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사역과 축복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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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치유 사역자가 먼저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치유할 자를 치유하시고 세계 복음화를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교회가 치유 사역을 하게 된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우리가 치유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서 치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치유가 일어나는 교회에는 문제 있는 사람들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말도 많게 됩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문제 있는 자가 교회에 오고,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당연합니다. 특히 봄바람이 불 때는 더욱 이러한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사단도 같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부터 치유되면 먼저 평안해지기 때문에 문제 속에서 허둥대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서는 자리마다 평안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설교라도 듣고 불안해진다면 문제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설교라도 듣고 편안해져야 합니다. 더욱이 평안 없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부흥될 때 정신 문제를 가진 자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때에 문제 의식 속에서 부담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치유 받아야 될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이 되면 평안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도 사역을 하면서 우리 교회에 말이 별로 없어졌습니다. 참 감사할 일입니다. 모이면 만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니까 신자들이 모이면 팀사역을 하고, 불신자가 있으면 복음을 전하며 무시기도를 하니, 말이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 사역이 안 되면, 안 되는 만큼 헛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면 헛소리 할 겨를이 없습니다.
1. 자신부터 치유
자기부터 치유되면 평안과 안식이 오게 되고 너그러워지고,
(1) 사단의 통로가 보여집니다.
성격적 혹은 물질적 통로들이 보여질 때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욕하면 자기를 욕하는 것으로 듣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자기를 칭찬하는 것으로 듣습니다. 이런 문제가 치유되어지면 말이 필요없어지게 되고 평안해집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평안함이 감돌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까?
1) 과거의 문제를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과거에 가난했던 배경을 통해서 문제가 들어옵니다.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돈에 대해서 일부러 초연한 척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한 과거에 부유했던 배경을 통해서도 문제가 들어옵니다.
2) 상처를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상처를 통해서 문제에 부닥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관이 드러나게 됩니다. 상처로 인해 평소에 남아 있던 습관이나 생각들이 문제가 생길 때 결정적으로 사단이 들어오는 통로가 됩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을 때 평안하게 됩니다.
3) 가문과 민족적 배경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정말 복음이 확실히 되어있지 않으면, 가문의 전통도 사단의 통로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4) 욕심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욕심은 사단의 통로가 될 뿐 다른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을 낸다고 약속한 분깃 이상을 주시는 것도 아니고, 전부 다 양보한다고 해도 약속된 분깃 만큼 다 주십니다. 욕심을 낸다고 더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형제 간에도 불화가 생깁니다.
5) '스스로'를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잘 하는데 자기 중심입니다. 부인이나 남편에게 잘 해주어도 자기 중심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무서운 사단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치유 받아야 할 부분이 드러나게 될 때, 이것을 깨닫고 치유되면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조금만 이해되어도 치유되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이렇게 해서 느긋해진 사람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건드려 보았자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너무 속이 좁고 성질이 급합니다. 오죽하면 '밴댕이 속'이라는 말까지 있습니까? 밴댕이는 아주 성질이 고약한 물고기입니다. 낚시 바늘에 걸리면 제 속을 못 이겨 파닥거리다가 제 풀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이 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될 때 깨닫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계획 및 전능하심이 믿어질 때 평안해집니다.
이 때에 우리에게는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문제가 오는 것이 보일 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을 결박하십시오. 위기의 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돌고 있습니다. 현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복음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대구'라는 여리고 성을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돌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견고한 성 밑에서 돌고 있다는 것은 군사학적으로 볼 때는 바보와 같은 짓입니다. 성 위에서 어떤 무기로 공격할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끼리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의 시간표를 붙잡게 됩니다. 내가 애를 쓰고 안 쓰고에 상관없이 시간이 되면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돌 때에는 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왔다가 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넜던 백성들, 요단강을 건넜던 백성들이 왔다가 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 운동'입니다. 악한 세력이 간담이 녹아 내리기 때문에 그냥 복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증거가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점점 기도밖에 할 것이 없으며, 참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실패는 축복의 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패했다, 혹은 어려움을 당했다, 혹은 문제가 생겼다고 할 때 그것은 축복의 문이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실패도 누린다'는 것이 되어집니다. 어떤 면에서 실패와 고통과 어려움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엄청난 미래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축복하실 때에 어떤 면에서 실패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믿음으로 바라보면 실패는 축복의 큰 문입니다.
