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치유의 능력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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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인사하겠습니다. 평강 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오늘도 이 찬양의 소리와 같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이 나를 세우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귀한 교회 속에서 주의 뜻을 이룰 우리의 성도들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주의 뜻을 이루어 가는 일에 쓰임 받도록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이일에 주께서 필요한 말씀으로 임하셔서 주님께서 한 주간도 계속해서 응답 받는 응답의 음성으로 들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리 옵나이다. 아멘"
치유라고 그러니까 또 다시 우리도 모르게 뭔가 또 해야 돼는 것으로 알고 또 뭔가 노력을 하는 것으로 또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따라 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치유라는 것이 절대로 말씀으로 아니면은 치유라는 것은 나왔다는 능력도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이 등식이 지금 이루어 져야 되고 그렇다면 이것이 이루어질 때에 뭐가 이루어져야 되는냐 치유라고 그럴 때에 내가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그게 아니고 성경대로 삶이 이루어 져야 됩니다. 말하
자면 삶이라는 것은 그냥 내가 노력한다해서 되는 게 아니고 몸에 배어 버려야 됩니다. 체
질이 와져야 되고 자연스럽게 이것이 되면은 그냥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치유가 이루어진
다." 그 말속에는 그냥 전도가 되고 그냥 길이 열리고 삶에 문이 열리고 이렇게 되는 것이
성경대로 치유가 되는 말씀에 치유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안되니까 오늘날 교회의 치유
가 잘못된 치유들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이게 안되니까 "잘못된 치유 교회치유가 나온
다." 그럴 때에 성경적인 생활 그럴 때에 생활이란 것은 여러분들이 그저 하루아침에 나오
는 것이 아니고 깊은 어떤 그런 체질과 생활하는 삶 자체이기 때문에 몸에 배어야 그게 나
오는 겁니다. 이게 안되면은 여러분들이 억지로 여기 있다가 미국 가서 미국 사람처럼 살려
고 그러면 힘들어 못 살아요 한국에서 살면 한국적인 삶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있기 때문
에 이게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디 가든지 말 들으면은 아 이게 이렇구
나 저렇구나 판단도 나오고 선택도 나오고 자연적 그렇게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이 배
어 버리고 말씀을 통해서 살아가는 일에 체질이 되어 버려야 그래야 저절로 모든 것이 나옵
니다. 그러면 어디 가서 딱 앉으면 벌써 내가 체질 된 상황에서 판단이 나오고 아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행동해야 되겠구나. 생각이 나와버리게 되
고 선택이 그렇게 나와버리게 되고 그리고 사업가들도 어딜 딱 가면 이 말씀이 생활이 되어
버려요. 자기도 모르게 사업하는 사람의 방향이 저절로 나와버리지 거기서 뭐 연구하고 만
들고 그게 아니거든요. 삶이란 것은 연구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저절로 뭐가 되느냐 이게
생활이 되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뭐냐하면 이 생활이라 그러면 앞으로 나오게
습니다마는 결국 뭐냐하면 지난주에 제가 말씀한 것처럼 이게요 생명이 들어가야 됩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생명의 성장이 바로 삶입니다. 말씀으로의 삶이 생명의 성장이 되는 겁니
다. 이게 안되니까 뭐에 빠지냐하면 종교에 빠지게 되고 그러니까 왜 우리가 기존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문제 삼느냐 하면 생명이 안된데 대해서 치유를 받으려 하니까 잘못된
게 자꾸 나옵니다. 종교에 빠져 버리니까 뭐가 나오게 되느냐 하면 여기에 노력이 나오고
율법이 나오게 됩니다. 자꾸 뭔가 배워서 돼는 줄 알고 그러니 하면 할수록 망해 버리게 됩
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게 안된 상태에서는 생활이 안된 상태에서는 이
일이 잘 안 되어야 정상입니다. 되면은 더 큰 문제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다락방이 안 된다 뭐가 안 된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게 안 되는 게 정상이
고 안 되야 됩니다. 쉽게 말해서 자동차가 지금 서울로 가는데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이 목적지인데 부산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장이 나야
그게 정상입니다. 되는 것입니다. 가다가 고장이 나고 빵구가 나야 그래야 일이 돼는 겁니
다. 그런데 계속 고장이 안 나고 계속 잘 달린다. 그건 뭐 더 죽어 버리는 거고 더 안 되는
겁니다. 방향이 더 틀려 버리는 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은 뭐 열심히 노력
하고 애를 쓰고 일순간 되는 것 같아도 잘 알아야 됩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구체적으
로 안 되면은 이리로 빠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라고 말하는 데가 실질적으로
치유 받는 좋은 자리에 와 있지 만은 잘못된 방향에 치유되게 될 때에 그때에 엉뚱한데 빠
져버리게 됩니다. 이래서 어디에 빠지냐 종교에 빠지고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어디에 빠져
버리냐 신비에 빠지게 됩니다.
"신비". 여러분 신비는 안 되야 되거든요 안 돼야 되는데 된다 말이죠. 그런데 더 깊은 문제
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신비 기도
했다 그러면 뭔가 조금 벌벌 떨고 진동도 하고 되는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 뭔가 됐다 그러
면 자꾸 그리로 빠져 버리게 되니까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고 그리고 자기가 잠깐 뭔가 방
법을 구했다 인본주의를 썼다 그러면 안 되야 되는데 되면 더 큰 문제에 빠져 버리게 됩니
다. 결국은 저주 속에 깊이 빠져 버리게 됩니다. 이게 지금 빨리 우리가 치유가 되어야 됩니
다. 왜 말씀으로 성경대로가 아닌 모든 치유는 교회 생활이나 자기생활에 모든 치유는 점점
치유가 됐다는 자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요런 것을 우리가 조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게 안되니까 지금 사회에서는 최면술이라던가 하나의 신비주의도 최면술입니다. 깊이. 집중
운동 무조건 하나에도 집중하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말해서 심리적으로 집
중하면 그것도 되는 겁니다. 하면된다 이래가지고 "하면된다. 하면된다." 이러면 또 되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가지고 하고 망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번에도 조금 설명을 드
렸습니다. 제가 하나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내 인생에 큰 실수요 실패라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충성입니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대로의 충성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표현 안했
습니까 얼마나 눌려 삽니까 그래가지고 일체 거기에만 설교 그 다음에 충성 그러기 위해서
는 하나도 딴 것 생각 안해야 된다. 이래가지고 살았던 것이 그게 나름대로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그게 뭐냐 결국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생각이잖아요. 이게 충성이다. 이래가지
고 아이들도 안 살피고 자기 부인도 안 살피로 그러고 이것도 안 하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
오늘 받는 것은 우리 집사람 감기도 잘 걸리고 하여튼 계속 아픈 것은 결국 내가 받을 것을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저희 자형 김인섭 목사님을 보면서 말이 나가면 본인은 좀
섭섭할지 모르지만 결국 뭐냐하면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밥만 먹었다 하면 일단은 다른 건
생각 안 하니까 그래서 워낙 답답하니까 여러분 부부가 싸움이라도 하면 부인이 속이 좀 풀
립니다. 욕이라도 하고 막말로 해서 꼬집어 뜯기라도 해버리면 그래도 되는데 싸움도 안 돼
요 가서 싸움 걸면 "어허 사단이 또 역사 하네." 그러고 싸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 버리니까
이게 안 되니까 부인이 더 죽는 겁니다. 누님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런데 요즘은 어떠냐 요즘은 바꾸어져 가지고 사모님은 저희 누님은 가만히 계시고 계시고
뭐고 간에 할 힘이 없으니까 우리 김인섭 목사님이 밥도 다 하시고 아침 일찍 나가서 다 하
십니다. 그래서 내가 가만히 그걸 보면서 뭘 느끼냐 하면요 결국 딴게 아닙니다. 내가 만들
었는겁니다. 요즘 뭐라 그러냐 가끔가다가 내가 뭔가 당신이 조금이해를 하고 여유를 좀 가
질 수 있으면 이렇게 긴장 안 하고 병이 안 날 것인데 그러면서 슬쩍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고요 처음에는 그게 아니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게 사실 맞아요. 절
대로 안돌아봐요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겠어요. 평생을 그래 사니까 그래서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만은 내가 내 아들이 자기 아들 한테 "보고싶다" 그러고 이게 이상하게 느껴지
는 저게 언제 이게 교회오면서 신학 하면서 저게 여유가 있을 수 있느냐 여유가 있어야 돼
요. 그게 안 된다는 것은 내 나름대로 딱 제한을 둬 가지고 이게 완전히 병든 거예요. 하나
님의 뜻과 계획은 가족도 사랑하고 그 다음에 내 주위에 살필 수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이
땅 것도 보고 하나님걸 봐야 진짜 사명이 나오는데 이걸 내 중심적으로만 밀고 나갑니다.
이게 거의 우리의 일 생활입니다. 노력을 얼마나 합니까 그래가지고 새삼 느끼는 것은요 매
주 산에 돌아다니면서 매주 월요일 아닙니까 산에 올라가서 금요일날 또 마치고 올라가죠
겨울에도 올라가죠 아마 여기 올라가신 분들은 잘 알잖아요 우리가 올라가서 기도할려고 그
러면 옷을 겹겹이 껴입고 가야 안됩니까 거기다가 비닐을 덮어써 가지고 하여튼 내려오다가
넘어지면 잘 일어 나지도 못해요. 너무 옷을 많이 입어가지고 내려오면서 나를 보다가 옆에
사람을 보면 진짜 상거지 중에 상거지 그러면 그게 충성인줄 알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러면서 우리가 그 생활속에서 더 갈급해지고 더 답답해지고 평안이 없고 안식
이 없어요. 더 그렇게 빠져 버리는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 순간에 되는 것 같아
도 말씀으로 안 돌아가면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일시적인 어떤 집중으로 일종의 최면입니
다. 일시적으로 돼는 것 같아도 돼는 게 아닙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조금 이해가 되잖아요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자유함을 얻어야 됩니다.
