지고는 뭘 기도하느냐? 집중해서 말씀이 들어올 수 있도록, 말씀이 깨달아 질 수 있도록, 그리고 이 말씀을 들을 때에 한 주간 기도의 제목이 나올 수 있도록, 이 기도가 집중되면 하나님 앞에 여러분 승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 이 예배를, 말씀을 바로 듣기 위해서 여러분 예배 위해서 잠이 많은 사람들은 잠을 미리 좀 자 두시고, 교회 와서 이 시간에 자려고 하지 마시고 미리 좀 자두시고, 그 다음에 일도 미리 좀 해 놓고 그렇게 하시면 돼요.

또 오늘 뭔가 이게 주일을 잘 지킨다고 토요일 날 12시, 1시까지 빨래하고 있지 말고 미리 그것은 놔두고 아무리 빨래 감이 뭐 모아졌다고 해도 하루, 이틀, 삼일... 썩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해서 주일날 참 말씀 속에 집중될 수 있도록 준비하시면 누가 역사 합니까? 그 다음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역사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하면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처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그리고 이 은혜도 '내가 하는 것이고,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합니까? 하나님께서 하신다! 모든 문제에 해결의 초점이 이 문제가 바로 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거의 지금 현재 왜 안 되느냐? 다른 것 살필 것이 없어요. 제일 중요한 것이 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한마디로 임마누엘이 되어야 된다 그러는데 문제는 여러분 영접이 확실하게 되어야 됩니다. 영접이 바로 되어버리면 어떤 문제도 생명이 들어가는 그 날부터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면 갈등이 계속되고 그러느냐? 여기서 오늘부터 '이미 영접하고 이미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 라고 확실히 믿고 있다면 뭘 바꾸어야 되느냐? 오늘부터 좀 생각을 바꾸어야합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생각 바꾸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있는데도 생각은 마귀의 자녀의 생각을 갖고 그대로 가는 겁니다. 여기서 갈등이 나오는 겁니다.

여러분 한국에 사는데 한국에 법에 적용을 받아야 되는데, 다른 나라의 법에 적용을 자꾸 하고 있다면 그런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건 안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오늘 뭐 많이 어렵게 생각할 것이 없어요. '아, 이제는 내 생각만 바꾸면 되는구나!' 이걸 가지고 우리는 치유라 안 그럽니까! 말씀들을 때에 치유가 되면 좋습니다. 조금 조금씩 치유가 되어도, 치유가 되기 시작하면 금방 평안과 안식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각을 바꾸는 일에 제일 먼저 뭘 해야 되느냐? 늘 말씀을 드리죠. 예수께서 나의 구주 되심이 믿어지게 되고 내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되는 동시에 여러분과 제가 어디로 간다 구요?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간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신학적인 문제가 되어 가지고 뭔가 실감이 안 나는가 봐요.

그 다음에 누가 우리를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주인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의 주인이십니다. 아마 한번도 하나님이 내 주인이라 생각하지 못한 사람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생각이 안 바꾸어 가지고 항상 사단을 내 주인으로 알고, 그게 뭐냐하면 사단이 내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생각의 배경이 뭐냐하면, 내가 내 주인으로 알고 있는 것이 사단이 나의 주인입니다. 그 속이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자신이 절대 주인이 아닙니다. 왜? 우리는 본질적으로 인간은 사단에 속하든지, 하나님께 속하든지 분명히 어디 속하도록 되어 있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을 수가 없는 본질적인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단은 뭐로 속이느냐? '내가 주인이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놓고 사단이 조종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오늘이라도 여러분 '내가 주인이다!' 이러면 '아, 아직도 나는 사단을 섬기고 있구나! 두 주인을 섬기고 있구나!' 교회 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건 두 주인을 섬기고 있구나! 그렇게 이해하면 돼요. 그래서 완전히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생각을 바로 바꾸어야 됩니다. 그렇다 그러면 이제는 주권이 어떻다 뭐 어떻다 너무 이제 딱딱한 말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받아합시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좋다!" 믿습니까! 그런데 왜 자기 마음대로 합니까! 이 말로만 하지 입에 발린 말이에요.

