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대로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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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 속에 부활에 대한 믿음이 확인되어져 가는 것을 보며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부활을 믿는 사도들을 통해서 세계 복음화의 문을 여셨습니다. 사도들의 주된 증거가 바로 '주님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세에도 부활의 신앙이 안되면 증인이 될 수 없습니다. 부활의 역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종교와 율법으로 빠지게 됩니다.
1. 누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까?
(1) 바리새인
철저하고 전통적인 바리새인들이 그렇게도 철저히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말해오던 부활을 실제로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바울은, 사도행전의 모든 현장에서 그 지혜가 돋보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의 인도입니다. 그 장면들을 묵상할 때에는 너무나 감탄이 됩니다. 또한 바울이 쓴 로마서는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완벽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성령께서는 바울의 해박한 지식과 성품 및 재능을 다 살려서 역사하셨습니다.
(2) 제자들
사실상 바리새인들보다 더 큰 문제는 믿어야 할 제자들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하셨습니다. 주님은 직접 나타나시기도 하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기도 하고, 생선을 직접 드시기도 하시면서 40일 동안 부활을 믿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 쓰셨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역사를 믿지 않으면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 증거의 핵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정말 기적이요 감사할 일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복음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덤에 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한 변화를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인간의 역사 속에는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63 빌딩만 보고 그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높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다가 실제로 100층이 넘는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 보았을 때는 그 전에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실제를 알지 못했던 바리새인이나 제자들에게도 부활에 대한 실제적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부활 신앙은 성령의 감동 없이는 안 됩니다. 또한, 부활에 대한 인식이 없어도 불가능합니다.
2. 부활을 믿어야 되는 이유
(1)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에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에 앞서 역사적인 실제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가 등장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해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분명하다는 고백입니다. 로마의 위임을 받은 총독으로서 유대 지역을 다스렸던 실제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를 분명히 밝힘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역사적 사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이 땅에 오셨습니까? 2003년 전입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연대를 따져보면 기원전 4년에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단 사이비들은 2000년만에 종말이 온다고들 야단하며 1999년의 어느 날을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은 세계 복음화가 되고 난 후에 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를 통해서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그 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대항하여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하는 것은 다만 시작일 뿐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 사이비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부활을 알지 못하면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비밀과 언약을 몰라서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위에서 모든 지혜가 나옵니다. 어느 일본인이 단단히 작정하고 한국에 관해서 쓴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한국인은 아예 안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인이 교통 질서만 잘 지키게 되어도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교통 질서가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애정이 아니라 집착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무관심보다도 오히려 과보호가 자녀를 더욱 망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겨나가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너무 보호하다가 보면 정신 문제가 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에 가서 자폐증을 앓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는 이러한 한국인의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머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지식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인이 가정 교육은 되어지지 않지만,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고 평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국인이 지식이 있는 반면 지혜가 없어서 망친다고 평합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지혜가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미래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요행을 바라는 무속 배경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때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복음 사역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부활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부활은 말씀으로 미리 예언하신 것이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3) 부활을 믿을 때에 성육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유는 부활의 신앙이 세워지면 이루어집니다. 부활의 신앙이 되어져야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여기에서 성육신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이것이 안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라고 할 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자체가 이미 고통이요, 어려움입니다. 그 후로도 예수 그리스도는 혼자이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가 없었고, 그와 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다 짊어지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이 믿어질 때에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이 완전히 이해됩니다. 즉, 그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죽었다가 인간의 역사에는 없는 부활을 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4) 부활을 믿을 때에 구원이 성취되어집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부활이 믿어질 때에 생명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종교와 율법에 빠질 뿐입니다.
3. 부활했던 당시의 사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알면 모든 자들이 믿을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지어냈습니다.
(1) 도난설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덤 안에 있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증거입니다.
(2) 환상설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모한 나머지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입니다.