막 강박관념에 매였던 곳에서부터 갈급 한데 매였던 곳에서부터 누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평안과 안식과 만족이 와야 됩니다. 감사가 와야지요 이것이 이루어 져야 뭐가 됩니까 치유
가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말씀이 제대로 삶이 되면은 뭐가 오느냐 제일 먼저 감사가 옵
니다. "평안"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평안과 감사가
우리 생활을 덮어 버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해 나가게 되죠. 그러니까 이
것이 안 되니까 여기서 우리가 영적 진단을 해 보게 되면 영적인 문제가 오잖아요 말씀대로
실제적으로 안되니까 그러니까 뭐가 오냐 하면 첫 번째 보면 문제가 보면 드러나기도 하고
그 다음에 우리 생활 속에 숨겨진 문제들이 거의 드러난 문제 숨겨진 문제 이런 문제들이
많은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좀 나눈다면. 뭐냐하면 과거 문제 여러분 지금 현재 여기 나와
있지만 교회까지 나왔는 상황에서요 과거 배경이 엄청난 배경이 많거든요. 그런데 일단은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치유는 받았지만은 뭔가 하면 마음의 상처들은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생각으로 통해서 이 상처 때문에 생각이 잘못된 생각으로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어
떤 분들은 보면요 교회 안에 와도 내가 구원받았는데도 아주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차있고
그 다음에 원망적인 생각으로 꽉 차있고 이런 것들로 남아있어 치유가 안 되는 겁니다. 그
러니까 뭡니까 이걸 통해서 계속 남에게도 상처 주고 자기자신도 이로 통해서 계속 눌려 버
립니다. 눌린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사단의 통로거든요. 이래서 자꾸 병들어 가는 그런 모
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배경에서 과거의 상처가 나오죠 이건 전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
에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기까지 이런 배경들. 요런 문제 때문에 우리도 모르
게 이런 것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지기 때문에 요런 것 때문에 여러분들이 드러나지 않지만
은 우리 자신들에게 생각과 마음들이 그 다음에 성품들이 어떤 것으로 바꾸어 지냐 하면 자
기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해서 만족이 안 되니까 뭐가 오느냐 하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이 불평의 배경은요 아내다. 남편이다. 자식이다 교회다. 뭐든지 그런 배경으로 나와 버리게
됩니다. 만족이 없으면 그렇게 나왔 버립니다. 불평이 나온다는 배경에는 뭐가 나오느냐 하
면 여기다 비판이 나와 버리게 됩니다. 걸핏하면 우리가 비판이 나와 버려요 그러니까 복음
이 안되고 성경적인 생활이 안 되면 뭔가 자연적으로 여기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뭐든지
비판합니다. 뭐든지 비판하니까 뭔가 부정적인 시각이 나와 버립니다. 뭐든지 저거 안된다
저거 인간 되겠냐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마음이 들면 절대로 평안이 없어요. 만족이 안되니
까 그러니까 남편에 대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한 마디로
이런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은 이것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은 뭐가 나오냐 하면 이런 배경에
서 이것이 쌓이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성격이 뭐가 쌓이냐 하면 분노가 쌓이게 되면 뭐든
지 이걸 표현하면 "분노가 쌓인다." 그러면 되겠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아내한테 뭔가 만족
이 안 될 때에 불평이 나오고 비판이 나오고 자꾸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은 이게 뭐냐 하면
나도 모르게 아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뭐가 나옵니까 분노가 터트려 집니다. 밥 조금만 늦으
면 "뭐 이래."그러고 말이죠. 제가 우리 집에서 생전 내가 밥 먹는 것 때문에 성질을 안 내
는데 이 몸이 아프니까 뭐든지 불만 스럽잖아요. 그리고 이 반찬도 마음에 안 들고 이러니
까 그러면 뭐가 되느냐 하면 이게 나중에 분노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밥상도 분노가 나오니
까 막 탓하니까 그러니까 또 상대방도 마찬가지 안 저러든게 왜 저러노 싶고 그러니까 또
막 분노가 나오고 그러면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분노라는 것이요 분노의 심정 분노의 마음
이라는 것이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사단의 통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죄"라고 그
러기 전에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분을 품지 만은 해지도
록 분을 품지 마라." "사단으로 말미암아" 뭐가 됩니까 "틈타지 못하게 하라" 이게 무서운
문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분노"라는 자체가 죄가 아닐지 모르지만은 이런 배경이 나옵니
다. 그러니까는 뭐가 안되냐 하면 우리도 모르게 그런 배경 속에서 사단이 지 마음대로 막.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 도요. 뭔가 내 마음에 다 듭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그런 문제
들을 내가 품게 되고 그럴 때 에요 그게 한번 두 번 내 마음에 안 들고 하면 상대방에게 나
도 모르게 성질 내버리게 됩니다.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분노가 쌓이게 되면 그 자체가 뭡
니까 전부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 얘기 들으면 뭐든지 말이 다 옳아요 옳은
데도 뭡니까 그 사람과 나 사이 이간이 되고 저 사람과 나 사이 이간이 되고 그게 전부 사
단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엄청난 무서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일단은 좀
무엇을 생각해야 되냐 하면요 어떤 사람을 보든지. 앞으로 말씀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
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뭐든지 그 사람 장점을 보고
칭찬 할 수 있는. 저 TV보니까 칭찬합시다 그랬더라구요 그게요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되는게 아니에요 그게 구체적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야 여러
분 자신에게 눈이 열릴 뿐만 아니라 축복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목사를 보든지 장로를 보든
지 집사를 보든지 이웃을 보든지 교회를 보든지 일단 뭐가 되느냐 이 교회 왔다는 게 내가
참 감사하구나 참 좋은 사람들이 모였구나 이래 되야 일이 되게 되어 있어요. 안 그러면요
여기 오게 되면 가장 무서운 문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뭐가 옵니까 눌립니다. 이런 배경이
되면요 이상하게 뭔가 부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결과 나오는 것이 바로 그런 문제거든
요. 이게 진단해서 정신적 문제가 나오지요. 정신적인 문제가 나오는데 첫 번에 이 마태복
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눌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복
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성경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요 이상하게 그 교회만 눌려 버립니다.
여러분 나는 우리교회에 이걸 많이 느낌니다. 나도 그렇고 아 이게 우리가 근본적으로 치유
되어야 되겠다. "복음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복음 됐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디 있느냐 이
앞에 있습니다. 이게 배경입니다. 자녀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부모에 대해서 불만이 오기 시
작하면 원망이 나옵니다. 그래 오기 시작하면요 그리고 그 배경에서 부모에게 눌려 버립니
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를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요. 제가 이 아이를 "자랑 한다"
이전에 뭔가 이런 말을 자랑한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만은 저기 저럴 수 있나 이런 식으로
보게 되면 한정이 없어요. 그런데 저것도 뭐 쓸만하네 저 성질 괜찮네 저 괜찮네 그렇게 생
각하면요 내 아들도 괜찮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괜찮은 게 있어요 없는 게 아닙니다. 그
런데 그런 어떤 비판의 시각을 통해 봤고 그걸 통해서 계속해서 뭔가 하면 비판하면서 복음
이 아니고 눌려버리면 이게 나가게 되면 뭔가 콱 눌려 버립니다. 그래서 뭐라 그러냐 면은
내가 지금까지 내 맘대로 한 게 어디 있어요 내가 눌려 살았지요. 그래서 뭐가 없느냐 용기
가 없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눌려버리면요 사람이 할 일을 못합니다. 이걸 또 잘못 생각해서
요즘은요 무조건 기를 살려 줘야 한다고 잘해도 잘한다 못해도 잘한다 이래서 아이들 망쳐
놓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지금현재 이 밑에 지하실에 안 보이는데 애들 지금 난장판입니다.
예배시간 예배시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교육이 잘 되어야 돼요. 어떤 집에 가면요 진짜
배운 집안의 가정이요 난 도저히 배웠다는 것이 저게 저렇게 무식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나오더라구요 아이들을 저렇게 키워놨느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은요
어릴 때에 어떤 배경으로 교육시키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인생이 달라지고
성격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말이 아니게 키워 놨어요. 결국 이것이 안되면 뭐가 오느냐
완전히 눌려 버립니다. 그러면 중요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중요한 시간에 일을 해야
될 그 시간에 사단이 가장 마음대로 활동하게 되는 배경이 되어버립니다.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모두가 참 내가 무슨 기도를 하든지 어떤 기도를 하든지 우
리교회는 아무런 부담 없이 평안하다. 복음이 다 됐다. 이래 되면 앞에 서게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그렇게 안 얼립니다. 안 얼리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거의. 그래서 집에서 기도
문을 다 쓰고 외어 가지고 왔다가도 여기 딱 서게 되면 눌려버리면은 어느 순간에 글 써 놓
았는 것도 안보여 버립니다. 딱 막혀 가지고 막 그러면 한 줄 빼먹어 버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결정적으로 눌린다는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사단이 바로 직소해 버립니다. 그게
그래서 복음이 아니면 자유가 없게 말하자면 자유가 안되기 때문에 거기에 전부 눌리게 되
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배경에서 보면서 금년도에요 정말 우리 교회 좀 해방 받아야 되
겠다 상당히 우리교회는 좀 눌린 게 있거든요. 뭔가 이 좀 질서를 따지고 뭐를 따지는데 좋
습니다. 그것도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없애라 질서 없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뭐냐하면
근본배경이 지금까지 이런 말하자면 비판과 나도 모르게 만족스럽지 못한 불평과 이런 어떤
배경 때문에 오는 사단의 통로들 뭔가 이 교회 다니면서 감사하다 감격스럽다. 참 기쁘다.
참 자유 하다 그게 안되면 뭡니까 분노가 쌓입니다. 막 불평이 쌓이면 뭡니까 분노가 나옵
니다. 그러면 목사 만나도 뭐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오면 분노가 나오고 조금만 이상하면
중직자들에게 분노가 나오고 불평이 쌓이게 되면 분노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사
단의 통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내 인생에 삶에 전부 뭡니까 축복과 은혜가 닫히게 됩니
다. 여기서부터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오는 문제가 뭐냐하면 베드로서 5
장 7절,8절이죠. 전부 이 결과가 되는 거죠. 벧전 5장 7절 8절입니다. 뭐가 없어요 평안이 없
어요 그러니까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이것이 실제가 아니에요 말씀의 능력으로 실제적으
로 우리의 삶이 서지 아니하면 뭐냐 암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갈급 해 집니다. 평안이 없
어요 제가 신비주의 하면서 그런 말씀했습니다 만은 기도를 그렇게 했으면 됐지 그렇게 기
도하는데도 아~휴 기도가 부족하구나 기도 이렇게 못해서 어떻게 하느냐 요즘은 여러분 어
떤면에서 기도를 너무 안 합니다. 너무 안 할뿐 아니고 내가 이렇게 되겠냐 아프다는 핑계
가지고 지금까지 푹 쉬고 있습니다 만은 그러나 마음은 편안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어
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막 우리교회가 이렇게 기도를 안 해도 되겠느냐. 괜찮
습니다. 본래 못하는 기도. 어떤 면에서 여러분 더 큰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금도 제
가 뭔가 새벽기도. 50일 새벽기도다. 도장찍자. 이래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가지고
될 것 같으면 벌써 옛날에 되었죠. 근본 이게 안 돌아가면요. 근본 복음으로 안 돌아가면은
지금은 뭐 또 누르면 또 눌리는 거지. 그래 가지고 새벽기도 얘기를 하면 전부다 눌려 버려
요. 새벽기도도 안 나오는 게 하면 전부 고개 푹 숙여 버리고 아이고 난 안 되는구나. 여러
분 새 생명 이것이 구체적으로 안 되면은요 뭘 내가 안 한다 못한다해서 눌려 버립니다. 엄
청난 문제입니다. 새벽기도 나오지 말라 그런 얘기 아닙니다. 또 이렇다고 아 됐네 새벽기도
나오지 말라 그러더라 그 문제하고는 다른 얘기입니다. 근본 이게 안 돼버리면 처음부터 전
부 안 되버려요. 전부 눌림이 되어 버립니다. 이게 안되면 해방이 안나와요 그리고 신앙 생
활이라는게 부담이 자꾸 됩니다. 하면 할수록. 그래서 충성이 도대체 뭐냐. 헌신이 도대체
뭐냐. 이게 문제가 되요. 그래서 여러분 중심에 내가 평안과 안식이 그러면 자연적으로 뭐냐
이런 것이 해결되게 되면요 이게 해결 안 되면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무리 교회에서 교회
기관마다 여러분에게 협조를 해달라 협조가 안나옵니다. 기관에 오라 그래도 안 와요. 제가
이렇게 기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제일선교회입니다. 2선교회입니다. 안 오는 사람 내가 알
아요. 뭐냐 그 뭐 마음에 만족이 없어요 근본 협조가 안나옵니다. 절대로 비협조적입니다.