또 하나합시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더 많이 좋다!" 여러분 이것이 이 생각으로 바꾸어 버려야 됩니다. 전에는 내 생각이 자기도 모르게 '내 생각이 좋구나! 내가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왔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내가 자꾸 주인이 되려고 했던 것의 배경이 '내 생각이 하나님 생각보다 좋다!'는 그런 배경입니다. 여러분 오늘 뭔가 이런 문제가 생기고 이렇게 될 때에, '이게 좋겠다!' 싶어도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 하신 이것은 아무리 좀 힘든다 싶어도 하나님의 생각이, 하나님의 일이 훨씬 좋습니다.

혹시 내기 이 사람 진작 만났으면 좋았을 뻔했는데... 하나님의 생각이 좋습니다. 진작 만났으면 진작 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좋습니다. 이게 본질적으로 모든 배경이 여기 다 나와야 됩니다. 내 생각은 좁고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 5분 후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엄청나게 좋다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절대적으로 이 사실이 내 생각 속에 조금만 들어와 버리면 해결이 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이 들어왔다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정말 이 생각을 마음에 담아 버려야 돼요. 그러면 이때부터 열려지기 시작합니다. 이걸 가지고 치유에서는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게 안 되면 치유가 안 되게 되어 있어요.

혹시 여러분이 생활과 사건과 일에 감사가 안 나오면 이게 안 되어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혹시 남편 이상한 남편 만났다. 그렇게 생각하고 갈등이 올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안 되면 그런 게 생각이 와요. 여러분 남자친구 이상하지 않는 남자 있습니까! 다 이상한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이 되어져 있을 때는 그렇게 되어요. 그러나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낫구나! 진짜 나한테 딱 맞는 남편을 주셨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모든 것이 감사가 나와요. 여자친구 이상하지 않는 여자 어디 있습니까! 살아보면 그런데요. 그래도 이 여자 만났을 때에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잘 아시고 내게 맡겨주셔서 더 이상 좋은 분이 없다! 나한테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나한테 좋은 분이 없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 문제가 거기서 다 해결됩니다.

그러면 뭐가 나옵니까? 감사가 나와요. 이상한 짓 해도 감사가 나오고, 이것이 안 되면 범사에 불평입니다. 또 한번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보다" 어떻다 구요? 훨씬 낫다! 오늘 이 마음을 딱 여러분 붙잡아야 됩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느냐?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나의 가문을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누구이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3장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이 땅에 친히 오셔 가지고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흑암의 세력을 사단의 권세를 꺾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그리스도로 이 땅에 예수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 해결하시고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여기에 모든 문제들이 해결이 되죠.

그런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의 뭐가 되었습니까? 주인이 되었습니다. 내 모든 것을 인도하시는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무시기도가 나온다고 하는 것은 이것이 되어야 나오게 되어 있어요.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 이것 해야 됩니까? 이것 말아야 됩니까?' 나오게 되어 있잖아요. 내가 주인이 되어 있을 때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 문제 가지고 우리도 뭐 갈등할 것도 없어요.