(3) 기절설
예수님을 완전히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러한 모든 거짓들이 오히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4. 부활해야 되는 이유
(1) 부활해야 성령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은 성령의 임재 이전과 이후에 너무나도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부활을 통해서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을 이해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실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생선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서 계속해서 부활을 이해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것을 잃어버리고 고기잡이를 하러 가기도 하고, 엠마오로 가기도 했을 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가서 부활을 실제적으로 이해시키셨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이해시키셨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성령의 강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 부활해야 변화(치유)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부활 이후에 제자들의 마음과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문을 다 잠구어 놓고 겁을 내고 있었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시고 성령이 임재하신 후에는 담대히 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부활하여 살아나셨다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제자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 이전에 먼저 부활을 알게 되고 기도의 역사가 나왔습니다. 기도가 나오면서 성령이 임하고 치료의 역사가 나왔습니다. 그 때에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요즈음 다락방을 한다고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의 실제가 없으니까 기도가 없고, 기도가 없으니까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복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신비주의자들보다도 더한 신비가 전도 속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300명에서 500명을 영접시킨 후에 집중 기도하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영접 운동을 하면 '진단'이 와지기 때문입니다. 즉,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설명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적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일평생 깨닫지 못하던 놀라운 변화가 영접한 자에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나올 때에 영접한 자의 영육이 치유되어 집니다. 그렇게 해서 팀사역까지 진행되어 영접하여 치유된 자가 현장에 일꾼으로 세워지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일평생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영접하여 치유되면 그는 복음에 생명을 걸게 됩니다. 이것은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의 역사가 나와서 치유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부활 신앙이 되고 기도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치유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 후에 팀사역을 한두 주 정도 받게되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문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변화가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을 걸고 주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이 안되니까 이것이 잘 안 되어집니다. 부활 신앙이 안되니까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치유되게 됩니다. 그런데, 치유에 대해서 잘못 오해하여 눌리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유되었다고 해서 전혀 싸움도 하지 않고 속으로 쌓아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다가 한꺼번에 폭발해 버리면 정말 정신병에 걸리게 됩니다. 싸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나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고 미안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이미 치유된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이 옵니다. 물론, 성격까지 바뀌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진짜 치유가 오면 자유가 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나오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치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치유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해결되었습니다. 영육간에 치유됩니다. 근본이 회복되고 평안해집니다.
(3) 이 때부터 나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저 사람 보니까 달라졌다.' 치유받게 될 때에 이러한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즉, 내게 있는 평안을 누리는 것이 전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에 와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라고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면 입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지가 나갈 때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몰려들게 됩니다. 이제 누군가를 전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기도하면 됩니다. 때가 되면 붙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내게 임한 그리스도의 능력과 축복을 말하면 됩니다. 이와 같이 세계 복음화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300명 이상 영접의 사실을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며 누리시기 바랍니다. 신비의 역사가 전도의 현장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방향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난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 치며 다니는 것입니다. 말세에 미련한 자로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를 성령의 충만으로 체험하는 축복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더불어, 그 때에는 겸손해야 될 것입니다.
1. 누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까?
(1) 바리새인
철저하고 전통적인 바리새인들이 그렇게도 철저히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말해오던 부활을 실제로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바리새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바울은, 사도행전의 모든 현장에서 그 지혜가 돋보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의 인도입니다. 그 장면들을 묵상할 때에는 너무나 감탄이 됩니다. 또한 바울이 쓴 로마서는 참으로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그 이유는 바울이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완벽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때에 성령께서는 바울의 해박한 지식과 성품 및 재능을 다 살려서 역사하셨습니다.