참석을 안 해요 그러니깐 협조가 안되니까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감사가 나온다. 내가 이
교회에 오는 것이 참 즐겁다. 참 감사하다. 이 사람 만나는 게 참 즐겁다. 그게 안되거든요
여러분 아무리 근본 이게 안되면요 사람 만날 때마다 불평이 더 나오지 감사 안나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아무리 아무리 신앙 생활 열심히 해 가지고 중직에 앉을수록 뭐가 나오느냐
더 불평과 비판이 나옵니다. 왜 이게 안 되면은 제일 불평과 비판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게
누구냐 목사들입니다. 근본이게 안 되면 이거 되 버리면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쉽게 말해서
나중에 말씀 하겠습니다 만은 쉽게 말해서 여러분 개개인이 모든 평신도들이 이래서 설문조
사를 했는데 설문조사 할 때에 평신도들이 교회를 향한 불평이 뭐냐 교회에 대한 요구가 뭐
냐 이게 뭐냐하면 목사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평신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불평
의 제일 첫 번이요. 그 다음에 또 반대로 거꾸로 목사님이 평신도들에게 불평이 뭐냐 원하
는 게 뭐냐 평신도들이 목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협조하지 안는다. 똑같아요 전부.
그러면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뭐가 나옵니까 평신도들이 목사들에게 분노하게 되는 겁니다.
목사들이 평신도에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분노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 아니거든요 뭐가 나옵니까 설교 할 때에 뭐가 나오느냐 설교 할 때에 싫은 설
교가 나가요. 그 다음 여러분 설교 그게 뭐라 목사가 그러면 분노 대 분노 폭발하게됩니다.
그게 뭐가 나옵니까 사단의 제1통로가 되어버립니다. 완전히 지 마음대로 뒤엉켜 버립니다.
그래서 지금 뭘 깨달아야 하느냐 아 진짜 이 교회에 오니까 정말로 감사하다. 너무 감사하
다. 목사님 감사하고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요 사단이 역사 할 틈이 없어요. 그
다음에 교회도 별사람이 다 오잖아요.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노. 이래되면 그 다음 역사 하면
서 사단이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과 모든 교회에 역사가 누구한테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손
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이 하시지 이래버리면요 맡겨버리면요 뭐가 나옵니까
평안이 와버립니다. 감사가 와버립니다. 그러면 뭐가 보이느냐 아 어쩌면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교회에 왔노 이렇게 되면요 역사 나옵니다. 사단이 틈탈 여가가 없어요 이것이 안되면
요 참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온 것이 노력한다고 노력하고 애를 쓴다고 애를
쓴 것이요 여기에 빠져 가지고 돈 내지 뭐 시간 내지 새벽기도하고 철야하지 그런데도 뭡니
까 교회에 대한 만족이 없어요. 목사에 대한 만족이 없어요. 목사도 교인에 대한 만족이 없
어요. 그러니까 서로서로 교회가 뭡니까 그래서 교회만 들어 왔다하면 눌려 버려요. 그런데
그것이 바꾸어지게 되면요 교회에 들어왔다 편안해 지게 됩니다. 참 교회에 들어왔다 이상
하게 안정을 찾게 됩니다. 자유함이 옵니다. 기쁨이 옵니다. 감사가 옵니다. 이렇게 되어버려
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노력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이 사실이 안되면
은 구체적으로 그런 문제가 안나오죠. 마음의 화평과 참 평안이 없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빌립보서 잘 아는 우리가 늘 잘 아는 빌립보서 4장 6절,7절. 지각에 뛰
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요기는 평강보다도 염려입니다. 베드로 전서는 염려를 다 맡겨버리고
빌립보서는 그때 비로소 뭔가 평안이 옵니다. 너무너무 안식하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오죠. 이것이 안되면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행전16장 16절부터 18절. 다른 영이 지배하
게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지속되어버리면요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다른 것들이 와서 이것이
쉽게 말해서 다른 영이 딴 게 아닙니다. 귀신의 역사가 나오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찾아오
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제 해결해야 될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직 말씀입니다. 말씀화 된 삶
그러니깐 오직 말씀이다 그럴 때에 이 말씀이 딴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리스도
운동입니다. 다른 문제 아니죠 왜 그러면 이런 문제가 오느냐 원인이 뭔냐. 원인이 창세기 3
장 아닙니까. 창세기 3장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닥친
것이 영적인 문제가 와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정신적인 문제가 와 버렸습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과 내가 지금현재 실제로 그런 자리에 와 있다 그겁니다. 그 다음에 육신적인 질병과
고통이 와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요런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계속해서 이런 문제에 부닥치
게 될 때에 뭐가 나오느냐하면요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육신 문제가 나옵니다 뭐가 나오느
냐 대개 육신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 뭐든지 뭡니까 일단 일이 생기게되면은 쉽게 어떻게 되
어 버리느냐 골치 아프다 그래 버리잖아요 골치 아프다 머리 아픕니다 두통이 옵니다. 그러
니까 요즘 그 아주 잘 팔리는 것이 진통제 계열 잘 팔리잖아요. ""사리돈". 잘팔리 잖아요
골치 아픈 겁니다. 그 다음에 뭡니까 위 소화 안 되는 문제가 옵니다 여러분들이 소화가 자
꾸 안 되는 사람들은 소화 안 되는 배경이 다른데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은요 비관적이 되고 비판적이 되면요 소화 안됩니다. 밥을 먹어도 기분이 좋
아야 소화가 되지 소화가 잘 안됩니다. 그러면 육신적으로 그런 게 와요. 그리고 분노가 계
속해서 쌓이게 되면요 소화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고요 밥 먹어 놓으면 밥알이 올올이 알알
이 살아 가지고 올라오는 것 같아요 이게 옛날 사람들은 불평이 쌓이고 쌓여 가지고 겉으로
온화한 것 같아도 눌려 놨기 때문에 이게 뭐냐 화병이 옵니다. 여자 분들은 특히 연세가 많
은 여자 분들이요 거의 이런 것들이 있더라구요. 시어머니한테 너무 눌려 가지고 화병이 생
겨 가지고 이것이 치받쳐 올라온다 그러더라 고요. 치받쳐 올라온다고 치받쳐 올라온다 그
러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게 숨도 막히고 그런데 나는 그게 속에서 치받쳐 올라오
는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악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신비 할 때입
니다만 가서 이 화병 걸린 사람들 불러놓고 머리에 안수하고 손 올려서 안수하니까요 딱 발
작을 하는데 완전 미친 사람 발작하는데 고대로 터져 나옵니다. 이 화병 걸린 사람들 이게
뭡니까 분노가 눌리고 눌려 안으로 새기고 새기고 이러면요 소화가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
은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멍멍해요. 난 그래서 우리집사람이 먹으면 늘 소화가 안 된다는
게 다 내 탓이다 싶어서 요즘은 많이 생각합니다 만은 이게 소화가 안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부인들이요 소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눌려 가지고 주로 근데 표현되지
못할 분노 때문에 이상하게 남편에게 표현은 못하고 분노 때문에 자식들한테 또 분노 때문
에 이런 것이요 자기도 모르게 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이런 문제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이것이 해결이 안되면 여기 달아서 뭐가 나오느냐 저주랑 계속
실패가 나오고 계속 어려운 문제가 나와요. 그래서 옛 말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내야 전주
대로 귀를 휘비든 말든 소두배기 가지고 쌈을 싸먹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참 뭔
가 벗어 날려고 그런 격언들이 안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벗어날 것 같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까짓거 뭐 전주대 가지고 귀를 한번 후벼 보든지 말든지 그런데 벗어 나 지는 게 아닙니다.
왜 그러냐 근본 인간들은 영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여기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뭡니까 자 영적인 문제가 오죠. 그에 따라서 정신적인 문제가 오죠. 그래서 정신 돈
사람들이 있으니까 육체적인 문제가 따라서 나오잖아요 육체적인 문제가 나오니까 자꾸 실
패하고 어려움에 자꾸 빠집니다. 육신적인 문제가 자꾸 실패하고 어렵게 됩니다. 계속 고통
을 받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 두 가지 그런 게 아니고 모든 면에서 다 오게 됩니다. 그
다음 내 자녀들의 문제 그대로 옵니다. 저는 어저께도 어느 모임에서 그런 메시지를 나누었
습니다 만은 이삭을 보면서 참 느끼는 것은 이삭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자
기 마누라를 여동생이라 그러면서 했던 그대로를 이삭이 블레셋에 가서 아말렉에 가서 그대
로 했더라구요 그게 뭔 얘기입니까 아비의 죄가 3,4대까지 엄청나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
니까 부모의 행동이 그대로 전달되어 버리더라구요. 이렇게 되니까 나 뿐 아니고 내 자녀들
이 그대로 저주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립니다. 여러분 그래서 참 이 말씀을 늘 하는 것이지
만 이게 잘 안 지켜져요 보통 무심히 해요. 교회에 대한 불평 특별히 교회에 대한 불평이
딴 게 있습니까 목사에 대한 불평 장로에 대한 불평 교인들에 대한 불평 이 것은요 자녀들
을 완전히 죽여버립니다. 불평이 나오면서 지금 말한 엄청난 영적인 배경들이 따라 나옵니
다. 반면에 이것이 문제가 해결되게 되면요 교회 갈 때마다 기쁘다 감사하다 참 사랑스럽다
이렇게 되어버리면요 여러분의 후손들이 다 살아 버립니다. 이게 안되니까 후손들이 다 죽
어버립니다. 원인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해방되는 길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천하인간에 다
른 길이 없습니다. 해방되는 길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
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이 사실이 이해 될 때에 그분을 영접 할 때에 요한 복음1장 12
절,13절. 영접하게 될 때에 누가 됩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자녀. 여
러분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이렇게 될 때에 여기서 나오는 엄청난 배경이 생깁
니다. 누구입니까 이 순간에 하나님의 누구 속으로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 버립니다. 하나님
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단 말이 간단한 말이 아
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죽었다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완전 하나
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과 저를 누가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
스립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여러분과 저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가 잘 된다 못된다 상관없어요. 받아합시다 나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니까 하나님의 주권 속이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그분이
누구입니까 나의 아버집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집니다. 그래서 나를 절대 보장해 주십니다.
