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예배

성도들부터 치유를
2004-05-06 00:00: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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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제가 종종 중직자나 묵은디 이야기를 하는데 잘못 들으시면 오해하게 됩니다. 즉, 중직자나 묵은디가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 교회 중직자들은 칭찬을 들을 정도가 아니라 너무 좋으신 분들입니다. 평신도들 같으면 조금만 쳐도 나갈 수 있으나, 중직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기존 신자와 중직자들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것은 오래 예수를 믿을수록 바로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척 고생을 하게 됩니다. 목사, 장로, 안수 집사, 권사님들이 오래 믿을수록 '복음이 정말 좋구나!'라고 느끼며 살 맛이 나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으로 고생이 따릅니다.


[1] 서론

이스라엘의 역사를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선택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중요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으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세계에서 제일 고생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선택된 이후부터 어떤 일들이 생겼는지를 살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선택을 받고 방황하게 되었고, 야곱은 축복을 받자마자 고생 길에 들어섰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선택받은 그 때부터 어려움에 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으면 방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교회와 목사가 왜 저러느냐?'라고 총공격을 합니다. 사실 상당한 경우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상당히 많은 중직자들이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천주교나 불교 신자들은 대체적으로 국법을 잘 지킵니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은 국법을 제법 어기는 편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IMF의 위기 시대에 교회가 선교한다면서 돈을 외국에 갖다 버린다고 말합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현지에 가서 전도는 안 하고 땅이나 집을 사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그들은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불법으로 돈을 가지고 나갑니다. 그래 놓고도 결국은 현지인들에게 땅도 집도 다 빼앗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해놓고는 엉뚱한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부분에서 사람들이 욕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가 보면 다릅니다. 선교와 전도하는 일에 사단은 무조건 반대하며, 무조건 미워합니다. 선교와 전도의 모든 프로그램이 세상에서 환영받은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은 아예 습관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자마자 이스라엘에게 다른 역작용이 나왔습니다. 세계 복음화를 진행하며 성전에 이방인이 들어와서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정하셨으나, 유대 사상이 생기면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성전에 들어오는 것을 불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계 구원의 제사장 나라로 세우셨으나, 이스라엘이 거꾸로 나아갔습니다. 그 때에 역사하는 것은 사단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단은 모든 것을 놓아두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을 지속해서 집중 공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땅에 우리를 전도와 선교하는 단체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악한 사단이 우리가 선교하지 못하게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때에 복음의 확실한 결론이 없으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2) 현재
사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때 그 때의 현재적 상황에서 받을 축복을 받지 못하도록 집중 공격했습니다.

(3) 노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노예로 있었던 것은 훈련 기간이었습니다. 그런에, 악한 사단은 완전 공격을 가하여 그것을 훈련 기간으로 깨닫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4) 존패의 위기
사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완전히 매이게 하여 존패에 위기에까지 처하도록 했습니다. 사단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계속 공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죽여 버리고, 아들을 낳으면 나일강에 던져 죽이게까지 하였습니다. 복음을 받았으나 승리하지 못하면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완전히 고난 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수많은 성도들이 여기에 빠져있습니다. 약속을 굳게 잡고 승리하지 못하면, 후손들까지 다 죽게 됩니다. 언약을 깨닫고 자녀들에게 언약의 바톤을 넘겨주지 못하면, 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기 때문에 자녀들이 처절하게까지 타락하게 됩니다.

아마도 대구의 악한 영들은 송현교회 성도들을 제일 많이 건드릴 것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일수록 더욱 건드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미하게 있으면 당하게 됩니다. 약속을 분명히 붙잡고 승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중직자들을 너무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사단이 집중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중직자들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확신을 가지고 사단의 세력을 꺾고 승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안목으로 볼 때, 우리들은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벌서 우리들의 가정이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변화와 역사를 누려왔습니다. 정말로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희미하게 있으면 예수 믿는 것으로 오히려 고생을 하며 방황하게 됩니다.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 속에 있으면서도 이 사실을 놓치니까 늘 원망하며 불평에 빠져 있습니다. 묵은디들을 건드려 보면 대부분이 이러한 상태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눈만 뜨면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불평하게 됩니다. 조금만 깨달으면 엄청난 축복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사단의 통로

사단이 틈타는 통로를 살펴봅시다.