(2) 제자들
사실상 바리새인들보다 더 큰 문제는 믿어야 할 제자들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을 인식시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노력하셨습니다. 주님은 직접 나타나시기도 하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기도 하고, 생선을 직접 드시기도 하시면서 40일 동안 부활을 믿게 하기 위해서 온 힘을 다 쓰셨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의 역사를 믿지 않으면 복음 전파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 증거의 핵심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주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어진다면 정말 기적이요 감사할 일입니다. 이 부활의 신앙이 구체적으로 나와야 복음에 대한 실제적인 역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까? 지금까지 한 번도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무덤에 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한 변화를 이루셨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인간의 역사 속에는 한 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63 빌딩만 보고 그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높을 것이라고만 생각하다가 실제로 100층이 넘는 미국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가 보았을 때는 그 전에 생각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의 실제를 알지 못했던 바리새인이나 제자들에게도 부활에 대한 실제적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부활 신앙은 성령의 감동 없이는 안 됩니다. 또한, 부활에 대한 인식이 없어도 불가능합니다.
2. 부활을 믿어야 되는 이유
(1)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부활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에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에 앞서 역사적인 실제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가 등장합니다.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것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당해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이 분명하다는 고백입니다. 로마의 위임을 받은 총독으로서 유대 지역을 다스렸던 실제 인물인 본디오 빌라도를 분명히 밝힘으로서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역사적 사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이 땅에 오셨습니까? 2003년 전입니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연대를 따져보면 기원전 4년에 태어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단 사이비들은 2000년만에 종말이 온다고들 야단하며 1999년의 어느 날을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거짓임이 분명히 드러날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은 세계 복음화가 되고 난 후에 온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우리를 통해서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그 때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대항하여 일어나고, 지진이 일어나고 하는 것은 다만 시작일 뿐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 사이비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부활을 알지 못하면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비밀과 언약을 몰라서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 위에서 모든 지혜가 나옵니다. 어느 일본인이 단단히 작정하고 한국에 관해서 쓴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한국인은 아예 안 되어있다'고 말합니다. 한국인이 교통 질서만 잘 지키게 되어도 세계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교통 질서가 엉망이라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렇습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애정이 아니라 집착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무관심보다도 오히려 과보호가 자녀를 더욱 망칩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이겨나가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너무 보호하다가 보면 정신 문제가 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에 가서 자폐증을 앓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는 이러한 한국인의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소망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머리가 좋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은 지식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한국인이 가정 교육은 되어지지 않지만, 학교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고 평합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국인이 지식이 있는 반면 지혜가 없어서 망친다고 평합니다.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열려야 지혜가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 미래를 보는 눈이 열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요행을 바라는 무속 배경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때에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복음 사역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구체적으로 부활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2) 부활은 말씀으로 미리 예언하신 것이므로 믿을 수 있습니다.
(3) 부활을 믿을 때에 성육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치유는 부활의 신앙이 세워지면 이루어집니다. 부활의 신앙이 되어져야 '말씀대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여기에서 성육신도 믿어지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면 이것이 안 됩니다.
예수의 십자가라고 할 때,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고난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자체가 이미 고통이요, 어려움입니다. 그 후로도 예수 그리스도는 혼자이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가 없었고, 그와 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고통과 괴로움을 이기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류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을 다 짊어지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부활이 믿어질 때에 하나님으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이 완전히 이해됩니다. 즉, 그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죽었다가 인간의 역사에는 없는 부활을 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4) 부활을 믿을 때에 구원이 성취되어집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십자가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부활이 믿어질 때에 생명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안되면 종교와 율법에 빠질 뿐입니다.
3. 부활했던 당시의 사건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자 당황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알면 모든 자들이 믿을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지어냈습니다.
(1) 도난설
예수님의 시체를 제자들이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덤 안에 있던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증거입니다.
(2) 환상설
예수님을 너무나도 사모한 나머지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입니다.