보장해 주시기 위해서 누가 왔습니까 처음에는 하나님이 이 땅에 왔습니다. 예수로. 그게 성
육신 아닙니까 그게 이 땅에 인류 속에 왔지 만은 그것도 안되니까 그걸로 완성이 안되니까
개개인이 개인 속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그래서 여러분을 구체적으로 다스립니다. 기도응
답으로. 그러면 끝 난 것 아닙니까 다 된 것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 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전에는 하나님의 주권 속이 아닙니다. 누구의 주권 속입니까 사단의
주권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잘해도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갔습니
다. 축복과 승리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끝을 수가 있으랴 사망도 생명도 능력도 세상
에 어떤 것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하나님과 나 사이를 끊을 수가 없도다. 그랬습니다.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약속입니다. 자 이주권속으로 들어갔을 때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내가 그렇다 면은 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잘한다 못한다는 내가 보는 시각입니다. 그러면 누가 지금부터 그 사람을 주장
하십니까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딱 마음에 들어와 버리면요 문제가 생기면 여러분들
이 어디로 들어가느냐 아무개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습니까 불평과 생각이전에 하나님은 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하루밤 사이에 바꿀 수도 있고 하루밤사이에 변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뿌리가
안 내려가면 절대로 바꾸어지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서 하루밤사이에 기도응답 한번 해버리
면요 완전히 끝나 버립니다. 그러면 완전히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되느냐 나
도 내 마음속에 쭉 아픈 것을 겪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요 이게 딱 들어오면서 자꾸 자꾸
느끼는 것은요. 아 하나님이 하신다. 여기에 불평과 원망이 나올 필요가 없어요. 아프다 안
아프다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이 땅에 보내셔서
뭐하게 하십니까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하나님의 이 계획은 내
가 해결하지 못한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이니까 이 계획은 뭐냐 승리의 계획입니다. 장래에
하나님의 큰 은총의 계획입니다. 그러니깐 문제가 달라지죠.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교회 하
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나도 누가 다스려요 하나님이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너도 누가 다스려요 하나님이 다스립니다. 해결 다 된 거 아닙니까 여기에 불평
과 원망과 눌림이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뭡니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한번 기도
가 딱 응답됐다 그것이요 신기합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를 못해요. 대개 왜 한번도 응답
받지 못했어요.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요 시골에 있을 때에 한번 큰물이 나면 물이 조
금씩 줄잖아요. 물 줄면 그때가 낚시 놓기 좋을 때거든요. 그런데 어떤 장소에 바로 길옆에
내가 낚시를 던졌는데 그 곳에 탁 낚시를 던지는 순간에 딱 낚시 줄을 치더라고요. 딱 낚시
줄을 땡겨 올렸는데 여러분 그런데 그피라미 종류인데 시골에 올라오면은 이기 큰놈은 불가
리 뱀있지 그 벌겋게 된거 근데 큰고기가 딱 올라왔습니다. 한번 딱 거기에 그런 경험이 있
고 나서는 지금도 그곳만 생각하면은 고기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그곳을 지나면
은 저기에 고기가 올라오겠는데 한번 경험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다음에 몇번 몇번 가서
계속 던져봤는데 고기는 안 올라 오더라구요. 근데 뭔 생각이 드느냐 고기 올라온다.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뭔 얘깁니까 여러분 기도 한번 딱 했는데 적은 문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적은 문제 기도 했는데 딱 연결 됐는데 뭐가 옵니까 응답이 와 버렸거든요 그러면 여러분들
이 특별히 조심해야 될 것은 내가 체험을 많이 강조하는 게 아니고 누굴 말해야 합니까 그
리스도를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 제가 말씀 증거 할 때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
도 그분 그리스도 그분 붙잡고 적은 문제 가지고 연결 될 때에 적은 문제든지 큰 문제든지
한번만 딱 응답 받으면요 뭐가 나옵니까 그리스도 그분 응답 눈이 열려 버립니다. 그러면
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니까 되더라 그러면 나중에 한번만 체험 되어 버리면 어디 갑니까
무슨 문제를 당하더라도 누구 이름으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요 사실 통해
서 응답 받고 체험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때에 뭐가 나옵니까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생활이 됩니다.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아 말씀은 이루어지더라 뭐가 나옵니까 성경 적인 생
활이 나옵니다. 이것이 몸에 배이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앉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말씀입니까 성경말씀. 여러 사람의 말을 뭔 말을 들어도 두렵지 앉습니
다. 뭡니까 그날 강단 메시지 들고 딱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순간순간 적든지 큰
문제든지 내 개인에게 실질적인 응답이 나와야 뭐가 나옵니까 이기 되요. 신앙 생활이 됩
니다. 성경의 말씀에 삶에 대한 체질이 나오게 됩니다. 이기 안되면 아무리 백번천번 소리를
질러도 휘양 합니다. 말씀 들을 때에 그게 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 주일날 이
말씀이요 딱 붙잡혀져 가지고 정말 말씀 붙잡고 기도하다가 딱 한번만 응답 받아버리면요
그 다음 주일은 무슨 말씀일까 이번엔 무슨 말씀 붙잡고 나올까 그러면 그 말씀 나오면 딱
붙잡고 또한 번 기도를 했다. 그래되면 말 할 것도 없어요. 옆에서 뭐 되니 안되니 없어요
야단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내자신도 모르게 이 사실이 내게 체험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사람보고 나무랄 것도 없고 비판할 것도 없고 이래할 것도 없습니다. 잘못한다 하나님의 하
실 것입니다. 위해서 기도하세요. 잘한다 교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되
어져야 여러분 자기도 모르게 이게 나옵니다. 여기엔 뭡니까 생명의 역사지 종교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 잘못했을 때 오는 것이 역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는 신비의 역사입니다. 막
말로 해 가지고 이 역사 속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 뭡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자리
잡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화 그 다음에 어디 가든지 눌려 있지 않습니다. 앞에 서게 할 때에
자유롭습니다. 여러분 기도 할 때에 참 말이 안 돼요. 처음 나오면 참 말이 잘 안 되거든요.
글을 쓰세요. 글써라 이러면 안되면 또 눌리니까 글을 쓰고 와 가지고 왜 안되니까 자꾸 못
와요. 기도 하는 게 너무 어려워 가지고 수요일 날 누구아무개 집사님 수요일날 기도한다
니까 아이고 내가 이번 주일 안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다음 수 요일날 내가 기도인데 모
르고 나왔으면 우짤 뻔했노 괜찮습니다. 글을 써 가지고 와서 펴놓고 그 다음에 그걸 보고
읽어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그것도 사람 앞에서 하지 마시고 그게 훈련
이고 이상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글을 써요. 내가 사람 앞에서 잘하기 위해서
가 아닙니다. 그러면 눌리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안식이 옵니다.
그 다음에 붙잡고 계속해서 내가 적고 큰 문제 붙잡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면 여러분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응답하시더라. 이 사실이 체험되는 이런 사실들이 모이고 모이고 모
이면은 나 자신도 모르게 아 예수그리스도 승리의 이름이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은 승리하게 되는구나 이때 뭐가 나옵니까 자기도 모르게 평안이 나옵니다. 치료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치료가 딴 게 아닙니다. 치료가 정신이상이 돌아왔다 그거 돌아온 후가 더
무서운데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이 오늘 여러분 말씀 통해서 기도하고 이 사실이 한 주간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서 지금 무슨 문제가 왔느냐 말씀이 능력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살아
가는 삶이 능력입니다. 거기는 뭘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생명입니다. 막말로 오
줌싸고 똥 싸는 거 당연합니다. 여러분 수준이 뭘 지금 수준도 안 되는데 뭘 잘 할려고 하
면 그거는 율법이에요. 그러면은 눌리게됩니다. 눌리게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사단의 통로가
되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눌리게 되면 진짜 해야되고 진짜 용기 내는 자리에 섰다 그러면
요 다 죽어 버립니다.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뭐 제일로 쉬운 얘기를 든다 그러면
요 여러분 막 그냥 안 눌릴 때 보통 집안에서 사는 건 생활이 되어 있으니까 습관이 되어있
으니깐 안 눌리잖아요 암만 용기 좋은 사람도요 요 앞에 나와 가지고요 기도하라 그러면요
고만 딱 막혀 버립니다. 눌려 버리면요 그 잘하던 말도 그냥 보통 때는 전화걸때는 얼마나
20분,30분. 말만 잘하고 그래 도요 앞에 갖다 놓으면요 눌려버립니다. 그 잘하던 말도 그 입
싸던 말도 여기 갖다 놓으면 그만 눌려 버립니다. 눌려버리면요 다 막혀 버립니다 그래되면
요 역사가 나올 수가 없어요. 능력이 안나오게 됩니다. 참된 자유가 와야 뭡니까 말씀 안에
서 이 생활이 되야 삶이 되야 여기서부터 뭔가 능력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능력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새 생명을 누리며 삽시다. 그게 뭡니까 새 생명이 성장되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만 감사 눈만 열려 버리면 됩니다. 조금만 우리가 하나님 향해서 주여 감사 생긋이 조
금 웃어만 줘도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 기뻐 가지고 오냐 알았다. 다 해결됩니다,. 뭐 그리
불만이 많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입만 열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러면 눌리게 됩니다 그게
완전 사단의 통로가 되어 버립니다. 감사가 조금만 평안이 회복되면 되니까 감사가 회복되
면요 뭐든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누구 만나서 감사하고 또 누구 만나서 이상한 소리 들었다
그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여시고 지혜를 주시기 위한 하나
님의 기회와 통로인줄 아시니까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우리 잠깐 하나
님 앞에 주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실제로 말씀이 생활과 삶이 되도록 우리의 눈이 열리게 하
시고 정말 우리 속에 감사로 터져 나오도록 주께서 은혜 주옵시고 눌림이 사라지고 해방의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 우리 다같이 한 음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속에 쌓인 불평과 불만으로 분노의 역사가 우리 속에 쌓이
고 쌓여서 우리도 모르게 눌림 속에 살아가는 저들에게 새 생명의 놀라운 은혜로 축복하시
고 주께서 저들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 옵시고 주의 말씀이 성취되는 감사와 기쁨으로 주여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고 바라 옵나이다. 주님 축복해주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사오니 오늘도 주의 종들에게...."
"우리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충만 위로 교통하심이 모인 무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인사하겠습니다. 평강 하십시오. 안녕하십시오. 당신은 세계 살릴 선교사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여 오늘도 이 찬양의 소리와 같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이 나를 세우실 뿐만 아니라 이 땅의 귀한 교회 속에서 주의 뜻을 이룰 우리의 성도들을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오늘도 주의 뜻을 이루어 가는 일에 쓰임 받도록 인도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이일에 주께서 필요한 말씀으로 임하셔서 주님께서 한 주간도 계속해서 응답 받는 응답의 음성으로 들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 올리 옵나이다. 아멘"
치유라고 그러니까 또 다시 우리도 모르게 뭔가 또 해야 돼는 것으로 알고 또 뭔가 노력을 하는 것으로 또 생각을 하는데 그것은 따라 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치유라는 것이 절대로 말씀으로 아니면은 치유라는 것은 나왔다는 능력도 일시적입니다. 그래서 이 등식이 지금 이루어 져야 되고 그렇다면 이것이 이루어질 때에 뭐가 이루어져야 되는냐 치유라고 그럴 때에 내가 이렇게 한다 저렇게 한다. 그게 아니고 성경대로 삶이 이루어 져야 됩니다. 말하
자면 삶이라는 것은 그냥 내가 노력한다해서 되는 게 아니고 몸에 배어 버려야 됩니다. 체
질이 와져야 되고 자연스럽게 이것이 되면은 그냥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치유가 이루어진
다." 그 말속에는 그냥 전도가 되고 그냥 길이 열리고 삶에 문이 열리고 이렇게 되는 것이
성경대로 치유가 되는 말씀에 치유가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안되니까 오늘날 교회의 치유
가 잘못된 치유들이 나오게 됩니다. 여기서 이게 안되니까 "잘못된 치유 교회치유가 나온
다." 그럴 때에 성경적인 생활 그럴 때에 생활이란 것은 여러분들이 그저 하루아침에 나오
는 것이 아니고 깊은 어떤 그런 체질과 생활하는 삶 자체이기 때문에 몸에 배어야 그게 나
오는 겁니다. 이게 안되면은 여러분들이 억지로 여기 있다가 미국 가서 미국 사람처럼 살려
고 그러면 힘들어 못 살아요 한국에서 살면 한국적인 삶이 어릴 때부터 몸에 배어있기 때문
에 이게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어디 가든지 말 들으면은 아 이게 이렇구
나 저렇구나 판단도 나오고 선택도 나오고 자연적 그렇게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말씀이 배
어 버리고 말씀을 통해서 살아가는 일에 체질이 되어 버려야 그래야 저절로 모든 것이 나옵
니다. 그러면 어디 가서 딱 앉으면 벌써 내가 체질 된 상황에서 판단이 나오고 아 이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이렇게 행동해야 되겠구나. 생각이 나와버리게 되
고 선택이 그렇게 나와버리게 되고 그리고 사업가들도 어딜 딱 가면 이 말씀이 생활이 되어
버려요. 자기도 모르게 사업하는 사람의 방향이 저절로 나와버리지 거기서 뭐 연구하고 만
들고 그게 아니거든요. 삶이란 것은 연구해서 사는 게 아닙니다. 저절로 뭐가 되느냐 이게
생활이 되어 버려야 됩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뭐냐하면 이 생활이라 그러면 앞으로 나오게
습니다마는 결국 뭐냐하면 지난주에 제가 말씀한 것처럼 이게요 생명이 들어가야 됩니다.