2. 환경 치유
왜 환경 치유가 중요합니까? 환경이 치유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삶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야 되므로 문제 있는 환경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1) 마태복음 12장 28-45절
환경은 복음이 들어간 자를 통해서 바꾸어집니다. 그러므로, 먼저 개인이 복음이 되고, 기도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환경은 다른 영이 정사와 권세를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놓고도 모르고 살다가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에서 눈이 열리면 바울처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지금쯤은 치유 메시지를 듣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문제는 다른 영에 잡혀있을 때는 복음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꾸어짖지 않으면 환경이 바꾸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환경이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생명이 들어오면 이미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확신되고 임마누엘이 되어졌다면, 다른 영이 그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냄새만 맡아도 졸도합니다. 정말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확인되면 사단의 역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안 되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그리스도가 안 되었느냐?'라고 대어듭니다. 실제적인 문제가 있을 때는 그러한 변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즉, 실제적인 문제가 있는데도 영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우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확실히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적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됩니다. 정말 기도하면 악한 세력이 꺾이게 됩니다.
(2) 환경 치유를 위해서는 가족들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가족 중에 불신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분위기가 이상하게 됩니다. 온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3) 환경 치유를 위해서는 가족과 가문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장로교에 두 파가 있습니다.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입니다. 사실은 '예수'와 '그리스도' 사이의 싸움입니다. 한 쪽은 보수주의 쪽이고, 한 쪽은 자유주의 쪽입니다. 이제 연합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다락방도 연합하여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환경 치유를 위해서는 집안의 우상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집안에 우상이 있으면 엄청난 역사로 가계에 흐르게 됩니다. 야곱의 가문에서 라헬이 그러했습니다. 라헬이 부의 신인 드라빔을 아버지 집에서 훔쳐 나왔습니다. 이 드라빔은 가정 우상입니다. 라헬이 여기에 베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나면서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까지 내려가서 살육까지 벌어집니다(사사기 17장 5절). 왜 라헬을 일찍 데려 갔습니까? 요셉이 세계 복음화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입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복음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해서 4대째까지 내려가서 요셉을 통해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한 가정과 가문에서 이것이 잘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불러서 세계 복음화를 말하였으나 요셉에 와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한 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외국에도 다녀오고 하지만, 지금은 일꾼들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면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자녀들을 우상으로 받들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아반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바람
다 알지만,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령의 바람이라고 할 때, 오순절 쪽에서 말하는 지속설과 복음주의 쪽에서 말하는 단회설이 모두 사실이므로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 성령 충만을 받았으면 되었지만 계속 복음의 역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지속해야 합니다. 더불어, 귀신의 역사까지도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 나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이 사실을 충분히 체험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구나!'라는 것이 현장에서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한 교회에 500명만 현장에서 영접한 사람들이 모였다면 그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100명만 되어도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우리가 서너 번만 눈물을 흘리며 절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현장을 가지게 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 응답의 사실을 체험하게 되면 기도를 안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의 실제적인 역사가 내게 체험되면 생각과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바람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체험이 있는 자만이 성령의 체험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일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 전파의 바람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성령의 사실이 있을 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거거리를 주실 것입니다.
자신부터 치유되면 먼저 평안해지기 때문에 문제 속에서 허둥대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서는 자리마다 평안해져야 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설교라도 듣고 불안해진다면 문제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설교라도 듣고 편안해져야 합니다. 더욱이 평안 없이 어떻게 전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부흥될 때 정신 문제를 가진 자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은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이 때에 문제 의식 속에서 부담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치유 받아야 될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이 되면 평안하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전도 사역을 하면서 우리 교회에 말이 별로 없어졌습니다. 참 감사할 일입니다. 모이면 만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찾게 되니까 신자들이 모이면 팀사역을 하고, 불신자가 있으면 복음을 전하며 무시기도를 하니, 말이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도 사역이 안 되면, 안 되는 만큼 헛소리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 방향을 맞추면 헛소리 할 겨를이 없습니다.
1. 자신부터 치유
자기부터 치유되면 평안과 안식이 오게 되고 너그러워지고,
(1) 사단의 통로가 보여집니다.