여러분들이 뭔가 나하고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목사로 알고 있다면 적어도 여러분들이 뭐라 그럽니까? '목사님 뭘 하시겠습니까!' 안 묻겠어요? 어느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내가 설렁탕을 좋아하니까, 설렁탕 주십시오. 이럴 사람이 전혀 없어요. 그런데 자기 혼자 갔는데, 나한테 전화를 걸어 가지고 목사님 뭐 할까요? 그럴 수가 없어요. 그것은 자기가 주인인데,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있다 싶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 조금만 인식이 되면 언제든지 무시기도가 나와서 나온 게 아닙니다. 사건과 일을 당할 때마다 아버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할까요. 저렇게 할까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기도 아닙니까! 기도할 때에 다른 겁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저절로 따라 가게 되고, 그 뜻을 따라가게 되면 내 생각보다 하나님 생각이 훨씬 나은데, 하나님은 될 일을 계획하시고 이루시기 때문에, 내 생각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그 뜻은 이루어 나가기 때문에 이 역사가 엄청나게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받아합시다. "나는 하나님이 자녀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떻게 한다 구요?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막 피곤해서 그러지 말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것이 조금만 생각으로만 와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 속에 치유라는 사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 그럴 때에 어떤 마음을 가져야 되느냐 하면, 이 땅에 누구보다도, 수많은 사람보다도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합니까?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이게 또 너무 이기주의가 되어 가지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지, 너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곤란해요. 받아합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의 자녀인 너도 사랑한다! 이상한 짓 해도 남편을 사랑합니다! 이게 되면 생각이 달라져요. 좀 모자란 것 같은데도 당신도 사랑합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인식이 나오는 만큼 상대에 대한 이익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루어져야 돼요. 여러분 절대적으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이 이루어지게 되면 내가 어디 가든지, 뭘 하던지, 사랑한다는 배경 속에는 그냥 나온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뭐가 이루어집니까? 지금 뭐 '어렵다! 힘들다! 문제 생겼다! 사건 생겼다!' 이것과 상관없이 참된 주인 하나님을 바로 붙잡고 아버지로 바로 모시고 있다고 그럴 때에 내게 닥친 모든 문제가 '나는 싫은데...' 싶을 문제들이 나올 수 있지만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면 '됩니까, 안 됩니까?' 진짜입니까? 그러면 왜 걱정합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여러분과 제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이 사실들이 마음에, 조금만 마음에 품게 되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 정도가 아닙니다. '축복이구나! 참 감사구나!' 이렇게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머물지 마시고 큰 우리가 속는 것이 바로 여기입니다. 받아합시다.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벌도 함께 주신다!" 왜 그러냐 하면, 제가 이 말씀을 좀 벌써 드렸습니다 만은, 여러분과 저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런데 나는 이웃 일본도 잘 못 갔는데 나를 통해서 세계복음화라는 엄청난 축복을 계획을 세워놓았구요. 그런데 이 세계복음화라는 계획을 세워놓고 이루시려고 그럴 때에 내 그릇은 너무 적거든, 세계복음화는커녕 가정 복음화도 못 시키고 있는 주제에, 세계복음화라는 엄청난 하나님의 계획을 세워 놓으니까! 이게 그릇이 안되고 자격이 안 된다는 말이죠. 그러니 뭐가 됩니까?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있던 좁아터진 이상한 쪼그려든 그런 것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깨어버려야 될 것 아닙니까! 사이다 뚜껑 아무리 열어놓아 봐야 얼마나 물을 담겠어요? 그 크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나는 이 사실들을 신앙생활하면서 너무 내게서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생각을 더러 해보느냐 하면, 무슨 그 교회 큰 어떤 계획을 세우고, 교회 어떤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교회에 어떤 장로님 그릇을 깨든지 집사님 그릇을 좀 깨든지 그렇게 깨면 좋은데 누구그릇부터 먼저 깨느냐 하면, 항상 박 목사 그릇부터 먼저 깨더라 구요. 나한테 무슨 문제가 오면 교회에 일 단계 올라가는 시간이더라 구요. 항상 내 그릇이 먼저 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다시 만들어 놓으십니다.