생명이 들어가면 생명의 성장이 바로 삶입니다. 말씀으로의 삶이 생명의 성장이 되는 겁니
다. 이게 안되니까 뭐에 빠지냐하면 종교에 빠지게 되고 그러니까 왜 우리가 기존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문제 삼느냐 하면 생명이 안된데 대해서 치유를 받으려 하니까 잘못된
게 자꾸 나옵니다. 종교에 빠져 버리니까 뭐가 나오게 되느냐 하면 여기에 노력이 나오고
율법이 나오게 됩니다. 자꾸 뭔가 배워서 돼는 줄 알고 그러니 하면 할수록 망해 버리게 됩
니다. 그러니까 결국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게 안된 상태에서는 생활이 안된 상태에서는 이
일이 잘 안 되어야 정상입니다. 되면은 더 큰 문제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다락방이 안 된다 뭐가 안 된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게 안 되는 게 정상이
고 안 되야 됩니다. 쉽게 말해서 자동차가 지금 서울로 가는데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서울
이 목적지인데 부산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고장이 나야
그게 정상입니다. 되는 것입니다. 가다가 고장이 나고 빵구가 나야 그래야 일이 돼는 겁니
다. 그런데 계속 고장이 안 나고 계속 잘 달린다. 그건 뭐 더 죽어 버리는 거고 더 안 되는
겁니다. 방향이 더 틀려 버리는 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은 뭐 열심히 노력
하고 애를 쓰고 일순간 되는 것 같아도 잘 알아야 됩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구체적으
로 안 되면은 이리로 빠져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라고 말하는 데가 실질적으로
치유 받는 좋은 자리에 와 있지 만은 잘못된 방향에 치유되게 될 때에 그때에 엉뚱한데 빠
져버리게 됩니다. 이래서 어디에 빠지냐 종교에 빠지고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어디에 빠져
버리냐 신비에 빠지게 됩니다.
"신비". 여러분 신비는 안 되야 되거든요 안 돼야 되는데 된다 말이죠. 그런데 더 깊은 문제
로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은 신비 기도
했다 그러면 뭔가 조금 벌벌 떨고 진동도 하고 되는 것 같은데 그래가지고 뭔가 됐다 그러
면 자꾸 그리로 빠져 버리게 되니까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고 그리고 자기가 잠깐 뭔가 방
법을 구했다 인본주의를 썼다 그러면 안 되야 되는데 되면 더 큰 문제에 빠져 버리게 됩니
다. 결국은 저주 속에 깊이 빠져 버리게 됩니다. 이게 지금 빨리 우리가 치유가 되어야 됩니
다. 왜 말씀으로 성경대로가 아닌 모든 치유는 교회 생활이나 자기생활에 모든 치유는 점점
치유가 됐다는 자체가 어려워지게 됩니다. 요런 것을 우리가 조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
게 안되니까 지금 사회에서는 최면술이라던가 하나의 신비주의도 최면술입니다. 깊이. 집중
운동 무조건 하나에도 집중하면 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 말해서 심리적으로 집
중하면 그것도 되는 겁니다. 하면된다 이래가지고 "하면된다. 하면된다." 이러면 또 되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가지고 하고 망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번에도 조금 설명을 드
렸습니다. 제가 하나 지금까지 오면서 가장 내 인생에 큰 실수요 실패라 그러면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충성입니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대로의 충성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표현 안했
습니까 얼마나 눌려 삽니까 그래가지고 일체 거기에만 설교 그 다음에 충성 그러기 위해서
는 하나도 딴 것 생각 안해야 된다. 이래가지고 살았던 것이 그게 나름대로 잘 살았던 것
같은데 그게 뭐냐 결국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생각이잖아요. 이게 충성이다. 이래가지
고 아이들도 안 살피고 자기 부인도 안 살피로 그러고 이것도 안 하고 그래서 어떤 면에서
오늘 받는 것은 우리 집사람 감기도 잘 걸리고 하여튼 계속 아픈 것은 결국 내가 받을 것을
받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저희 자형 김인섭 목사님을 보면서 말이 나가면 본인은 좀
섭섭할지 모르지만 결국 뭐냐하면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 밥만 먹었다 하면 일단은 다른 건
생각 안 하니까 그래서 워낙 답답하니까 여러분 부부가 싸움이라도 하면 부인이 속이 좀 풀
립니다. 욕이라도 하고 막말로 해서 꼬집어 뜯기라도 해버리면 그래도 되는데 싸움도 안 돼
요 가서 싸움 걸면 "어허 사단이 또 역사 하네." 그러고 싸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 버리니까
이게 안 되니까 부인이 더 죽는 겁니다. 누님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런데 요즘은 어떠냐 요즘은 바꾸어져 가지고 사모님은 저희 누님은 가만히 계시고 계시고
뭐고 간에 할 힘이 없으니까 우리 김인섭 목사님이 밥도 다 하시고 아침 일찍 나가서 다 하
십니다. 그래서 내가 가만히 그걸 보면서 뭘 느끼냐 하면요 결국 딴게 아닙니다. 내가 만들
었는겁니다. 요즘 뭐라 그러냐 가끔가다가 내가 뭔가 당신이 조금이해를 하고 여유를 좀 가
질 수 있으면 이렇게 긴장 안 하고 병이 안 날 것인데 그러면서 슬쩍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고요 처음에는 그게 아니다 하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게 사실 맞아요. 절
대로 안돌아봐요 그 스트레스가 얼마나 많겠어요. 평생을 그래 사니까 그래서 조금 설명을
드렸습니다 만은 내가 내 아들이 자기 아들 한테 "보고싶다" 그러고 이게 이상하게 느껴지
는 저게 언제 이게 교회오면서 신학 하면서 저게 여유가 있을 수 있느냐 여유가 있어야 돼
요. 그게 안 된다는 것은 내 나름대로 딱 제한을 둬 가지고 이게 완전히 병든 거예요. 하나
님의 뜻과 계획은 가족도 사랑하고 그 다음에 내 주위에 살필 수 있어야 되고 그러니까 이
땅 것도 보고 하나님걸 봐야 진짜 사명이 나오는데 이걸 내 중심적으로만 밀고 나갑니다.
이게 거의 우리의 일 생활입니다. 노력을 얼마나 합니까 그래가지고 새삼 느끼는 것은요 매
주 산에 돌아다니면서 매주 월요일 아닙니까 산에 올라가서 금요일날 또 마치고 올라가죠
겨울에도 올라가죠 아마 여기 올라가신 분들은 잘 알잖아요 우리가 올라가서 기도할려고 그
러면 옷을 겹겹이 껴입고 가야 안됩니까 거기다가 비닐을 덮어써 가지고 하여튼 내려오다가
넘어지면 잘 일어 나지도 못해요. 너무 옷을 많이 입어가지고 내려오면서 나를 보다가 옆에
사람을 보면 진짜 상거지 중에 상거지 그러면 그게 충성인줄 알고 그렇게 해야 되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러면서 우리가 그 생활속에서 더 갈급해지고 더 답답해지고 평안이 없고 안식
이 없어요. 더 그렇게 빠져 버리는 그러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일 순간에 되는 것 같아
도 말씀으로 안 돌아가면 우리의 노력으로 우리의 일시적인 어떤 집중으로 일종의 최면입니
다. 일시적으로 돼는 것 같아도 돼는 게 아닙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조금 이해가 되잖아요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자유함을 얻어야 됩니다.
막 강박관념에 매였던 곳에서부터 갈급 한데 매였던 곳에서부터 누구로 그리스도로 말미암
아
평안과 안식과 만족이 와야 됩니다. 감사가 와야지요 이것이 이루어 져야 뭐가 됩니까 치유
가 됩니다. 그러니까 성경의 말씀이 제대로 삶이 되면은 뭐가 오느냐 제일 먼저 감사가 옵
니다. "평안"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평안과 감사가
우리 생활을 덮어 버리게 됩니다. 여기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해 나가게 되죠. 그러니까 이
것이 안 되니까 여기서 우리가 영적 진단을 해 보게 되면 영적인 문제가 오잖아요 말씀대로
실제적으로 안되니까 그러니까 뭐가 오냐 하면 첫 번째 보면 문제가 보면 드러나기도 하고
그 다음에 우리 생활 속에 숨겨진 문제들이 거의 드러난 문제 숨겨진 문제 이런 문제들이
많은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좀 나눈다면. 뭐냐하면 과거 문제 여러분 지금 현재 여기 나와
있지만 교회까지 나왔는 상황에서요 과거 배경이 엄청난 배경이 많거든요. 그런데 일단은
내가 예수그리스도로 치유는 받았지만은 뭔가 하면 마음의 상처들은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생각으로 통해서 이 상처 때문에 생각이 잘못된 생각으로 그대로 남아 있거든요 그래서 어
떤 분들은 보면요 교회 안에 와도 내가 구원받았는데도 아주 부정적인 생각으로 꽉 차있고
그 다음에 원망적인 생각으로 꽉 차있고 이런 것들로 남아있어 치유가 안 되는 겁니다. 그
러니까 뭡니까 이걸 통해서 계속 남에게도 상처 주고 자기자신도 이로 통해서 계속 눌려 버
립니다. 눌린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사단의 통로거든요. 이래서 자꾸 병들어 가는 그런 모
습들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이런 배경에서 과거의 상처가 나오죠 이건 전부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
에 구체적으로 우리가 이렇게 될 수 있기까지 이런 배경들. 요런 문제 때문에 우리도 모르
게 이런 것이 우리 마음속에 심어지기 때문에 요런 것 때문에 여러분들이 드러나지 않지만
은 우리 자신들에게 생각과 마음들이 그 다음에 성품들이 어떤 것으로 바꾸어 지냐 하면 자
기도 모르게 상대방에 대해서 만족이 안 되니까 뭐가 오느냐 하면 불평이 나오게 됩니다.