성격적 혹은 물질적 통로들이 보여질 때 기도하게 됩니다. 이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욕하면 자기를 욕하는 것으로 듣고, 다른 사람을 칭찬하면 자기를 칭찬하는 것으로 듣습니다. 이런 문제가 치유되어지면 말이 필요없어지게 되고 평안해집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평안함이 감돌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까?
1) 과거의 문제를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과거에 가난했던 배경을 통해서 문제가 들어옵니다. 가난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돈에 대해서 일부러 초연한 척하는 것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또한 과거에 부유했던 배경을 통해서도 문제가 들어옵니다.
2) 상처를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상처를 통해서 문제에 부닥칠 때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관이 드러나게 됩니다. 상처로 인해 평소에 남아 있던 습관이나 생각들이 문제가 생길 때 결정적으로 사단이 들어오는 통로가 됩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을 때 평안하게 됩니다.
3) 가문과 민족적 배경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정말 복음이 확실히 되어있지 않으면, 가문의 전통도 사단의 통로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4) 욕심을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욕심은 사단의 통로가 될 뿐 다른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을 낸다고 약속한 분깃 이상을 주시는 것도 아니고, 전부 다 양보한다고 해도 약속된 분깃 만큼 다 주십니다. 욕심을 낸다고 더 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형제 간에도 불화가 생깁니다.
5) '스스로'를 통해서 사단이 들어옵니다.
잘 하는데 자기 중심입니다. 부인이나 남편에게 잘 해주어도 자기 중심입니다. 이것이 정말로 무서운 사단의 통로입니다. 우리는 오직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치유 받아야 할 부분이 드러나게 될 때, 이것을 깨닫고 치유되면 평안해집니다. 이것이 조금만 이해되어도 치유되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이렇게 해서 느긋해진 사람은 사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건드려 보았자 별 반응이 없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너무 속이 좁고 성질이 급합니다. 오죽하면 '밴댕이 속'이라는 말까지 있습니까? 밴댕이는 아주 성질이 고약한 물고기입니다. 낚시 바늘에 걸리면 제 속을 못 이겨 파닥거리다가 제 풀에 죽는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배경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과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믿음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시간이 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될 때 깨닫게 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간표와 계획 및 전능하심이 믿어질 때 평안해집니다.
이 때에 우리에게는 영적 눈이 열려야 합니다. 문제가 오는 것이 보일 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단을 결박하십시오. 위기의 시기를 맞이한 오늘날, 우리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돌고 있습니다. 현장을 왔다 갔다 하면서 복음을 생각하는 것이 바로 '대구'라는 여리고 성을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 없이 돌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견고한 성 밑에서 돌고 있다는 것은 군사학적으로 볼 때는 바보와 같은 짓입니다. 성 위에서 어떤 무기로 공격할지 모르는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이러한 위기의 시기에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들끼리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중심이 될 때 하나님의 시간표를 붙잡게 됩니다. 내가 애를 쓰고 안 쓰고에 상관없이 시간이 되면 주님께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리고 성을 돌 때에는 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왔다가 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고 건넜던 백성들, 요단강을 건넜던 백성들이 왔다가 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 운동'입니다. 악한 세력이 간담이 녹아 내리기 때문에 그냥 복음 들고 왔다 갔다 하면 증거가 나옵니다. 우리에게는 점점 기도밖에 할 것이 없으며, 참 평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2) 실패는 축복의 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실패했다, 혹은 어려움을 당했다, 혹은 문제가 생겼다고 할 때 그것은 축복의 문이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실패도 누린다'는 것이 되어집니다. 어떤 면에서 실패와 고통과 어려움이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것들을 통해서 엄청난 미래의 축복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미래를 축복하실 때에 어떤 면에서 실패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믿음으로 바라보면 실패는 축복의 큰 문입니다.