여러분 가정에 저 이상한 남편 그릇부터 먼저 깨어놓으면 좋은데, 항상 누구 그릇부터 먼저 깨느냐? 복음을 알고 있는 자기 그릇부터 먼저 깨어 놓아요. 문제는 뭐냐? 내 그릇만 넓어지면 다 된다! 내 그릇이 바꾸어지면 다 됩니다. 내 자격이 바꾸어지면 다 됩니다. 자기 자신이 회복되면 그 안에 다 담을 수 있습니다. 뭐 남편 그릇이야 적든 좁든 상관없어요. 자기 그릇이 크면 거기 담아 버리면 되는 겁니다. 이게 지금 잘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 좋은, 큰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내가 자격이 안되고 내 그릇이 안되니까, 여기에 갈등이 오고 혹시 오늘 여러분들이 가정과 가족들 사이에 문제 있거나 이러면 다른 게 아닙니다. 자기 그릇 깨어지고 새로이 만들어 놓습니다. 이 과정에서 잠시 잠깐 어려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키워보면 병나고 나면 꼭 꾀가 늘던지, 뭐가 늘든지 그러더라 구요. 꼭 성장하는 과정에 한번 아프고 나면 꼭 성장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는 한,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오늘 그릇이 깨어지는 것 염려될 것이 없어요. 하나님의 큰 축복과 은혜의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 생각만 바꾸어도 상처는 치료가 됩니다. 여러분 정말 교회에 축복 받을 그릇으로 성장하고 싶습니까! 지금 깨어지고 있습니까! 상관없습니다. 더 큰 축복과 은혜의 역사로 나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바로 붙잡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되면 뭐가 느껴지느냐 하면요. 우리 교회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혹시 우리 같이 뭐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 가는 과정에서, 혹은 이렇게 기관별로 모여서 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저 인간 되겠나 싶은 생각들이 들 때가 많더라 구요. 나는 교회 오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 '저 사람이 인간 되겠나?' 이런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 잘 알아야 합니다. 복음이다 율법이다. 바로 밑에 간단합니다. 하나입니다.