이 불평의 배경은요 아내다. 남편이다. 자식이다 교회다. 뭐든지 그런 배경으로 나와 버리게
됩니다. 만족이 없으면 그렇게 나왔 버립니다. 불평이 나온다는 배경에는 뭐가 나오느냐 하
면 여기다 비판이 나와 버리게 됩니다. 걸핏하면 우리가 비판이 나와 버려요 그러니까 복음
이 안되고 성경적인 생활이 안 되면 뭔가 자연적으로 여기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뭐든지
비판합니다. 뭐든지 비판하니까 뭔가 부정적인 시각이 나와 버립니다. 뭐든지 저거 안된다
저거 인간 되겠냐 그러니까 여러분 이런 마음이 들면 절대로 평안이 없어요. 만족이 안되니
까 그러니까 남편에 대해서도 아내에 대해서도 이렇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한 마디로
이런 문제에 부닥치게 되면은 이것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은 뭐가 나오냐 하면 이런 배경에
서 이것이 쌓이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성격이 뭐가 쌓이냐 하면 분노가 쌓이게 되면 뭐든
지 이걸 표현하면 "분노가 쌓인다." 그러면 되겠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아내한테 뭔가 만족
이 안 될 때에 불평이 나오고 비판이 나오고 자꾸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은 이게 뭐냐 하면
나도 모르게 아내가 조금만 잘못하면 뭐가 나옵니까 분노가 터트려 집니다. 밥 조금만 늦으
면 "뭐 이래."그러고 말이죠. 제가 우리 집에서 생전 내가 밥 먹는 것 때문에 성질을 안 내
는데 이 몸이 아프니까 뭐든지 불만 스럽잖아요. 그리고 이 반찬도 마음에 안 들고 이러니
까 그러면 뭐가 되느냐 하면 이게 나중에 분노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밥상도 분노가 나오니
까 막 탓하니까 그러니까 또 상대방도 마찬가지 안 저러든게 왜 저러노 싶고 그러니까 또
막 분노가 나오고 그러면 여러분 아셔야 합니다. 분노라는 것이요 분노의 심정 분노의 마음
이라는 것이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사단의 통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게 "죄"라고 그
러기 전에 그것이 사단의 통로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분을 품지 만은 해지도
록 분을 품지 마라." "사단으로 말미암아" 뭐가 됩니까 "틈타지 못하게 하라" 이게 무서운
문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분노"라는 자체가 죄가 아닐지 모르지만은 이런 배경이 나옵니
다. 그러니까는 뭐가 안되냐 하면 우리도 모르게 그런 배경 속에서 사단이 지 마음대로 막.
여러분 우리가 교회 안에서 도요. 뭔가 내 마음에 다 듭니까 내 마음에 안 드는 그런 문제
들을 내가 품게 되고 그럴 때 에요 그게 한번 두 번 내 마음에 안 들고 하면 상대방에게 나
도 모르게 성질 내버리게 됩니다.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분노가 쌓이게 되면 그 자체가 뭡
니까 전부 사단의 통로가 됩니다. 그래서 그 사람 얘기 들으면 뭐든지 말이 다 옳아요 옳은
데도 뭡니까 그 사람과 나 사이 이간이 되고 저 사람과 나 사이 이간이 되고 그게 전부 사
단의 통로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엄청난 무서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일단은 좀
무엇을 생각해야 되냐 하면요 어떤 사람을 보든지. 앞으로 말씀에 나옵니다. 하나님의 사람
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뭐든지 그 사람 장점을 보고
칭찬 할 수 있는. 저 TV보니까 칭찬합시다 그랬더라구요 그게요 간단한 얘기가 아닙니다.
되는게 아니에요 그게 구체적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돌아가야 됩니다. 그렇게 돌아가야 여러
분 자신에게 눈이 열릴 뿐만 아니라 축복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목사를 보든지 장로를 보든
지 집사를 보든지 이웃을 보든지 교회를 보든지 일단 뭐가 되느냐 이 교회 왔다는 게 내가
참 감사하구나 참 좋은 사람들이 모였구나 이래 되야 일이 되게 되어 있어요. 안 그러면요
여기 오게 되면 가장 무서운 문제가 결정적인 순간에 뭐가 옵니까 눌립니다. 이런 배경이
되면요 이상하게 뭔가 부담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결과 나오는 것이 바로 그런 문제거든
요. 이게 진단해서 정신적 문제가 나오지요. 정신적인 문제가 나오는데 첫 번에 이 마태복
음 11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눌려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 복
음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성경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요 이상하게 그 교회만 눌려 버립니다.
여러분 나는 우리교회에 이걸 많이 느낌니다. 나도 그렇고 아 이게 우리가 근본적으로 치유
되어야 되겠다. "복음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복음 됐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디 있느냐 이
앞에 있습니다. 이게 배경입니다. 자녀들이 자기들도 모르게 부모에 대해서 불만이 오기 시
작하면 원망이 나옵니다. 그래 오기 시작하면요 그리고 그 배경에서 부모에게 눌려 버립니
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를 가만히 보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요. 제가 이 아이를 "자랑 한다"
이전에 뭔가 이런 말을 자랑한다는 개념은 아닙니다 만은 저기 저럴 수 있나 이런 식으로
보게 되면 한정이 없어요. 그런데 저것도 뭐 쓸만하네 저 성질 괜찮네 저 괜찮네 그렇게 생
각하면요 내 아들도 괜찮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괜찮은 게 있어요 없는 게 아닙니다. 그
런데 그런 어떤 비판의 시각을 통해 봤고 그걸 통해서 계속해서 뭔가 하면 비판하면서 복음
이 아니고 눌려버리면 이게 나가게 되면 뭔가 콱 눌려 버립니다. 그래서 뭐라 그러냐 면은
내가 지금까지 내 맘대로 한 게 어디 있어요 내가 눌려 살았지요. 그래서 뭐가 없느냐 용기
가 없어요 결정적인 순간에 눌려버리면요 사람이 할 일을 못합니다. 이걸 또 잘못 생각해서
요즘은요 무조건 기를 살려 줘야 한다고 잘해도 잘한다 못해도 잘한다 이래서 아이들 망쳐
놓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지금현재 이 밑에 지하실에 안 보이는데 애들 지금 난장판입니다.
예배시간 예배시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게 교육이 잘 되어야 돼요. 어떤 집에 가면요 진짜
배운 집안의 가정이요 난 도저히 배웠다는 것이 저게 저렇게 무식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나오더라구요 아이들을 저렇게 키워놨느냐 이런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여러분 아이들은요
어릴 때에 어떤 배경으로 교육시키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인생이 달라지고
성격이 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말이 아니게 키워 놨어요. 결국 이것이 안되면 뭐가 오느냐
완전히 눌려 버립니다. 그러면 중요한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중요한 시간에 일을 해야
될 그 시간에 사단이 가장 마음대로 활동하게 되는 배경이 되어버립니다. 예를 한번 들어
봅시다. 여러분 우리 교회에서 모두가 참 내가 무슨 기도를 하든지 어떤 기도를 하든지 우
리교회는 아무런 부담 없이 평안하다. 복음이 다 됐다. 이래 되면 앞에 서게되면 기도하는
사람이 별로 그렇게 안 얼립니다. 안 얼리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거의. 그래서 집에서 기도
문을 다 쓰고 외어 가지고 왔다가도 여기 딱 서게 되면 눌려버리면은 어느 순간에 글 써 놓
았는 것도 안보여 버립니다. 딱 막혀 가지고 막 그러면 한 줄 빼먹어 버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결정적으로 눌린다는 것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사단이 바로 직소해 버립니다. 그게
그래서 복음이 아니면 자유가 없게 말하자면 자유가 안되기 때문에 거기에 전부 눌리게 되
어 버립니다. 그래서 그런 배경에서 보면서 금년도에요 정말 우리 교회 좀 해방 받아야 되
겠다 상당히 우리교회는 좀 눌린 게 있거든요. 뭔가 이 좀 질서를 따지고 뭐를 따지는데 좋
습니다. 그것도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없애라 질서 없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뭐냐하면
근본배경이 지금까지 이런 말하자면 비판과 나도 모르게 만족스럽지 못한 불평과 이런 어떤
배경 때문에 오는 사단의 통로들 뭔가 이 교회 다니면서 감사하다 감격스럽다. 참 기쁘다.
참 자유 하다 그게 안되면 뭡니까 분노가 쌓입니다. 막 불평이 쌓이면 뭡니까 분노가 나옵
니다. 그러면 목사 만나도 뭐 조금만 이상한 소리가 나오면 분노가 나오고 조금만 이상하면
중직자들에게 분노가 나오고 불평이 쌓이게 되면 분노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것이 뭐냐 사
단의 통로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면 내 인생에 삶에 전부 뭡니까 축복과 은혜가 닫히게 됩니
다. 여기서부터 근본적으로 해결되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오는 문제가 뭐냐하면 베드로서 5
장 7절,8절이죠. 전부 이 결과가 되는 거죠. 벧전 5장 7절 8절입니다. 뭐가 없어요 평안이 없
어요 그러니까 평안과 안식이 없습니다. 이것이 실제가 아니에요 말씀의 능력으로 실제적으
로 우리의 삶이 서지 아니하면 뭐냐 암만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갈급 해 집니다. 평안이 없
어요 제가 신비주의 하면서 그런 말씀했습니다 만은 기도를 그렇게 했으면 됐지 그렇게 기
도하는데도 아~휴 기도가 부족하구나 기도 이렇게 못해서 어떻게 하느냐 요즘은 여러분 어
떤면에서 기도를 너무 안 합니다. 너무 안 할뿐 아니고 내가 이렇게 되겠냐 아프다는 핑계
가지고 지금까지 푹 쉬고 있습니다 만은 그러나 마음은 편안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 어
떤 사람들은 그런 생각이 들 겁니다. 막 우리교회가 이렇게 기도를 안 해도 되겠느냐. 괜찮
습니다. 본래 못하는 기도. 어떤 면에서 여러분 더 큰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지금도 제
가 뭔가 새벽기도. 50일 새벽기도다. 도장찍자. 이래 가지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가지고
될 것 같으면 벌써 옛날에 되었죠. 근본 이게 안 돌아가면요. 근본 복음으로 안 돌아가면은
지금은 뭐 또 누르면 또 눌리는 거지. 그래 가지고 새벽기도 얘기를 하면 전부다 눌려 버려
요. 새벽기도도 안 나오는 게 하면 전부 고개 푹 숙여 버리고 아이고 난 안 되는구나. 여러
분 새 생명 이것이 구체적으로 안 되면은요 뭘 내가 안 한다 못한다해서 눌려 버립니다. 엄
청난 문제입니다. 새벽기도 나오지 말라 그런 얘기 아닙니다. 또 이렇다고 아 됐네 새벽기도
나오지 말라 그러더라 그 문제하고는 다른 얘기입니다. 근본 이게 안 돼버리면 처음부터 전
부 안 되버려요. 전부 눌림이 되어 버립니다. 이게 안되면 해방이 안나와요 그리고 신앙 생
활이라는게 부담이 자꾸 됩니다. 하면 할수록. 그래서 충성이 도대체 뭐냐. 헌신이 도대체
뭐냐. 이게 문제가 되요. 그래서 여러분 중심에 내가 평안과 안식이 그러면 자연적으로 뭐냐
이런 것이 해결되게 되면요 이게 해결 안 되면은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무리 교회에서 교회
기관마다 여러분에게 협조를 해달라 협조가 안나옵니다. 기관에 오라 그래도 안 와요. 제가
이렇게 기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제일선교회입니다. 2선교회입니다. 안 오는 사람 내가 알
아요. 뭐냐 그 뭐 마음에 만족이 없어요 근본 협조가 안나옵니다. 절대로 비협조적입니다.