(3) 기절설
예수님을 완전히 죽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러한 모든 거짓들이 오히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4. 부활해야 되는 이유
(1) 부활해야 성령의 역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 사도들은 성령의 임재 이전과 이후에 너무나도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부활을 통해서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부활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자에게는 성령의 역사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부활을 이해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실제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생선을 드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여러 차례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서 계속해서 부활을 이해시키셨습니다. 제자들이 부활에 대한 것을 잃어버리고 고기잡이를 하러 가기도 하고, 엠마오로 가기도 했을 때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찾아가서 부활을 실제적으로 이해시키셨습니다. 실로 예수님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이해시키셨습니다. 이 사실이 이해되어야 성령의 강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2) 부활해야 변화(치유)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부활 이후에 제자들의 마음과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졌습니다.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는 문을 다 잠구어 놓고 겁을 내고 있었는데, 부활하신 주님이 나타나시고 성령이 임재하신 후에는 담대히 문을 박차고 나와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로 부활하여 살아나셨다는 증인이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제자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 이전에 먼저 부활을 알게 되고 기도의 역사가 나왔습니다. 기도가 나오면서 성령이 임하고 치료의 역사가 나왔습니다. 그 때에 복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요즈음 다락방을 한다고 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의 실제가 없으니까 기도가 없고, 기도가 없으니까 성령의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복음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신비주의자들보다도 더한 신비가 전도 속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안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300명에서 500명을 영접시킨 후에 집중 기도하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영접 운동을 하면 '진단'이 와지기 때문입니다. 즉,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설명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적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일평생 깨닫지 못하던 놀라운 변화가 영접한 자에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나올 때에 영접한 자의 영육이 치유되어 집니다. 그렇게 해서 팀사역까지 진행되어 영접하여 치유된 자가 현장에 일꾼으로 세워지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일평생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영접하여 치유되면 그는 복음에 생명을 걸게 됩니다. 이것은 영접하는 순간에 성령의 역사가 나와서 치유되어지기 때문입니다. 정말 부활 신앙이 되고 기도하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순간, 치유가 나오게 됩니다. 그런 후에 팀사역을 한두 주 정도 받게되면 그 사람과 그 사람의 가문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변화가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을 걸고 주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이 안되니까 이것이 잘 안 되어집니다. 부활 신앙이 안되니까 성령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치유되게 됩니다. 그런데, 치유에 대해서 잘못 오해하여 눌리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치유되었다고 해서 전혀 싸움도 하지 않고 속으로 쌓아두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다가 한꺼번에 폭발해 버리면 정말 정신병에 걸리게 됩니다. 싸움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에는 나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게 되고 미안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이미 치유된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이 옵니다. 물론, 성격까지 바뀌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진짜 치유가 오면 자유가 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로 나오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치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폭발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치유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해결되었습니다. 영육간에 치유됩니다. 근본이 회복되고 평안해집니다.
(3) 이 때부터 나오는 것이 전도입니다.
'저 사람 보니까 달라졌다.' 치유받게 될 때에 이러한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즉, 내게 있는 평안을 누리는 것이 전도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에 와서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느냐?'라고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고, 그러면 입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메시지가 나갈 때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몰려들게 됩니다. 이제 누군가를 전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기도하면 됩니다. 때가 되면 붙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내게 임한 그리스도의 능력과 축복을 말하면 됩니다. 이와 같이 세계 복음화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300명 이상 영접의 사실을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기도하며 누리시기 바랍니다. 신비의 역사가 전도의 현장 속에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방향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잘 난 것도 없으면서 큰소리 치며 다니는 것입니다. 말세에 미련한 자로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를 성령의 충만으로 체험하는 축복이 있으시길 축원합니다. 더불어, 그 때에는 겸손해야 될 것입니다.
번호 | 제목 | 본문 | 설교일 | 첨부파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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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4 | 전환점을 이룬 안디옥 선교 | 행11:19-30 | 2025-04-27 | |
1483 |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메시지 | 고전15:1-11 | 2025-04-20 | |
1482 | 새로운 싸움을 위하여 | 삿7:9-18 | 2025-04-13 | |
1481 | 날마다 영적싸움에 승리하라 | 삿7:1-8 | 2025-04-06 | |
1480 | 이 시대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해답 | 삿4:1-10 | 2025-03-30 | |
1479 | 하나님이 쓰시는 기준 | 삿3:12-23 | 2025-03-23 | |
1478 |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삿3:7-11 | 2025-03-16 | |
1477 |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 삿2:6-10 | 2025-03-09 | |
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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