'저 인간이 되겠나!' 라는 생각이 바꾸어져서 '생명 들어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바꾸어지는 시간이 복음입니다. 그러면 갈등이 사라져요. 혹시 보다가 '저 되겠나!' 이게 없어지면서 '복음만 들어가면 돼!' 이것이 자리 잡아 버리면, 그게 복음이 되는 시간입니다. 그러니 사람 보게 되면, '저 인간 되겠나! 아직도 멀었네! 인간 안되겠네!' 이렇게 있는 동안은 자기도 모르게 뭡니까? 두 주인을 섬기는 자리에서 떠나지를 못합니다. 늘 왔다갔다하게 됩니다. '사람 볼 때마다 갈등 없어진다!' 단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되어서 된다 이러면 갈등나올 우유가 없고 그때부터 그 사람 입에서는 뭐냐? 힘이 생깁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 통해서 나온 메시지는 생명이 생깁니다. 그때부터 그 사람 통해서 사실적인 치유역사가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게 되어져야 돼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제게, 그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참 생명이 들어가는 그 순간 누구든지 상관없습니다. 그에게 큰 계획을 세워놓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돌멩이도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적과 계획을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받아합시다. "지금 실패해도 하나님은 계획을 성취하고 계신다!" 목적을 이루어 가십니다. 그걸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이 이런 생각이 조금만 자리잡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뭐가 오느냐? 치유라는 것이 그때부터 이루어집니다. 저절로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나오는 것이 여러분 생활과 행동 속에서 뭐가 나오느냐? 뭐 이해하라 뭘 하라 상관없어요. 그렇게 되면 이제는 참 생명, 참 복음 여기에 가치가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때부터 복음 위해서, 복음에 역사 위한다는 복음과 관한 일이라면, 그 다음에 문제는 다 양보라는 것은 저절로 나옵니다. 이게 안되면 양보라는 것은 나올 수 없죠. 이게 안되면 갈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한번 받아합시다. "복음 이 외에는 다 양보하자!" 복음 이외에는 다 양보하자! 복음이외에는 전부다 양보해 버립니다. 그러면 왜냐? 복음 속에 다 포함이 되게 때문에 우리가 그걸 가지고 붙들고 설칠 것이 없어요. 그러니 뭐 부부문제나, 부모자식간에 문제나, 혹은 모든 교회 관계 속에서 이 문제가 해결되게 되면 이때부터 뭐가 필요하냐 하면, 당장 들어오는 것이 자기 자신이 회복이 되면서 사람 사람과의 관계들이 저절로 회복이 됩니다. 혹시 이 문제가 안되어서 막 사람 사는 관계가 어렵다! 그것은 간단합니다. 이 문제 회복되면, 저절로 회복 되어버리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일 어려운 것이 뭐냐하면, 지금까지는 쉽게 남편과 아내관계가 잘 되어가다가도 이상한데로 빠지더라 구요. 그러면 반드시 그 속을 쳐다보면 이 문제입니다. 내 자신의 회복인 안 된 겁니다. 그런데 뭡니까? 이 사람과의 관계가,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 그럴 때에 제일 먼저 뭐냐? 부부간의 관계가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저절로 회복되어 집니다. 저절로 회복 되어버리는 겁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때부터 어려움도 뭐가 나오느냐? 감사가 나오구요. 고난도 감사가 나오고, 또 모든 문제도 하나님께서 지금 현재 엄청난 일을 이루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이 나오니까, 감사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뭐 여러분 입에서 저절로 감사가 나오면 이건 치유 받은 겁니다. 뭐 치유라는 것이 다른 게 아닙니다. 뭐 치유라는 것이, 뭐 머리에 손 얹고 기도해서 나았다! 그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되면 그때부터 오는 것이 모든 이 치유가 나오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할 것도 없죠.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감사가 나옵니다. 왜? 잃어도 잃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배경이 되면 잃으면 잃을수록 더 찾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뭐라 그랬습니까? '목숨을 잃고자 하면 찾는 것이고, 내가 목숨을 찾으려고 하면 더 잃어버린다!' 이게 이상한 논리 아닙니까! 그러나 성경은 바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하나님이 능력자라고 조금만 생각이 바꾸어지게 되면요. 이게 나와도 상관없습니다. 일이 이루어지고 잃어버릴수록 그 안에 다 포함이 되어 들어오기 때문에 모든 것이 회복이 되어집니다. 백 번, 천 번 여러분 자존심 가지고 둘이서 다투어 보아야 남는 것은 이것은 더 큰 상실감뿐이지 얻는 것이 없어요. 그리고 이 복음의 역사를 딱 붙들고 다 내어놓아 버리면 그 안에 다 들어와 버립니다. 눈 떠버리면 다 들어와요. 상관없어요.

저는 그 부흥사가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하나, 이것 하나만 딱 붙들면 이것은 언약이라 그럴 수도 있고 여러 가지 말할 수도 있습니다 만은, 딱 하나입니다. 부부가 뭐 적극적으로 싸웠습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헤어지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네가 가지고 왔던 것 보물 다 가지고 가라! 이 집에서 이제는 네가 나가라!' 그러니 여자가 할 수 없잖아요. 이제 서로 합의를 했으니까, 보자기를 딱 펴놓고, 그래 놓고는 가만히 서 있어요. '빨리 싸 가지고 나가라!' 그러니까 내가 싸 가지고 갈 것 딱 하나입니다. '그 하나 가지고 가라!' 당신 여기 들어오세요.

딱 한가지입니다.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그 안에 모든 것이, 다른 것 장롱 같은 것이 상관없어요. 뭐 싱크대도 상관없어요. 부엌에 뭐 상관없어요. 하나만 있으면 돼요. 그것만 달랑 싸 짊어지고 나오면 돼요. 나와도 다 따라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안 그러면 다 그 안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오직 한 분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언약에 하나님만 나의 아버지 되시고, 나의 주인이 되시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이 사실 속에 모든 것이 양보가 비로소 가능합니다. 감사와 찬송이 나오게 되죠.