참석을 안 해요 그러니깐 협조가 안되니까 뭐가 나오느냐 하면은 감사가 나온다. 내가 이
교회에 오는 것이 참 즐겁다. 참 감사하다. 이 사람 만나는 게 참 즐겁다. 그게 안되거든요
여러분 아무리 근본 이게 안되면요 사람 만날 때마다 불평이 더 나오지 감사 안나옵니다.
그리고 여러분 아무리 아무리 신앙 생활 열심히 해 가지고 중직에 앉을수록 뭐가 나오느냐
더 불평과 비판이 나옵니다. 왜 이게 안 되면은 제일 불평과 비판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게
누구냐 목사들입니다. 근본이게 안 되면 이거 되 버리면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쉽게 말해서
나중에 말씀 하겠습니다 만은 쉽게 말해서 여러분 개개인이 모든 평신도들이 이래서 설문조
사를 했는데 설문조사 할 때에 평신도들이 교회를 향한 불평이 뭐냐 교회에 대한 요구가 뭐
냐 이게 뭐냐하면 목사님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평신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게 불평
의 제일 첫 번이요. 그 다음에 또 반대로 거꾸로 목사님이 평신도들에게 불평이 뭐냐 원하
는 게 뭐냐 평신도들이 목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협조하지 안는다. 똑같아요 전부.
그러면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뭐가 나옵니까 평신도들이 목사들에게 분노하게 되는 겁니다.
목사들이 평신도에게 분노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것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분노하게 되면
그걸로 끝이 아니거든요 뭐가 나옵니까 설교 할 때에 뭐가 나오느냐 설교 할 때에 싫은 설
교가 나가요. 그 다음 여러분 설교 그게 뭐라 목사가 그러면 분노 대 분노 폭발하게됩니다.
그게 뭐가 나옵니까 사단의 제1통로가 되어버립니다. 완전히 지 마음대로 뒤엉켜 버립니다.
그래서 지금 뭘 깨달아야 하느냐 아 진짜 이 교회에 오니까 정말로 감사하다. 너무 감사하
다. 목사님 감사하고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되어 버리면요 사단이 역사 할 틈이 없어요. 그
다음에 교회도 별사람이 다 오잖아요. 뭐 이런 것들이 다 있노. 이래되면 그 다음 역사 하면
서 사단이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과 모든 교회에 역사가 누구한테 이루어집니까 하나님의 손
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이 하시지 이래버리면요 맡겨버리면요 뭐가 나옵니까
평안이 와버립니다. 감사가 와버립니다. 그러면 뭐가 보이느냐 아 어쩌면 내가 어쩌다 이런
좋은 교회에 왔노 이렇게 되면요 역사 나옵니다. 사단이 틈탈 여가가 없어요 이것이 안되면
요 참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에 온 것이 노력한다고 노력하고 애를 쓴다고 애를
쓴 것이요 여기에 빠져 가지고 돈 내지 뭐 시간 내지 새벽기도하고 철야하지 그런데도 뭡니
까 교회에 대한 만족이 없어요. 목사에 대한 만족이 없어요. 목사도 교인에 대한 만족이 없
어요. 그러니까 서로서로 교회가 뭡니까 그래서 교회만 들어 왔다하면 눌려 버려요. 그런데
그것이 바꾸어지게 되면요 교회에 들어왔다 편안해 지게 됩니다. 참 교회에 들어왔다 이상
하게 안정을 찾게 됩니다. 자유함이 옵니다. 기쁨이 옵니다. 감사가 옵니다. 이렇게 되어버려
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냥 노력해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이 사실이 안되면
은 구체적으로 그런 문제가 안나오죠. 마음의 화평과 참 평안이 없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빌립보서 잘 아는 우리가 늘 잘 아는 빌립보서 4장 6절,7절. 지각에 뛰
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요기는 평강보다도 염려입니다. 베드로 전서는 염려를 다 맡겨버리고
빌립보서는 그때 비로소 뭔가 평안이 옵니다. 너무너무 안식하는 하나님의 축복과 역사가
오죠. 이것이 안되면은 우리가 잘 아는대로 사도행전16장 16절부터 18절. 다른 영이 지배하
게 되어버립니다. 이것이 지속되어버리면요 여러분 자신도 모르게 다른 것들이 와서 이것이
쉽게 말해서 다른 영이 딴 게 아닙니다. 귀신의 역사가 나오게 되는 이런 문제들이 찾아오
게 됩니다. 그러면은 이제 해결해야 될게 아닙니까 그러니까 오직 말씀입니다. 말씀화 된 삶
그러니깐 오직 말씀이다 그럴 때에 이 말씀이 딴 게 아니에요 그리스도 아닙니까 그리스도
운동입니다. 다른 문제 아니죠 왜 그러면 이런 문제가 오느냐 원인이 뭔냐. 원인이 창세기 3
장 아닙니까. 창세기 3장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자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 닥친
것이 영적인 문제가 와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정신적인 문제가 와 버렸습니다. 지금 현재
여러분과 내가 지금현재 실제로 그런 자리에 와 있다 그겁니다. 그 다음에 육신적인 질병과
고통이 와졌습니다. 쉽게 말해서 요런 문제가 해결이 안되고 계속해서 이런 문제에 부닥치
게 될 때에 뭐가 나오느냐하면요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 육신 문제가 나옵니다 뭐가 나오느
냐 대개 육신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 뭐든지 뭡니까 일단 일이 생기게되면은 쉽게 어떻게 되
어 버리느냐 골치 아프다 그래 버리잖아요 골치 아프다 머리 아픕니다 두통이 옵니다. 그러
니까 요즘 그 아주 잘 팔리는 것이 진통제 계열 잘 팔리잖아요. ""사리돈". 잘팔리 잖아요
골치 아픈 겁니다. 그 다음에 뭡니까 위 소화 안 되는 문제가 옵니다 여러분들이 소화가 자
꾸 안 되는 사람들은 소화 안 되는 배경이 다른데 있어요 그게 뭐냐하면요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 차 있으면은요 비관적이 되고 비판적이 되면요 소화 안됩니다. 밥을 먹어도 기분이 좋
아야 소화가 되지 소화가 잘 안됩니다. 그러면 육신적으로 그런 게 와요. 그리고 분노가 계
속해서 쌓이게 되면요 소화가 안 되는 정도가 아니고요 밥 먹어 놓으면 밥알이 올올이 알알
이 살아 가지고 올라오는 것 같아요 이게 옛날 사람들은 불평이 쌓이고 쌓여 가지고 겉으로
온화한 것 같아도 눌려 놨기 때문에 이게 뭐냐 화병이 옵니다. 여자 분들은 특히 연세가 많
은 여자 분들이요 거의 이런 것들이 있더라구요. 시어머니한테 너무 눌려 가지고 화병이 생
겨 가지고 이것이 치받쳐 올라온다 그러더라 고요. 치받쳐 올라온다고 치받쳐 올라온다 그
러면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게 숨도 막히고 그런데 나는 그게 속에서 치받쳐 올라오
는 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악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때 제가 신비 할 때입
니다만 가서 이 화병 걸린 사람들 불러놓고 머리에 안수하고 손 올려서 안수하니까요 딱 발
작을 하는데 완전 미친 사람 발작하는데 고대로 터져 나옵니다. 이 화병 걸린 사람들 이게
뭡니까 분노가 눌리고 눌려 안으로 새기고 새기고 이러면요 소화가 안됩니다. 그런 사람들
은 먹으면 먹을수록 계속 멍멍해요. 난 그래서 우리집사람이 먹으면 늘 소화가 안 된다는
게 다 내 탓이다 싶어서 요즘은 많이 생각합니다 만은 이게 소화가 안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 부인들이요 소화가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게 눌려 가지고 주로 근데 표현되지
못할 분노 때문에 이상하게 남편에게 표현은 못하고 분노 때문에 자식들한테 또 분노 때문
에 이런 것이요 자기도 모르게 오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이런 문제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교회 다니면서도 이것이 해결이 안되면 여기 달아서 뭐가 나오느냐 저주랑 계속
실패가 나오고 계속 어려운 문제가 나와요. 그래서 옛 말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내야 전주
대로 귀를 휘비든 말든 소두배기 가지고 쌈을 싸먹든 말든 니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참 뭔
가 벗어 날려고 그런 격언들이 안 있습니까 그렇게 해서 벗어날 것 같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까짓거 뭐 전주대 가지고 귀를 한번 후벼 보든지 말든지 그런데 벗어 나 지는 게 아닙니다.
왜 그러냐 근본 인간들은 영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여기서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그러니 뭡니까 자 영적인 문제가 오죠. 그에 따라서 정신적인 문제가 오죠. 그래서 정신 돈
사람들이 있으니까 육체적인 문제가 따라서 나오잖아요 육체적인 문제가 나오니까 자꾸 실
패하고 어려움에 자꾸 빠집니다. 육신적인 문제가 자꾸 실패하고 어렵게 됩니다. 계속 고통
을 받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한 두 가지 그런 게 아니고 모든 면에서 다 오게 됩니다. 그
다음 내 자녀들의 문제 그대로 옵니다. 저는 어저께도 어느 모임에서 그런 메시지를 나누었
습니다 만은 이삭을 보면서 참 느끼는 것은 이삭을 보면서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가서 자
기 마누라를 여동생이라 그러면서 했던 그대로를 이삭이 블레셋에 가서 아말렉에 가서 그대
로 했더라구요 그게 뭔 얘기입니까 아비의 죄가 3,4대까지 엄청나게 미치는 것입니다. 그러
니까 부모의 행동이 그대로 전달되어 버리더라구요. 이렇게 되니까 나 뿐 아니고 내 자녀들
이 그대로 저주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립니다. 여러분 그래서 참 이 말씀을 늘 하는 것이지
만 이게 잘 안 지켜져요 보통 무심히 해요. 교회에 대한 불평 특별히 교회에 대한 불평이
딴 게 있습니까 목사에 대한 불평 장로에 대한 불평 교인들에 대한 불평 이 것은요 자녀들
을 완전히 죽여버립니다. 불평이 나오면서 지금 말한 엄청난 영적인 배경들이 따라 나옵니
다. 반면에 이것이 문제가 해결되게 되면요 교회 갈 때마다 기쁘다 감사하다 참 사랑스럽다
이렇게 되어버리면요 여러분의 후손들이 다 살아 버립니다. 이게 안되니까 후손들이 다 죽
어버립니다. 원인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해방되는 길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천하인간에 다
른 길이 없습니다. 해방되는 길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누구입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
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다. 이 사실이 이해 될 때에 그분을 영접 할 때에 요한 복음1장 12
절,13절. 영접하게 될 때에 누가 됩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자녀. 여
러분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이렇게 될 때에 여기서 나오는 엄청난 배경이 생깁
니다. 누구입니까 이 순간에 하나님의 누구 속으로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 버립니다. 하나님
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단 말이 간단한 말이 아
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죽었다 간단한 말이 아닙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완전 하나
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지금부터 여러분과 저를 누가 다스립니까 하나님이 다
스립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를 향해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여러분과 저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가 잘 된다 못된다 상관없어요. 받아합시다 나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 왜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니까 하나님의 주권 속이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그분이
누구입니까 나의 아버집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집니다. 그래서 나를 절대 보장해 주십니다.