2. 환경 치유
왜 환경 치유가 중요합니까? 환경이 치유되지 않으면 지속적인 삶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야 되므로 문제 있는 환경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1) 마태복음 12장 28-45절
환경은 복음이 들어간 자를 통해서 바꾸어집니다. 그러므로, 먼저 개인이 복음이 되고, 기도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의 환경은 다른 영이 정사와 권세를 잡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환경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아놓고도 모르고 살다가 지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그 환경에서 눈이 열리면 바울처럼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지금쯤은 치유 메시지를 듣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문제는 다른 영에 잡혀있을 때는 복음을 통해 근본적으로 바꾸어짖지 않으면 환경이 바꾸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임했다고 말씀합니다. 환경이 이미 치유되었습니다. 생명이 들어오면 이미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가 확신되고 임마누엘이 되어졌다면, 다른 영이 그 자리에 설 수가 없습니다. 사단은 그리스도의 냄새만 맡아도 졸도합니다. 정말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확인되면 사단의 역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안 되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왜 그리스도가 안 되었느냐?'라고 대어듭니다. 실제적인 문제가 있을 때는 그러한 변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라고 말해야 됩니다. 즉, 실제적인 문제가 있는데도 영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우길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 솔직하고 확실히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영적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안됩니다. 정말 기도하면 악한 세력이 꺾이게 됩니다.
(2) 환경 치유를 위해서는 가족들의 신앙이 중요합니다.
가족 중에 불신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 분위기가 이상하게 됩니다. 온 가족이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3) 환경 치유를 위해서는 가족과 가문이 치유되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의 장로교에 두 파가 있습니다. 예수교 장로회와 기독교 장로회입니다. 사실은 '예수'와 '그리스도' 사이의 싸움입니다. 한 쪽은 보수주의 쪽이고, 한 쪽은 자유주의 쪽입니다. 이제 연합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다락방도 연합하여 하나될 수 있을 것입니다.
(4) 환경 치유를 위해서는 집안의 우상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집안에 우상이 있으면 엄청난 역사로 가계에 흐르게 됩니다. 야곱의 가문에서 라헬이 그러했습니다. 라헬이 부의 신인 드라빔을 아버지 집에서 훔쳐 나왔습니다. 이 드라빔은 가정 우상입니다. 라헬이 여기에 베여있었습니다. 그래서 살림을 나면서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사기까지 내려가서 살육까지 벌어집니다(사사기 17장 5절). 왜 라헬을 일찍 데려 갔습니까? 요셉이 세계 복음화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입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복음화는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해서 4대째까지 내려가서 요셉을 통해 세계 복음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한 가정과 가문에서 이것이 잘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불러서 세계 복음화를 말하였으나 요셉에 와서야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한 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 외국에도 다녀오고 하지만, 지금은 일꾼들을 준비하고 있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가 되면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이 너무나 귀중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자녀들을 우상으로 받들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축복하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녀들이 자존감을 가지고 바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아반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3. 성령의 바람
다 알지만, 성령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령의 바람이라고 할 때, 오순절 쪽에서 말하는 지속설과 복음주의 쪽에서 말하는 단회설이 모두 사실이므로 우리는 싸울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 성령 충만을 받았으면 되었지만 계속 복음의 역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지속해야 합니다. 더불어, 귀신의 역사까지도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 나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제적으로 이 사실을 충분히 체험해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구나!'라는 것이 현장에서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한 교회에 500명만 현장에서 영접한 사람들이 모였다면 그 교회의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100명만 되어도 분위기는 달라집니다. 이것이 안되니까 머리가 안 돌아갑니다. 우리가 서너 번만 눈물을 흘리며 절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현장을 가지게 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기도 응답의 사실을 체험하게 되면 기도를 안 할 수 없게 됩니다. 성령의 실제적인 역사가 내게 체험되면 생각과 마음이 달라집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바람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체험이 있는 자만이 성령의 체험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일깨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복음 전파의 바람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성령의 사실이 있을 때에 나올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증인이 되라고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증거거리를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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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 | 새로운 축복을 위해 남겨두신 과제 | 삿1:1-7 | 2025-03-02 | |
1475 | 끝까지 전도하는 교회 | 단12:1-4 | 2025-02-23 | |
1474 |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용맹을 떨치리라 | 단11:28-39 | 2025-02-16 | |
1473 | 네 말이 들으신 바 되었으므로 | 단10:10-21 | 2025-02-09 | |
1472 |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 단9:20-24 | 2025-02-02 | |
1471 | 육신의 번영과 영원한 형통 | 단8:15-27 | 2025-01-26 | |
1470 |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 | 단7:9-14 | 2025-0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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