(1) 마태복음 12장 43-45절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왜 귀신이 나갔을까요? 귀신은 딱 하나 앞에서만 쫒겨나갑니다.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되었다면 영원한 구원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다시 돌아왔을 때 주인 없이 집이 비어있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복음이 안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다면, 집이 비어있지 않고,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나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냄새만 맡고도 사단이 도망갔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 도망갔던 사단이 미심쩍어 다시 와본 것입니다. 복음이 없이 '예수, 예수'라고 하면, 율법과 종교에 빠지게 됩니다. 마음이 착하다거나 선행을 한다고 해서 악한 사단이 떨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단이 더 힘을 얻습니다. 나갔다 와보니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어서 놀기 좋고 쉬기가 좋아서 다른 일곱을 더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그 나중 형편이 더욱 심하게 되었습니다. 이 악한 세대가 바로 그렇습니다. 이 세대는 종교와 율법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오래 믿은 묵은디나 중대한 짐을 진 중직자일수록 복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복음이 안 되고 종교인과 율법자가 되면 점점 어려워지고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완전히 빈 집이 되고 소제가 되어지나 전보다 더 악한 형편이 되는 것입니다.

종교나 율법 속에 들어갈 때 나타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은 노력하고 애쓰느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비판의 눈이 열리게 됩니다. 앉았다 하면 비판하게 됩니다. 율법적인 설교를 할 때는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을 때 교인들의 허물부터 드러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한 시간 예배를 드릴 때, 모두 자기의 잘못을 보고 설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고개가 저절로 끄득여지며 나갈 때는 완전히 눌려서 기가 죽어 현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종교와 율법에 빠진 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들에게는 힘이 없습니다.
기도회가 끝나고 상담을 한다는 것이 남의 허물을 꺼내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주로 남편이나 아내를 반 죽여놓습니다. 말세에 어려울수록 '여리고 작전'이 필요합니다. 여리고 성을 돌 때에 사람과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정말 위기를 느끼게 되면 말을 하지 마십시오. 믿는 자는 그 때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됩니다. 중대한 어려움이 올 때에는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들과 말을 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십시오. 상담하러 돌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 그렇게 하다가 점쟁이에게까지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직고하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닐수록 종교와 율법에 빠지는 현실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전부 사단의 통로입니다.

(2) 베드로전서 5장 7-8절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이 삼킬 수 있는 대상은 염려하는 대상입니다. 염려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주권자 되신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는 것이, 내 욕심과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는 것에 불과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주권자이심을 모릅니다. 그래서, 이것이 되지 않은 오래된 성도들이 문제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도 응답에 대해서 많은 착각을 합니다. 자기 욕심을 이룬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만약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내가 할 일은 전혀 없는 것 아니냐!'라고 하면서 대어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완전 불신앙의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놓고 우리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세워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계획에 맞추어 나아가야 합니다. 주일이 되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씻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다고 하니까 마냥 누워있기만 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나아가지 않는 자입니다. 완전 불신앙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염려하지 말고 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 짐은 이미 내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주님께 다 내려놓고, 이제는 주님의 멍에를 매는 것입니다.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볍다고 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왜 맡겼다가 뺏았다가 합니까?
어느 선교사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차를 타고 시골 길을 가다가 어떤 할머니를 태웠습니다. 조금 가는데 뒤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할머니가 아직도 머리에 짐을 이고 중심을 잡느라고 고생하더랍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짐을 옆 자리에 내려놓으시라고 하니까 할머니께서 더 걸작의 대답을 하셨답니다. "몸만 태워준 것도 고마운데 짐까지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다 내게로 와서 맡기라고 하십니다. 무엇이든 맡기십시오. 그리고, 맡겼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머리에 이고 끙끙댑니까? 이렇게 되니까 예수 믿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3) 요한일서 4장 18-19절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으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공포가 사단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맞추는 것이 안 되면 염려를 지나서 두려움이 나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밤에 배가 아프다가 아프다가 나중에는 '맹장염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빠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은혜로 되어지지 않으면, 두려움이 오게 됩니다.
염려와 걱정 근심이 모두 사단의 통로입니다. 이것을 알 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오.'라는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이 기도가 나올 때 성령께서 치유하십니다.