보장해 주시기 위해서 누가 왔습니까 처음에는 하나님이 이 땅에 왔습니다. 예수로. 그게 성
육신 아닙니까 그게 이 땅에 인류 속에 왔지 만은 그것도 안되니까 그걸로 완성이 안되니까
개개인이 개인 속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그래서 여러분을 구체적으로 다스립니다. 기도응
답으로. 그러면 끝 난 것 아닙니까 다 된 것 아닙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 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전에는 하나님의 주권 속이 아닙니다. 누구의 주권 속입니까 사단의
주권 속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무리 잘해도 멸망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으로 들어갔습니
다. 축복과 승리입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끝을 수가 있으랴 사망도 생명도 능력도 세상
에 어떤 것도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하나님과 나 사이를 끊을 수가 없도다. 그랬습니다.
확실하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 약속입니다. 자 이주권속으로 들어갔을 때 여러분
잘 아셔야 합니다. 내가 그렇다 면은 저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 누구의 자녀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잘한다 못한다는 내가 보는 시각입니다. 그러면 누가 지금부터 그 사람을 주장
하십니까 하나님이에요. 그래서 이것이 딱 마음에 들어와 버리면요 문제가 생기면 여러분들
이 어디로 들어가느냐 아무개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않습니까 불평과 생각이전에 하나님은 한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하루밤 사이에 바꿀 수도 있고 하루밤사이에 변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뿌리가
안 내려가면 절대로 바꾸어지지 않거든요. 예를 들어서 하루밤사이에 기도응답 한번 해버리
면요 완전히 끝나 버립니다. 그러면 완전히 바꾸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뭐가 되느냐 나
도 내 마음속에 쭉 아픈 것을 겪으면서 뭘 느끼느냐 하면요 이게 딱 들어오면서 자꾸 자꾸
느끼는 것은요. 아 하나님이 하신다. 여기에 불평과 원망이 나올 필요가 없어요. 아프다 안
아프다 하나님이 하시는데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이 땅에 보내셔서
뭐하게 하십니까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오늘하나님의 이 계획은 내
가 해결하지 못한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이니까 이 계획은 뭐냐 승리의 계획입니다. 장래에
하나님의 큰 은총의 계획입니다. 그러니깐 문제가 달라지죠. 받아합시다. 하나님의 교회 하
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나도 누가 다스려요 하나님이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는 너도 누가 다스려요 하나님이 다스립니다. 해결 다 된 거 아닙니까 여기에 불평
과 원망과 눌림이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부터 뭡니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한번 기도
가 딱 응답됐다 그것이요 신기합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를 못해요. 대개 왜 한번도 응답
받지 못했어요.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요 시골에 있을 때에 한번 큰물이 나면 물이 조
금씩 줄잖아요. 물 줄면 그때가 낚시 놓기 좋을 때거든요. 그런데 어떤 장소에 바로 길옆에
내가 낚시를 던졌는데 그 곳에 탁 낚시를 던지는 순간에 딱 낚시 줄을 치더라고요. 딱 낚시
줄을 땡겨 올렸는데 여러분 그런데 그피라미 종류인데 시골에 올라오면은 이기 큰놈은 불가
리 뱀있지 그 벌겋게 된거 근데 큰고기가 딱 올라왔습니다. 한번 딱 거기에 그런 경험이 있
고 나서는 지금도 그곳만 생각하면은 고기가 올라올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그곳을 지나면
은 저기에 고기가 올라오겠는데 한번 경험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 다음에 몇번 몇번 가서
계속 던져봤는데 고기는 안 올라 오더라구요. 근데 뭔 생각이 드느냐 고기 올라온다.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뭔 얘깁니까 여러분 기도 한번 딱 했는데 적은 문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적은 문제 기도 했는데 딱 연결 됐는데 뭐가 옵니까 응답이 와 버렸거든요 그러면 여러분들
이 특별히 조심해야 될 것은 내가 체험을 많이 강조하는 게 아니고 누굴 말해야 합니까 그
리스도를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 사실. 제가 말씀 증거 할 때 나가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
도 그분 그리스도 그분 붙잡고 적은 문제 가지고 연결 될 때에 적은 문제든지 큰 문제든지
한번만 딱 응답 받으면요 뭐가 나옵니까 그리스도 그분 응답 눈이 열려 버립니다. 그러면
아 그리스도 이름으로 하니까 되더라 그러면 나중에 한번만 체험 되어 버리면 어디 갑니까
무슨 문제를 당하더라도 누구 이름으로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요 사실 통해
서 응답 받고 체험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때에 뭐가 나옵니까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생활이 됩니다. 그때부터 나오는 것이 아 말씀은 이루어지더라 뭐가 나옵니까 성경 적인 생
활이 나옵니다. 이것이 몸에 배이게 됩니다. 그 다음에 앉게 되면 여러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고 누구의 말씀입니까 성경말씀. 여러 사람의 말을 뭔 말을 들어도 두렵지 앉습니
다. 뭡니까 그날 강단 메시지 들고 딱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면 여러분 순간순간 적든지 큰
문제든지 내 개인에게 실질적인 응답이 나와야 뭐가 나옵니까 이기 되요. 신앙 생활이 됩
니다. 성경의 말씀에 삶에 대한 체질이 나오게 됩니다. 이기 안되면 아무리 백번천번 소리를
질러도 휘양 합니다. 말씀 들을 때에 그게 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여러분들 주일날 이
말씀이요 딱 붙잡혀져 가지고 정말 말씀 붙잡고 기도하다가 딱 한번만 응답 받아버리면요
그 다음 주일은 무슨 말씀일까 이번엔 무슨 말씀 붙잡고 나올까 그러면 그 말씀 나오면 딱
붙잡고 또한 번 기도를 했다. 그래되면 말 할 것도 없어요. 옆에서 뭐 되니 안되니 없어요
야단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내자신도 모르게 이 사실이 내게 체험이 됩니다 이렇게 되는
사람보고 나무랄 것도 없고 비판할 것도 없고 이래할 것도 없습니다. 잘못한다 하나님의 하
실 것입니다. 위해서 기도하세요. 잘한다 교만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것이 되
어져야 여러분 자기도 모르게 이게 나옵니다. 여기엔 뭡니까 생명의 역사지 종교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 잘못했을 때 오는 것이 역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오는 신비의 역사입니다. 막
말로 해 가지고 이 역사 속에 가장 근본적인 것이 뭡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자리
잡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화 그 다음에 어디 가든지 눌려 있지 않습니다. 앞에 서게 할 때에
자유롭습니다. 여러분 기도 할 때에 참 말이 안 돼요. 처음 나오면 참 말이 잘 안 되거든요.
글을 쓰세요. 글써라 이러면 안되면 또 눌리니까 글을 쓰고 와 가지고 왜 안되니까 자꾸 못
와요. 기도 하는 게 너무 어려워 가지고 수요일 날 누구아무개 집사님 수요일날 기도한다
니까 아이고 내가 이번 주일 안나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다음 수 요일날 내가 기도인데 모
르고 나왔으면 우짤 뻔했노 괜찮습니다. 글을 써 가지고 와서 펴놓고 그 다음에 그걸 보고
읽어요.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왜 하나님 앞에서 그것도 사람 앞에서 하지 마시고 그게 훈련
이고 이상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글을 써요. 내가 사람 앞에서 잘하기 위해서
가 아닙니다. 그러면 눌리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에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안식이 옵니다.
그 다음에 붙잡고 계속해서 내가 적고 큰 문제 붙잡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면 여러분 그리
스도로 말미암아 내게 응답하시더라. 이 사실이 체험되는 이런 사실들이 모이고 모이고 모
이면은 나 자신도 모르게 아 예수그리스도 승리의 이름이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은 승리하게 되는구나 이때 뭐가 나옵니까 자기도 모르게 평안이 나옵니다. 치료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치료가 딴 게 아닙니다. 치료가 정신이상이 돌아왔다 그거 돌아온 후가 더
무서운데 하나님의 평안과 안식이 오늘 여러분 말씀 통해서 기도하고 이 사실이 한 주간도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서 지금 무슨 문제가 왔느냐 말씀이 능력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살아
가는 삶이 능력입니다. 거기는 뭘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생명입니다. 막말로 오
줌싸고 똥 싸는 거 당연합니다. 여러분 수준이 뭘 지금 수준도 안 되는데 뭘 잘 할려고 하
면 그거는 율법이에요. 그러면은 눌리게됩니다. 눌리게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사단의 통로가
되요 아무 것도 못합니다. 눌리게 되면 진짜 해야되고 진짜 용기 내는 자리에 섰다 그러면
요 다 죽어 버립니다. 아무 것도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뭐 제일로 쉬운 얘기를 든다 그러면
요 여러분 막 그냥 안 눌릴 때 보통 집안에서 사는 건 생활이 되어 있으니까 습관이 되어있
으니깐 안 눌리잖아요 암만 용기 좋은 사람도요 요 앞에 나와 가지고요 기도하라 그러면요
고만 딱 막혀 버립니다. 눌려 버리면요 그 잘하던 말도 그냥 보통 때는 전화걸때는 얼마나
20분,30분. 말만 잘하고 그래 도요 앞에 갖다 놓으면요 눌려버립니다. 그 잘하던 말도 그 입
싸던 말도 여기 갖다 놓으면 그만 눌려 버립니다. 눌려버리면요 다 막혀 버립니다 그래되면
요 역사가 나올 수가 없어요. 능력이 안나오게 됩니다. 참된 자유가 와야 뭡니까 말씀 안에
서 이 생활이 되야 삶이 되야 여기서부터 뭔가 능력이 나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이 능력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지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새 생명을 누리며 삽시다. 그게 뭡니까 새 생명이 성장되면 됩니다. 우리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만 감사 눈만 열려 버리면 됩니다. 조금만 우리가 하나님 향해서 주여 감사 생긋이 조
금 웃어만 줘도 하나님의 마음은 너무 기뻐 가지고 오냐 알았다. 다 해결됩니다,. 뭐 그리
불만이 많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입만 열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그러면 눌리게 됩니다 그게
완전 사단의 통로가 되어 버립니다. 감사가 조금만 평안이 회복되면 되니까 감사가 회복되
면요 뭐든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누구 만나서 감사하고 또 누구 만나서 이상한 소리 들었다
그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고 왜 하나님이 내 마음을 여시고 지혜를 주시기 위한 하나
님의 기회와 통로인줄 아시니까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우리 잠깐 하나
님 앞에 주께서 나와 동행하시고 실제로 말씀이 생활과 삶이 되도록 우리의 눈이 열리게 하
시고 정말 우리 속에 감사로 터져 나오도록 주께서 은혜 주옵시고 눌림이 사라지고 해방의
기쁨이 있게 하옵소서. 우리 다같이 한 음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속에 쌓인 불평과 불만으로 분노의 역사가 우리 속에 쌓이
고 쌓여서 우리도 모르게 눌림 속에 살아가는 저들에게 새 생명의 놀라운 은혜로 축복하시
고 주께서 저들에게 참된 기쁨을 주시 옵시고 주의 말씀이 성취되는 감사와 기쁨으로 주여
인도해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옵고 바라 옵나이다. 주님 축복해주지 아니하시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사오니 오늘도 주의 종들에게...."
"우리를 구속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크신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지극하신 사랑과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충만 위로 교통하심이 모인 무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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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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