이러면 우리가 빌립보서 4장 6절, 7절 말씀처럼, 이러면 모든 환경도, 모든 사건도,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참 평안과 감사와 안식이 나오도록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있다, 없다!'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다른 겁니다. 이 축복된 주인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제물과 하나님을 지금도 겸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이것을 안 놓치고, 저것을 안 놓치고, 뭔가 이것도 안 되겠고, 저것도 안 되겠고, 이 속에 갈등하다가 여러분 완전히 또 점점 더 저주와 재난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 불 신앙 자들보다도 교회 안에 더 많습니다. 차라리 하나면 좋은데, 둘 사이에 머뭇거리다가 엄청난 고통과 괴로움 속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못 믿고, 바른 복음 바로 못 붙잡으면, 예수 믿고 훨씬 고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 되고,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이러다가 두 사이에 머뭇머뭇하다가! 단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오직 나의 주인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 언약 통해서 모든 것 이 안에 있습니다. 다 양보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1] 신앙 생활은 단순합니다.

☞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서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할 때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떤 신을 섬길 것인가를 결정하지 못하고 갈등할 때가 가장 고통스러운 때요, 흑암이 덮여 괴로워하던 때였습니다. 엘리야가 사역하던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하며 고통을 당했습니다.

☞ 성도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할 때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갈등을 하며 두 주인을 섬기게 되는 경우에, 엄청난 저주
와 고통으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 실제적으로 신앙 생활은 매우 단순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붙잡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됩니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붙잡지 않으면, 성도라고 하여도 불신자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개인이 깨어지고,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가 깨어지게 됩니다. 한편, 성도 개인이 응답받고 기뻐하는 상태가 되면, 교회가 기도하고 찬송하며 어떤 일을 진행할 때, 기쁨으로 그 일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2] 성도 개인이 회복되는 길은, 참 주인을 바르게 찾는 것입니다.

☞ 모든 사람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확실하게 영접하는 순간, 구원받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임재하셔서, 영육간의 문제가 다 해결되고 두 주인을 섬기던 갈등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게 되고, 기도 제목이 나오게 됩니다.


[3] 갈등을 해결하려면 생각을 바꾸십시오.

☞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사단의 자녀처럼 생각할 때, 갈등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는 것이 바로 치유이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게 되면 평안과 안식이 찾아옵니다.

☞ 예수께서 나의 구주되심을 믿을 때, 나는 하나님의 주권 속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이 때, 우리의 생각에는 큰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즉, '내 생각보다 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생각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나의 마음 속에 깊고 진실하게 이루어질 때, 감사가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치유입니다.

☞ 한편,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벌도 함께 주십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계획은 엄청나게 큰데 비해 나의 그릇은 너무나 작습니다. 그래서, 큰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그릇을 깨뜨리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잠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된 나에게 축복된 목적을 두고 인도해 가시므로, 우리는 전혀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렇게 자신의 문제가 회복되면, 복음을 위해서 다른 문제는 양보할 수 있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모든 것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만 붙잡고 나아가면, 나머지 다른 것들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제목 본문 설교일
1484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행11:19-30 2025-04-27
1483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고전15:1-11 2025-04-20
1482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삿7:9-18 2025-04-13
1481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삿7:1-8 2025-04-06
1480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삿4:1-10 2025-03-30
1479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삿3:12-23 2025-03-23
1478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삿3:7-11 2025-03-16
1477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삿2:6-10 2025-03-09
1476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삿1:1-7 2025-03-02
1475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단12:1-4 2025-02-23
1474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단11:28-39 2025-02-16
1473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단10:10-21 2025-02-09
1472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단9:20-24 2025-02-02
1471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단8:15-27 2025-01-26
1470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단7:9-14 2025-01-19
1 2 3 4 5 6 7 8 9 10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