(4) 마태복음 4장 1-10절
사단이 시험을 하는 통로로서 의식주, 명예, 경배의 대상이 있습니다. 초기 신앙에서 제일 많이 사단의 통로가 되는 것이 의식주입니다. 실제로 배고파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입은 옷이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눌려버립니다. 사단이 이러한 먹고 입는 것을 통로로 삼아 성도들의 마음을 다 빼앗습니다. 물론, 가난한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난이 사단의 통로가 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사단이 마음대로 들어옵니다. 복음이 안되면 사단이 들어올 통로가 마음대로 열리기 때문에 진짜 고생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됩니다.


[3] 사명자들

사명자들도 영적 문제에 빠집니다. 사명자들이 영적 문제에 빠진 증상이 있습니다.

(1) 시기
시기심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각자에게 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안되면 어떤 사람이 한 쪽 방면에서 잘 하면, 박수를 쳐주어야 되는데 시기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시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2) 갈등
현실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역사가 나오지 않으면 감사가 나오지 않고, 갈등이 나오게 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가 없으면 광야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은 조금만 다른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 감정을 가지고 갈등했습니다.

(3) 습관
시기와 갈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상한 습관이 생깁니다. 그렇게 사단에게 잘못 끌려다닐 때에 생긴 습관은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4) 성품
이러한 습관이 성품화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모두 성격이 좋지 않습니다. 이상한 성품이 깔려버립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똑같습니다. 이것이 모두 정신 문제입니다.

(5) 동기
이렇게 될 때에 동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받은 복이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드려도 그 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바쳤으면 그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바쳤으니 더 큰 것으로 주셔야만 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꼬투리로 무엇인가를 바랄 필요가 없습니다. 바쳤다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동기도 필요 없습니다. 받은 것이 너무 많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6) 욕심
욕심이 생깁니다. 기도할 때에 욕심이 나온다면, 응답 받을수록 더 망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편안할 수 있는 것은, 욕심없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으로 다 받은 것입니다. 지금은 받은 은혜를 누리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4] 자기가 죽어야 한다.

'내 것, 내 계획이 아무 소용없구나!'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자기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살하라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시기, 갈등, 습관, 성품, 동기, 욕심 등이 왜 나옵니까? 조금만 문제의 상황이 닥치면 혈기를 막 부립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 자신은 장사지낸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만나면 자기가 다시 벌떡벌떡 일어납니다. 정말로 그리스도 이외에는 전혀 유익이 없습니다. 이제는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모아야 합니다. 이것이 치유 중의 치유입니다.

(1) 갈라디아 2장 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의 옛 것은 다 죽었습니다. 죽은 자에게 무슨 시기와 원망이 나옵니까? 그런데 시기와 원망이 가끔씩 올라옵니다. 어떤 목사님은 그 때에 '내려가'라고 명령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사단에게 속는 것을 깨닫는 순간 올라오던 시기와 원망이 사라져 버립니다. 깨달으면 이상하게 평안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지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치료하시는 것입니다.

(2) 디모데후서 4장 1-5절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오래 믿은 사람일수록 메시지 듣기가 힘들어집니다. 메시지를 드는 일에 너무 힘이 든다면, 그것은 사단의 역사입니다. TV에는 푹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면서, 메시지는 잘 못듣는 것이 말세의 증상입니다. 메시지를 들으면 들을수록 꿀송이보다 달게 느껴집니까? 그렇게 되면 말씀 성취에 눈이 열립니다. 이것이 되면 다른 허탄한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이제는 영혼을 살리며 사단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는 약속의 말씀을 잡고 기도할 때입니다. 그 때에 치유되는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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